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 3. 08:00ㆍ스페인 여행기 2014/까미노
어제 이야기는 곤사르의 공립 알베르게에 숙소를 정한 이야기였습니다.
공립 알베르게는 저렴한 대신 이불이 없기에 미리 침낭을 준비해오셔야 합니다.
모든 공립 알베르게가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간혹 베드 버그라고 하는 벼룩 때문에 고생한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까미노를 생각하시는 분은 미리 대비하셔야 합니다.
워낙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곳이기에 그런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요.
까미노가 행복한 길이라고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요?
우리는 그런 환상을 지니고 이 길을 걷지만, 까미노는 현실입니다.
다양한 나라의 많은 사람이 함께하기에 즐겁고 재미있는 일도 많지만,
힘든 일도 많이 생깁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 갈등도 있게 마련입니다.
어제저녁에 우리가 가장 먼저 숙소를 정하는 바람에 제일 안쪽 자리를 선점했습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니 갑자기 순례자가 숙소로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28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알베르게가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만실이 되어버렸습니다.
성수기에는 많은 사람이 까미노 길을 걷기에 숙소를 쉽게 구하기도 어려울지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도착한 사람은 조금 더 걸어 다른 알베르게로 향하든가 아니면
10유로를 주고 부근의 사립 알베르게를 이용해야 합니다.
숙소는 무척 많아 보였습니다.
이곳 곤사르의 공립 알베르게는 주방이 준비되어 있고 식기도 모두 마련해 두었습니다.
세탁기도 있어 동전을 넣고 빨래도 할 수 있습니다.
알베르게는 이렇게 순례를 하며 가장 필요한 최소한의 설비를 해두었네요.
여럿이 함께 까미노 길을 걷는다면 같이 음식을 장만해 함께 즐길 수도 있습니다.
동네마다 작은 가게가 있고 큰 도시는 대형 수페르마르카도도 있습니다.
물론, 뜨거운 물이 펑펑 나오는 샤워실도 마련되어 있어 그날의 피로를 풀 수 있지요.
비가 뿌리니 날씨가 제법 쌀쌀합니다.
이럴 때 가장 생각나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한국사람은 바로 우리나라 라면이지요.
그래서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간 컵라면에 물을 끓여 붓고 쌀쌀한 날씨에 뜨거운
국물까지 마시니 세상에 부러울게 없습니다.
너무 단단해 먹기 힘든 빵도 부스러뜨려 함께 넣으면 라면 국물에 먹기 쉽게 변하지요.
佳人은 식후 커피까지 마시니 오늘은 제일 행복한 사람입니다.
라면을 준비할 때 부피를 줄이기 위해 내용물을 모두 꺼내 비닐에 낱개로 따로 포장하고
컵만 모두 차곡차곡 쌓아 배낭에 넣으면 놀랄 정도로 부피를 줄일 수 있지요.
제일 위에 들어가는 컵라면은 뜯지 않고 그냥 올려놓으면 배낭 안에서도
형태가 변하지 않지요.
작은 배낭에 다른 짐과 함께 10개 정도는 그리 면적을 크게 차지하지 않지요.
그러나 오늘 佳人의 행복은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행복의 시간이 끝나고 공포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지요.
날이 어두워지고 하나 둘 잠자리에 들 시간이지요.
우리가 누웠던 바로 옆 침대에 독일 남자가 동양인 부인과 함께 침대를 차지했네요.
그런데 자리에 눕자마자 사내는 코를 골기 시작합니다.
그것도 방향을 佳人을 향해서 누워서 말입니다.
제법 긴 시간을 걸어왔기에 몸이 피곤하여 잠을 쉽게 청할지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소리가 상상 이상으로 아주 요란스러워 잠을 청할 수 없네요.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빨리 잠이 드는 특징이 있지요.
머리가 바닥과 수평이 되고 난 후 10초만 지나면 바로 코를 곱니다.
코를 골더라도 내가 잠을 청할 수 있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요.
그리고 그 사내도 잠시 골다가 멈추면 오죽 좋겠습니까?
문제는 잠시도 쉬지 않고 코를 곤다는 게 문제지요
그러다 갑자기 조용해집니다.
이러면 옆에 누운 사람은 더 불안하지요.
다시 골기 시작할 때는 아까보다 몇 배나 더 크고 요란할 뿐 아니라
참았던 숨마저 일시에 뿜어내야 하니까요.
원래 코골이의 소리는 일정한 리듬을 타지만, 갑자기 멈추기라도 하면 다시 터지는
소리가 상상초월에 시간 예측이 어렵잖아요.
일단, 참았던 숨이 터지면...
마치 바로 눈앞에 번개가 치고 난 후의 천둥소리를 기다리는 기분이랄까요?
그러니 조용해지면 오히려 더 불안해집니다.
다시 터지는 시각까지 하나 둘 셋 하며 숫자까지 세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 기겁하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숨을 쉬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말입니다.
오지랖도 넓은 생각이지요?
밤새 1분도 쉬지 않고 코를 골아대니까 여기저기서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물론, 다른 사람도 몇몇은 예쁘게 코를 고는 사람도 있기는 했습니다.
우리는 아직 시차 적응도 제대로 되지 않았기에 작은 소리에도 예민할 텐데
이런 소리는 한숨도 잘 수 없게 만들지요.
정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스페인의 밤이 정말 길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새벽이 되자 갑자기 코 고는 소리가 멈추더니만, 그 사내는 부스럭거리며 플래시를 켜고
새벽녘에 깜박 잠든 사람까지 모두 깨우며 제일 먼저 부산하게 숙소를 떠납니다.
그렇게 그 사내는 조용히 들어왔다 다시 바람처럼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佳人은 지난밤 한숨도 눈을 붙이지 못해 그 사내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그 부부가 문을 열고 방을 나가자 쥐죽은 듯이 숨을 죽이며 지켜보던 나머지
26명의 사람이 모두 일어나네요.
佳人 침대 이 층에 누워 잠을 청했던 아가씨는 그 남자의 코 고는 소리를 흉내까지 내고
그 아가씨의 일행 모두는 까르르 웃으며 잠시동안 즐거워합니다.
악몽입니다.
정말 고통스러운 밤이었습니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공립 알베르게에서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시차 적응을 하기 어려운 사람이라 이런 작은 문제는 우리를 밤을 꼬박 새우게 합니다.
누구나 피곤하면 코를 골 수 있습니다.
코를 고는 것도 어느 정도 참을 수 있게 고는 사람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증기기관차보다도 몇 배는 더 큰 소리라면...
그 사내는 100% 독일산 증기기관차였습니다.
만약, 그런 사실을 본인이 안다면 다른 사람을 위해 이런 열린 숙소에서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함께 자는 곳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문제는 정작 본인은 알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면 함께 여행 중인 부인이라도 그날 밤 다른 사람이 하는 불평을 들었을 것 아니겠어요?
워낙 함께한 세월이 오래이기에 그 소리가 부인에게는 자장가로 들렸다면 할 수 없겠네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그 부부를 계속 같은 곳에서 만나며 까미노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들도 나이가 제법 들었기에 우리처럼 하루에 많은 거리를 걷지 못하나 봅니다.
숙소를 달리해 다시는 같은 숙소에 머물지 않았지만, 머무는 마을은 언제나 같은 곳이었습니다.
우리도 다음 날 어느 숙소에 머물까 하고 들렀다가 그 부부가 숙소를 정한 후 나오는
모습을 보고 황급히 다른 숙소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바로 위에 보이는 곳이었지요.
그날 곤사르에서의 악몽이 생각나 다른 숙소로 얼른 이동해 정했습니다.
"오늘 밤 여기서 잠을 잘 당신들은 모두 죽었어~~"
그래도 옆 침대에서 머물렀다고 눈인사를 하니 우리보고 반갑다고 합니다.
마지막 날 산티아고 들어가는 길에서 잠시 비를 피하는 도중에도 또 만났습니다.
참 질기고 아름다운 인연이 아닌가요?
이것도 인연인데 그들 부부를 향해 "부엔 까미노"를 외쳤습니다.
그들도 반갑다고 합니다.
맞아요.
정말 질긴 인연이었지요?
비록 코골이 대장 때문에 곤사르에서의 밤은 악몽처럼 생각되었지만,
그들은 佳人에게 까미노에서의 잊지 못한 추억 하나를 선물했습니다.
어찌 그날 밤의 일을 쉽게 잊을 수 있겠어요? 그쵸?
그래도 이 부부 덕분에 시차로 새벽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나날이 끝나고 그다음 날부터
신기하게 그곳 시간에 따라 잠이 들고 아침에 깨어났으니 악연이 인연으로 변하는
고마운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혹시 시차로 힘드신 분은 코골이와 함께 잠을 청해 보세요.
까만 밤을 꼬박 새우고 나면 시차 적응이 저절로 될지도 모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까미노는 환상이 아니고 현실입니다.
많은 사람이 까미노에 대한 아름다운 환상을 가지고 이곳을 찾지만,
현실은 이곳도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 다른 게 없습니다.
때로는 많은 사람이 함께해야 하기에 더 불편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곤란한 경우도 생깁니다.
그러나 어렵고 힘든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또한 하나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추억으로 기억되기도 하지요.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생기더라도 이 또한 지나갑니다.
그리고 지나간 일은 추억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까미노를 걸으며 이런 추억 하나는 가지고 와야 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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