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5. 9. 08:00ㆍ금수강산 대한민국/경기, 인천
남한성을 다녀왔습니다.
예전에 가끔 들렸던 곳이지만, 최근 다시 다녀왔습니다.
집에서 멀지 않기에 자주 다녀올 수 있지만, 말처럼 쉽지 않네요.
이번에 다시 찾은 이유는 남한산성 성곽을 걸어서 한 바퀴 돌아보려고 했습니다.
이번에 모두 걸어서 돌기보다는 세 번에 걸쳐 걸었습니다.
휴일에는 엄청난 인파가 모여들어 주차장은 만원이고 성벽 길은 원색의 등산복을 입은
등산객으로 미어터지네요.
남한산성은 코스가 여러 곳이기에 무리하지 않고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걸었던 제1 코스는 3.8km의 짧은 코스였습니다.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안내판에 적혀있는 여러 코스 중 제1 코스를 선택했습니다.
산성 로타리에서 출발해 북문을 지나 서문으로 올라가 수어장대를 들렀다가
남문으로 내려와 다시 산성 로터리로 돌아오는 코스였습니다.
모를 때는 처음부터 하나씩 걸어보는 게 좋겠네요.
시계 반대방향으로 걸었습니다.
오늘 사진 이야기는 산성 로터리부터 연주봉까지의 오르막입니다.
산성 로터리를 출발해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문이 하나 보입니다.
우선 제일 먼저 전승문이라는 북문입니다.
남한산성에는 모두 네 개의 문이 있다네요.
전승문(戰勝門)은 병자호란 당시 이 문을 열고 나가 청나라 오랑캐에
기습공격을 했던 문이라 합니다.
후에 싸움에 임해 패하지 말고 이기자는 의미로 전승문이라 했다네요.
당시 영의정 김류가 주장해 감행한 기습공격으로 300여 명의 조선군사가 이문을 몰래 열고
기습공격을 감행했으나 안타깝게도 적의 계략에 빠져 모두 전멸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합니다.
이를 법화골 전투라고 한다네요.
이는 병자호란 당시 이곳 남한산성에서 있었던 최대의 전투이며 동시에 최대의 참패라고
한다는데 그 후 정조 3년 이 문을 개축하며 그때의 아픔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전승문이라고 정했다 합니다.
다른 문과는 달리 우리의 조상이 겪은 아픈 이야기가 있는 문이네요.
이런 이야기가 있는 남한산성은 우리의 슬픈 역사가 있는 곳이라죠?
그러나 세월이 지나 지금은 세계문화유산으로 2014년에 지정되어
잊지 못할 우리의 역사 현장입니다.
이런 아픔을 알아야 미래에 닥칠 수 있는 재난을 예방할 수 있지 않겠어요?
이제 전승문을 지나 북쪽 오르막을 향해 올라가려고 합니다.
반대편은 다음 기회에 걸어보려고 합니다.
남한산성은 역사가 있는 장소라지요?
그런 곳이기에 다른 곳과는 달리 우리의 살아있는 역사 이야기가 있고
느낌이 있는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이 문을 나설 때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생각은 누구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잠시 오르니 북장대터가 나오네요.
장대란 지휘와 관측을 위한 곳으로 남한산성에는 모두 5개의 장대가 있답니다.
성의 북쪽에 있었기에 북장대라고 했으나 지금은 누각은 사라지고 그 터만 남았습니다.
전투가 벌어지면 지휘부가 있을 곳이니 아무래도 주변 풍경을 구경하기도 좋은 곳이겠지요?
남한산성에는 조선 시대 때 임금의 임시 거처인 행궁터가 있고 군사를 조련한 장소도 있습니다.
마르지 않는 우물터도 있고 논밭도 있어 외부의 침공으로부터 오래도록 버티며 항쟁할 수 있는
모든 여건이 충분한 곳이랍니다.
성벽 길을 따라 걷다 보니 凹凸凹 요런 모양의 요철형으로 우장(宇牆) 또는
여장(女墻)이라고 부르는 낮은 담장이 보입니다.
전투가 벌어지면 이곳에 몸을 숨겨 여장에 보이는 구멍을 통해 적과의 교전에 임할 목적을
뚫었다하고 여장 하나에 세 개의 구멍이 있는데 이 구멍을 총안(銃眼)
또는 사안(射眼)이라고 부른답니다.
적의 공격에 대비해 총이나 활을 쏘기 위한 구멍입니다.
하나의 여장을 1 타라하고 높이 약 2m의 벽을 타구(垜口)라 부릅니다.
우리나라의 성벽은 중국의 성벽과는 다릅니다.
세 개의 총안은 가운데는 경사를 깊게 하여 바로 성벽 아래까지 근접한 적에
타격을 주기 위한 것으로 근총안이라 부른다네요.
양쪽 두 개의 총안은 원총안으로 경사가 완만해 조금 먼 곳의 적을 공격하기 쉽게 만들었습니다.
중국의 만리장성은 1타에 하나의 총안만 만들어 놓았습니다.
총안의 목적은 이 구멍으로 통해 활이나 총을 쏘기 위한 곳이라네요.
여장을 돌로도 쌓지만, 구운 벽돌인 전돌로 쌓은 곳이 많다네요.
여장과 여장 사이에는 조금 열린 공간이 있는데 이곳을 타구라 부른답니다.
타구도 적의 공격을 저항하기 위해 활이나 다른 무기를 사용하기 위한 목적이지요.
다만 이렇게 연속으로 쌓지 않고 4m 내외로 타구를 만든 이유는 하나의 연결된 여장이라면
적의 공격에 허물어지기 시작하면 연속으로 무너지지만, 타구가 있으면 그 부분만
무너지기에 나중에 보수하기도 쉽다고 합니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금수강산 대한민국 > 경기, 인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한산성 매탄터와 서문 (0) | 2015.05.30 |
---|---|
남한산성 암문 그리고 연주봉 옹성 (0) | 2015.05.23 |
2015 고양 국제 꽃 박람회 3 (0) | 2015.05.03 |
2015 고양 국제 꽃 박람회 2 (0) | 2015.05.02 |
2015 고양 국제 꽃 박람회 1 (0) | 2015.04.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