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 카테드랄과 그 주변에 어두움이 내리고.

2015. 4. 1. 08:00포르투갈 여행기 2014/포르투

포르투에서 가장 멋진 풍경은 어떤 것일까요?

사람마다 자기 취향에 맞는 곳을 선정하겠지요.

누구는 도루 강변의 카페 모습이라고 이야기할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은 와이너리 투어라고 답할 것입니다.

위의 사진은 상 벤투 역의 야경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으로 가장 멋진 포르투의 풍경은 야경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실 포르투갈은 성당의 모습이 스페인에 비해 세밀한 묘사나 조각 등이 없어

외양의 모습이 조금 떨어진다고 생각됩니다.

성당을 믿음으로 보지 않고 모습으로 보는 佳人의 판단이 웃기지도 않지만, 사실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사실 성당의 첫인상은 파사드의 모습이 아니겠어요?

그러나 포르투갈의 성당 파사드는 눈에 띄지는 않습니다.

있다고 해도 시퍼런 타일로 장식한 아줄레주의 모습이 전부라고 해야 하겠지요.

유적 또한 스페인에 비해 거의 없다시피 하지요.

지진이나 다른 이유는 분명 있지만, 우리 같은 관광객에게 어필하는 게 사실 없기는 합니다.

 

오늘은 도루 강을 건너 다니며 야경을 구경하고 찍었던 사진 위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야경이 도루 강변의 모습만이 아닙니다.

시내일 수도 있고 골목길일 수도 있습니다.

 

해 질무렵 먼저 Se라고 부르는 카테드랄을 찾았습니다.

수없이 이 앞을 지나다녔지만, 이렇게 직접 카테드랄 광장에 올라온 것은 처음입니다.

카테드랄의 회랑도 아줄레주로 장식한 게 보이네요.

 

처음에는 12-13세기에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으로 만들었지만, 18세기에는 바로크 양식을 가미해

증축했다고 하는데 정면에 보이는 두 개의 탑은 초창기에 만든 탑이라 합니다.

성당 안에는 성모 마리아상, 은세공으로 만든 사크라멘투 제단 그리고 푸른색 타일로 장식한 고딕식 회랑이

제일 볼만하다고 하네요.

성당 앞 광장에서는 매주 토요일 장이 선다고 하네요.

 

사실 카테드랄 광장은 카테드랄만을 보기 위한 일은 아닙니다.

저녁 시간이라 이미 문도 닫혀있는 걸요.

광장에 서면 제법 풍광이 뛰어납니다.

성당 모습도 좋겠지만, 성당에서 바라보는 모습도 좋다는 말입니다.

 

카테드랄 광장이 제법 높은 곳이 있어 그럴 겁니다.

멀리 클레리구스 성당의 시계탑이 보입니다.

 

카테드랄 광장에는 꽈배기 탑도 보입니다.

원래 성당을 건축하기 전에는 이 자리가 성벽의 안쪽 요새였답니다.

일찍이 요새를 만들었다 함은 이 자리가 그만큼 지리적으로 중요하게 여겼다는 말일 겁니다.

 

이제 서서히 어둠이 내리고 등이 하나씩 들어오기 시작하네요.

카테드랄과 그 주변은 역사지구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카테드랄부터 도루 강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은 미로처럼 얽혀 있습니다.

이렇게 골목을 지나기 힘들 게 만든 이유는 아마도 외침에 대비한 보루의 성격도 있을 겁니다.

적이 침입해 말을 타고 빨리 지나갈 수 없도록 하기 위해 말입니다.

 

골목길을 밝히는 가로등도 켜지기 시작하네요.

 

그러나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이제 어둠이 내리는 저녁에 아직도 깃발을 높이 들고...

피곤할 텐데 집에 들어가 쉬지 않고 말입니다.

성당을 지키는 기사인가요?

비마라 페레스(Vimara Peres)라는 이름의 영웅이랍니다.

영웅이라 하면 무슨 훌륭한 일을 했겠어요?

당연히 이슬람의 무어인을 이 땅에서 물리친 일을 하지 않았을까요?

 

성당은 성벽에 붙여지었네요.

한쪽 면을 그렇게 먼저 있던 성벽에 붙여 지으면 확실히 원가는 절감되겠네요

이 성벽이 11세기경 만들어진 것이라 합니다.

 

이곳에 성벽을 처음 쌓은 나라는 서고트족이었다 합니다.

이곳에 뿌리조차 내리지 못하고 잠시 스쳐 간 이민족이지만, 그들의 흔적은 남겨놓았습니다.

세 개의 출입문은 좁은 골목처럼 드나들도록 만들어진 곳입니다.

지금은 성벽 대부분은 무너지고 그 위에 집이 들어서 버렸습니다.

 

그러나 도루 강 쪽으로는 아직도 완벽한 모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 성벽 위로는 갈매기들이 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성벽 방어를 갈매기에 맡겨도 되겠어요?

이 땅은 서고트족 이전에 로마가 지배했고 서고트가 물러난 후 이슬람이 또 왕 노릇을 했을 겁니다.

 

이제부터 도루 강을 가로질러 만든 다리를 건너가 보렵니다.

길이가 172m이고 그 높이가 45m라니 다리 위에 서서 바라보면 제법 높이가 느껴지며

짜릿짜릿한 기분이 드는 곳입니다.

 

이 다리는 처음 만들었을 때가 1843년이라 합니다.

그러나 다리가 1809년에 한 번 무너졌던 모양입니다.

그 모습이 바로 위의 사진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이때가 아마도 나폴레옹이 영국의 무역을 봉쇄하기 위해 포르투에 군대를 파견했고 포르투갈 왕실은 브라질로

피신한 사건과 관련이 있나 봅니다.

 

그때인 1809년 3월 29일 나폴레옹의 군대가 다리를 지날 때 붕괴하였나 봅니다.

혹시 이를 저지하기 위해 다리를 부순 게 아닐까요?

 

그 후 1886년 에펠의 제자라는 테오필 세이리그가 다시 만들었다지요?

아주 튼튼한 철제로만 만들었고 그것도 이 층으로 말입니다.

바로 지금의 모습이라고 하네요.

지금은 트램과 사람만 건너 다니고 자동차는 아래편으로만 다닐 수 있도록 했다네요.

 

이 다리를 건너면 와인으로 유명한 빌라 노바 데 가이아 지역으로 바로 들어갑니다.

그 유명한 포트 와인의 산지 말입니다.

100년 전쟁 때 프랑스가 영국에 포도주 수출을 금지하며 영국 수입상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지요?

그들은 이곳에서 포도를 가꾸며 영국으로 와인을 가져가려고 했겠지요.

그러니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는 말이 여기도 적용된다는 말이잖아요.

프랑스는 영국을 궁지에 몰기 위해 수출했던 포도주를 금지하자 영국은 바로 여기 포르투로 눈길을 돌려

지금은 세상에서도 내로라하는 유명 포도주를 탄생시킨 일 말입니다.

 

그러나 당시는 해상으로 옮기는데 한 달 이상의 시간이 걸려 와인이 상할 염려가 있었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와인에 브랜디를 넣는 겁니다.

 

이런 기이한 방법으로 포트 와인이 탄생하게 되었다네요.

자신의 약점을 장점으로 뒤집는 저력을 보인 겁니다.

그렇기에 포트 와인은 알코올 도수가 높다네요.

지금 강변으로부터 언덕 위를 바라보면 50여 개의 와인 공장과 포도밭을 볼 수 있답니다.

 

이곳에서 바로 라벨루라는 배를 이용해 와인을 싣고 바다로 나가 큰 배를 이용해 수출했을 겁니다.

바닷가가 아니고 강변이지만, 여기는 바닷가와 다른 게 없습니다.

바로 강 아래로 조금만 내려가면 대서양이 있으니까요.

 

그렇기에 이 강변은 대항해 시대에는 포르투갈의 부흥을 이끄는 최첨병의 역할을 했을 겁니다.

그래요.

바로 엔리케 왕자가 바로 여기서 배를 이끌고 스페인의 대항해시대보다 더 이른 시기에

유럽을 벗어나 무역을 시도했을 테니까요.

무역이라고 점잖게 이야기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사실 학살과 약탈이 바른 표현이 아닐까요?

 

그러나 지금은 그런 영광은 모두 강물에 흘러갔고 유럽의 작은 나라의 작은 도시에 불과합니다.

그리스와 더불어 유럽연합의 천덕꾸러기가 되어 과거의 화려한 시대란 옛날이야기에 불과한

그런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말에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양지된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나라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마세요.

포르투는 그런 심각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포르투는 그냥 걷고 바라보고, 그리고 마시다 가는 그런 아름다운 여행지로 기억되기를 바랄지 모릅니다.

그렇기에 이곳에서는 굳이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마음 이끌리는 대로 그냥 발길을 옮기세요.

그게 바로 여행이 아니겠어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세상에 영원한 삶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할 것처럼 살아갑니다.

오늘도 그냥 보낸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지 못하고

의미도 없이 그냥 보냈습니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야겠습니다.

늘 그렇게 말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면, 오늘 하루도 정말 소중하고 행복하다는 것을 조금은 느끼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