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Auschwitz) 그 지옥의 현장.

2013. 12. 24. 08:00동유럽 여행기/폴란드

 

이제 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당시 이 문을 통과해 강제노동에 시달린 사람은 그나마 목숨이 붙어있는 사람이죠.

"ARBEIT MACHT FREI"

그때까지는 노동을 한 사람에게 자유까지는 아니지만, 가스실로 보내지 않았을 테니까요.

우리도 숨을 쉬고 있기에 이 문을 통과합니다.

 

위의 사진은 1941년 당시 이곳 정문의 모습입니다.

이곳 수용자들이 열을 지어 아침저녁으로 드나들 때마다 캠프 오케스트라가 행진곡 연주하던 장면입니다.

우리 상식으로는 보통 이런 장면은 환영의 의미로 입구에서 연주하는 모습이지만, 그러나 이 모습은 당시

일하기 위해 드나들 때 행진곡에 발을 맞추게 하여 인원파악이 쉽게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나치는 예술을 강제수용한 사람을 노동착취에도 철저하게 이용한 민족이었습니다.

임금이나 제대로 주었을까요?

일본은 지금도 그렇게 강제노동착취를 통해 큰돈을 번 재벌이 있지만, 증거를 보여주어도 모르쇠로 일관합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이런 건물이 가지런히 줄을 지어 있습니다.

여기 제1 수용소에는 강제수용한 사람을 가두기 위해 모두 28개 동이 있었고

한 동에 보통 600명에서 천여 명을 수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대강 수용했던 인원이 나오잖아요.

 

그 모습을 더 자세히 살펴봅니다.

정문을 통해 들어가면 모든 건물을 다 돌아보는 게 아니고 주로 4동부터 몇 곳만 들어가게 됩니다.

모두 본다고 특별히 다른 게 없다는 말이겠지요.

그 건물 안에는 전시물과 당시의 사진이 진열되어 끔찍했던 그때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 왼쪽으로 나오게 되는데 그곳에 게슈타포가 있었다는 관리동이 있고 철조망 밖에는 그 악명높은

독가스실이 있어 그곳을 보면 다시 입구로 나오게 되더군요.

구글 위성 지도로 보시면 현재의 모습을 그대로 보실 수 있습니다.

 

정문 앞에 보이는 건물이 처음으로 눈길을 끕니다.

그 건물 지붕에는 하늘을 향해 삿대질하듯 굴뚝이 있네요.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독가스실일까요?

얼마나 많은 사람을 태우려고 굴뚝을 저리도 많이 만들었을까요?

 

佳人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 굴뚝을 바라보며 같은 생각을 하나 봅니다. 

그러나 그 굴뚝의 정체는 가스실이 아니고 식당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큰 식당이 있어야 엄청나게 많은 수만 명의 수용인을 먹여 살리죠.

물론, 이곳을 경비하던 독일군도 먹어야 하고요.

 

이번 동유럽 여행을 하며 유럽의 식당에서 식사하며 참 맛나게 먹었습니다.

유럽인은 우리와 식생활이 다르고 수저를 사용하지 않으니 포크와 나이프에 숟가락으로 멋진 식사를 하지 않겠어요?

주로 썰어 먹는 고기에 치즈, 햄, 베이컨, 소시지...

생각만 해도 침이 넘어갑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비록 강제노동일지라도 일이 끝난 후에 이런 생맥주 한잔은 또 어떻겠어요.

하루의 피로가 싹 풀리면 내일 또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보람찬 일터로 나가지 안 겠어요?

노동 후에 먹는 음식의 즐거움을 佳人처럼 백수는 그 의미를 잘 모릅니다.

 

그러나 이곳 수용소에서의 현실은...

겨우 채소 삶은 물이 전부였다네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뿌연 국물 말입니다.

 

당시의 배급상황을 그림으로 그렸네요.

건더기라도 있는 날은 행복했을 겁니다.

같은 수용소에 있는 수용자일지라도 저렇게 폼을 잡고 같은 동료를 관리했던 사람도 있나 봅니다.

재미있는 일은 완장만 채우면 이상한 사람으로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요.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천박한 사람일수록 더 날뛰는 모습을 보니 그 사람의 성품을 그대로 보게 되어 안타깝더군요.

 

그러니 기아와 굶주림에...

이게 어디 사람의 모습입니까?

아프리카의 모습이 아니고 문명국이라는 유럽인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표현한 이런 조형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제일 먼저 들어가는 4동 건물입니다.

이곳에는 주로 사진으로 당시 모습을 남긴 기록실입니다.

당시의 모습을 사진이나 자료로 살펴봅니다.

 

도대체 어디에서 그 많은 사람을 붙잡아 왔을까요?

북으로 오슬로, 서쪽으로는 파리, 남쪽으로는 아테네 그리고 동쪽에서는 소련에 이르기까지

전 유럽에서 망라되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시각에 금수보다 못한 일본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아시아에서 같은 짓을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잘못을 회개하는 민족이 있습니다.

총리가 무릎마저 꿇고 머리를 숙인 체 아직도 사죄하는 민족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가리 바짝 들고 뻔뻔하게 반성은커녕 역사 왜곡에만 열을 올리는 민족도 있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반성하는 민족과 그 잘못을 자꾸 가리려는 민족이 있습니다.

 

 여기 입구에 꽃다발 하나가 놓여있고 모래시계가 있습니다.

꽃다발 하나 놓았다고 지난 과거가 용서되는 일은 아닙니다.

그런 분명한 사실은 전 세계인이 모두 알고 있는데 지구 상에 오직 한 민족만 모르고 살아갑니다.

모르는 게 아니라 알면서 감추려고만 하지만, 그게 감춘다고 감춰질 일이겠어요?

 

이곳 오시비엥침의 수용소에는 오늘도 그때를 기억하기 위해 많은 청소년이 찾아듭니다.

그들의 눈에는 이곳이 어떻게 비칠까요?

 

높디높은 철조망이 이중 삼중으로 처져있고 그곳도 모자라 고압 전류를 흘렸습니다.

이 철조망 밖과 안은 천국과 지옥이 아닐까요?

오늘 佳人은 그 철조망 가운데에 서서 양쪽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오늘도 시간은 흐릅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런 역사도 퇴색되어 갈까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다시 같은 역사가 되풀이 되는 일이 일어날 겁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시계에도 참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프라하의 천문시계, 올로모우츠의 시계, 이곳 아우슈비츠의 모래시계...

우리나라 정동진에도 대형 모래시계가 있어. 일 년에 한 번 뒤집기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대한민국 남자에게는 국방부 시계만큼 기억에 남는 시계도 드믈 겁니다.

거꾸로 매달아도 간다는 국방부 시계나 뒤집어야 다시 가는 모래시계도 시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