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도 연꽃은 핀다고요.

2013. 12. 30. 08:00동유럽 여행기/폴란드

위의 사진을 보니 초소가 보이고 철조망이 보이는 곳에서 웬 사내 둘이서 걸어옵니다.

혹시 탈출을 시도하다 잡혀 오는 것은 아니겠죠?

아니면 우리를 잡으려고 오는 경비병입니까?

 

만약,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혔다면 같은 수용소 안에 있던 사람 10명이

아사 감방에 들어가 굶어 죽게 되잖아요.

굶어 죽는다는 일은 아무리 단풍이 물든 아름다운 가을이라도 슬픈 계절입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먹는 일마저 형벌로 사용하였습니다.

 

수용소에는 오르내리는 계단이 닳아 사라질 지경입니다.

처음 이곳에 들어온 사람은 폴란드인으로 정치인, 종교인, 교육자 등이었다고 합니다.

그 후 소련 전쟁포로, 집시, 부랑자, 장애인, 유대인으로 확대되었다고 하지요.

당시 폴란드의 위대한 신부였던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가 선종한 방이 있다네요.

 

위의 사진에 제일 오른쪽에 보이는 분이 콜베 신부라 합니다.

종교인도 예외 없이 이렇게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합니다.

오늘은 막스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하고 가겠습니다.

 

당시 이곳 수용소에 수용된 사람 중 한 사람이 탈출을 시도하다 발각되면 같은 감방 안에 있는

수용자 10명을 임의로 선발해 별도로 만들어 놓은 굶겨 죽이는 아사 감방에 감금해

그 죄를 물어 열 명을 굶겨 죽였던 모양입니다.

일종의 연좌제인가요?

배추 끓인 멀건 국물을 주며, 먹는 거로 정말로 추접스러운 형벌입니다.

 

어느 날 콜베 신부와 같은 방을 사용하는 사람이 강제노동에 견딜 수 없어

탈출을 시도했고 그는 즉시 발각되었답니다.

그러면 같은 방에 있던 나머지 사람에 대한 형벌이 가해졌겠지요.

그때 끌려 나온 10명 중 한 사람이 울부짖으며 나 없는 가족은 어찌 되느냐고 슬피 울었답니다.

이때 이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16670의 수인번호를 가슴에 단 콜베 신부가 나서며

저 사내 대신 내가 가겠다고 했다네요.

그 길이 그냥 굶는 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죽음으로 가는 길이기에

모든 사람이 놀라게 되었겠지요.

 

수용소장 프리츠가 "너는 누구냐?" 묻자 콜베 신부는 그냥 사재라고만 답을 했다네요.

이들 사이에 잠시 시간이 흐르며 지금까지 한 번도 자기가 뱉은 말을 뒤집은 적이 없는 수용소장은

눈을 감은 콜베 신부의 평화로운 얼굴을 보자 감히 거절할 수 없어 승낙했다고 합니다.

그때 저녁노을이 아우슈비츠를 비추며 콜베 신부의 얼굴은 저녁노을로 말미암아

평화롭고 인자하게 보이더랍니다.

마치 佳人이 직접 본 것처럼 이야기 하지요?

정말 웃기는 佳人입니다.

 

아사 감방은 원래 목마르고 굶주린 사람들만 있기에 언제나 지옥과도 같은 모습이었고

콜베 신부와 함께 들어온 사람들은 콜베 신부의 인도에 따라 아우성 대신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답니다.

이 노래는 옆 감방으로 전해지고 지금까지 지옥과도 같은 아사 감방은 기도와 노래로 화답하며

점차 다른 수용소로도 옮겨지며 아우슈비츠의 모든 수용소 건물이 노래와 기도로 점철되었다 합니다.

 

한 신부의 사랑으로 지옥과 같은 수용소는 마치 성당과도 같은 곳으로 바뀌어버렸답니다.

콜베 신부는 감방 안에서 숨을 거두는 사람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며 임종을 지켰다고 합니다.

사람이 세상을 하직할 때 편안하게 숨을 거둔다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일은 없을 겁니다.

 

한 신부의 사랑이 죽음보다 강하고 아름답습니다.

결국, 수인번호 16670번 콜베 신부에게 1941년 8월 14일 성모승천 대축일 전야에

페놀 주사를 주입함으로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위의 모형 사진은 지하 가스실과 지상에 설치한 시체를 소각하는 화장장입니다.

요즈음 우리 주변에 콜베 신부와 같은 분이 계실까요?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니 과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佳人은 우리나라에도 이런 신부님이 계셨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얼마 전 세상을 떠나며 많은 사람을 울려버린 이태석 신부 말입니다.

"울지 마 톤즈"라는 TV 프로그램은 울지 말라고 하고는 우리 모두를 울려버렸잖아요.

그러나 이태석 신부 말고는 아무도 없는 듯합니다.

 

가스실에서 대량 살상하고 난 후 이렇게 시체를 옮겨 소각했나 봅니다.

 

실내에 이런 당시의 가스실 모형을 만들어 놓아 관람객에게

그때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하려 했습니다.

 

당시의 화장했던 화로인가 봅니다.

무척 많은 화구가 보이고 저곳에는 24시간 쉬지 않고 불길이 타올랐을 겁니다.

 

그때 가스실에서 사용했던 사이클론 B라는 가스라 합니다.

 

사용하고 난 빈 깡통...

그중 일부만 전시했나 봅니다.

이 깡통에 든 사이클론 B라는 독약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갔을까요.

 

전시된 수감자의 물품을 통하여 잠시 그때 모습을 상상해 보렵니다.

 

장애인이 사용했던 의족이나 기타 장애인보조기입니다.

이런 사람은 내리자마자 우선으로 분류해 바로 가스실로 보냈다 하지요.

 

죽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살림 도구 일부를 챙겨 온 듯합니다.

당시 법랑이라는 식기는 무척 고가로 알고 있습니다.

생활수준이 상당한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일상용품인가 봅니다.

 

그들이 들고 온 가죽 가방입니다.

당시에 여행용 가방은 이런 가죽 가방을 주로 사용했나 봅니다.

이름과 출신 지역을 적어 보관했다 나중에 돌아갈 때 반환한다고 했겠지요.

 

아이의 인형에 자꾸 눈길이 머뭅니다.

1942년 6월 12일 안네는 아버지로부터 13번째 생일을 맞아 일기장을 선물 받습니다.

혹시 그 일기의 주인공 안네 프랑크의 인형이었을까요?

 

아이들의 구두입니다.

 

구두만으로는 부족해 구두 약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죽는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절대로 챙겨 오지 않을 물건입니다.

 

안경입니다.

 

여성의 머리카락입니다.

이 머리카락으로 카펫도 짰는데 카펫에 땋은 머리카락이 그대로 들어가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면도용 속과 머리 빗는 빗 그리고 칫솔도 보입니다.

5동 건물에는 주로 죽은 자의 유품이 남았습니다.

죽은 자라도 이렇게 우리 기억에 남는다면 그것은 죽은 자가 아닙니다.

일본 수상처럼 살아있어도 우리 기억에 없다면 그게 죽은 자입니다.

인간이라도 인간처럼 행동하지 않는 자도 짐승이지 인간이 아니잖아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그들이 남긴 유품을 보며 많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죽는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곳에 온 사람 대부분은 죽어 그 형체조차 없이 사라졌습니다.

우리에게도 마루타란 이름으로 사라져 간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잊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잊을 만하면 자꾸 일본이 우리를 그때로 다시 되돌아가게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