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영광, 글로리에테(Gloriette)

2014. 2. 7. 08:00동유럽 여행기/오스트리아

 

위의 사진에 보이는 건축물을 보시고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佳人은 옛날에 멀리서 위의 모습을 보고 전쟁 때 폭격을 맞아 그 후유증으로 건물이 부서지고

벽만 남은 지 알았다니까요.

멀리서 바라보면 영락없이 폭격 맞아 모두 부서지고 벽만 남은 것처럼 보인다니까요.

 

분수에서 사진을 찍으며 생각해보니 그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퍼뜩 듭니다.

결국, 분수에서 분수도 모르고 글로리에테를 향해 나도 모르게 올라가게 되더라고요.

언덕이라 오르막이고 길이 곧장 나지 않고 지그재그로 돌아 올라가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은 부족하고 마음은 조바심으로...

원래 마음이 급하면 더 힘들잖아요.

올려다보니 이제 글로리에테가 머리만 보이기 시작합니다.

숨을 몰아쉬며 올라가다 보니 울 마눌님이 벌써 글로리에테 사진을 찍고 반대편으로 뛰어 내려옵니다.

 

반대편에서 소리치니 울 마눌님은 급한 나머지 지그재그로 난 길을 가로질러 잔디도 밟으며 내려오다가

관리인이 잔디 밟지 말라고 소리치는지 알았답니다.

 

세상에 그곳에 유창하게 한국말 하는 관리인도 있나요?

당신 왜 이래?

나 당신 신랑이야~

이렇게 힘들게 찍은 귀한 사진입니다.

 

거의 다 올라가니 한 무리 꼬마들이 선생님하고 내려옵니다.

오늘 현장 학습이라도 하고 내려오나요?

그때의 영광을 몸소 느끼고 내려오는가요?

 

그런데 올라가는 길이 지그재그로 나 있습니다.

아마도 예전에 황제가 모닝커피 마시러 이곳에 들를 때 걸어왔겠어요?

 

폼나는 황금 마차를 타고 왔을 겁니다.

마차가 언덕을 오르내리기 쉽게 경사도를 죽이기 위해 길을 지그재그로 냈겠지요.

삼국지 기행을 하며 공명을 여러 번 만났기에 佳人도 이제는 척 보면 압니다.

 

누구는 황금 마차 타고 올랐던 길을 佳人은 헐떡거리며 올라갑니다.

황제는 바로 이 자리에서 쉔부른 궁전과 비엔나 시내를 내려다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세상 사는 기분이 우리와는 달랐겠지요?

"경치 쥐기네~"라고 했을까요?

 

궁전 뒤로는 1.7평방킬로미터의 광활한 정원이 끝도 없이 펼쳐있습니다.

정원에는 화단, 분수, 조각상, 이 모든 게 궁전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네요.

그곳에 전시한 조각상은 대부분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입니다.

그러니 신들의 정원인가요?

황제와 그 가족만의 정원이 아니겠어요?

칫!!!

지금은 관광객의 정원이 되고 말았습니다.

 

18세기 프로이센을 격파하고 승리를 자축하는 의미로 세운 일종의 개선문인 글로리에테...

그러나 그 후 세월이 흘러 나폴레옹이 이곳을 점령하고 사령부를 세우고 6개월이나 머물렀으니 

나폴레옹의 승리가 아닌가요?

나폴레옹도 이곳에 머물 때 아침마다 황금마차를 타고 올라와 이곳에서 내려다보며 커피 한 잔 맛나게 먹었을 겁니다.

 

글로리에테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그야말로 환상적으로 아름답습니다.

아치형으로 만든 주랑은 그 자체가 예술작품을 구경하는 기분이 듭니다.

동서로 1.2km이고 남북으로는 약 10km라고 하니 그 규모에 그만 입이 따악~~~

 

글로리에테는 가운데와 양쪽 날개로 구분할 수 있겠네요.

가운데는 방으로 꾸며져 지금 카페로 이용되고 있으니 사실 1780년경부터 식당으로 사용되었다 합니다.

그때 황제는 아침에 일어나 황금 마차를 타고 이곳 글로리에테에 올라 모닝커피를 마시며

빈 시내를 내려다보았을 겁니다.

 

佳人도 오늘 그런 호기를 누리고 싶지만, 배낭여행이 아니기에 빨리 포기해야 합니다.

여기 올라온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고 결국, 이곳에 왔기에 사달이 벌어졌습니다.

올라오지 않아서 후회할 바에는 사고 한 번 치더라도 올라와 내 눈으로 보고 후회하렵니다.

양쪽 날개에 해당하는 곳은 도리아식 기둥으로 주랑으로 만들었습니다.

모두 12개의 기둥이 보입니다.

 

가운데 보이는 글자는 "황제 요제프 2세와 마리아 테레지아 재위 기간인 1775년에 세웠다."라는 말이라 합니다.

그러니 공사 실명제라는 말인가요?

가운데 독수리는 신성로마제국의 상징으로 둥근 원 위에 서 있는 모습은 세상을 모두 갖고 싶었나 봅니다.

독수리는 신성로마제국의 상징이죠.

그 독수리 입을 보면 거대한 반지를 물고 있습니다. 

 

그 옆의 조형물은 네 개의 방패를 손에 든 장군의 모습입니다.

두 마리의 사자를 거느리고 사자는 장군의 위엄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하는 마스코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황제는 좌우로 저런 장군과 용맹한 짐승을 거느린 위풍당당한 자세를 지니고 싶었나 봅니다.

 

합스부르크가의 지배자는 로마제국의 영광과 위엄을 그대로 계승했기에 로마 황제를 뛰어넘어

더 위대한 지도자라고 과시하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이곳에서 뒤를 돌아보면 쉔부른 궁과 빈 시내가 한눈에 보입니다.

바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보았을 그런 풍경을 지금 여러분과 함께 바라보고 있습니다.

 

여기서 비엔나커피 한잔 하고 가면 참 좋겠습니다.

주변은 푸른 숲으로 아주 시원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태리에는 이태리 타월이 없고 비엔나에는 비엔나커피가 없다는 것...

 

작은 영광이라는 글로리에테...

참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25년 만에 겨우 올라와 보았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프로이센을 격파하고 그 기념으로 여기에 글로리에테를 만들었다고 했나요?

그런 영광스러운 일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나 봅니다.

이곳에 올라와 황제는 그때의 영광을 언제까지 느끼고 싶었나 봅니다.

그러나 마지막 황제는 저물어가는 나라를 생각하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결국, 나폴레옹에게 나라가 거덜 나고 이곳마저 나폴레옹에 접수되어 6개월가량 나폴레옹의 사령부로

사용되었답니다.

작은 영광이라는 의미의 글로리에테는 나폴레옹에게도 영광을 안겨주었나 봅니다.

나폴레옹도 여기에 올라 비엔나커피 가져오라 했을까요?

작은 영광이라는 글로리에테는 나폴레옹에게는 큰 기쁨이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