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 11. 08:00ㆍ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노룡두(老龍頭 : 라오롱터우)!
거대한 용 머리라고 부른 이곳.
만리장성을 용에 비유하고 여기 발해만까지 머나먼 길을 휘몰아쳐 온 용이
바로 바닷물에 머리를 처박은 모습으로 보이는 노룡두!
맞아요!!!
머리가 여기라는 말은 바로 만리장성의 시작이 여기라는 증거가 아니겠어요?
노룡두를 만든 이유는 북쪽의 기마민족이 우회하여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축성했을
것인데 원래 기마민족은 물만 만나면 쥐약이니까요.
그러나 1900년 서구열강의 8국 연합군이 군함을 끌고 바로 여기에 나타나 대포를
쏨으로 징해루와 함께 여기도 부셔 버렸답니다.
적군은 말만 타고 오는 게 아니었습니다.
군함 타고 오면 이곳은 성안이나 성 밖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오잉~ 군함은 바다에서 여기를 바라보니 성의 안과 밖의 구분도 없애버렸습니다.
이렇게 황당한 일이 아디 또 있겠습니까?
여기는 장성 쌓기에 국운을 건 명나라 때부터 군사 주둔지가 생겼고 군사훈련을
했던 곳이라 하니 그만큼 군사적으로도 무척 소중하게 여겼던 곳인가 봅니다.
그렇게 여기를 중히 여긴 결과 명나라 말에 오삼계가 지켰던 산해관은 북쪽의
만주족이 늘 껄떡거렸지만, 아주 안전하게 지켜냈습니다.
당시 군사가 주둔했던 용무영(龍武營)이라는 곳부터 먼저 보겠습니다.
용무영(龍武營)은 이곳을 지키던 병사의 주둔지로 위의 사진에 보이는 재연해놓은
주방으로 군사들이 직접 곡식을 빻고 죽을 끓여 먹었던 곳입니다.
왜 밥은 주지 않고 죽을 끓여 먹였을까요?
그때의 모습이 지금과 다른 게 별로 없어 보이네요.
말을 관리했던 마구간도 보입니다.
저 말을 타고 춤을 추면 싸이의 말춤일 텐데...
당시 적의 동태를 살피던 소차(巢车)라는 것도 보입니다.
소차란 바로 새집처럼 높은 곳에 정찰병이 올라가 멀리 주둔한
적의 동태를 살피는 수레입니다.
위의 사진은 병사가 머물렀던 숙소입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내무반이라는 말이겠지요.
그래도 마룻바닥은 아니네요.
그런데 재미있는 일은 우리가 생각했던 그냥 바닥이 아니라 입구에는 불을
지필 수 있는 아궁이가 있다는 말이니 우리의 온돌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지요.
이 정도의 시설이면 말뚝 박겠다는 병사가 많을 것 같습니다.
과연 중국에서 이런 난방을 하고 살았던 집이 몇 채나 됐을까요?
부잣집을 구경하다 보면 가끔 화항이라는 시설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온돌과는 다르지만, 난방도 되지 않는 방에 화덕처럼 만들어 차를
끓이고 작은 부분을 난방도 하는 화항(火炕)이라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곳을 돌아 나오면 장대라는 곳이 보입니다.
지휘관이 올라 군사훈련을 주도했던 곳으로 보입니다.
바로 앞이 연병장이나 마찬가지로 넓은 곳입니다.
병사라고 맨날 힘든 훈련만 받았을까요?
가끔은 즐거운 게임도 하며 스트레스도 풀고 육체도 단련할 수 있는 일도
필요하고 그래서 준비된 것이 장대 앞 연병장에 팔괘진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여기서 서로 다른 입구에서 출발해 어느 팀이 제일 빨리 팔괘진 중앙에 도달하나
게임도 했을 겁니다.
머리 나쁜 덜수는 들어가 중앙에 서도 고민입니다.
왜?
나오는 길을 알지 못하니까요.
우리의 덜수는 여기에 오면 고생할 것 같습니다.
이제 노룡두를 향해 성벽을 올라갑니다.
노룡두는 산해관에서 5km 남쪽 바닷가에 있습니다.
병사 석상이 올라가는 길 양쪽에 지키고 서 있네요.
그런데 칼을 뒤로하고 말입니다.
공명은 심외무도(心外無刀)라고 마음 외에는 무기가 없다고 했지만,
병사는 칼을 뒤에 숨기고 있습니다.
佳人도 칼이 없습니다.
중국 여행 중, 칼을 지니고 다니다 보면 공항은 물론 기차역에서도 걸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플라스틱 칼을 가지고 다닙니다.
그 칼로 어지간한 과일은 모두 깎을 수 있걸랑요.
성벽 위에 오르면 바로 눈앞에 발해만이 있고 멋진 누각 하나가 바다를 향해 서 있네요.
바로 징해루라는 누각입니다.
물론, 서양 오랑캐의 함포에 모두 불타버렸고 후에 새로 지은 신제품입니다.
잘생긴 누각이라 정면에서 다시 한번 바라봅니다.
건륭제가 여기에 멋진 글자를 남겼네요.
현판에 걸린 징해루(澄海樓)라는 글은 건륭제의 글이라 합니다.
건륭제가 여기에 와 무슨 생각을 하며 저 글을 남겼을까요?
자기 조상이 중원으로 군사를 이끌고 들어온 곳이 바로 이 부근이잖아요.
그런 조상 덕분에 천하를 호령하는 황제가 되었으니
여기에 들리면 묘한 마음이 들 것 같습니다.
누각 1층 벽에는 많은 사람이 글을 남겼습니다.
여기를 방문한 기념으로 말입니다.
중국의 황제들이 많이 다녀갔나 봅니다.
옹정제도 보이고 건륭제의 글도 보입니다.
그 이유는 황제는 동쪽 바다의 용왕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이곳을 자주 찾았다
하는데 그러니 오면 뭔가 기념식수하듯 하나씩 남기게 되겠지요.
佳人도 글 하나 남기고 싶지만, 佳人의 글은 낙서랍니다.
징해루 옆으로 바다가 바라보이는 곳에 멋진 어비정(御碑亭)이라는
정자 하나 서 있고 그 안에 비석 하나가 있네요.
위치나 비각으로 보호하는 것으로 보아 제법 중요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안에는 숙비(淑碑)라고 새겨져 있네요.
누구의 글인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그 옆으로 일작지다(一勺之多)라고 쓴 비석 하나가 외롭게 서 있습니다.
이 글은 중용 박학편에 나온 말이랍니다.
이 글은 명나라 시기에 유용기라는 도인이 새긴 글이라 합니다.
이 글의 의미는 한 숫가락의 물도 많다라는 말로 자기 자신만 고집하면 작은 개인에 불과하지만,
대의를 자각하면 세상의 모든 진리가 그 안에 있다는 의미라 합니다.
세상은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이게 모여 산을 이루고 바다를 이룬다는 의미일 것 같습니다.
비록, 아무리 긴 만리장성도 바로 여기가 시작이고 끝이 아니겠어요?
벽돌 하나로 시작했고 돌 하나로 시작했습니다.
흙 한 줌으로 쌓기 시작해 거대한 만리장성이 만들어진 게 맞습니다.
노룡두 모습은 내일 더 구경하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징해루 위에는 큰 꿈은 오래 간직하라는 의미의 웅금만리(雄襟萬里)라는 현판이
걸려있는데 그 의미는 아마도 만리장성의 시작점에서 큰 뜻을
오래 지속하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바다가 주는 묘한 느낌이 산 위로만 달리던 만리장성과의 절묘한 만남...
바로 여기군요.
만리장성의 다양한 모습 중, 가장 특이하고 반전의 의미가 있는 곳이 바로 여기일 듯하네요.
지금까지 우리가 상상한 만리장성은 주로 험준한 산악지대만 생각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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