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27. 08:00ㆍ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이제 천천히 오르막을 올라야 하네요.
산을 오르는 이유는 낙산대불이 워낙 큰 대불이기에 머리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며 보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니 강을 낀 절벽에 대불을 조각했다는 말이네요.
대불의 높이가 71m라고 하니 작은 산이나 마찬가지라 봐야 하겠습니다.
올라가는 길의 석벽에는 많은 문인의 글이 남아있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많은 글을 쓴다고 해도 여기 낙산대불에서는 이 글자 하나가
모두를 제압하고도 남을 것 같습니다.
바로 킹왕짱이라는 불(佛) 자가 아니겠어요?
이 佛이라는 글자가 다른 글자 모두 덤비라 해도 되겠어요.
아무리 재주가 뛰어났다 해도 모두 부처님 손바닥에서 노는 것 아닌가요?
저마다 글깨나 한다고 자랑스럽게 여기다 써놓았겠지만 이게 낙서인지 아니면
역사적 유물인지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누구는 후세 사람이 보아 대단한 역사적 유적이 되겠지만, 어떤 글은 그냥 낙서가 되겠네요.
더군다나 佳人은 글의 내용도 모르는데...
여기는 유식한 척 전부 한자로 썼습니다.
글을 쓴다고 모두 글이 아닌가 봅니다.
아마추어인 佳人도 잠시 고민 좀 해봐야겠습니다.
공연히 이런 여행기랍시고 쓴다고 깝죽거리는 데 많은 사람이 쓰레기로 생각하면
오히려 지면만 더럽히는 게 아닌가요?
佳人도 전문 여행작가가 아니기에 잘 쓰는 여행기는 분명 아닙니다.
부지런히 여행기를 올리지만, 과연 이게 다른 분에게 도움을 주는 정말 소중한 여행기일까...
아니면 차고 넘치는 그저 그런 낙서에 해당하는가 말입니다.
능운사가 있는 곳이라 능운이라는 글도 보입니다.
반가상(半跏像)도 보입니다.
요즈음 미국의 어느 전시회에 우리의 문화재인 반가사유상을 보내는 일로
반대와 허락으로 논란이 되더군요.
반가상이란 반가부좌로 앉아 수행 중인 부처를 말한다 합니다.
오늘 佳人도 반가부좌로 앉아 고민해야 합니까?
그냥 석벽에 만들어 놓아 어느 사람의 시선도 끌지 못하는 반가상이지만, 한참을 서서 바라봅니다.
앞섶으로부터 흘러내려 오는 가사의 선이 마치 살아있는 듯 자연스럽고 아름답습니다.
佳人은 이렇게 서서 보아도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오늘도 글을 쓰는 중입니다.
불교의 수행법으로 관불과 염불이 있다고 하더군요.
글자 그대로 염불은 입으로 아미타불을 부르는 방법이고 관불은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수행하는 방법이라고 하더군요.
그럼 지금 위의 글을 보는 것도 佳人이 수행하고 있다고 해도 되겠습니까?
여기서 염불을 한다 한들 중국어를 모르니 하나 마나가 아니겠어요?
그러나 佳人은 솔직하게 말하면 염불보다는 잿밥이 좋습니다.
관법수행을 두고는 혜원의 스승 도안은 “참선을 하는 동안 수행자의 관수행법은
관념 속에서 부처의 모습이 보인다”고 했다네요.
상생신앙과 하생신앙을 두고는 상생신앙은 “번뇌로 극복 못 한 미륵신앙 수행자들이 죽은 후에
도솔천에 왕생해 미륵보살을 친견하기를 기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佳人은 위의 사진에서 하늘의 선녀라는 압사라만 보입니다.
멋진 비천상입니다.
여기 낙산대불로 올라가는 길목에 도솔궁이라는 곳도 있습니다.
그냥 보기에는 배가 너무 나와 무척 힘들어 보이지만, 이곳은 미륵의 주거지입니다.
도솔(兜率)이라는 말 자체는 산스크리트어로 "지족(知足)"이나 "희족(喜足)"이라는 의미라 하네요.
불조역대통조라는 기록에 따르면 비만체질인 보따리 중(布袋和尙) 계차(契此)는
길흉화복을 점쳤던 중으로 그가 죽을 때 불교언어로 "미륵은 위대하다, 그 분신은
수백억 개나 되나니..."라고 중얼거렸다 합니다.
후세 사람은 이 뚱뚱한 중을 미륵이라 여겼고 명나라 때에 이르러 그렇게 믿게 되었다 합니다.
그를 다른 말로 배 뚱땡이 나한이라는 의미로 대두(大肚)나한이라고도 부른다네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요.
복부비만은 모든 병의 원인이 됩니다.
뱃살을 줄여야 가정의 행복이 온다 합니다.
잠시 오르다 강을 내려다 봅니다.
강 건너편이 러산시의 중심가인가 봅니다.
그런데 지금이 늦가을이라 강의 수량이 줄어들어 배를 타고 낙산대불을 보는 관광이 어려워
궁여지책으로 강바닥을 긁어올려 뚝을 쌓아 강물을 한쪽으로만 흐르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야 저쪽편으로 배가 다닐 수 있기 때문이겠죠.
중국은 이런 무모한 생각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민족인가 봅니다.
우공이산은 중국인만의 생각인가 봅니다.
석벽의 글 중에 소동파재주시유처라는 글이 보입니다.
글의 내용으로 보아 북송시대의 유명한 시인인 소동파는 누군지 알겠고...
술 마시고 놀았다는 말이 아닐까요?
어디서?
바로 여긴가 봅니다.
재주정이라는 정자입니다.
소동파는 그의 시 중에 "러산에서 좋은 관리가 되는 일은 바로 여가 능산에서
술을 마시며 즐기는 일이다."라고 했다네요.
좋은 관리가 술 마시고 노는 게 주 업무라고요?
이 정자는 16세기 때 처음 세워졌으나 망가져 버리고 다시 원래의 자리에 만들었다 합니다.
관리가 되는 일이 술 마시는 일이라는 소 서방의 배포는 알아주어야겠어요.
칫! 잘 난 사람은 술 마시고 놀았던 자리도 이렇게 후세에 알리나 봅니다.
우리도 잠시 재주정에 올라 강을 내려다보고 가야 하지 않겠어요?
지금 여러분이 보시는 위의 사진은 바로 그옛날 소동파가 술마시며 보았던 바로 그 모습입니다.
장강의 지류인 민강과 다두허, 칭이강이 합류하는 곳에 바로 재주정이라는 정자가 있답니다.
뭐 술을 마시지 않아도 이곳에 앉아 풍경만 바라봐도 아주 멋질 것 같지 않나요?
소 서방이 술을 좋아했다니 이런 곳에 앉아 술을 마신다면 정말 술이 술술 들어갔겠어요.
佳人은 그냥 물이나 한잔 마시고 다시 올라가렵니다.
잠시 길을 따라 오르는데 옆에 웬 뱀이 보입니다.
죄송합니다.
뱀이 아니네요.
龍이라는 글이 보이는 것 보니 용인가 봅니다.
한 발자욱 물러나 다시 보니 용이 맞습니다.
용추오혈(龍湫虎穴)이라는 곳입니다.
지금은 헐벗은 산이지만, 옛날 능운산은 숲도 우거지고 아주 깊은 산으로
용도 살았고 백호가 살았나 봅니다.
강도 세 개나 흐르며 여기서 만나니 그 물살이 마치 흑룡이 꿈틀거리는 모습이었나 보네요.
그런데 용의 몸통만 보이고 용 대가리는?
그래서 여기다 그 모습을 재연해 놓고 백호와 흑룡의 조형물을 만들어 놓았나 봅니다.
보이세요?
용의 입 말입니다.
혓바닥을 내밀고 메롱 하고 있는...
용 대가리와 용이라고 쓴 글자 사이로 용의 발톱도 보세요.
하나는 부서져 최근에 다시 만든 듯합니다.
그래도 발톱이 네 개뿐입니다.
황제용으로 만든 용(龍)만이 다섯 개라고 했나요?
백호를 찾았더니 계단 위로 올라와야 하네요.
여기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계단 위에 숨어지냅니다.
뒤로 호랑이 굴인 호혈(虎穴)이 보이시죠?
내일은 낙산대불을 만든 해통(海通)이라는 스님에 수도하셨던
능운사(淩雲寺)라는 절부터 먼저 구경하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사실 낙산대불은 우리에게는 무척 많이 알려진 곳으로 佳人의 글과 사진은 특별히 다르지는
않기에 그래서 다른 분의 여행기에 소개하지 않은 것을 위주로
여러분에게 사진으로 보여 드리고 있습니다.
지루하시지만, 그냥 눈으로 즐기시면 어떨까요?
그냥 패스하셔도 좋습니다.
여기 낙산대불은 이미 한국의 국민관광지나 마찬가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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