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가 잠든 세비야 카테드랄

2015. 10. 3. 08:00스페인 여행기 2014/세비야

1248년 카스티야 왕 페르난도 3세가 세비야에서 이슬람 세력을 몰아낸 후 그들의 색깔을 지우기 위한 것 중

첫 번째로 했던 일이 바로 이슬람의 상징인 모스크를 없애는 일이었을 겁니다.

그게 바로 이 지역을 지배하는 신을 바꾸는 일입니다.

세상이 바뀌면 무어인이 모셨던 신은 그동안 이곳에서 그리도 공경받고 지냈겠지만,

이제는 성전까지 모두 빼앗기고 하루아침에 거리로 쫓겨나야만 하잖아요.

 

신이 전지전능한 존재라는 말은 이런 경우는 모두 틀린 말이지 싶습니다.

신은 인간에 의해 하루아침에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수 있고 또 반대로 인간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오직, 인간의 능력에 따라 말입니다.

그러나 인간에 그런 힘을 주는 것이 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이런 거대한 모스크를 버리고 떠날 때 인간은 그때까지 별의별 규범과 존경으로 모시다가 세상이 바뀌니

자기 목숨 보전하자고 신을 헌신짝처럼 모두 버리고 떠납니다.

참고로 헌신짝의 신은 다른 신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이 이 지역을 장악하면 먼저 신의 흔적마저 모두 쓸어버리고 자기들의 신을 내세웁니다.

여기도 그랬지 싶습니다.

 

먼저 이곳의 주인 행세하며 살았던 사람이 모신 신의 자취를 깡그리 없애고

그 신이 부럽고 무색할 정도의 건축물을 만들자!

이렇게 생각하고 회의를 거듭한 결과, 후세 사람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대단한 카테드랄을 지었을까?

후세 사람들이 우리 보고 미쳤다는 생각이 들게끔 크고 아름답게 짓자!"라는 깜짝 놀랄 성당을 건축하자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후세 이곳을 찾는 사람이 입장료를 내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까?

결국, 그들의 생각이 옳았습니다.

지금 세비야 대성당은 입장을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조용히 두리번거리며 돌아보는데...

위의 사진에 보이는 거대한 기둥 사이로 불 하나 외롭게 비치는 아래로 뭐가 보입니다.

 

그랬습니다.

누구나 이곳에 들리면 제일 먼저 보고 싶어 하는 것.

바로 콜럼버스의 관입니다.

물론, 기독교 신자들은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콜럼버스는 의기양양하게 왕국으로 향하였다.

물고기 뼈와 금 장신구로 머리 장식을 한 인디오들과 화려한 앵무새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새를 지니고 행진하는

이 용감한 모험가의 특이한 행렬을 보기 위해 농부와 귀족들이 모여들었다.

하인들은 순금과 호박을 들고 그와 선장들의 뒤를 따랐다.

 

바르셀로나 왕궁에 그가 들어서자 귀족들이 일제히 일어섰다.

이것은 이 나라에서 가장 저명한 귀족들만 누릴 수 있는 존경의 표시였다.

왕궁의 홀로 들어선 그가 페르난도와 이사벨 앞에 무릎을 꿇자, 두 사람은 그를 일으켜 세우고,

이사벨 여왕의 오른편에 앉아 모험담을 이야기하도록 했다.”

 

이 이야기는 콜럼버스가 신대륙 발견 후 바르셀로나로 돌아왔을 때의 장면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바로 위의 사진에 보이는 광장이 바르셀로나에 있는 왕의 광장으로 콜럼버스가 남미 대륙을 발견한 후

스페인으로 돌아와 저 광장을 가로질러 걸어 올라온 계단입니다.

출발은 세비야지만, 귀국 때는 지금의 바르셀로나로 왔다고 하네요.

 

여기 세비야 대성당이 유명한 이유 중 다른 하나는 콜럼버스의 청동관이 안치된 곳이기 때문이겠죠.

비록, 콜럼버스는 우리 부부를 모르지만, 우리 부부는 그를 조금 알잖아요.

그래서 오늘 세비야 대성당을 찾아봅니다.

 

그러나 이곳에 서면 신을 모시는 대성당임에도 불구하고 신보다는 콜럼버스 청동관이 갑이 아닐까요?

그래서 가장 많은 사람이 오래도록 서서 바라보는 것이 그의 관일 겁니다.

우리 부부도 사실 성당 내부의 다른 모습보다는 콜럼버스의 청동관만 가장 오래도록 바라보다 나왔습니다.

 

콜럼버스는 나중에 지원이 끊기는 바람에 다시는 스페인 땅에 발을 딛지 않겠다고 유언하며

바애둘리드에서 죽자 처음에는 이곳 세비야에 묻혔다가 그의 아들 내외가 간청해 그의 시신이

도미니카 공화국의 산토도밍고에 매장하게 되었답니다.

1795년 스페인은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패하며 그의 유해를 다시 쿠바의 하바나 대성당에 안치되었다지요?

그 후 1898년 미국으로 임시 옮겨졌다가 마지막으로 다시 세비야 대성당으로 모셨다 합니다.

 

콜럼버스는 살아생전 신대륙을 찾아다니는 등 정신없이 살아왔으나 죽어서도 그랬나 봅니다.

이제는 이곳에서 편안한 잠에 빠졌을 겁니다.

사실 계약서는 신대륙에서 가져오는 물품의 10%를 받고 총독의 자리에 앉는다 했지만, 신대륙의 반란으로

제대로 관리조차 하지 못했고 나중에는 빈손으로 돌아오는 사람에게 뭐가 예쁘다고 자꾸 후원만 하겠어요.

 

게다가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던 이사벨도 황금은 가져오지 않고 노예만 잡아 데려오는 콜럼버스를 언제까지

예쁘게 볼 수 없잖아요.

이사벨은 콜럼버스와 같은 해에 태어났으나 2년 먼저 가는 바람에 더는 도와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을 겁니다.

이사벨 여왕이 먼저 죽자 끈 떨어진 콜럼버스도 더는 버틸 힘이 없었을 겁니다.

사실 이사벨 여왕 외에 나머지 사람은 지원 자체를 반대했을 테니까요.

 

정말 속 좁은 사내로 오해받을까 무섭습니다.

죽은 후 본인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곳으로 옮겨왔기에 콜럼버스 귀신이 화를 내지 않을까요?

대신 우리가 관을 들고 앞에 선 두 사람의 발을 만져줍시다.

그러면 콜럼버스의 발을 만지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그의 유언대로 명분도 살리고 그가 처음 항해를 시작한 이곳 세비야에 다시 그의 유해를 모시기 위해

발을 땅에 닿지 않게끔 공중에 매달은 현관의 모습으로 네 명의 스페인 왕으로 하여금 관을 들고 있으라 했네요.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인가요?

세상에 왕의 어깨 위에 잠든 사람 본 적 있어요?

그것도 네 명의 왕 말입니다.

 

결국, 콜럼버스가 죽으며 다시는 스페인 땅에 발을 딛지 않겠다는 유언 때문에 졸지에 네 왕국의 왕은

이렇게 오늘도 견마지로를 다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왕이 저렇게 들고 있어야 할까요?

혹시 "그렇게 안쓰러우면 네가 대신 짊어질래?"라고 佳人에 말하면 스페인 말을 모르니

그냥 웃으며 지나치면 되겠지요?

저 사람들 그대로 들고 있으라고 해요~

 

좌우지간 쿠바의 아바나보다는 이곳에 콜럼버스의 유해가 안치된 게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여기 네 명의 왕은 15세기 스페인을 지배했던 카스티야 왕국, 레온 왕국, 나바라 왕국 그리고 아라곤 왕국의

왕으로 왼쪽의 왕은 가슴에 성채를 오른쪽은 사자를 의미하는 문장의 옷을 입었기에

각각 카스티야와 레온 왕국의 왕입니다.

지금도 그런 전통이 이어져 스페인 국기를 보면 방패 문양 안에

네 개 왕국을 의미하는 문장이 있어 쉽게 알 수 있죠.

 

제일 앞에 선 두 왕의 발끝은 많은 사람이 만져 반짝거립니다.

오른쪽 발을 만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세비야를 다시 찾게 되고 왼쪽 발을 만지면 부자가 되게 해 준다는

엉뚱한 이야기가 있답니다.

이런 이야기가 동양권에만 있는지 알았는데 여기도 있군요.

그럼 우리 부부는 왼발만 만지면 되나요?

아직도 세상 곳곳에 가보지 못한 곳이 많아 이제 이곳에 다시 찾을 일이 없잖아요.

기왕이면 원가도 들지 않은데 두 발 모두 만지고 가지요.

 

재미있는 일은 이슬람을 지우기 위해 모스크가 있던 자리에 모스크를 헐고 성당을 지었다고는 하지만,

안에 있는 정원인 오렌지 정원과 성당에서 가장 높은 히랄다 탑은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에 속했던 것이라 합니다.

이렇게 스페인은 역사의 흐름을 끊지 않고 계승하기도 했나 봅니다.

부수고 새로 세우기보다는 리모델링을 하여 적은 비용으로 효과는 같으니 그것도 좋은 방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성당 안에는 국보급 작품들로 가득하답니다.

그러니 굳이 갤러리에 가지 않더라도 성당 내부의 조각이나 그림만 보더라도 만족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자세히 보려면 몇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보급 예술작품을 보는 눈이 수준에 미치지 못하기에 작품들이 무척 슬퍼할 것 같습니다.

이럴 때는 그냥 사진 몇 장만 찍는 센스를 보이고 슬며시 비켜서야겠죠?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왕실 예배당에 있는 많은 아름다운 작품 중 세비야 수호성인이라는 성 로스 레예스는 눈여겨보라고 합니다.

조각상의 발밑에 있는 것이 페르난도 3세의 납골 단지라 합니다.

좌우로 알폰소 10세와 그의 모후인 베아트리스의 묘가 안치되어 있습니다.

원래 유럽 성당 지하에는 카타콤베라고 해 그런 시신을 모시는 장소를 만들었다고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