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한으로 가는 출발점 강주(충칭)

2014. 3. 29. 08:00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홍애동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구경합니다.

여기 홍애동은 그 높이가 75m 정도로 상당히 높은 건물군입니다.

계단을 이용해 걸어 오른다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처음 모르고 걸어 올랐지만, 여기저기 구경하다 보니 건물 안으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는 겁니다.

공연히 아침부터 다리 힘 빼고 다녔네요.

홍애동은 상가건물이기에 엘리베이터가 여러 대 운행합니다.

이곳에 올라 앞을 바라다 보면 쓰촨에서 흘러오는 가릉강이 보입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저곳 오른쪽 끝이 바로 장강삼협으로 떠나는 유람선

선착장으로 여기서 떠나는 배는 대부분 밤에 떠나는가 봅니다.

저녁노을이라도 물들면 이 또한 멋진 광경이 아닐까요?

 

 

어제 이야기를 계속하렵니다.

유비가 유장을 돕겠다는 명분으로 군사를 이끌고 떠날 때, 군사로는 방통,

장수로는 황충과 위연 뿐이었답니다. 

평소의 유비군 중 늘 앞장서서 싸웠던 관우, 장비, 조자룡 등은 모두 빠졌습니다.

물론 공명도 빠졌지요.

 

 

왜 중요한 서천으로 떠나며 맹장도 빼고 공명도 빼고...

그러니 장기판에 차, 포 빼고 둔다는 말이 아닌가요?

베스트 맴버가 아닌 2군으로 꾸민 유비의 군.

이렇게 제법 이름난 장수를 남겨놓고 공명마저 함께하지 않은 것은 유비가

유장을 안심시키기 위한 전략일 겁니다.

유비는 아주 전문가였던 겁니다.

유비를 일컬어 인과 덕을 말하지만, 사실 교육적이지 못한 그런 사람이지요.

이렇게 잔머리도 쓰는 그런 사람이랍니다.

 

 

유비나 공명의 앙큼한 전략 말입니다.

그러나 유비의 군사 5만은 그냥 영화 찍을 때 임시로 뽑은 엑스트라가 아니라

순전히 그동안 메이저 리그인 전쟁터만 누비며 산수 수전 다 겪은 닳고 닳은 싸움꾼들이잖아요.

사실, 당시 비행기가 없어 공중전까지는 섭렵하지 못했지만...

며칠만 쉬라고 하면 몸이 근질거린다고 난리 치는 그런 친구들이 아닌가요?

 

 

평생 전투 한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유장의 병사와는 그 근본부터 다릅니다.

서천은 원래 아주 험준한 지형이라 중원에는 늘 전쟁의 피바람이 불어 심란한 곳이었지만,

이곳만큼은 평화롭게 살았던 곳이라 전투 한번 벌어지지 않은 곳이잖아요.

 

그러니 두 세력이 맞붙는다면?

네 그렇습니다.

알라 손목 비틀기일 겁니다.

헉!!!

아래 사진은 손목이 아니라 목을 비틀고 있나요?

 

 

이때가 건안 16년 아주 몹시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이렇게 유비는 오히려 환영을 받으며 형주를 출발해 이곳을 지나 지금의 몐양인 부성으로

입성하게 되며 삼분 천하지계의 첫걸음을 시작하게 됩니다.

겉으로는 종친 돕는다 했지만, 속으로는 "이제 여기가 내 땅이야~" 하며 들어갔을 겁니다.

 

 

익주에 머무르던 유장은 유비를 종친이라 여기고 고마운 마음에 버선발로 한걸음에

부성으로 달려와 노고를 위로한다고 100일 동안이나 연회를 열어주었지요.

어떤 연회?

부성의 연이라는 잔치 말입니다.

 

 

이게 나중에 항우가 유방을 죽이려고 열었던 홍문연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지요.

이미 위연은 손을 뒤로 뻗어 칼을 잡고 기회만 노리고 있습니다.

쉿!

위연!!!

자네 지금 칼장난 하려는가?

공명은 스스로를 심외무도(心外無刀)라는 말로 마음 외에는 칼이 없다고 했지만,

위연은 도외무심(刀外無心)이라는 말로 칼 외에는 아무 생각조차 없는 사람이었지요.

주군이 명령만 내리면, 여기서 칼춤을 한번 추려고요.

 

 

이렇게 두 세력은 처음에는 화기애애하게 만났지만, 점차 화기애매하게 변해갑니다.

종친이라 가족적인 분위기로 시작했지만, 점차 가축적인 분위기로 변해갑니다.

사람이 도를 벗어나면 가축이나 다름없잖아요.

정말 유비라는 종친을 믿은 유장이 바보였습니다.

 

이렇게 유비는 철저하게 진짜 얼굴을 가면 뒤에 감추고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니 양의 얼굴을 한 늑대 말입니다.

숨소리는 진실이었을까요?

위의 사진을 보니 유비가 썼던 가면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지금 청두에서 가장 인기있는 극이 바로 얼굴을

순간적으로 바꾸는 변검이 유명하지요.

 

 

이렇게 종친이라는 두 사람은 서로 죽고 죽여야만 사는 관계로 발전하고

그즈음 방통이 낙봉파에서 죽는 일이 생기자 유비는 또 울면서 관우의 아들인 관평을

형주로 보내 공명을 모셔오라 합니다.

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니까요.

이제 그정도 나이가 들면 혼자서도 잘해야 하는 게 아닌가요?

 

 

진작 방통이 시도했던 부성의 연회에서 위연이 벌린 칼춤을 묵인했더라면

이런 일도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천하를 도모하려는 자가 이 정도의 앞일을 예측하지 못한단 말입니까?

공명은 형주를 떠나며 관우에게 팔(八) 자 수비를 일러줍니다.

이 말은 북으로는 조조를 막고 동쪽은 손권과 화평한다는 말입니다.

 

 

유비가 처음부터 방통이 말한 그대로만 했더라면 관우는 물론

장비도 유비도 별일이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오만했던 관우는 스스로 목숨을 재촉했고 그 여파로 장비도 유비도 모두

도원결의 한 것처럼 한날한시는 아니더라도 줄줄이 불귀의 객이 되고 맙니다.

 

 

이렇게 공명은 이곳 형주를 단단히 일러놓고 드디어 유비를 돕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서천으로 향하는데 우선 군사를 둘로 나누어 하나는 장비에게 만 명의 군사를 주어

육로로 지금 이곳인 강주의 파군을 지나 낙성 서쪽으로 향하라 하고 자신은 조자룡을

선봉으로 삼아 배로 장강을 거슬러 올라 지금 이 앞의 가릉강을 지나 낙성으로 갑니다.

그래서 삼국지에서 이곳 충칭은 지리적으로 무척 중요한 길목인 셈입니다.

 

 

지금 보이는 충칭의 홍애동 앞을 흐르는 가릉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가 얼마 전

들렸던 장비의 무덤이 있는 랑중이라는 마을로 바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랑중에 장비가 머물렀던 이유가 바로 당시로는 중원에서 익주로 가는 물길의 길목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랑중에만 도착하면 육로를 통해 평탄한 길로 부성이 있는 몐양까지는

아주 가까운 거리만 남습니다.

그 길을 우리는 차를 타고 지나갔기에 지형을 대강 보았습니다.

 

 

이 해적선을 타고 올라가느냐고요?

아닙니다.

당시 이런 배에 대포까지 있었더라면 유비가 아니더라도

佳人 정도만 해도 천하를 통일했을 겁니다.

 

 

며칠 전 현대차가 중국의 네 번 째 공장을 이곳 충칭에 세우려고 한다는 뉴스를

보았는데 이곳 충칭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바로 서천으로 들어가는 길목이고

중요한 보루이기 때문일 겁니다.

아마 현대차가 이곳에 공장을 세우고 유비의 길을 따라 서진한다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지 모르겠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당시의 이야기는 작가가 유비를 미화하기 위해 많은 말을 만들어 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복장이 터집니다.

어찌 이리도 답답한 사람이 천하를 꿈꾸었을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작가야 유비를 공자보다 더 덕이 있고 멋진 사람으로 미화하려고 했겠지만,

세상은 난세였고 유비의 생각도 그렇지는 않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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