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6. 12. 08:00ㆍ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오늘도 또 걷는 이야기입니다.
지루하실 겁니다.
그냥 눈으로 사진만 보시면 조금 덜 지루하지 않을까요?
그것도 마찬가지로 지루하시겠네요.
우리도 이런 길을 두 시간도 넘게 걸었습니다.
그러나 좋아하는 사람은 전혀 지루함을 느낄 수 없었던 그런 길이었습니다.
두 시간이 너무 금방 지나간다고 생각되어 아쉽기까지 하지만, 그러나 오후에 장비와
마초가 일기토로 싸웠다는 가맹관을 가야 하기에 아쉬움을 접어야 했습니다.
사람마다 느낌이 달라 지루할 수도...
멋진 길일 수도 있는 게 여행길일 겁니다.
지금 위의 사진에 보이는 고촉도를 보시면, 제일 아래 왼쪽으로
금우도(金牛道)가 보이실 겁니다.
바로 성도에서 서안으로 올라가는 길 중에 한중까지의 길을 금우도라고 부릅니다.
물론 한중부터는 여러 갈래의 길이 많이 있기에 각각 이름이 따로 있습니다.
그곳이 바로 진령산맥이기 때문이죠.
우리는 위의 지도 중 버스를 타고 보계를 출발해 태백이라는 곳을 지나 포사도라고
보이는 길을 따라 한중으로 내려와 다시 면현을 거쳐 광원에 도착했습니다.
제일 왼쪽에 기산도라고 보입니다.
공명의 첫 북벌 루트가 바로 기산도를 통해 천수로 올라갔고 제일 오른쪽에 보이는
자오도는 위연이 공명에게 건의한 북벌루트로 당시 장안인 서안에 이르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고 합니다.
공명을 만나면 제일 물어보고 싶은 게 바로 왜 북벌루트를 자오도를 통하지 않았나 입니다.
금우도는 바로 황금 소 이야기가 있는 길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아주 재미있는 코미디같은 이야기가 있어 적어봅니다.
지난 번 검문관에서 잠시 들은 이야기지만, 다시 한번 하렵니다.
당시 서안 부근에는 진나라가 있었고 성도 부근에는 촉이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이 촉나라와 구분하기 위해 유비의 촉을 촉한이라고 이야기하지요.
시대는 진나라가 통일하기 이전이니 무척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선진(先秦)이라고 부르는 기원전 316년의 일입니다.
사실 佳人은 그게 얼마나 오래전인지 가늠조차 하지 못합니다.
좌우지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미 진나라 혜문왕은 늘 촉이 마음에 들어 언제든지 삼켜버리고 싶어 껄떡거렸지만,
워낙 촉으로 들어가는 길이 험하고 어려워 망설였답니다.
그러던 중 하나의 꾀를 생각해냅니다.
촉나라 개명왕은 욕심이 하늘을 찌르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소문을 내지요.
뭐라고?
진나라에 금똥 싸는 금소가 있어 촉나라 개명왕에게 선물하려고 하나 촉나라로
가는 길이 워낙 험해 소를 데려갈 수 없다고요.
그 이야기를 들은 개명왕은 다섯 명의 장정에게 명령하여 촉에서 진나라로 가는 길을
내게 했으며 그 길 중의 한 곳이 바로 여기 명월협 협곡의 잔도도 포함되었지요.
이미 우리는 검문관에 있는 오정평이라는 곳에서 여기까지 이야기는 들었지만,
금똥 싼다는 이야기가 다르네요.
같은 이야기라도 이렇게 지역에 따라 달라지나 봐요.
열심히 고생하며 만들어 촉에서 장안에 이르는 길이 완성되자 그 다음 날 진나라
혜문왕은 군사를 몰아 촉이 고생하며 닦은 금우도를 통해 촉의 왕궁에 밀어닥쳐
바로 촉나라를 삼켜버림으로 어리석은 탐욕은 바로 나라 말아먹는 일이었습니다.
금똥 싸는 소를 욕심내어 생똥 싸며 길을 닦았다가 자기가 피똥 싸게 생겼나 봅니다.
그리고 그 다섯 장정은 무슨 슈퍼맨과 아이어맨과 스파이더맨과 배트맨과
그리고 헐크와 600만 불의 사나이로 이루어졌습니까?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곳이 다섯 명이 길을 낸단 말입니까?
그 후 통일 진나라와 한나라 시기에 이 잔도는 여러 번 보수와 발전을
가져왔으며 특히, 삼국시대에 촉한의 승상인 공명이 북벌을 위해 확장과
보수를 여러 번 했다고 하며 특히 송나라 시기에는 교각관이라는 직책을 두어
전문적으로 잔도만 관리하게 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이는 이런 잔교가 국가가 관리할 정도로 중요한 길이었다는 반증이 아니겠어요?
그때는 1번 국도나 마찬가지로 취급했나 봅니다.
이런 잔도는 전쟁 시기에는 군수물자를 운반하고 병사 이동을 위한 통로로
이용되었지만, 평화시기에는 문명의 이동과 경제와 문화교류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잔도는 화약의 발명과 쇠로 만든 도구의 발달로 점차 길이 확장되고
말이 달릴 수 있는 도로가 새로 만들어지며 잔도는 이제 관광용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이곳에서 삼국연의 드라마 촬영이 있었고 바로 화소잔도(火燒棧道)의 장면이
바로 여기서 촬영되었다 합니다.
이런 곳이라면 멋진 장면이 연출되었을 겁니다.
이곳 이름인 조천(朝天)이라는 지명은 당나라 때부터 불렀다 합니다.
그 이름이 바로 양귀비 때문이라 합니다.
756년 양귀비의 치마폭에서 도낏자루 썩는지 모르고 신선놀음만 하던 현종이
안사의 난 때문에 피난 길에 오릅니다.
지금의 쓰촨으로 피난 가기 위해 말입니다.
쓰촨은 험한 곳이기에 옛날부터 도망가 숨기도 좋았나 봅니다.
장안에서 출발해 이 길로 지나 어제 보았던 검문관을 통과했다 합니다.
검문관 검각 3층에 올라가면 그 이야기를 동판에 새겨놓았는데 너무 실내가 어두워
사진을 찍을 수 없어 보여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때가 지금처럼 아름다운 단풍이 물든 초가을이었나 봅니다.
그래도 황제라 잠시 이곳에서 쉬어가려고 어가를 멈추었는데
이 지방의 관리들이 한걸음에 달려왔겠지요.
사실 이런 곳에 녹봉을 받는 관리들이 어디 평생 황제의 용안이라도 한번 볼 수 있겠어요?
황제의 휴대용 변기인 매화틀이 있는지도 몰랐을 텐데요.
그래서 이 부근의 모든 관리가 모여 불시에 조회를 열게 되었다 합니다.
아무리 도망가는 길이지만, 격식은 모두 따졌나 봅니다.
이를 보고 사람들이 "천자에게 조회한다."는 의미로 이 마을의 이름을
조천이라고 붙였다 하니 지명도 알고 보면 도망가며 생긴 일로 이름짓기도 하네요.
진짜 같기도 하고 지어낸 말 같기도 하네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것은 명월협 황금비폭이라고 부르는 곳입니다.
평소에는 물이 없어 아무 일도 없지만, 비만 내리면 위에서 폭포를 이루고 물이
떨어진다 하며 명월협 잔도 중 유일하게 폭포가 있어 물이 떨어지는 그 모습이 마치
폭포로 떨어지는 물이 날아가는 모습이라 하여 비폭(飛瀑)이라 부른답니다.
정말 이름 하나는 기막히게 짓네요.
이 길은 바로 우리가 검문관에서 보았던 촉의 개문왕이 금소 욕심 때문에
오정에게 명령하여 장안으로 가는 길을 만든 바로 그 길입니다.
탐욕의 길로 보입니까?
아니면 아름다운 길로 보입니까?
이 길이 완성되자 진나라 혜문왕은 바로 득달같이 군사를 몰아 이 길로 들이닥쳐
촉을 폐하고 이 지역까지 진나라 땅으로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는
바로 금우도 중 한 곳이랍니다.
탐욕은 나라까지 말아먹는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줍니다.
이 길은 처음에도 나라를 말아먹은 길이었지만, 공명도 북벌을 감행할 때
올라갔던 길이기에 나라를 두고 도박을 했던 그런 길인가 봅니다.
팔자도 참 기구한 길이네요.
오늘 우리가 걷는 내내 사람을 거의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혹시 佳人이 이곳을 걷는다고 관광객을 통제라도 했답니까?
아까 들어올 때 함께 온 중국인조차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시즌이 아니면, 이렇게 통째로 전세내고 걸을 수 있나 봅니다.
지금 옆으로 흐르는 강이 가릉강이라는 강으로 장강의 한 지류입니다.
옛날에는 랑수(阆水)라고도 불렀다 하며 진령산맥에서 시작해 섬서성 동봉현의
가릉곡을 흐르기에 가릉강이라 불린다지요.
수로로서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고 당나라 때 시인 이상은은 "천 리 가릉강 물색의
푸름은 하늘색을 능가하더라."고 노래했다 합니다.
그런데 강물의 색깔이 푸른색은 아닙니다.
이상은은 여기를 와보지 않고 시를 지었단 말입니까?
아니면 중국에서는 이런 누런 색을 푸른색이라 하나요?
천하의 이상은도 오버하나 봅니다.
아~
한 많은 제갈 기군요.
아직도 그때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여태까지 이곳에서 바람 따라 꿈을 이루려 하시나요?
공명이시여~
이제 모두 버리시고 잊으시면 어떠하시겠습니까?
그냥 가릉강에 흘려보내시고 바람에 날려보내세요.
인간의 욕심이란 세월이 흐르고 나면 그 또한 사라지고 말잖아요.
공명은 이미 죽어 사라졌지만, 그가 품었던 북벌의 꿈은 여태 사라지지 않고
이곳 명월협 잔도에 남아 아직도 바람따라 펄럭입니다.
제갈 기를 보니 너무 마음이 아파 잠시 그 기를 잡고 공명을 느껴봅니다.
한나라 때부터 고잔도는 아주 유명한 실크로드의 한 축을 담당했던 모양입니다.
장안으로부터 신강지역을 거쳐 서아시아로 이어지는 북로가 있었고 남로는
장안에서부터 이 길로 이어져 성도를 거쳐 운남을 지나
미얀마와 인도로 가는 길이었다 합니다.
이 길은 그야말로 실크로드 중 하나라고 하니 그 의미 또한 특별해 보입니다.
실크로드면 어떻고 차마고도면 또 어떻습니까?
지금 우리 부부가 걷는 이 길은 그냥 행복한 길인 걸요.
옛 고촉도는 북선과 남선이 있었지요.
북선은 관중으로부터 한중까지로 본답니다.
자오도, 진창도, 당락도 등을 말한다고 하며 그 중 포사도를 正道라고 하며 나머지는
지선이라고 본다니까 북선은 바로 진령산맥으로 넘는 길이라고 봐야겠네요.
남선은 한중으로부터 청두까지를 말하는 길로 미창도, 음평도가 있으며, 금우도가 있다고
하며 正道는 지금 우리가 걷는 금우도가 남선의 정도라 합니다.
음평도가 바로 위나라가 촉을 정벌할 때 금우도의 검문관이 막히자 등애가 우회한
곳이기도 한다는데 무척 험한 길이라고 하지만, 가보지 못해 잘 모르겠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해서는 안 될 일을 행하지 마라.
해서 안 될 일을 하면 반드시 번민이 따른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을 반드시 행하라,
그러면 가는 곳마다 후회가 없다.
그러나 덜수 佳人에 그게 마음대로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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