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 17. 08:00ㆍ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2012년 11월 20일 여행 33일째
오늘 보정산 대족석각을 보러 갑니다.
그 오묘하고 신기한 석각예술의 세계로 들어가 그 즐거움의 바다에 흠뻑 빠졌다 오렵니다.
석각을 구경한 후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충칭으로 가야 합니다.
배낭은 일단 모두 챙겨 숙소 카운터에 맡깁니다.
그래야 추가 요금이 없기 때문이죠.
7시 30분에 숙소를 나섭니다.
아직 어둠이 약간 남아 있습니다.
어제 공안이 알려준 대로 101번 버스를 시외버스 터미널 앞에서 타려고 대족석각을
가느냐고 글로 써서 물어보니 길을 건너가 반대편으로 가는 버스를 타라고 합니다.
여기가 종점이라도 원을 그리며 운행하기에 도는 방법이 서로 다른가 봅니다 .(1원/1인)
잠시 버스를 타고 가니 기사가 우리보고 내리라 하며 손가락으로 길을 건너가라고 합니다.
미리 우리의 목적지를 글로 알려주면 이렇게 잊지 않고 내려서
버스를 옮겨타는 곳까지 자세히 일러줍니다.
그곳에 갔더니 미니 버스가 줄지어 서 있고 우리가 가려고 하는
보정산 석각으로 가는 버스도 있네요.
그러니 여기가 대족 부근의 작은 동네로 운행하는 시외버스 정류장인가 봅니다.
거리는 여기서 부터 12km인가 봅니다.
우리 부부처럼 이렇게 물어보면서 다니다 보면 중국여행도 별 게 아니라는 것을
금세 아시게 될 겁니다.
이렇게 대족이라는 곳은 대족석각(大足石刻)이 유명한 마을이라 합니다.
오늘 찾아가는 곳은 대족의 많은 석각 중 가장 유명한 보정산 석각입니다.
이곳에는 주변 산에 비슷한 석각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가요?
보세요.
가게 간판조차 이렇게 예술적으로 만들었잖아요.
어느 것은 간판에 글을 쓴 사람의 이름과 낙관까지 찍었잖아요.
보정산 종점에 버스가 도착하면 관광전용 차가 석각 입구까지 3원을 받고 태워준다네요.
이거 타지 말고 걸어가세요.
바로 앞에 보이는 모퉁이만 돌면 바로 입구가 나옵니다.
200m 정도나 될까요?
중국인은 이런 곳에서 차를 타거나 산길에서 가마 타는 일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기나 봅니다.
이 부근을 오산 석각이라고 부르고 이 주변 다섯 곳에 석각이 있다고 합니다.
그 중 예술적으로 인정하고 문화유산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사람이 많이 찾는 곳은
북산 석각, 남산 석각, 그리고 이곳 보정산 석각 세 곳이라 합니다.
오늘은 모두 갈 수 없어 제일 유명한 이곳 보정산 석각만 구경하려 합니다.
혹시 석각에 관심이 있는 분은 모두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나 佳人은 이런 예술적인 눈이 없어 그냥 한군데만 보고 갑니다.
여기 입장료는 135원으로 외국인은 경로할인도 해주지 않습니다.
외국인은 나이도 먹지않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북산까지 포함한 연표는 170원이네요.
중국의 입장료는 정말 비쌉니다.
중국 여행을 하다보면 관광지 대부분은 외국인이라도 경로할인이 있지만,
여기처럼 간혹 외국인은 제외하는 곳도 있습니다.
이는 국가가 정하는 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가 정하기에 지방마다 다르지 싶습니다.
경구 앞 광장에 홀로 외롭게 서 있는 석상이 하나 보입니다.
"누구세요?"
바로 이곳에 석각을 만든 조지봉(趙智鳳)이라는 스님이랍니다.
스님께서는 외국인에게는 입장료 할인을 해주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왜?
이 석각은 조지봉(趙智鳳)이라는 스님이 시작한 곳으로 평생에 걸쳐 만들어 스님의 혼이
깃든 곳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겁니다.
당대에 마무리하지 못하고 대부분의 석각은 그 후 3대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라 합니다.
우선 그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1159년 어느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 그것도 유복자로 태어났으며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마저
몸이 부실해 당장 먹고 사는 문제조차 해결하기 어려운 집안이었다 합니다.
이런 그는 살아갈 방법으로는 어린 나이에 출가하는 방법 외에는 없었을 겁니다.
그때 나이가 5살의 어린 나이였다고 합니다.
만약, 스님이 부유했다면 우리는 이런 엄청난 석각을 볼 수 없었을 겁니다.
남의 불행이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다니...
세상 일이란 참 알 수 없나 봅니다.
열여섯 되던 해 처음으로 이곳을 떠나 여행을 하게 되었다 합니다.
그는 여행하며 많은 사람을 만나보고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당시는 지금보다 글을 모르는
문맹자가 더 많았을 것이고 대부분 글을 모르기에 부처의 말조차 의미를 몰라
글을 모르는 순박한 민초를 위해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합니다.
결국, 3년 만에 여행을 끝내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시작한 일이 바로 글을 모르는 사람도
쉽게 부처의 가르침을 알 수 있게 석벽에 교훈을 조각으로 만드는 일에 매진하게 되므로
위대한 대족석각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라 합니다.
(이거 순전히 거짓말입니다. 佳人도 중국어를 모르지만, 석각에 새긴 의미를 쉽게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글을 모르는 민초를 위해 그 의미를 알아보기 쉽게 조각했다고 합니까?)
원래 이렇게 주유천하를 하면 얻는 게 많은가 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사기를 지은 사마천도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주유천하를 한 후
사기집필을 결심했다고 했나요?
佳人도 주유천하를 하고 돌아와 언제나 여행기를 쓰지만, 다른 사람에 별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유천하 한다고 모두 같지는 않나 봅니다.
1179년부터 1249년까지 70년 동안 이곳에서 정을 들고 돌을 쪼아가며 석각을 새겨갔답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그러나 안타깝게도 몽골의 침입으로 결국, 완공은 보지 못하고 말았다네요.
위의 사진은 조지봉 스님이 자신의 모습을 직접 만든 석상이라고 하네요.
종교의 힘은 대체로 이런 일로 시작되나 봅니다.
캄보디아의 앙코르 지역의 힌두교 성전도 안으로 들어가면 모두 도서관이라는 건물이 있습니다.
도서관뿐 아니라 사원의 석벽을 따라 장대한 조각상이 있더군요.
당시 책을 만들어 보관한 곳이 아니라 그 건물 벽에 시바나 비슈누 등 힌두교에 나오는
신의 의미와 대서사시인 마하바라타의 한 장면인 쿠룩세트라의 전투 장면 등을
장대한 석벽에 부조로 만들어 민초에게 보여주는 교훈적인 이야기를 새겨놓았습니다.
여기도 부처의 교리를 새겨 글을 모르는 민초에게 알리려는 그런 의미일 겁니다.
그 석벽 앞에 서면 누가 알려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그 내용을 알게끔 부조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며 당시 석공이 말하려고 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말입니다.
종교에 대해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마음으로 느끼면 되지 않겠어요?
스님은 평생을 여기서 불교와 유교 그리고 도교를 모두 아우르는 삼교합일의 마음이었나 봅니다.
어느 하나의 교리에 치우침이 없이 모두가 민초를 위한 일임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닐까요?
이 보정산 석각들의 특징은 불교의 기본 교리와 중국 유가의 윤리 및 도교적 학설이 융합되어
일체를 이루고 있다고 하는데, 기본은 티베트 불교와 같은 밀종(密宗)의 교리라 한다는군요.
그래서 다른 석굴과는 형태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알려진 곳이라 합니다.
내일부터는 하나씩 구경하며 찍은 사진을 통하여 여러분과 함께 보려고 합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대족에는 남산, 북산 등 보정산 말고도 주변에 많은 곳에 석각이 새겨져 있다 합니다.
그 중 군계일학이 보정산에 있는 보정 석각인데 흔히 우리가 대족석각이라고 부르는 게
보정산 석각을 지칭하는 말이라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충칭이나 청두에서 꼭 다녀오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곳입니다.
디따 크게만 만들기만 했지 예술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러산대불은 많이 찾아가시지만,
이곳은 많이 찾지 않으시죠?
러산대불보다 규모는 작지만, 아기자기하고 아름답기로는 여기가 수백 배나 됩니다.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을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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