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중의 한장환후사(漢張桓侯祠)

2013. 6. 26. 08:00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랑중이라는 고성은 워낙 외진 곳이라 다른 관광지처럼 혼잡하지도 않고 아직 때 묻지 않아

지금까지는 예전 모습 그대로 순박하게 살아가는 마을인가 봅니다.

그러나 여기는 삼국지라는 이야기 속에서는 무척 중요한 길목이었기에

장비가 책임지고 관리했던 지역으로 그러니 영웅들의 놀이의 한 가운데에 있어

역사의 소용돌이가 무척 거셌던 곳이라는 말이겠지요.

 

 

조금 걷다 보니 이 동네의 존재 이유라고도 할 수 있는 건물이 보입니다.

바로 한장환후사(漢張桓侯祠)라는 사당입니다.

한나라 장비 환후의 사당이라는 말일 겁니다.

장비의 죽은 후 시호가 환후이기에 아마도 이곳의 이름을 그리 지었지 싶습니다.

 

물론 장비의 무덤도 이 사당 안에 있다고 합니다.

221년에 유비의 명령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안에는 장비의 묘, 사당

그리고 원림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남북으로 정문, 적만루, 정전, 동서방, 후전, 연랑 그리고 묘역으로 꾸몄다 합니다.

 

 

오늘은 잠시 옛날로 돌아가 보렵니다.

왜?

여기에 장비의 무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장비 무덤을 붙잡고 죽은 장비에게 그날의 이야기나 들어보려 합니다.

 

 

정말 문 앞에 장비 차림을 한 건장한 사내가 서 있습니다.

흔히 여기를 그냥 장환후사라고도 부르고 한환후사라고도 부른답니다.

장비가 죽은 후 유비가 장비에게 내린 시호가 환후였던 모양입니다.

 

사당 앞에 도착하니...

시커먼스 장비가 문앞에서 佳人을 기다립니다.

누가 佳人의 방문을 미리 알렸더란 말인가?

 

 

사당 입구 길건너에는 아주 오래돼 보이는 우물 하나가 있네요.

이 우물은 유관장 세 사람이 처음 만나게 해준 탁주의 장비 우물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며 여기 장환후사라는 곳에서 장비는 219년 12월

어느 추운 날 정말 꿈같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도원결의까지 하며 함께 죽자고 약속했던 관우 엉아가 죽었다는 급보를 받습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입니까?

이게 꿈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태어난 날은 다를지라도 죽는 날은 같은 날 죽기로 약속한 게 바로

도원결의에서 밑줄 쫘아아악~ 긋지 않았습니까?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이 아니겠어요?

 

 

위의 사진은 오나라 노숙이 형주땅을 돌려달라고 관우에게 찾아오자 별의별 이유와

핑계를 대며 오리발 내미는 관우의 애잔한 모습입니다.

의리와 신의의 화신이라는 관우는 그런 의리나 신뢰를 잠시 진중에 숨겨놓고

모르쇠로 일관하며 편한 대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비루한 모습을 보여주는 겁니다.

지금도 이렇게 살아가면 시정잡배라는 욕을 먹습니다.

 

좌우지간 죽어서 신이 되었고 과대평가된 사나이가 관우가 아니겠어요?

죽으면 누구나 신이 됩니다.

관우뿐 아니라 佳人도 신이 됩니다.

 

무슨 신?

귀신 말입니다.

이제 그날 무슨 일이 있었나 그때도 갑니다.

 

 

이렇게 형주에서 잘 버틴다고 사진에 소식까지 카톡과 이메일로 전했던 관우 엉아가

맥성(麥城)에서 패주한 후 동오의 군대에 사로잡혀 아들 관평과 함께 죽었다는 소식에

장비는 그만 정신이 반쯤... 아니... 완전히 나가 실성한 사람처럼 변해버렸습니다.

 

어디 장비뿐이겠어요?

익주에 전해지자 촉한의 문무백관 및 백성들은 모두가 매우 비통해했을 겁니다.

몇 번인가 기절했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린 유비는 전군에 사흘 동안 상복을 입도록

영을 내렸지만, 상복을 입었다고 슬픔이 가실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죽은 관우가 살아 돌아오겠습니까.

그나마 그렇게라도 해야만 슬픔을 어느정도 가라앉히고

죽은 관우에 대한 예의라 생각이 들었지 싶습니다.

 

 

유비 따거도 이렇게 혼절하며 관우의 죽음을 안타까워했지만, 파서태수(巴西太守)로

부임하여 7년 동안 랑중을 지키고 있었던 장비 또한 둘째 엉아의 사망소식을 접하자

시일야방성대곡을 그치지 않았지요.

장비를 일부당관만부막적(一夫當關 萬夫莫敵)이라고 했나요?

그래요. 혼자서도 만 명의 적을 막아낸다는 장비가 아니겠어요?

만 명이 아니라 장판파에서는 아두를 구해오는 조자룡을 맞이하며 뒤를 쫓는

조조의 백만 대군을 혼자서 대갈일성으로  돌아가게 했지요.

 

 

그랬던 관우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원한이 골수에 사무친 유비와 장비는

군사를 이끌고 동오를 쳐서 관우의 복수를 하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동오를 치는 일은 바로 제갈량의 연오항위(聯吳抗魏), 그러니 오나라와는 연합하고

위나라에 항전한다는 정책에 근본적으로 위배되는 것이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공명 역시

직접 나서서 끝까지 만류하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공명은 주적에 대한 교육을 그렇게 했건만...

물론, 안 된다고 적극 말렸고 조자룡까지 어렵게 나서서 성급하게 출병하면

안 된다고 권하였으나 이 말이 유비의 귀에 들어올 리가 있겠어요? 그쵸.

 

한실을 원위치하고 천하의 역적을 벌하려고 일어선 것은 뒤로 미루고 오직 동생 관우의

원수를 갚겠다는 작은 일에 목숨을 건 유비는 태어나 가장 어리석은 결정을 합니다.

이렇게 유비는 분노라는 무기로 자신은 물론, 많은 사람을 사지로 몰아넣는 우를 범하고 말았지요.

 

물론 장비야 생각이 짧고 단순 무식한 佳人같은 사람으로 널리 알려졌기에

그렇다 하더라도 유비는 그러는 게 아니었습니다. 

가장 큰 복수는 용서라 했습니다.

그러나 유비나 장비는 이 진실을 깨닫지 못하고 '용서는 무슨 얼어죽을 용서'라 생각하고

출병을 결정함으로 삼국지의 모든 게 헝클어져 버립니다.

 

 

매일 같이 직접 나서서 병사들을 훈련하더니 결국은 직접 병사들을 이끌고 출정하려 합니다.

장비의 마음 역시 관우의 복수를 하려는 일념으로 불타고 있었겠지요.

그는 눈을 부릅뜬 채 맹세합니다.

사실 눈을 부릅뜨지 않아도 소 눈깔보다 더 큰 장비의 눈은 마찬가지입니다.
"만약에 둘째 엉아의 복수를 하지 못한다면 나는 죽어서도 눈을 못 감을 것이다."

말이 씨가 되었습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이 말이 장비가 타던 말이라는 옥추마(玉追馬)일까요?

호뢰관에서 여포와 싸울 때 삼 형제가 나서 여포 한 사람을 상대할 때 장비가 나중에

여포에 밀린 원인이 말 때문이라 핑계하고 자기가 탔던 말의 목을 쳤다지요?

못된 목수 연장 탓한다고...

능력 없는 장수 언제나 말 탓만 하지요.

그다음 구한 말이 바로 삼국지에 나오는 명마 중 하나인 옥추마라고 하지요.

 

 

너무 급한 마음에

그러나 또 그 술과 성질 때문에...

술로 흥한 자 술로 망한다 했나요?

물론 친형제보다도 더 가까웠던 관우 엉아가 죽었으니 동생 장비는 혼이

빈쯤 나간 상태였을 겁니다. 

대낮부터 술독을 들어 퍼붓고 휘하 장수인 장달과 범강에게 출전을 서두르라 재촉합니다.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고 꼴이네요.

이번 전쟁은 상복을 입고 나간답니다.

 

엉아 원수 갚는다고 출전하는 이번 전쟁이 무슨 이벤트성 전투입니까?

머리가 따르지 않으니... 병사는 전투에 편한 옷을 입어야지 무슨 영화 촬영도 아니고...

상복 입고 전투하겠다고요?

이게 장비의 한계인가 봅니다.

그런데 모든 군사가 입을 상복을 3일 안에 갑자기 어디서 마련합니까?

그냥 스카프로 조의를 표하든가 리본으로 근조를 써서 달면 되지 상복이라니요?

 

 

그러나 장달과 범강이 보기에는 아무래도 시간이 모자란지라 며칠만 더 여유를 달라고

장비에게 요청했으나 이 말에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장비는 대뜸 "당장 역적 놈들을

생포하여 토막을 낸 다음 소금을 뿌려도 시원치 않을 지경인데 너희들이 어찌 이렇게

태만할 수 있단 말이냐!" 라고 외칩니다.

지금 역적을 토막 내 소금을 뿌린다 했습니까?

이 말이 자신에 돌아올 줄이야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내 명령을 위배하는 자는 누구라도 참수하여 여러 사람에게 보인다!"

이번에는 또 목을 친다는 참수라 했습니까?

사실 관우의 죽음으로 슬픈 자는 장비지 그의 병사는 아니잖아요?

자기 의형제지 다른 사람과는 별로 친한 사이도 아니잖아요.

언제 관우가 이곳 병사를 위해 커피 한 잔 사고 밥 한 끼 샀습니까?

사람은 가끔 내가 슬프면 다른 모든 사람도 함께 슬퍼해야 한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장비처럼 말입니다.


장달과 범강은 원래 재봉사 출신으로 랑중의 재봉사를 모두 동원하여 밤새도록 작업한다

하더라도 사흘 안에는 도저히 임무를 완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전문가의 처지에서

명백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단순무식한 장비는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하고 밀어붙이려고만 합니다.

이게 지능 문제인지 인성 문제인지는 모르겠네요.

 

 

이래서 범강과 장달이 사흘 안에 준비하여 떠난다는 일이 어렵다 하며 출정기일을

늦추면 어떠냐고 했지만, 복수심에 불타는 장비에게 출정을 늦춘다는 말은

장비 성격에 오히려 격분하게 하는 일입니다.

격분 증후군이라고 있잖아요.

좋은 말로 해서 그렇지 사실은 술 먹고 하는 지랄병입니다.

 

그래서 또 예전부터 자주 했던 방식인 나무에 묶어놓고 때리기에 들어갑니다.

왜 장비는 술 먹고 화만 나면 묶어놓고 때리기에 들어갑니까?

손발도 묶어놓고 때리는 일은 비겁한 행동이 아니겠어요?

 

 

그날 마침 장비는 관우 엉아 생각에 울적하여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술을 마시고는

크게 취해서 잠자리에 들었을 겁니다.

위의 사진을 보니 그래도 관우 위패를 모셔놓고 영혼을 위로하나 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장달과 범강은 장비가 지시한 날까지 모두 준비할 수 없기에

장비의 불같은 성격을 아는지라 목숨조차 부지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오히려 장비를 죽이기로 마음먹습니다.

차라리 장비를 죽이고 그 목을 오나라로 가져가면 칭찬받고 오래 행복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겠지요.

장비의 죽음은 이렇게 허망하게 생긴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지요.

 

 

이렇게 삼국지에서도 큰 사건인 장비의 죽음은 관우의 경솔함이 유비의 눈을 흐려

막무가내 출진을 하게 하였고 그 와중에 마음만 급한 장비는 술로 말미암아

부하장수에게 무리한 지시로 연결되어 장비까지 데려가나 봅니다.

처음부터 공명이 걱정했던 관우의 오만함과 남을 무시하는 성격이 결국 화를 불렀습니다.

 

이에 두 장수는 장비에게 얻어맞는 일이 창피하기도 하고 더는 장비 휘하에 있다가는

무슨 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술에 떡이 되어 자는 장비의 침실에 들어가

자고있는 장비의 수급을 취합니다.

 

이때 장비 나이 쉰 하고도 다섯...

호랑이와 맞짱 뜰 수 있다는 사내가 장비가 아니겠어요?

만부막적(萬夫莫敵)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장비가 말입니다.

호탕한 장수가 적과 싸우다 명을 다해야지 자다가 죽는다는 일은

장수로써는 수치스러운 일이 아닌가요?

침대 위에서 죽기를 바라는 사람은 장수가 아니라 변강쇠나 카사노바 정도가 아닐까요?

 

 

범강과 장달은 장비의 머리만 취하고 수하 몇 명만 거느린 체 오나라 진영으로 도망합니다.

머리가 사라진 것을 그 다음 날에야 안 이곳 사람은 놀라 머리가 없는 시신만 수습하고

장사를 지내 바로 여기 장환후사라는 곳에 매장합니다.

 

오나라로 가는 길...

범강과 장달은 콧노래를 부릅니다.

왜?

장비의 머리를 오나라로 가져가면 기쁨 주고 칭찬받는다는 생각이 아니겠어요?

오나라~ 오나라~ 아주 오나.... 가거라 가거라 아주 가나~

오잉?

이 노래는 오나라 주제가가 아니라 대장금 주제가인데?

 

 

가릉강까지 온 두 사람은 낭중에서 동오까지는 물길로 가더라도 빨라야

6, 7일은 걸렸기에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가릉강을 타고 내려가면 바로 장강에 이르고 계속 더 내려가면 오나라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렇게 여러 날이 걸린다면 요즘 같은 복더위에 급속히 썩게 되어

아무리 장비가 인상이 특이하다지만 장비의 머리임을 증명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장비의 머리를 기름을 가득 채운 독에다 넣고 선창에 숨긴 다음 상인으로

변장하여 가릉강을 따라 동쪽으로 내려가기로 합니다.
이윽고 배는 충칭에 이르렀는데, 그곳은 가릉강과 장강이 합류하는 곳으로

바람과 물살이 드세어 그들이 탄 작은 배는 이리저리 밀리며 더는 나가지 못하였다고 하네요.

 

 

이때 갑자기 선창 안에서 우레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네요.
"장비는 살아서도 촉한을 지키며 떠나지 않았는데, 죽어서도 이곳을 떠나 동오로 갈 수 없다."

그러니 배가 더 하류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죽은 장비 귀신 때문이었습니다.

전설의 고향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럴까요?

이 소리에 장달과 범강은 선창을 열어보니 죽은 장비의 머리가 기름독 밖으로 나와서

눈을 부릅뜬 채 노려보더랍니다.

왜 이 형제는 관우도 죽어 머리가 분리돠어 조조에 보내졌을 때 조조가 상자 뚜껑을 열자

관우가 눈을 부릅뜨고 "서프라이즈~"라고 하는 바람에 조조가 시름 거리며

아팠다는 이야기도 들리잖아요.

같은 배에서 태어난 형제도 아닌데 왜 죽은 후에도 이런 서프하이즈 쇼를 하나 모르겠어요.

이게 집안 내력인가요?

 

이들은 다시 장비의 머리를 기름독 안으로 쑤셔 넣고 단단히 봉한 후, 나무판으로 덮고

그 위에 다시 돌을 올려놓았다는군요.

장비가 돼지고기를 우물 안에 걸어놓고 위에 돌을 얹었듯이...

장달과 범강이 탄 배가 장강에 이르자 선창 안에서 무엇인가 또 시끄러워졌답니다.

 

 

두 사람이 선창을 열어 보니 기름독은 큰 구멍이 나서 기름은 모두 바닥에 쏟아졌는데

장비의 머리는 밖으로 나와 이리저리 뱃전을 들이박으며 성난 목소리로 소리 지르더라네요.

"네놈들이 나를 죽였으니 나도 배를 부수고 네놈들을 죽여 함께 물고기의 밥이 되겠다!"


게다가 말하는 도중에 '펑'하고 소리가 나더니 배가 암초에 부딪히면서

바닥에 구멍이 뚫려 강물이 들이닥쳤다네요.

두 사람은 너무도 놀란 나머지 부서진 배를 손볼 정신도 없이 얼른 내려 잠시 쉬기로 합니다.

전설의 고향의 소재로는 그만인 이야기죠?

 

장달과 범강이 쉰다면 우리도 같이 쉬어야 합니다.

왜?

두 사람이 있어야 계속 이야기할 것 아니겠어요?

 

계속되는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두 사람이 휴식을 취한 후 들어보렵니다.

佳人의 이야기가 너무 식상한 이야기라 당분간 쉬었다 가려고 합니다.

그동안 격려하며 힘을 보태주신 많은 분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재미없는 이야기 때문에 지루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한편 장비의 흉보에 접한 유비는 비통함을 가누지 못한 채 장비의 몸을 낭중에 안장하고

사당을 세우도록 명령함으로 바로 오늘 우리가 구경하는 여기에 그의 사당과 무덤이 있습니다.

이곳 무덤에는 머리 없는 장비의 무덤으로 장비의 무덤은

엉아 관우처럼 두 개가 되어 버렸습니다.

도원결의한 형제라 같은 아픔을 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