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세 번째 날 팔라스 데 레이 가는 날

2015. 2. 4. 08:00스페인 여행기 2014/까미노

지난밤은 악몽을 꾼 듯합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아직 동이 트기 전이지만, 주섬주섬 물건을 챙겨 길을 나서야지요.

아직 시차 적응이 되지 않은 상태라 작은 소음에도 잠을 설치는데 이것은 벼락 치는 소리보다

더 강했고 그 여파는 온종일 계속되었습니다.

걷는 내내 몽롱한 상태로 걷게 되네요.

 

이제는 밤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면 그 여파가 제법 오래가네요.

나이 탓인가요?

그런데 한국에 있는 지인과 우리의 일정을 카톡으로 연락하다 보니 서로 시간대가

맞지 않아 불편을 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늘 한국 시각을 확인한 후 사진이나 글을 보냅니다.

 

그런데 상대는 가끔 그런 배려를 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한국의 시각으로 착각하고 그러는 거겠죠?

어쩌다 깊은 잠에라도 빠지면 일어난 후 몸도 마음도 가볍지만, 단잠에 빠졌을 때 잠이라도

깨우는 소리가 들리면 그만 더는 잠을 이루기 어려워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되네요.

시차에 적응했다고 하더라도 작은 소리에 민감하며 한번 깨면 더는 잠들기 어려우니...

 

시차가 다른 나라에서 여행하다 보면 말입니다.

스페인에서는 자정이 우리 시각으로는 아침 7시가 됩니다.

스페인에서 잠자리에 들 시각이면 사실 우리 인체 시계는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

왕성한 활동을 시작할 시각인걸요.

사실 이런 문제는 작은 배려로 얼마든지 상대를 편케 할 수 있잖아요.

 

더는 잠을 이룰 수 없어 우리도 어두컴컴한 새벽에 길을 나섭니다.

2014년 10월 5일의 일정은 팔라스 데 레이로 가는 이야기입니다.

오늘의 시작은 사진처럼 차도를 따라 시작합니다.

 

차도를 따라 길을 걷고 있는데 소형 승용차 한 대가 지나다 우리 곁에 섭니다.

문을 여는데 할머니 두 분이 타고 계시네요.

우리를 향해 "부엔 까미노!"를 외칩니다.

까미노는 우리가 상상했던 그런 흙길도 있지만, 때로는 아스팔트 포장길을 따라 걷기도 합니다.

마을 한가운데로 지나기도 하고 오솔길을 따라 걷기도 하지요.

 

어제 오후는 비가 내렸지만, 오늘은 구름만 끼었지 날씨는 좋은 편입니다.

그래도 아침은 제법 쌀쌀합니다.

지난밤은 춥기까지 하더군요.

그러나 잠시 길을 걸으니 한기는 금방 가시고 제법 덥습니다.

 

지난밤은 힘들었지만, 걷기 시작하니 즐겁습니다.

1시간 정도 걸으니 식당이 보입니다.

간단한 빵과 커피로 아침을 대신합니다.

따뜻한 커피는 이제 아침이라고 알려주네요.

 

평소 믹스 커피를 즐기는 佳人은 스페인에서는 주로 카페 꼰 레체라고 부르는 커피로

마셨는데 이 말은 Coffee with Milk라는 의미라 하네요.

우유를 탄 커피라는 말로 우리나라 믹스 커피 비슷한 맛이네요.

 

이곳에서의 아침은 거의 비슷한 식단입니다.

보통 집에 있을 때는 완백이기에 대부분 아침을 먹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걸어야 하고 더군다나 아침 9시경은 우리 시각으로는 오후 2시가 되니

배도 고플 시각이 아닌가요?

그 나라 사람이 볼 때는 한국인은 아침을 아주 잘 먹는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 배낭에는 비상식량을 매일매일 채워 넣고 다닙니다.

어느 곳에서나 마을 가게에 들러 장을 보았지요.

살라망카처럼 제법 큰 마을의 수페르마르카도는 위의 사진처럼 채소 샐러드를

포장 판매하기도 합니다.

거기에 요구르트를 사서 넣고 비비면 제법 맛도 근사한 샐러드가 되지요.

이번 여행 내내 슈퍼가 보이면 들어가 채소 샐러드를 샀고 요구르트를 비벼 먹으며 다녔습니다.

다른 나라를 여행하며 채소와 요구르트는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우리는 새벽부터 낮까지 걷고 오후 일찍 숙소를 정했습니다.

오래도록 걷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울 마눌님의 체력 때문이고 그다음은 경쟁하듯

그렇게 걷지 않고 유유자적 즐기며 걷고 싶었기 때문이죠.

오후에는 빨래도 하고 숙소가 있는 동네 마실이나 다니면서 쉬었습니다.

사실, 울 마눌님이 100km 이상을 걸어 본 적이 평생에 한 번도 없지 싶습니다.

부부 두 사람이 함께 100km 이상을 걸은 커플도 많지는 않을 겁니다.

 

까미노에는 정말 다양한 나라의 사람이 걷습니다.

가장 많은 나라가 물론, 스페인 사람이겠지만요.

그러나 뜻밖에 한국인도 까미노를 많이 걷습니다.

요즈음은 중국인도 이 길을 알기에 제법 많이 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국사람은 주로 까미노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 생장부터 걷는 사람이

대부분으로 우리처럼 100km 정도 떨어진 마지막 부분이 아니라

775km 전체 루트를 걷는 것이더군요.

아마도 완벽하게 걷는다는 그런 의식이 강한 민족이라서 그리하겠지요.

그게 정해진 오리지널 루트는 아닙니다.

 

종착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서로 경쟁적으로

며칠 만에 완주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합니다.

하루에 30km씩 쉬지 않고 걷는다면 약 23일이 걸립니다.

그러나 많은 변수 때문에 30일 정도가 걸리지 않겠어요?

그런데 대화를 들어보면 24일, 25일 이 정도에 완주했다고 하네요.

 

물론, 그 의미가 대단하겠지만, 까미노는 경쟁이 아닌데 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종착지에서 무엇이 아쉬운지 다시 대서양과 마주한 땅끝마을

피니스트레(Finisterre)까지 대부분 걷거나 버스를 타고 가더군요.

그러나 우리는 체력적으로 감당하기 어렵고 또 그 의미를 잘 모르기에 산티아고까지만 걸으렵니다.

땅끝마을은 피니스트레 말고도 포르투갈의 호카곶을 갈 예정이기도 하고요.

 

까미노는 사실 정해진 루트가 없다고 합니다.

어디서나 출발해 목적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만 걸으면 그게 까미노가 되기 때문이죠.

정해놓은 시간 제약도 없습니다.

그냥 자기 체력에 맞게 걸으면 그게 까미노입니다.

 

한 달이 걸리든 열흘이 걸리든 그냥 걸으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죠.

다만 도착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완주증을 주는데 최소 100km 이상을 걸어야 하고

자전거나 말을 이용할 때는 200km 이상에서 출발하면 됩니다.

그 증거가 바로 크레덴시알이라는 일종의 순례자 여권인 셈이죠.

첫 출발지에서 스탬프를 받고 걸어가며 숙소나 식당 또는 길거리에서도 받을 수 있는 게

바로 확인 도장이더군요.

 

우리가 까미노를 걷는 이유는 워낙 널리 알려진 곳이고 이번 스페인 여행을 준비하며

기왕 스페인에 간 김에 걸어보자는 단순한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런 까미노를 걷는 푸로와는 차이가 나는 아마추어적인 걷기였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까미노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한 달은 걸어야 하지 않겠어요?

사실, 그렇게 걷고 싶지만, 집사람의 체력 때문에...

 

때로는 혼자 걷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과 어울려 함께 걷기도 합니다.

걷다가 땅바닥에 떨어진 밤송이를 줍기도 하고 물끄러미 서서 먼 산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정말 가을의 까미노에는 누구도 쳐다보지 않는 밤송이 천지였습니다.

우리는 걷는 일보다 주변을 살피고 밤송이를 줍고 물끄러니 서서

그냥 주변을 바라보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까미노는 그냥 그렇게 걷는 겁니다.

 

길을 걷다가 위의 사진처럼 무슨 주술 같은 모양의 돌을 놓아둔 모습을 보았습니다.

외계인의 작품일까요?

공명이 환생해 만든 팔괘진이라도 된단 말입니까?

솔방울의 크기가 우리나라의 솔방울 크기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큽니다.

 

한가운데가 궁금해 들어가 보니...

컥!!! 한글입니다.

하트 모양까지 보입니다.

아마도 사랑하는 연인이 이 길을 걸었던 모양입니다.

원은 예전에 만든 것으로 보이고 가운데 돌은 누군가 최근에 올린 모습입니다.

아마도 두 사람의 사랑은 원의 기운을 받아 영원하지 싶네요.

 

그렇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는 누구를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바로 우리 삶의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퍽퍽한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를 힘 나게 하는 게 바로 사랑의 힘이 아닌가요?

 

쓸데없는 이야기 하나 하고 갑니다.

왜?

그냥 길만 걸으면 재미가 반감하기 때문이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키프로스 섬에 피그말리온이라는 조각가가 살았답니다.

그는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너무 방탕하고 문란한 생활을 하자 못마땅하게 여기고

그들과 담을 쌓고 독신으로 살았다 합니다.

 

그래서 그는 혼자 살며 상아로 아름다운 여인을 조각하고 늘 그 조각상과 함께

살았고 그 상아 조각이 마치 연인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언제나 정성을 다하여

사랑하였기에 옷도 시시때때로 갈아 입히고 입도 맞추며 대화도 하며 마치 살아있는 연인처럼

정성을 다하여 보살폈습니다.

 

그러던 중 아프로디테 여신이 그 사실을 알고 그 상아조각에 혼을 불어넣어

정말 아름다운 여인으로 만들어 주었답니다.

아프로디테 여신이 피그말리온의 정성에 감복한 것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잖아요.

 

물론 황당한 이야기고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법한 이야기지만 세상을 살아가며 정성을

기울이고 혼신의 노력을 하면 하늘도 감복하여 꿈을 현실로 만들어 준다는 의미가 아니겠어요?

누구나 남의 성공 이야기는 거저 하늘에서 떨어진 것으로 생각하지만, 아무리 작은 성공이라도

그 사람은 최선의 노력을 했을 겁니다.

 

주변을 보면 유명한 운동선수, 가수나 연기자 그리고 부자 이야기를 자주 대하게 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그들이 숨어서 노력한 것은 생각하고 지금 그들이 받는 찬사만 생각합니다.

그 찬사를 받기 위해 그들의 노력은 우리가 알기 어렵기 때문이겠죠.

 

우리도 세상을 살며 진실로 사랑하고 노력하고 기도하면 우리의 소망이 이루어집니다.

사랑하며 살아가야 할 이유로서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게 일이든 사람이든...

 

우리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십시다.

지금 우리 곁에는 상아로 만들어진 우리의 피그말리온의 연인이 함께 살아가고 우리 사이에는

밤송이 같은 따가운 게 아닌 사랑의 열매 포퐈스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컥!!!

佳人이 너무 자신을 사랑했나요?

현상 수배 중인 흉악범처럼 생겼습니다.

이런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을...

 

가족은 서로 무서우리만치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랑을 소홀히 하면 상아로 만든 조각상은 깨어지고 마니까요.

인간의 존재 이유는 바로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는 까미노 길옆에 누워있어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그 길을 걸을 수 없습니다.

더는 사랑하려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

살아있는 동안만 사랑도 할 수 있고 성취감도 보람도 느낄 수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난 뒤에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걷고 싶으면 살아있는 지금 걸어야 합니다.

사랑하고 싶으면 살아있는 지금 사랑해야 합니다.

 

당신께서는 이미 피그말리온이고 손만 뻗으면 당신이 그토록 정성을 기울여 사랑했던

상아로 만든 조각상이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인간으로 환생한 부인의 손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징그럽게 당신을 닮은 포퐈스가 함께 살아가잖아요.

당신은 이미 전생에서는 피그말리온이었고 정성을 다해 보살핀 조각상이

바로 지금의 부인이자 남편입니다.

그런 여보 당신을 당신께서는 잠시 잊지는 않으셨는지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우리의 삶이 제법 긴 시간이지만, 사실 지나고 보면 무척 짧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과를 보고 난 후에야 佳人은 늘 후회합니다.

그게 우리네 삶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그러나 이제와 후회한들 의미 없는 일인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