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룡두의 영해성(寧海城)

2012. 12. 14. 08:00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오늘은 제법 바람이 많이 불어 모자가 날릴 정도지만, 파도는 심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발해만은 내해라 그런 모양입니다.

노룡두와는 달리 여기는 사람도 많이 오지 않네요.

단체로 오신 분은 여기까지는 오지 않나 봅니다.

사실, 이곳은 오히려 멀리서 바라보는 풍경이 더 좋기는 합니다.

 

파도가 늘 잠잠하기를 바랐나 봅니다.

패방의 글도 잔잔한 파도를 기원하는 복파(伏波)라는 글을 적어놓았습니다.

바닷사람에게 제일 무서운 것은 풍랑일 겁니다.

그래서 여기에 와 안전한 항해를 기원하는 동양의 포세이돈인 해신과

여신인 천후에게 빌고 또 빌었을 겁니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어민에게나 장사하는 사람에게는

제일 빌고 싶은 게 바로 안전한 항해가 아닐까요?

 

그런데...

왜!

여기다 빌고 우리 서해바다를 건너와 노략질을 하느냐 이 말입니다.

여기 해신이나 천후는 해적질 같은 노략질을 하는 중국 배의 협찬이나 후원 신입니까?

자꾸 그런 일을 방치하면 그냥 잡신이 됩니다.

오늘 여기 해신과 천후에게 빠떼루 주고 갑니다.

 

이제 노룡두와 해신묘를 모두 보고 서달장군 장대 뒤로 난 오솔길을 따라

영해성(寧海城)으로 다시 들어갑니다.

이름을 영해성이라 지은 것을 보면 전쟁 없이 편안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담은 모양입니다.

영해성은 노룡두를 담당하는 성으로 이 지역을 관리한 병사가 주둔했던 곳입니다.

 

서달장군이 몽골족을 멀리 쫓아내고 돌아와 산에서부터 여기 바다까지

이곳에 성을 쌓고 산해관이라 이름 지었답니다.

그리고 그냥 만리장성을 연장하는 성벽만 쌓지 않고 영해성이란 성을 만들어

그 안에 병사를 주둔시킨 곳입니다.

그러니 명나라 때까지는 이 안쪽만 중국 영토고 역사가 분명하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왜 고구려가 중국의 역사가 되지요?

 

그래요.

전쟁을 대비해 쌓은 구조물이지만,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게 제일 행복한 일이죠.

이런 것을 자연훼손이라고만 할 수 없지요.

그때는 그랬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문화유산입니다.

역사의 현장이지요.

 

이제 성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오니 예전 성벽을 쌓았던 속살이 그대로 들어나 있네요.

외부는 벽돌이나 돌을 쌓아 튼튼해 보이지만, 그 안은 이렇게 진흙을 다져 쌓았습니다.

그러니 만리장성이란 모두 구운 벽돌이나 돌로만 쌓은 게 아닌가 봅니다.

흙을 다져 쌓는다는 일은 벽돌이나 돌을 쌓기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겁니다.

 

성벽 위를 걷고 싶어 올라갑니다.

여기는 만리장성의 제일 처음인 이곳을 수비했던 병사가 주둔한 성채가 아니겠습니까?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팔달령이나 다른 장성만 만리장성인가요?

여기도 걸으면 만리장성 위를 걷는 일이고 여기는 여기만의 다른 맛이 있잖아요.

 

아무도 없는 이런 성벽 위를 걷는 것도 좋습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사람에 휩쓸려 정신이 없고 밀려다니며 복잡한 곳을 다니는 것보다

이런 고즈넉한 길을 걷는 게 느낌을 정리하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 더 좋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사람이 별로 없는 이런 길을 자주 걷습니다.

 

성벽 위에 올라 방금 통과한 문을 바라봅니다.

여기가 바로 만리장성의 제일 동쪽인 노룡두에서도 제일 동남쪽에 있는 곳입니다.

노룡두는 바다를 향했지만, 여기는 바다가 아니군요.

이제 더는 장성이 없습니다.

 

옛날에 쌓았던 진흙 담장이 비바람에 사라지지 않게 유리로 덮었습니다.

아마도 옹성의 형태로 만들기 위해 쌓은 구역인가 봅니다.

중원에서 일어난 나라 중에 만리장성을 제일 공들여 만든 나라는 명나라일 겁니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그때 축성한 곳이지만, 명나라는 성벽 쌓기에 국운을 걸었나 봅니다.

그 사연을 들어보면 한편으로 왜 그리도 성벽에 집착했나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군사들의 체력관리와 놀이를 위해 만들었다는 팔괘진입니다.

서실 한 번만 들어가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미로게임이지만,

덜수는 절대로 쉽게 길을 알 수 없답니다.

들어가기 보다 나오기가 덜수에게는 더 어려운 일입니다.

 

소극적인 쇄국정책을 편 명나라는 내내 몽골과 일본에 시달림을 받았다 하더군요.

정통제가 1449년 오이라트 부장인 에센(也先)과 허베이 성 투무푸(土木堡)에서 싸우다가

포로가 된 사건이 생깁니다.

명나라라고 하면 중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나라였다고 알려졌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전면전도 아니고 중국의 황제가 적에게 포로로 잡힌 일은 흔한 일이 아니지요.

 

결국, 황제는 포로로 잡힌 지 1년이 지나자 명나라는 새로운 황제를 옹립합니다.

사실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황족에게 황제 하라고 하면 줄을 서잖아요.

그러면 몽골에서는 더는 정통제를 붙잡아 둘 이유가 없지요.

유지비만 잔뜩 들잖아요.

꼴에 황제라고 품위유지를 시켜주어야 할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돌려보내 주게 되었지요.

  

위의 사진은 군사비밀이 아닌가요?

마을 이름도 보이고 봉화대로 보이는 망루가 보입니다.

사실 당시에는 전달수단이 봉화 외에는 없었기에 아주 공들여 관리했다고 합니다.

적이 공격했을 때 봉홧불이나 연기의 숫자로 적의 공격과 적군의 숫자까지 황제가 머문

황궁까지 전달되었다 합니다.

 

관우가 죽을 때 오나라의 여몽이 촉나라에서 설치한 봉화대를 급습해 점령함으로 결국,

한실의 재건은 물 건너갔을 뿐 아니라 관우도 도원결의를 무색하게 하며 세상을 마감했다지요?

관우의 몰락은 유비와 공명의 꿈마저 앗아갔고 장비의 목숨마저 거두어버렸습니다.

결국, 봉화란 이렇게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전달수단입니다.

 

위의 사진은 요망대를 나타낸 것이군요.

이것도 국가기밀에 속할 텐데...

황제에까지 전달과정을 풀어 설명한 것인가요?

제일 위의 오른쪽에 황제로 보이는 사람을 그렸습니다.

 

정통제는 장군의 말을 무시하고 환관 왕진의 말만 믿고 출정했다가

포로로 잡히고 다시 돌아왔지만, 정말 체면이 이만저만이 아닐 수 없지요.

부끄럽기도 하고 그래서 은둔 생활에 들어갔다는군요.

그런데 얼마 후 새로 옹립한 황제가 죽어버리는 행복한 사건이 생기며

다시 황제의 자리에 오릅니다.

 

복이 많은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른가 봅니다.

푸! 하하하~ 이렇게 정통제 시즌 2가 시작된 겁니다.

그래서 정통제는 죽는 날까지 황제 자리에 있다가 행복하게 죽었다 하네요.

 

마지막으로 이 파총서(把总署)의 스타 서달장군을 소개합니다.

파총서란 명대에는 군사령부로 군사훈련과 군사주둔지를 일컫는 조직이었지만,

청대로 오며 정7품 관리가 근무했던 지방 관청으로 변했다 합니다.

물론 여기에 449명의 병사를 함께 관리하며 말입니다.

여기 파총서는 명대의 군사령부를 재현한 것이라 합니다.

노룡두에 11시에 도착해 12시 50분에 떠납니다.

모두 돌아보는데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노룡두라고 불리는 여기를 떠나 만리장성의 3대 관문의 하나인

산해관으로 갑니다.

물론 시내버스를 타고 말입니다.

함께 버스 타고 가시겠어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전쟁이 없는 세상은 누구나 바랍니다.

그런데 왜 전쟁이 일어날까요?

세상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함께 살아가나 봅니다.

이제부터라도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