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사람, 미운 사람,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만난 사람.

2015. 2. 6. 08:00스페인 여행기 2014/까미노

 

팔라스 데 레이에 도착해 숙소를 정했습니다.

이 마을에는 알베르게가 무척 많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곳 중 우리가 찾아간 알베르게에 지난밤 옆자리에 누워 혼자만 열심히

코를 골며 자다가 아침에 바람처럼 사라진 바로 그 독일산 증기기관차가 그곳에

숙소를 정하고 부인과 함께 막 나오는 게 아니겠어요?

순간 식겁했습니다.

 

 

지난밤의 악몽이 생각나 눈인사만 하고 얼른 돌아서 나와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오늘 佳人 고객님 정말 많이 당황했습니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사설 알베르게로 1인당 10유로에 방을 구하고 땀을 흘렸기에 빨래와

샤워까지 마치고 마을 구경을 합니다.

이렇게 일찍 새벽부터 걷고 다른 여행자보다 먼저 까미노를 마치고 난 후 샤워에 빨래까지

끝내면 마치 밀린 숙제를 모두 마친 개운한 기분이 듭니다.

우리가 머물 예정인 숙소의 1층은 사람이 제법 많이 찾는 식당입니다.

 

 

우리가 묵은 곳은 3층인데 3층에만 모두 4개의 방이 있고 방 하나에 2층 침대가 각각 3개씩

있었고 저녁까지 2층에 한 팀 4층에 한 팀만 묵는 바람에 3층에는 다른 사람 없이 우리만

묵었는데 지난밤의 보상인가요?

여기도 공립 알베르게와 같이 부직포로 된 침대 커버와 베개 커버를 주지만 다른 점은

이불이 있다는 것이며 이불이 우리 어린 시절 어머니가 최고로 좋아하셨던 신앙촌에서 만든

밍크 담요라는 그런 이불이었습니다.

밤에 아무도 없기에 두 개씩이나 덮고 잤다는 것 아니겠어요?

 

 

1층 식당에서 점심을 먹습니다.

그런데 이 식당에는 음식 메뉴로 위의 사진처럼 메뉴 사진을 붙어놓아 쉽게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지만, 그림을 보고 손으로 찍기만 하면 되니까 아무 걱정 없이 음식을 시켰지요.

 

 

모든 식당이 이렇게만 한다면 주문 때문에 고민하는 식당의 공포는 없지 싶네요.

헉!!! 佳人은 고기입니다.

게다가 달걀 후라이까지 하나 떡하니 올라오는 게 아니겠어요?

어린 시절 도시락 반찬에 달걀 프라이 하나가 있다면 그 집은 부잣집이었잖아요.

울마눌님은 육류를 피하니까 역시 생선 튀김으로 음료수에 오렌지 주스와 커피까지

모두 두 사람이 착한 가격 16유로에 점심을 아주 거하게 먹었습니다.

 

 

배가 든든하니 마을 구경이나 나서야죠?

팔라스 데 레이라는 마을은 우리 식당만 빼고는 아주 한적한 곳입니다.

사람 구경은커녕 스페인에서 그 많이 보이는 개도 돌아다니지 않습니다.

스페인에는 개가 무척 많습니다.

그것도 송아지만 한 큰 개 말입니다.

 

 

작은 마을 성당이 보입니다.

작은 시골이라 성당도 아주 아담하네요.

성당에 들려 크레덴시알에 도장을 받습니다.

성당은 문을 열어두었지만, 역시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크레덴시알의 도장은 성당이나 식당, 숙소는 물론 가게나 길을 걷다가도

누구나 찍을 수 있게 두었습니다.

 

 

성당은 위의 사진처럼 작고 아담합니다.

마치 속세와는 등진 그런 모습 아닙니까?

사람이 많으면 매우 혼잡스러워 소원을 빌어도 하나님이 정신 사납다고 외면하지 않겠어요?

그러나 이런 곳에서는 소원을 잘 들어줄 것 같지 않나요?

 

 

마을 구경을 하고 들어오는 길에 입구에 놓인 의자에 앉아 음료수를 마시는 동양인이 보이네요.

역시 우리가 묵었던 숙소 1층 식당만 사람이 북적입니다.

그런데 그 동양인의 탁자에 놓인 여행 안내서가 한글입니다.

 

 

반가워 말을 건네니 20여 일 간 까미노 길을 걷다가 어느 숙소인지 모르지만,

여권을 분실해 더는 숙소에 머무를 수 없어 재발급받기 위해 산티아고에 미리 보낸 짐 속에 있는

여권 사본을 찾으러 산티아고로 가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니 여기서 잠시 음료수 한 캔을 마시고 밤을 새워 산티아고까지 걸어갈 작정이라 합니다.

 

 

물론 그 여권 사본으로 마드리드 한국 대사관으로 가야 임시 여권을 발급받겠지요.

그러기 위해 이곳에서 잠을 잘 수 없고 밤을 세워 걸어갈 예정이라 합니다.

스페인의 숙소는 여권을 확인한 후 방을 줍니다.

물론, 그냥 재워주는 곳도 간혹 있기는 했지만...

 

혹시 스페인 여행을 준비하시는 분이 계시면 여권 원본은 깊숙이 보관하시고 복사본을 보여주세요.

우리는 46일간 여행하며 원본은 한 번도 꺼내지 않고 모두 복사본만으로 처리했습니다.

공연히 수시로 꺼내고 넣다 보면 분실의 위험이 커지잖아요.

중국이나 베트남 여행에서도 여권은 늘 복사본만 사용했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산티아고 한국인 민박에서 그 청년을 다시 만났습니다.

왜 여태 마드리드로 떠나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함께 길을 걷던 스페인 까미노 동료가 청년이

묵었던 알베르게를 역으로 수소문해 결국 그 여권의 행방을 알아냈고 그 숙소에서는 까미노 길을

자전거로 달리는 순례자에게 여권을 맡겨 산티아고까지 가져오는 중이라고 해서

그 자전거 팀을 기다리는 중이라 하네요.

 

 

지금까지 만난 다른 많은 한국인한테서 들었던 스페인의 나쁜 이미지가 한순간에 사라집니다.

지갑을 소매치기당하고 배낭을 통째로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만 들었거든요.

지금까지 스페인에서 나쁜 소식만 접하다가 이런 가슴 훈훈한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고마운 사람도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접하는 현지의 이미지란 언제나 그 사람이 보고 느낀 개인적인 일이었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들었던 이야기로 말미암아 모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만,

현실은 다를 수 있다는 겁니다.

떠나기 전 스페인에 대한 좋지 않은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접했습니까?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코도 베어 가는지 알았다니까요.

사람이란 이렇게 자기가 듣고 배우고 눈으로 본 것이 전부인 양 알고

살아가는 단순한 존재인가 봅니다.

 

 

여행 중 만난 사람은 무척 다양합니다.

우리의 경우만 해도 처음 도착한 스페인의 카탈루냐 광장에서 만나 한국어로 도움을 주었던

스페인 청년. 까미노 길을 처음 떠나던 날 창구가 모두 닫힌 어두컴컴한 버스 터미널에서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 우리에게 도움을 준 스페인 친구와 이렇게 여권을 잃어버려

난감해하는 청년에게 함께 하며 여권이 도착하는 날까지 가지 않고 끝까지 확인한 후 떠난 사람.

 

 

그러나 다른 여행자는 지갑에 넣어 둔 현금만 사라졌고 트램 안에서 돈을 몽땅 잃어버려

여행을 포기하고 돌아간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휴대전화를 잃어버려 그동안 찍어두었던 소중한 여행 사진을 함께 모두 날려버린

여자도 보았고 방금 표를 산 후 버스를 놓친 한국인에게 환급해주지 않고

새로운 표를 사라고 고압적인 매표원도 보았습니다.

 

 

지나가는데 옷에다 케첩을 뿌리고 닦아준다고 하고는 배낭 안에 넣어둔 지갑을 통째로 들고

도망가 난감해하던 사람도 만났습니다.

만났던 사람마다 모두 하나 정도는 그런 사연을 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런 나쁜 사연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출발 전 지갑을 쇠사슬이 있는 것으로 준비해 늘 어깨에

가로로 메고 다니는 가방에 고리로 연결하고 다녔습니다.

佳人의 지갑을 가져가려면 쉽지 않을 겁니다.

소매치기도 여행자 하기 나름이 아니겠어요?

 

그것도 지갑 속에는 며칠 사용할 돈만 들었고 나머지 돈 대부분은 비밀 지갑이 있는

벨트에 넣어 다녔으니 佳人을 홀랑 벗기기 전에는 어림도 없는 일이잖아요.

혹시 이런 일급비밀이 탄로 난다면 다음 여행에 소매치기가 佳人의 옷을 홀랑 벗길지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여자 소매치기가 말입니다.

 

 

소매치기를 이기는 방법의 제1 조건은 소매를 걷고 다니거나

소매 없는 옷을 입고 여행하는 것이라 하지만...

날씨가 추워지면 그것도 어렵겠네요.

이제 목적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남은 거리는 66km로 거의 반 정도 왔습니다.

오늘 이곳에 짐을 내려놓고 하루 쉬어가야겠습니다.

아침 곤사르에서부터 5시간을 걸어 도착 시각이 오후 1시 정도였습니다.

 

 

전체 일정에 대한 지도입니다.

이제 오른쪽의 사리아로부터 거의 반 정도를 지나기 직전입니다.

곤사르에서 팔라스 데 레이 까지는 약 17km의 거리였습니다.

오늘은 팔라스 데 레이의 어느 숙소에서 3층을 전세를 내다시피 우리 부부만 코~ 하고 자고

내일 또 새벽에 길을 떠나야겠지요?

전날 밤의 보상으로 3층 전부를 우리 부부만 사용했다는 전설 같은 일이

팔라스 데 레이에서 벌어진 겁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여행이란 내가 무슨 이야기를 들었느냐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나라에 대한 평가를

 주관적으로 하게 되는데 세상은 이렇게 어디나 좋은 사람, 미운 사람 그리고

이상한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곳인가 봅니다.

내 소중한 여행을 망치지 않으려면 우선 나부터 먼저 그런 문제에 대해

미리 예방조치부터 해야 합니다.

왜?

나는 소중하니까!!!

내가 경험한 단편적인 일로 늘 나는 그곳을 주관적으로 평가합니다.

그러니 佳人의 여행기가 얼마나 한심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