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남미의 마야 그리고 아스테카 문명

2015. 9. 4. 08:00스페인 여행기 2014/메리다

1519년, 에르난 코르테스를 따라 지금의 멕시코 시티에 있었던 아스텍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을

바라보던 콩키스타도르의 한 사람이었던 카스티요라는 사람은 이 도시를 멀리서 바라보고

그 느낌을 이렇게 전했답니다.

“물 위에 솟아오른 수많은 건물과 시가지는 경이로웠다. 우리는 이게 꿈이 아닌가 의심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풍경,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도시의 위용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 이야기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촌놈이 화려하고 멋진 도시를 처음 보고

한 말이라는 이야기가 아닌가요?

 

그랬습니다.

아스텍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은 당시 유럽의 어느 도시보다 규모가 크고 화려했습니다.

파리도, 로마도 이처럼 화려하고 거대하지는 못했습니다.

하물며 이곳 에스트레마두라 출신의 촌놈들이 그런 거대한 도시를 보고 놀라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니겠어요?

그들이 처음 세비야를 보고 이게 세상의 도시인가? 하늘의 세상인가 놀라워하며 출발했지만,

여기는 세비야의 몇 배나 되는 더 크고 화려한 도시였다는 말이 아니겠어요?

 

코르테스 일행은 이 도시의 심장을 향해 말을 타거나 천천히 걸어 들어갔습니다.

유럽의 파리, 세비야, 로마보다 더 거대한 이 도시에서 그는 20만 명의 인파가 붐비는 떠들썩한

시장을 보았고, 정교하고 화려한 장식품을 보았고, 태양신에게 심장을 바치는

인신공양이라는 종교의례를 보았습니다.

이 종교 행위로 말미암아 콩키스타도르의 만행이 일부 덮어지는 일이 생기기도 했지요.

인신공양이란 태양신에게 산 사람의 심장을 즉석에서 꺼내 바치는 그런 행위입니다.

 

아스텍의 지도자 몬테수마는 코르테스 일행을 환대했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려고

했는데 그 이유는 그는 난생처음 본 말과 말을 탄 모습이 마치 신의 아들처럼 생각되어

동쪽에서 온 이들이 태양신의 자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남미에는 말이 없었다고 합니다.

 

시간을 조금 거꾸로 돌려보겠습니다.

1504년, 19세 청년 코르테스는 청운의 꿈을 품은 채 남미로 떠나 15년 동안 쿠바에서

총독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부하로 활동하며 새로운 세상의 경험을 쌓게 됩니다.

쿠바를 점령할 당시 상당한 공을 세우기까지 하며 총독의 눈에 들었다 하네요.

그러나 두 차례나 중남미로 보낸 원정대가 소식이 없자 총독은 3차 원정대를 꾸미고

그 대장에 코르테스를 임명합니다.

드디어 촌놈 코르테스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입니다.

 

유카탄 반도를 점령하기 위해 탐험대장으로 임명되었지만,

바로 그때 2차 원정대가 복귀하는 바람에 무산될 위기에 처합니다.

이를 이유로 탐험대는 해산 위기에 몰리자 애초부터 남미 정복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던 코르테스는 두려웠던 겁니다.

때마침 총독은 그의 탐험대장직을 박탈해 버립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지금까지 견마지로를 다하며 기다려온 순간에 물거품이 되다니요?

 

코르테스 입장에서는 여기서 주저앉으면 세계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릴 수 없잖아요?

원래 혼자서라도 탐험대를 꾸릴 계획을 하고 있던 코르테스였지요.

위의 사인이 바로 코르테스의 서명이라 합니다.

 

그는 독단으로 탐험대를 조직하여 11척의 배에 110명의 승무원, 508명의 병사, 말 16마리,

대포 14문을 싣고 총독의 명령에 불복하고 1519년 2월 10일 쿠바를 떠나 유카탄 반도

동부의 코수멜 섬에 들렀고 4월 지금의 멕시코 베라크루스에 도착해 도시를 건설합니다.

위의 지도가 바로 베라크루스에서 테노치티틀란까지 이동했던 

코르테스의 행적을 보여주는 지도입니다.

 

이들의 군사력을 보면 그리 대단한 전력은 아니지 싶습니다.

그들의 목적이 도시나 건설하는 게 아니잖아요?

놀면 뭐하겠어요.

그래서 일하며 싸워야지요?

 

배라크루스를 중심으로 주변 지역을 하나씩 복속시키며 세력을 확장하던 중 인근을 호령하는

아스테카 제국의 황제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고 본격적인 내륙 원정을 준비하게 됩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다는 아스테카 제국은 황금의 제국이라고 하니 침이 꼴딱 넘어갑니다.

당시 아스테카 제국은 주변 모든 부족으로부터 세금을 징수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진

나라였으니 코르테스는 아스텍에서 나온 세금 징수원에게 교류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한편 정복에 관한 준비에 들어갑니다.

말을 듣지 않으면 뒤통수를 치겠다는 의도겠지요.

 

이때 일부 부하들이 쿠바로 돌아가기를 원하고 또 다른 부하는 쿠바의 총독과 내통하며

이곳의 정보를 주고받는다는 생각이 들어 코르테스는 원정대가 타고 온 10척의 배를

모두 침몰시켜 버립니다.

이제 퇴로는 막히고 남은 길은 전진뿐입니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총독을 거치기보다는 스페인 국왕과 직접 연결하고 이곳을 정복해

스페인 국왕에 바치고 이곳에서 빼앗은 황금의 20%를 바쳐서 기쁨 주고 칭찬받는 일 외에

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말은 중간 유통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직거래를 한다는 말이잖아요.

역시 대단한 발상이 아닌가요?

 

코르테스의 가장 큰 업적으로 평가되는 멕시코 제국 정복 과정은

그가 본국에 보낸 다섯 편의 보고서를 통해 자세히 서술했네요.

이 보고서의 수신자는 당시 에스파냐 국왕이며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던 카를로스 5세였습니다.

총독의 명령에도 불복하고 독단적으로 쿠바를 떠나 신대륙에 온 코르테스는

자칫 반역자로 몰릴 위험에 처해 있었지요.

따라서 자신의 행동이 어디까지나 조국과 국왕의 이익을 위해서임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승인을 얻을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드디어 1519년 11월 1일 코르테스는 베라크루스 인근의 부족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병사

천여 명을 이끌고 몬테수마가 지배하는 아스텍의 심장 테노치티틀란을 향하여

첫발을 떼게 됩니다.

이때 코르테스가 주변 부족으로부터 천여 명의 병사를 지원받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아스텍의 횡포가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지요.

아스텍의 심장으로 들어가는 일에 주변 부족 대부분이 동참하겠다고 스스로 나섰던 겁니다.

 

테노치티틀란이라는 도시는 당시 유럽의 대도시보다도 더 화려하고 웅장했다 합니다.

몬테수마는 이들을 그들이 섬기는 태양신의 아들이라 생각해 환대하고 융숭하게 대접합니다.

하얀 얼굴에 수염을 기르고 처음 본 말을 타고 무서운 개를 이끌고 도착했던 금발의 유럽인이

그들 눈에는 태양신의 아들이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1519년 11월 14일 코르테스는 아스텍의 지도자인 몬테수마를 회유와 협박으로

자기들 숙소에 강제로 감금하게 됩니다.

이듬해 5월, 쿠바 총독은 자기 명령을 어기고 독단으로 행동하는 코르테스를 체포하기 위해

군사 천여 명을 베라크루스로 파견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그동안 몬테수마를 통해 많은 황금을 손에 넣는 중이었죠.

 

코르테스는 100여 명의 소수 군사를 테노치티틀란에 남겨 몬테수마를 감시하게 하고 나머지

군사를 이끌고 자신을 체포하기 위해 파견된 총독 군에 대항하기 위해 베라크루스로 돌아갑니다.

이 사건이 코르테스에 닥친 최초의 위기인 셈이죠.

 

열악한 군사력과 대부분 원주민 지원병으로 이루어진 코르테스 군은 이 지역의 지형과 경험이

풍부한 원주민 병사의 도움으로 급습작전을 펴 총독이 파견한 군사를 일거에 제압하고 그들에게

황금을 보여주며 지금 그들이 하는 일은 총독을 위한 일이 아니라 왕을 위한 일이라고 설득하고

회유하니 황금의 위력으로 출동했던 총독의 병사 모두가 코르테스 편에 가담해버립니다.

코르테스의 도박이 멋지게 성공하는 순간이죠?

역시 승부사의 기질이 풍부한 코르테스입니다.

 

"여기는 황금의 땅이다. 여기서 가져가는 황금의 20%는 왕에게 바치고 20%는 성당에 바친다.

그러면 나머지 60%의 황금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눌 것이다."라는 말에

넘어가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스페인 병사 모두는 머나먼 남미에 온 이유가 바로 황금이 아니겠어요?

게다가 왕에게 황금 일부를 바친다면 반역이 아니라 왕을 위하는 일이고 성당을 위하고

국가 부흥에 기여하는 일이 아닌가요?

 

이렇게 진압군을 오히려 수하에 거느리고 코르테스는 다시 테노치티틀란으로

의기양양하게 돌아오는데...

그런데 테노치티틀란에는 뜻밖의 사태가 생겼습니다.

그사이 테노치티틀란에서는 축제가 있어 많은 원주민이 모이고 시끄러워지자 테노치티틀란에

남은 코르테스 병사는 이들이 몬테수마를 구출하기 위한 행동이라 오해하고

무자비한 살상을 가했던 겁니다.

사태가 매우 급박해지고 드디어 전투가 벌어지게 됩니다.

 

이때 코르테스는 몬테수마를 앞에 내세워 휴전을 유도하나 원주민 병사들은 몬테수마에게

돌을 던져 크게 다치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몬테수마는 다음날 사망에 이르렀다네요.

몬테수마는 죽을 때까지 코르테스를 태양신이 보낸 사자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아스테카 제국의 워낙 많은 군사로 열세를 느낀 코르테스는 고민에 빠집니다.

이제 방법은 테노치티틀란을 탈출하는 방법 외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육지로의 유일한 탈출로인 다리를 아스텍 병사가 모두 치워버린 겁니다.

호수 가운데 있는 테노치티틀란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8개의 다리로 연결해 드나들게 하였는데

8개의 다리 모두를 치워버리는 바람에 꼼짝없이 고립되어버렸습니다.

 

코르테스는 부하에게 다리 8개를 만들지 말고 하나만 만들라 하고 칠흑처럼 어두운 밤에

첫 번째 다리를 건넌 후 그 다리를 들고 차례로 이동하는 방법으로 탈출을 시도합니다.

이렇게 숙소를 부수어 목재를 챙겨 다리 하나를 만들었다네요.

역시 머리 하나는 비상하게 돌립니다.

 

그동안 모아두었던 황금을 챙기고 드디어 슬픔의 밤이라고 후세 사람이 이름 지은

그날 밤 탈출을 감행합니다.

처음에는 기막히게 탈출에 성공하는 듯 보였으나 몇 개의 다리를 건너지 못해 발각되고 맙니다.

드디어 아스텍과 코르테스 병사 사이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물에 빠져 죽고, 살아서 잡힌 자들은 아스텍의 제물이 되어 인신공양이라는 이름으로

심장이 도려내 져 태양신 제단에 바쳐지고, 이날 밤 황금을 손에 든 체 코르테스 병사의

70%가 넘게 죽어버리는데 이런 일로 말미암아 후세사람은 이날 밤의 일을

슬픔의 밤(Noche Triste)이라 부르게 되었다네요.

 

테노치티틀란을 그들 언어로 신이 머무는 곳이라는 의미라 합니다.

신이 머무는 곳에서의 살상과 약탈로 신이 노했나 보네요.

그들이 그렇게 원했던 황금을 손에 들고도 목숨을 건질 수 없었던 겁니다.

처음에는 인간이 황금을 가졌지만, 나중에는 황금이 인간을 가져버린 셈입니다.

 

코르테스의 처지에서는 슬픔의 밤이었겠지만, 아스텍에는 환희의 밤이 되지 않았겠어요?

인신공양을 위해 적으로부터 끄집어 낸 살아서 펄떡거리는 심장이 얼마나 되는데요.

인신공양을 받았던 아스텍 태양의 신은 그날 밤 아주 행복했지 싶네요.

그동안 인디오의 심장만 받았지만, 이날은 처음 보는 서양인의 심장을 받았으니...

그것도 따따블로 받았잖아요.

 

이렇게 간신히 목숨만 건진 코르테스와 소수의 스페인군은 이 와중에 왕에게 바칠

많은 양의 금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 후 그 금의 행방은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고 하니 지금 당장 그곳으로 가

호수를 모두 뒤져서라도 찾고 싶습니다.

황금이 사라지자 코르테스는 왕에게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을 길이 같이 사라졌겠지요.

 

그뿐인가요?

코르테스 자신도 손가락 두 개나 잃어버릴 정도로 치열했던 전투였다네요.

왕으로부터 외면받은 코르테스나 국민으로부터 돌팔매질을 당해 죽은 몬테수마나 모두

개털이 되고 말았는데 이날 밤 죽은 사람은 스페인군 800여 명과 코르테스를 도우려고 지원했던

틀락스칼라족 1천여 명이라 합니다.

 

코르테스는 우호적인 원주민족인 틀락스칼라족 마을로 일단 피신하고 다시 테노치티틀란으로

들어가는 계획에 착수합니다.

주변의 많은 부족은 아스텍의 엄청난 세금과 인신공양의 제물로 바쳐지는 일 때문에

사실 코르테스 편에 서게 되었지요.

코르테스는 황금도 찾아야 하고 또 슬픔의 밤에 대한 한도 풀어야 하고...

이렇게 서로의 의기가 투합되니 다시 테노치티틀란으로 들어가는 일도

일사천리로 진행됩니다.

 

드디어 테노치티틀란으로 처음 출발한 지 딱 1년이 지난 1520년 11월 10일 우호적인 부족의

지원으로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코르테스는 다시 테노치티틀란 정복에 나서게 됩니다.

아스텍이 호수 가운데에 있는 테노치티틀란으로 들어가는 길의 다리를 치워버리자 코르테스는

배를 만들어 조각조각 나누어 병사들에게 짊어지게 한 후 산을 넘어 들어가

호수에 도착해 다시 조립합니다.

이게 무슨 레고 블록입니까?

역시 머리 하나는 기막힌 사람이죠?

 

이렇게 다시 조립한 배 위에 대포를 장착하고 호수를 건너며 테노치티틀란의 심장부를 향해

무자비하게 쏘아대고...

위의 사진은 당시의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아름다운 테노치티틀란을 온전하게 살려 스페인 왕에게 바치고 제단 한가운데 성당을 지어

하느님에게 바치고 병사가 아닌 어린이와 여자는 전쟁의 피해자로 만들 수 없다는

코르테스의 신념은 시간만 흐르게 됩니다.

 

이때 대포로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물의 공급을 끊어 굶겨 죽이는 방법을 사용하라고

코르테스에게 강력하게 주장한 장본인은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통역 겸 현지처였던

말린친이라는 현지 여자였습니다.

호수는 소금호수이기에 주변을 포위한 후 호수로 이어지는 수로를 폐쇄해 먹을

물의 공급을 끊어버리면 더는 버티기 어렵잖아요.

살상을 반대하는 코르테스에게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돌아가라고 소리 지릅니다.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그리할까 생각했지만...

아니면, 후세 사람이 코르테스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지어낸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전투가 벌어지고...

코르테스는 병사라면 여자와 아이는 죽여서는 안 된다고 외쳤지만, 그동안 아스텍의 억압 속에

숨을 죽이고 살아왔던 인근 부족의 지원병은 그때까지 그들에게 당했던 앙갚음을

일시에 쏟아부어버립니다.

그들이 앞장서 무자비한 살육이 시작된 겁니다.

 

이윽고 닥치는 대로 살육하고 불을 질렀습니다.

때마침 얼마 전 스페인 병사를 통해 유럽에서 건너온 천연두가 창궐했고,

아스텍 사람들은 힘없이 죽어갔습니다.

이렇게 테노치티틀란은 지구 위에서 모습을 서서히 감추어 갑니다.

 

1521년 8월 13일, 8개월에 걸친 전쟁으로 25만 명의 주민이 생명을 잃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화려했던 아스테카 문명은 이 지구 상에서 사라지게 되는 순간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승리는 원한을 가져오고

패배는 자신 스스로를 비하한다.

이기고 지는 마음 모두 떠나 다투지 않으면

저절로 편해진다.

- 법구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