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2. 10. 08:00ㆍ동유럽 여행기/오스트리아
무리하게 글로리에테까지 다녀오느라 부지런히 뛰어 내려옵니다.
올라갈 때 아들에게 만약, 시간이 늦으면 아빠는 빼고 먼저 쉔부른 궁전을 보고 나오라고 미리 이야기했습니다.
가이드에게도 이야기했습니다.
궁전 출구에서 기다리다 만나면 되니까요.
글로리에테를 보지 못하고 돌아가면 또 후회할 것 같아 그랬습니다.
돌아와 보니 역시 일행은 모두 사라지고...
나만 남겨두고 궁전 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제 佳人은 비엔나에서 버려진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으렵니다.
궁전 입구로 들어가 검표하는 안내인에게 한국 단체와 일행인데 혼자 늦게 오는 바람에 떨어졌다고 들어가면
안 되겠느냐고 혹시나 하고 부탁하니 역시나 안 된다네요.
그러면 관람객 출구가 어디냐고 물어보니 들어온 정문 계단으로 나온다네요.
에라 모르겠다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지 뭐~
그러면서 밖에 나와 마차도 구경하고...
하늘도 바라보고 땅도 발로 걷어차고...
그런데 우리 인솔자께서 어디서 짠~ 하고 나타나 혼자 빨리 들어가라고 하네요.
빠른 걸음으로 다른 관람객을 추월하면 일행을 만날 수 있다고...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내부 구경을 하게 되었답니다.
사실 포기했는데....
인솔자님~ 다른 곳에서 쓸데없는 시간 많이 주지 마시고 이곳에서는 모두 올라갔다 올 시간 좀 주세요.
궁전 내부는 사진 촬영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찍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사진 몇 장이?
여기 올린 사진은 카메라가 고장 나 제멋대로 몇 장 찍혀버렸습니다.
단언컨대, 손도 대지 않았는데 제멋대로 스스로 찍힌 겁니다.
우리 뒤를 따라오던 유럽 여행객은 플래시까지 터뜨리며 찍더군요.
내부의 화려하고 멋진 모습을 담고 싶었지만, 사진 촬영을 할 수 없어 마음이 언짢습니다.
사실, 내부는 플래시만 터뜨리지 않고 찍으면 문제 되지 않잖아요?
비엘리치카의 소금광산처럼 사진 촬영을 하려면 별도의 돈을 받든 지...
그러기에 궁전의 내부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본다는 게 무척 어려우실 겁니다.
그러나 내부 설명을 하는 리시버를 하나씩 주는데 한국어로 된 안내 리시버도 있지만, 단체 입장객에는
가이드가 설명하기에 리시버도 주지 않고 모른 체하더군요.
쉔부른 궁은 빈의 중심이라는 슈테판 성당의 남서쪽 교외에 있습니다.
합스부르크가의 여름 별궁으로 시내에 있는 정궁과는 다른 곳이지만, 넓은 정원을 지닌 대단히 아름다운 궁전입니다.
합스부르크가는 600여 연간이나 이 지역을 지배했던 대단한 가문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강력한 중국의 세력이라도 200년을 넘긴 정권은 별로 없습니다.
권력이라는 게 무상하여 그리 오래 지속되기 어렵잖아요?
한때 나폴레옹의 침공을 받고 나폴레옹은 6개월을 이 궁전에 머물며 이 궁전을 사령부로 사용한 적도 있다네요.
아름다운 샘이라는 의미의 쉔부른...
1619년 마티야스 황제가 이곳에서 사냥하던 중 아름다운 샘을 발견함으로 이곳을 아름다운 샘이라는 의미인
쉔부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답니다.
우리말로 쓰다 보니 쇤부른이라고도 하고...
쉔부룬 또는 쇤부룬이라고도 써도 되지 않겠어요?
오스트리아에서는 샘물을 그냥 먹어도 될까요?
답은 "예스"랍니다.
유럽의 모든 국가가 석회석 때문에 물을 그냥 먹지 못하지만,
오스트리아에서는 수돗물을 그냥 마셔도 되는 나라입니다.
정말 이름 그대로 아름다운 샘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원은 대단히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큰 곳을 관리하려면 그냥 무료로 사용하라고 주어도 사용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파트 관리비도 힘에 버거운데 이곳 관리비를 佳人인 무슨 돈으로 충당하겠어요.
아마도 이 궁전에서는 정원사가 가장 할 일이 많은 사람이고 숫자도 많았을 겁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화려한 궁전은 아니었고 원래 이 자리는 황제의 전용 사냥터가 있고
작은 거처가 있었던 곳이라 합니다.
1696년부터 처음 짓기 시작해 모습을 드러냈지만,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시절에 개축하며 먼저 모습은 사라지고
완전히 새로운 모습의 궁전이 지금 모습으로 건축되었다 합니다.
이는 당시 경쟁 관계에 있던 프랑스의 궁전인 베르사유에 뒤질 수 없다는 생각에 이렇게 만들었을 겁니다.
아파트 평수 싸움이나 했나 봅니다.
전체 3층 건물로 내부에 방은 모두 1.441개로 외벽을 노란색으로 칠한 이유는 마리아 테레지아가
이런 색을 무척 좋아했다 합니다.
외부는 바로크 양식의 건물이고 내부는 로코코 양식으로 치장한 모양입니다.
1.441개의 많은 방이 있지만 우리 같은 관광객이 들어가 볼 수 있는 방은 겨우 45개 정도라 하니
코끼리 비스킷 정도네요.
내부에 많은 방은 각 방마다 사연이 있고 의미가 있겠지요.
거울의 방이라 부르는 곳에서는 음악의 신동이라는 모차르트가 겨우 여섯 살 때 마리아 테레지아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한 방이라 하고...
마리 앙투아네트가 어린 시절을 보내던 방, 마리아 테레지아가 지냈던 거실 등...
사연 없는 방이 어디 있겠어요?
오스트리아 황제가 외칩니다.
"힘센 자들은 전쟁하라! 행복한 오스트리아여~ 결혼할지니, 그들에게는 마르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전쟁의 신,
그리스 신화에서는 아레스임)가 있고 우리에게는 비너스가 있으리니..."
이렇게 쉔부른 궁전에 터를 잡은 합스부르크가는 혼사를 통해 600여 연간을 유럽의 중심으로 호령하며 지냈나 봅니다.
다른 나라는 싸움만 하라는 말이 아닌가요?
그러니 혼사를 통한 인맥만 잘 다져놓으면 모두 사돈이 되니 해피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일 겁니다.
바로 이런 정신이 60여 년 간이나 권력을 지속했나 봅니다.
독일의 강한 힘을 가진 제후들은 스위스의 비실거렸던 백작 합스부르크를 처음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추대합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간다고요?
여기서는 600년을 갑니다.
그곳에 가면 이런 속삭임이 들립니다.
이렇게 탄생한 합스부르크가의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대를 이어가며 오스트리아를 부자나라로 만들었고 혼사를 통한
합종연횡으로 오스트리아를 유럽에서 가장 강한 나라로 만드는데 대성공을 거둡니다.
이미 기원전 진나라의 통일 과정에서 소진과 장의가 써먹었던 이 지혜를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탐구생활을 통해
터득했나 봅니다.
합종연횡이란 가장 강력한 국가경영 방침이었나 봅니다.
평생 엘리자베트만 사랑했다는 프란츠 요제프 황제에게 "결혼은 불합리한 제도야~ 평생이면서도 취소가 안 되니..."라고
엘리지베트 황후가 속삭입니다.
그녀는 시시라는 애칭으로 오스트리아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연인이랍니다.
그녀는 우아한 자태로 모든 사람에게 이상형이었나 봅니다.
그녀는 맏아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자 평생을 검은 상복만 입을 정도였답니다.
결혼은 불합리한 제도라 속삭이는 그런 그녀를 황제 프란츠 요제프는 너무도 사랑했고 그녀를 궁 안에만
가두어 둘 수 없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고 합니다.
오스트리아판 자유부인이었나 봅니다.
그녀는 대단히 아름다웠고 한 몸매를 했기에 스스로 자기 스스로 뛰어난 몸매라는 것을 일찍이 인식하고
그런 몸매를 계속 지속하기 위해 승마와 운동으로 유지했고 다이어트에도 무한한 노력을 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황홀해하며 바라보면 그녀는 이렇게 중얼거렸을지 모릅니다.
"따식!!! 보는 눈은 있어서..."
그녀는 날씬한 허리 유지를 위해 하루 두 끼만 먹었고 그 결과 허리 사이즈는 공포의 18인치였답니다.
키가 175cm로 늘씬한 여인이었지만 지나친 다이어트로 체중은 45kg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나친 다이어트로 우울증에 영양실조로 말년에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하네요.
여기 엘리자베트와 프란츠 요제프, 두 사람은 헝가리에서 보았던 부다와 페스트를 잇는 두 다리의 주인공입니다.
세체니 다리 아래에 있는 엘리자베트 다리와 지금은 자유의 다리로 바뀐 프란츠 요제프 다리의 주인공 말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프란츠 요제프 다리는 이름을 바꾸어 버렸지만,
엘리자베트 다리는 아직도 헝가리에서 사용한답니까?
쉔부른 궁전 안에는 시시의 흔적이 남아있고 프랑스 왕에게 시집간 마리 앙투아네트의 흔적도 있습니다.
물론 그의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는 쉔부른에서는 슈퍼 갑이었습니다.
모차르트는 거울의 방에서 여섯 살 때 마리아 테레지아 앞에서 연주하다가 넘어지는 일이 있었다네요.
이때 막내딸인 어린 마리 앙투아네트가 일으켜주자 모차르트는 그 자리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청혼했다는
일화도 남아있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빈에서 차를 타는 일은 바보나 하는 짓이라 합니다.
이렇게 차를 타고 움직이는 사람은 비엔나 사람이 아니고 촌놈이라는 말이지요.
왜?
시내가 박물관인데 박물관 안에서 차를 타는 사람은 바보나 하는 짓이니까요.
그래요.
갤러리 안에서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정말 바보나 하는 짓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버스를 타고 다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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