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의 파성(巴城)전투

2014. 4. 5. 08:00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여기 충칭의 조천문 광장 앞은 장강과 가릉강이 만나는 합류지점입니다.

이 모습도 충칭의 명소 중 한 곳이라죠?

물길을 따라 그 옛날 중원에서 장강을 따라 서천으로 들어가는 첫걸음이 여기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며 유비가 삼분 천하를 위해 이 길로 올라갔을 것이고 그리고 유비의

마지막 꿈이 육손의 화공으로 불살라질 때도 이 길로 나와 장강을 따라 동쪽으로 나아갔지요.

바로 여기가 유비에게는 꿈과 희망의 입구였고 좌절의 출구였나 봅니다.

지금 충칭이 이런 비탈에 있으면서도 인구가 많은 이유가

바로 이런 지리적인 이점이 있기 때문이지요.

 

 

이제 홍애동을 나와 큰길을 따라 올라갑니다.

이곳 충칭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찾아가려고 합니다.

어제저녁에 시내버스를 타고 이 길로 오면서 길가에 세운 표지판에 얼핏 태극기가

보였기에 그곳이 임시정부가 아닌가 하고 찾아갑니다.

대강 그 방향을 따라가다 보면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충칭이라는 도시는 엄청나게 큰 도시입니다.

도시 자체가 비탈진 곳에 세워졌는데 어떻게 이렇게 거대한 도시가 생겼는가

이해하기 어려운데 아마도 지리적인 이점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충칭의 항구는 해안가에 있는 큰 항구보다도 더 커 보입니다.

 

 

시내를 걷다 보면 어깨에 대나무로 만든 막대기를 매거나 든 사람을 자주 보게 됩니다.

일종의 짐꾼인 포터일 겁니다.

워낙 계단이 많은 도시라 그냥 손수레나 자전거로 짐을 싣고 오르내릴 수 없을 겁니다.

그래서 이런 대나무 막대기를 이용해 짐을 양쪽 끝에 매달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직업이

충칭에만 생겼나 봅니다.

 

 

아기도 이렇게 대나무로 짠 의자에 앉혀 등에 메고 다니는 것으로 보아

비탈이라는 게 확실한가 봅니다.

사람은 이렇게 환경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유연한 동물인가 봅니다.

오늘 올려드리는 사진은 충칭의 산성(山城)인 통원문(通遠門)에 만든 공성전을 벌이는

조형물의 모습으로 보이는데 아주 실감 나게 만들었기에 사진으로 올려볼까 합니다.

 

 

그냥 남아있는 역사적인 성벽을 이렇게 실감 나게 조형물로 보여주는 게

더 멋지다는 생각입니다.

위치는 바로 대한민국 충칭 임시정부로 들어가는 입구 50m 정도 위에 있어

찾기 또한 무척 쉬워 혹시 우리 임시정부를 들리시는 분은 무료로 구경하는

작은 공원이기에 잠시 이곳을 들려 쉬었다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위치는 위의 사진에 보이는 우리 임시정부 청사로 들어가는 표지판에서

큰길을 따라 언덕길로 조금만 올라가면 됩니다.

지금 사진 찍는 위치의 뒤편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옛날 충칭 지도를 보시면 왼쪽에 통원문이 보이실 겁니다.

앞으로는 가릉강이 흐르고요.

그러니 이렇게 산을 따라 성벽을 만들고 성 내로 들어가는 문 중

지금 남은 게 통원문이었던 모양입니다.

이 성안이 아마도 예전 충칭의 중심지라도 되었나 봅니다.

 

 

이 모습은 장비가 엄안이 지키는 파성을 공격하는 장면을 일부 묘사한 것이라 합니다.

이제 오늘은 유비가 유장을 돕겠다고 서천으로 들어갔다가 방통이 낙봉파에서

죽게되자 관평을 공명에 보내 지원을 요청하며 본격적으로 서천공략에 나서는

그때 이야기를 잠시 보려고 합니다.

이때 주군을 돕기위해 장비가 함께 군사를 이끌고 수로를 따라 서천으로 들어갔다지요?

 

 

이때 파군(충칭 인근)은 유장이 다스리는 촉의 명장인 엄안이 지키고 있었다네요.

장비는 군사를 이끌고 이윽고 엄안이 지키는 파성에 도착하게 됩니다.

장비는 점잖게 엄안에 길을 열라 했지요.

 

"장군! 제가 낙성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엄 장군께서 지키는

이곳 파성의 문을 열어주시면 어떨까요?"

하늘이시여~ 이게 정녕 장비의 말투입니까?

그렇답니다.

원래 장비는 육두문자로 말을 시작해 육두문자로 끝맺음을 하는 사람이지만...

 

 

왜?

공명이 제발 말썽 일으키지 말고 얌전히 가야 서천지방의 민심이

유비에게로 기운다고 신신당부했으니까요.

만약 명을 어기면 빠떼루 들어간다 했을 겁니다.

장비는 따거를 위한 일이라면 순한 한 마리 양이 되잖아요.

그러나 유비의 군사가 서천으로 들어가는 이유를 분명히 알고 있는 엄안이

그냥 길을 열어줄 리 만무하지요.

 

 

그래서 엄안이 한마디 했답니다.

뭐라고?

"열고 싶으면 니가 해라~ 이 나이에 내가 하리?"

 

 

엄안은 반말로 합니다.

왜?

엄안이 장비보다 훨씬 나이가 많으니까요.

그리고 여기 파성을 지키는 주인이잖아요.

그러나 중국은 우리처럼 존칭이 없으니 원래 반말이라고 하네요.

 

 

장비는 그래도 꾹 참습니다.

오늘 성질 많이 죽였습니다.

예전 같으면 욕부터 시작해 늙은 꼴통이라고 했을 텐데...

존엄성을 해치는 그런 말 말입니다.

공명의 부탁은 그 뒤에 다른 더 큰 이유가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장비는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이렇게 군사를 이끌고 들어오는 시커먼 속을 엄안만 알았나요?

동오의 손권부터 시작해 이미 천하가 모두 유비의 시커먼 속셈을 알았는걸요.

덜수까지 알았다고 했으니까요.

그런데 유비는 늘 입으로 仁이니 義니 하며 입에 발린 소리만 하고 작가는 그게

유비를 돋보이게 한다는 생각에 독자들의 눈을 흐리고 있습니다.

 

 

이제 장비와 엄안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머리싸움이 벌어집니다.

두 사람이 머리 박치기 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이 많은 엄안은 성을 지킬 뿐 미동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게 전투를 이기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엄안은 산전수전 다 겪은 게 맞습니다.

왜?

이곳 충칭에 살면 산비탈에 살게 되잖아요.

장강과 가릉강을 함께 내려다 보며 비탈에 살며 싸워야 하니까요.

여기처럼 한꺼번에 산전수전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엄안은 적은 군사로 용맹한 장비와 정면 대결로는 승산이 없음을 이미

알고 있기에 성문을 꼭꼭 걸어 잠근 체 빠떼루 자세로 들어갑니다.

이런 진을 빼는 작전에 공명도 오장원에서 위수를 사이에 두고 중달과 대치하며

진이 빠져 죽어버렸잖아요.

진창성을 공격할 때도 학소라는 무명의 장군에게도 공명조차 이기지 못했잖아요.

원래 지키는 처지에서는 적은 병력으로도 걸어 잠그고 버티면 쉽게 공격하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여러 차례 파성을 공략했지만, 늘 장비는 빈손입니다.

아무리 문앞에 와서 욕을 하고 자존심을 거스르며 난리를 부려도

엄안의 병사는 성문을 열고 나오지를 않습니다.

존엄성마저 해치는 욕을 해도 말입니다.

천하의 장비라도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고 버티는 적에게는 답답합니다.

여기서 장비는 머리를 씁니다.

그 이야기는 내일 계속하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머리를 썼다고 하면 또 헤딩했느냐고요?

장비가 머리를 썼다고 하면 대부분 사람은 장비가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헤딩으로 공격한 줄 안다니까요.

자업자득이죠! 뭘...

워낙 장비에 대한 인식이 꼴통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그러나 장비는 미인도도 잘 그렸고 장합을 물리친 후 흥에 겨워 입마명이라는 시도

석벽에 새길 줄 아는 로맨티시스트입니다.

공부도 제법 많이 한 인텔리겐치아였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