세계문화유산 모데나 두오모

2016. 1. 7. 08:00이탈리아 여행기 2015/모데나

위의 사진은 모데나 구시가지 중심에 있는 두오모입니다.

이탈리아에서는 가장 우아하다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표선수라 합니다.

정문 위에 보이는 장미꽃 문양의 장식이 가장 유명한 특징이라 하네요.

오늘은 모데나의 세계문화유산 3 총사를 한꺼번에 구경합니다.

 

안에서 본 장미꽃 문양 장식입니다.

채광창 역할도 하며 밋밋한 건물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역할도 하지요.

이 장미꽃 문양의 창문 장식은 롬바르디아 양식의 가장 큰 특징이 된다 합니다.

 

이제 모데나의 심장인 두오모를 찾아갑니다.

좁은 골목길을 따나 남으로 내려가다 보니 저 멀리 우뚝 솟은 탑 하나가 보입니다.

이 작은 마을에 저런 높이의 탑이라면 마을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겠네요.

 

모데나는 중세에 페라라의 에스테 가의 지배 아래 있다가 1598년 에스테 가는

교황으로부터 페라라에서 쫓겨나게 되었다네요.

당시 교황의 권력이 지방 영주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나 봅니다.

위의 사진은 성당 안에 있는 설교단입니다.

 

에스테 가는 아예 이삿짐을 챙겨 새살림을 차리겠다고 

모데나로 수도를 옮기며 이제 여기가 최고 전성기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바로 위의 건물이 두칼레 궁전으로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았다 합니다.

베네치아에도 두칼레 궁전이 있지요.

물론, 지금 이곳은 군사 아카데미로 군인과 경찰관 간부교육기관으로 사용되고 있지요.

 

에스테 가문은 학문을 숭상하고 예술가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 북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를 꽃피운 가문으로 유명하다 합니다.

예술이란 역시 경제적인 지원이 따라야 융성해지나 봅니다.

그래서 구시가지 일부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중세도시입니다.

 

기차역에서 구도시 중심인 그란데 광장까지는 약 1km 정도로 걸어서

금방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곳입니다.

모데나에서 구경거리는 모두 광장을 중심으로 있습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건물이 모데나 시청입니다.

 

모데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이 구시가지 전체가 아니랍니다.

그러나 구시가지의 한가운데 있는 그란데 광장과 광장 가운데 있는 두오모 그리고 그 옆에

볼품없이 우뚝 선 "라 기를란디아" 탑뿐이라 하네요.

바로 위에 보이는 사진이 모데나의 세계문화유산 삼총사입니다.

 

또한, 이 성당과 광장이 유명한 이유로는 모데나가 낳은 불세출의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영결식이 열린 장소이기 때문이죠.

위의 사진은 당시의 모습입니다.

5만 명의 애도 인파가 모인 가운데 비행기까지 동원해 애도의 비행을 했나 봅니다.

 

모데나 출신으로 어린 시절 이곳 모데나 합창단에서 활동하다 세계적인 테너 가수가

되었다고 하며 그의 업적을 기린다고 이곳 모데나에는 루치아노 파바로티 극장이 있어

연중 오페라 공연이 줄을 잇고 있답니다.

 

모데나 두오모(Modena Duomo)는 우아하기로 유명한 이탈리아 로마네스크 양식을

대표하는 대단히 유명한 건물로 알려졌지요.

이 성당이 유명한 것은 과거 훈족이 이 지방을 침범했을 때 짙은 안개로 덮어버려 모데나를

훈족으로부터 보호한 주교 성 제미니아누스의 유해가 있는 곳이라네요.

세상은 우리처럼 아둔한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많이 일어납니다.

 

두오모는 13세기 롬바르디아 지방의 유명한 조각가인 빌리젤모가 조각한

조각작품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위의 사진은 성당 안에 있는 설교단 아래를 받치는 기둥과 기둥 받침대입니다.

기둥 받침대에는 여러 동물의 형상을 아름답게 조각하였습니다.

 

정문에 보이는 장미꽃 문양의 창은 롬바르디아 양식에서는 가장 기본이 되는 문양이라

하며 파사드는 별로 장식이 없지만, 정문 양쪽으로 보이는 좌우의 아치와 2단으로 된

기둥이 밸런스를 이루어 안정감을 준다 하네요.

성당의 규모도 크지 않고 파사드도 다른 성당에 비해 화려하지는 않습니다.

마치 꾸미지 않은 촌색시 같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성당과 종탑은 언바란스를 이루고 있으니...

성당 남쪽 광장으로 가면 그곳에 조각도 유명하다고 합니다.

북쪽 문 입구에 있는 카인과 아벨의 조각은 빌리젤모가 조각한 것이라고 하는데

사진을 분명히 찍었는데 사라져 버렸습니다.

 

두오모로 들어가는 문 양쪽에 창세기를 묘사한 작품이 보입니다.

위의 사진 오른쪽을 보면 뱀도 보이고 이브도 보이고 그리고 아담이 사과를 먹는 모습으로

보이는데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다이어트가 필요한 몸을 그렸습니다.

그러다 걸려 혼이 나는 장면이 가운데 보이고 왼쪽은 꿀밤 맞고 쫓겨나는 모습일까요?

가운데 이브는 한 번만 용서해달라고 빌고 아담은 배 째라는 식으로 누워버렸습니다.

역시 너무 비만형입니다.

이 조각은 12세기에 조각가 빌리젤모(Wiligelmo)의 작품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성당 입구 왼쪽에 자신의 서명을 남겼다고 하네요.

 

빌리젤모 이후 조각가가 자신의 작품에 서명을 남기는 일이 유행했다고 합니다.

그가 남긴 작품 중 최후의 만찬입니다.

이 작품이 압권입니다.

그 외 성당 안에는 그의 작품을 여럿 볼 수 있습니다.

 

성당을 지은 란프란코(Lanfranco)도 두오모 내부의 제단 뒤쪽의 반원형

애프스(Apse)에 서명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네요.

애프스는 바로 위의 사진처럼 외부로 돌출시킨 둥그렇게 생긴 것을

말하지 않을까 생각하네요.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최후의 만찬장에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지요?

조각이 있는 곳이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구석진 자리고 어두운 곳이라 사진이 엉망입니다.

심지어는 배신자 가롯 유다의 발까지 씻겨주셨다고 하지요.

이 의미는 나 외의 누구라도 섬긴다는 의미일 것이고 원수도 사랑하라는 교훈이 아닐까요?

 

유다의 입맞춤입니다.

당시 입맞춤은 지금의 악수 정도의 인사였을 겁니다.

예수께서 올리브 산에서 기도를 마치고 잠든 제자를 깨워 내려오는 중에 유다는 로마 병사와

대사제가 보낸 무리가 칼과 몽둥이를 들고 올라오던 중 만났다고 하지요.

 

그때 유다는 병사들에게 예수를 알려주는 의미로 다가가 입맞춤을 하게 되며

예수는 그 자리에서 체포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왼쪽부터 유다의 입맞춤과 체포되어 제사장으로부터 사회를 혼란스럽게 했다고 재판받는

모습이고 제일 오른쪽의 모습은 십자가를 들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모습입니다.

 

예수는 두 번의 입맞춤을 받은 일이 있다고 하네요.

하나가 유다의 입맞춤이고 다른 하나는 베다니아에서 막달레나로부터 발에 입맞춤을 받으셨다고

하며 한 사람은 죄를 짓는 입맞춤이고 다른 하나는 죄를 짓고 나서의 입맞춤입니다.

혹시 위의 사진에 보이는 예수의 탄생 때 동방박사 세 사람이 탄생을 축하하는 의미로

볼에 입맞춤하지는 않았을까요?

 

흰 대리석으로 만든 종탑은 그 높이가 88m나 되기 때문에 도시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이 종탑을 "라 기를란디나"라고 불린다네요.

이 말의 의미는 난간이라는 의미로 팔각형 첨탑을 만들고 두 개의 난간을 만들었기에

이런 애칭으로 부른다네요.

종탑에 올라갈 수 있으나 3유로를 내야 합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모데나는 크게 볼 게 없습니다.

그러나 두오모 안에 있는 조각은 대단히 아름답습니다.

두오모에 들어가는 것은 무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