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중심, 슈테판 성당(St. Stephens Cathedral)

2014. 2. 12. 08:00동유럽 여행기/오스트리아

오늘은 137m의 첨탑을 자랑하는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오스트리아의 최대 성당인

슈테판 성당(Stephansdom)을 구경합니다.

성 슈테판은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순교자라 했나요?

비엔나의 상징이자 비엔나 시민의 긍지인 슈테판 성당은 처음에는 1147년에 지었으나 당시는 바실리카 양식으로

무척 단조로웠나 봅니다.

 

우선 구글 위성지도를 통해 슈테판 성당을 하늘에서 먼저 봅니다.

하늘에서 본 것처럼 슈테판 성당의 광장을 별로 크지 않습니다.

좁은 광장으로 말미암아 성당의 전체 모습을 한 프레임에 담는다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1258년 대화재로 성당은 소실되고 1263년에 재건축이 시작되었다네요.

대화재가 발생한 것은 새로운 성전을 건축하라는 신의 계시라 생각했을까요?

그러나 1359년에 합스부르크가의 루돌프 4세가 당시 유럽을 휩쓸던 새로운 건축 조류인 고딕 양식으로

지으라 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합니다.

 

그러니 처음 터파기를 시작한 지 벌써 9백 년이 다되어 간다는 말인가요?

1683년 이민족인 오스만 튀르크가 이곳을 침략하며 성당은 파괴되었다 하네요.

그러나 오스만 튀르크는 이때 커피를 전파하였다고 하니 정말 세상일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동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칭기즈칸과 오스만 튀르크의 이야기가 무척 많이 나옵니다.

 

그러면 비엔나커피가 이때?

비엔나에는 비엔나커피는 없고 비슷한 맛의 커피는 있다고 하더군요.

佳人은 무조건 자판기 커피입니다.

이태리에는 이태리 타월이 있을까요?

 

성당은 초기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었다가 나중에 고딕 양식으로 변경했다고 하네요.

그러나 내부는 바로크 양식이라는 것...

그러나 佳人은 그 양식에 대한 구분이 정말 쉽지 않다는 것...

 

성당의 전체 모습을 한 장으로 담기에는 광장이 너무 좁습니다.

아닌가요?

성당이 너무 높은가요?

다행히 광각렌즈를 가져간 덕분에 좁은 공간이지만, 전체모습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성당 광장은 장이 열렸던 시장터였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장사하던 사람이 옷감의 길이를 재던 척도가 되는 길이를 표시한 철심이

성당 벽에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어디 그것뿐인가요?

빵의 크기를 재던 동그란 원형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남아있지만,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25년 전 이곳에 왔을 때는 마치 화재를 만난 듯 성당 전체가 새까맣게 되었는데 그동안 세척과정을 겪으며

점차 뽀얀 얼굴로 변하나 봅니다.

비엔나 사람은 국립 오페라 극장은 그들의 영혼이고 슈테판 성당은 그들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심장이라고 한다네요.

옴마?

그럼 우리가 지금 비엔나의 심장을 보고 있단 말입니까?

사실 심장은 성당 지하 무덤인 카타콤베에 있을지 모릅니다.

 

유럽에는 성당을 돔(Dom)이라고 부르더군요.

사실, 고딕 양식은 돔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그렇지 않나요?

우리가 흔히 돔이라고 사용하는 말은 둥근 지붕을 가진 건물을 이야기하잖아요.

그러나 성당 안에 들어가 천장을 올려다보면 그 말이 이해되기는 하더군요.

이태리에서는 성당이라는 의미의 돔을 두오모라고 한다지요?

 

그때 25년 전 佳人을 이곳에 안내했던 오스트리아 사람이 여기가 세상의 중심점인 옴파로스라 했습니다.

그리고는 세월이 지나 오스트리아의 한가운데가 되었다가 지금은 비엔나의 중심으로 변했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슈테판 성당이 의미하는 것은 오스트리아 사람에는 대단히 중요한 구심점이고 각별한 곳인가 봅니다.

그런 위대함도 세월이 흘러가며 점차 그렇고 그런 장소로 변해가나 봅니다.

중국의 자금성도 그렇잖아요?

 

이 성당은 모차르트의 결혼식이 열린 성당으로도 유명한 곳이라죠?

물론, 죽은 후 장례 미사도 여기서 열렸다고 합니다.

하이든도 슈베르트도 어린 시절 슈테판 성당의 합창단으로 노래를 불렀다는 곳이 여기라네요.

그만큼 슈테판 성당의 위치가 당시로는 최고였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부에는 석조 부조의 설교단이 있고 스테인드글라스도 멋집니다.

제이 차 세계대전 때 전쟁의 포화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질 수 있었던 이유는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스테인드글라스를 모두 떼어내 지하묘지인 카타콤베에 숨겨놓았기 때문이라 합니다.

 

1450년에 만든 교회 지하묘지 카타콤베에는 당시 흑사병으로 숨진 2천여 명의 유골과 합스부르크 왕가

유해 가운데 몇 사람의 심장 등의 장기가 보관되어 있다네요.

특히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내장을 비롯해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은

엘리자베트(씨시)의 내장도 보관해놓았다 합니다.

 

그녀는 죽을 때 시민군의 칼에 배를 찔렸지만, 코르셋을 너무 조인 탓에 칼에 찔렸는지도 몰랐다 합니다.

아무리 날씬한 것도 좋지만, 아름다움에만 너무 몰두했나 봅니다.

피부도 숨을 쉴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위의 사진 중 오른쪽에 보이는 제일 높은 남탑에 오르려면 돈을 내야 합니다.

남탑은 슈테플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하다네요.

그러나 성당 내부는 무료로 볼 수 있는 곳이죠.

유럽 성당은 유명한 곳은 대부분 돈을 내야 들어갈 수 있다고 하네요.

 

남탑보다 작고 탑 모양이 약간 다른 탑을 이교도의 탑이라 부른다네요.

그 모습이 마치 이슬람의 모스크에 만든 탑처럼 보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남탑과 대칭으로 북탑을 만들었다는데 높이가 137m인 남탑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60m라 합니다.

남탑은 걸어 올라야 하고 북탑은 엘리베이터로 오를 수 있는데 위에는 품 메린이라고 부르는

오스트리아에서는 가장 큰 종이 있다고 합니다.

패키지여행 중 이런 곳에 오른다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이 종은 오스만 튀르크가 남기고 간 180문의 대포를 녹여 21톤의 종을 1711년에 만들었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종은 수시로 울리지 않고 새해나 특별한 때에만 울린다니 종소리를 듣기에는 글렀습니다.

이 종탑을 독수리 탑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네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내일 슈테판 성당의 모습을 조금 더 구경하렵니다.

슈테판 성당은 안팎의 모습이 많이 다르네요.

우중충한 외부와는 달리 내부는 무척 아름답습니다.

외부는 마치 화재를 만난 듯 시커먼데 내부는 무척 화려합니다.

물론 세월이 많이 흘러 그 모습이 처음보다 퇴색되었겠지만, 아직도 그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듯합니다.

비엔나를 방문하는 관광객 중 이곳 슈테판 성당 관광은 필수라 생각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