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 그림 속의 비밀

2012. 6. 30. 08:00중국 여행기/하남성(河南省)

 

11월 5일 여행 26일째

 

어제 우리 부부는 이곳 하남성 박물원을 구경하다 4시 45분 폐관 시간이 다되어

박물원을 나와야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모든 스케쥴을 취소하고 다시 박물관으로 달려갔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이 우리가 한 행동을 보고 바보 같은 짓이라 비웃을지 모릅니다.

그 이유는 청명상하도라는 그림을 보다가 깜짝 놀랄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일찍 박물원에 도착해 제일 먼저 2층 8 관람실로 직행합니다.

바로 그곳에 청명상하도가 비록 모사작품이지만, 그림과 미니어처로 만든 것이

전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좋으면 이런 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왜?

자유 여행이니까!

 

 

그러나 이 꼭지의 글을 다 읽으신 후에는 왜 우리 부부가 두 번이나 박물원을 들려

청명상하도를 보았는지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날짜는 오늘이지만, 사실 어제 오후 마지막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글로 정말 청명상하도라는 그림 속에서 우리 부부는 깜짝 놀랄 장면을 만났기 때문이죠.

무엇이 우리 부부를 다시 이곳으로 아침부터 달려오게 하였을까요?

그 그림 속에는 우리를 옛날 그때로 들어가게 하는 비밀의 문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많은 한국인이 이 그림을 보았겠지만,

그 문을 열고 들어간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우선 위의 사진에서 佳人을 깜짝 놀라게 하고 다시 이곳을 찾게 한 비밀의 문이

있는데 어떤 모습인지 찾아보세요.

그 문 앞까지는 佳人이 인도하였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일은 바로 여러분의 몫입니다.

 

역시 중국이라는 나라는 천 년 전의 거리 모습도 인산인해로군요.

이 많은 사람 중에 김 서방 찾기라고요?

제가 봐도 그렇네요.

세상에 자랑할 거라고는 사람 많은 것을 최고의 자랑으로 여기는 중국에서

김 서방을 찾으라 했으니 제가 빠떼루 받아야 하겠죠?

 

 

그럼 이번에 청명상하도라는 그림으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아까 보여 드린 것은 박물관에 전자 디스플레이 장치에서 찍은 사진이고 이번에는

그림으로 된 것을 찍은 사진으로 물론 원본 청명상하도가 아닌 복사본을 찍은 사진입니다.

그러니 디지털을 아날로그로 바꾸어 보여 드리는 겁니다.

 

 

그러면 친절한 佳人이 다시 앙증맞은 미니어처로 만든 것을 다시 불러옵니다.

정말 친절한 佳人이지요?

지금까지 세 장의 사진은 청명상하도의 제일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보여 드렸습니다.

무엇이 보이십니까?

 

 

이래도 찾지 못해 환장하시겠다고요?

그럼 그 비밀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 부분만 확대해 보여 드리겠습니다.

위의 사진을 잘 보세요.

시끌벅적한 저잣거리의 모습이 보입니다.

정말 많은 사람과 수레, 그리고 우물에 물을 긷는 사람들.

수레를 고치는 지금의 카센터, 주막...

 

왼쪽 위에는 조태승가(趙太丞家)라는 약방도 보입니다.

이게 지금으로부터 딱 천여 년 전 북송의 도성인 동경성 안의 모습이랍니다.

중국은 이때도 엄청난 사람이 거리를 메우며 다녔나 봅니다.

 

 

점차 수사망을 좁혀 보여 드리는 중입니다.

아하!

찾으셨군요?

네 맞습니다.

"오 마이 갓~"

가운데 갓을 쓴 우리의 선조 모습이 맞습니다.

그 갓이 누구의 갓이냐고 물어보시면 "오 마이 갓"이라고 하실 겁니다.

 

천여 년 전 우리 선조가 우리 전통복장인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체

말을 타고 큰 신작로 길을 "이리 오너라~"하시며 지나가십니다.

이제 이 어르신을 만났으니 우리는 천 년 전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비밀의 문의 열쇠를 받은 겁니다.

여행을 하다 보니 이렇게 그림 속에서도 조선 시대의 선조를 만나게 되네요.

앗!

그림을 그렸을 때가 우리나라의 조선 시대가 아니고 고려 시대가 되겠네요.

그러니 러시아에서 부르던 까레이스키라는 고려인입니다.

 

 

말고삐를 잡고 가는 사람이 바로 덜수처럼 생기지 않았나요?

아닌가요?

말을 탄 사람이 우리의 호프 덜수라고요?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우리 자신이 바로 덜수가 아닌가요?

 

자~ 그러면 다시 위로 올라가셔서 처음 사진부터 자세히 보시며 우리 선조를 만나보세요.

아마도 여러분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다면, 무척 반가워하실 겁니다.

머나먼 타국에서 우리말을 듣고 동족을 만난다는 일이 얼마나 반가운지 여러분도 아죠?

이제 佳人이 왜 바보처럼 아침부터 다시 박물원으로 달려왔는지 이해하시겠어요?

자유 여행이란 이렇게 엉뚱하게 하룻밤을 코~ 자고

다시 같은 곳을 찾아올 수 있지 않겠어요? 그쵸?

 

 

말고삐를 잡고 가는 사람이 두 사람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그림 속의 선조께서는 배낭여행자는 아니고 제법 지체 높은

사람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만약 바람이라도 세게 불어 갓이 날아간다면 뭐라 했을까요?

이번에도 "오 마이 갓!"이라 했을 겁니다.

혹시 만상의 대방 어른이 아닌지 모르겠네요.

이번 장삿길에서 대박이 터지시길 빌어봅니다.

물론, 제 느낌이 우리 조상이라고 했지만, 아닐 수도 있을 수 있겠지요.

 

청명상하도의 그림 보기를 원하시면 아래 그림을 클릭하세요.

 

 

그림이 작게 보이시면 그림을 다시 한번 더 누르시면 디따 커집니다.

그래도 잘 안 보이시면 아래 주소를 또 눌러보세요.

여러분에게 확실하게 보여 드리기 위해 모셔온 그림입니다.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8/86/Alongtheriver_QingMing.jpg

 

청명상하도는 모사본도 많았던 모양입니다.

카이펑에 자리했던 변경이 파괴되며 북송의 황실은 남쪽으로 천도하게 되어

남송이라 칭하였지요?

우리가 금강산을 그리워하듯 그때 그곳에는 북송의 카이펑의 동경성을

그리워하며 이 그림의 모사본이 많이 나돌았다 합니다.

짝퉁의 정신은 벌써 천 년 전에도 중국인의 마음속에 무럭무럭 자라났나 봅니다.

 

이 그림이 바로 지금 개봉이라는 도시에 있었던 동경성(변성)의 모습을 그렸다고 하니까.

그 모사본을 종합하여 검토한 결과 지금 진품으로 보관된 청명상하도는 내용이

갑자기 단절된 듯한데 전체의 1/3 정도가 빠진 것으로 추정된다 합니다.

그 이야기는 비록, 야담이지만,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이야기해 보렵니다.

 

 

이게 바로 청명상하도 그림 속에 있었던 조태승가가 아닙니까?

비밀의 문을 열고 들어오니 울 마눌님이 뒷짐 지고 그 집 앞에서 기웃거립니다. 

위의 사진은 중국 항저우에서 공연 중인 송성가무쇼 공연장 앞에 만든 송성

거리를 재현해 놓은 송성 거리에 있는 조태승의가라는 한의원입니다.

조 의원은 바로 청명상하도 그림 속에 있는 모습을 보고

이곳 항주 송성 거리에 만든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미 우리 부부는 송성 거리를 거닐며 조 의원 댁을 다녀왔습니다.

 

바로 우리 선조가 말을 타고 가는 모습이 그려진 곳은 조 의원 앞길이었습니다.

설마 우리 선조가 몸이 불편해 이곳에서 진맥이라도 받으셨나요?

지금 이 거리 조의원 앞에서 기다리다 보면 우리 선조를 만날지 모릅니다.

오늘 온종일이라도 이곳을 어슬렁거리고 싶습니다.

 

 

의원 안에 어린아이를 안고 온 아낙이 보이고 그 아이를 살펴보는 의원도 보입니다.

저 의원이 조 의원일 겁니다.

오로칠상회춘환(五勞七傷回春丸)을 판다고 왼쪽 기둥에 써 놓았습니다.

 

중국에서는 오로를 심장, 간장, 비장, 폐장, 신장이 손상된 것을 말하며 칠상은

과식은 비장을 손상하고, 분노는 간을, 무거운 것을 억지로 들거나 축축한 데 오래

앉아있으면 신장을, 몸을 차게 하거나 얼음물을 마시면 폐를, 걱정이 쌓이면 마음을,

풍우 한서는 모습을 그리고 두려움은 뜻을 상하게 한다는 의미로

모든 질병을 일컫는 말이라 합니다.

세상에 오로칠상만 다스린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어요.

그러니 조태승가는 완벽한 종합병원인 셈이네요.

 

울랄라? 그런데 회춘하는 환이라 하니...

중국은 송나라 때도 저렇게 황당한 광고로 아픈 사람에게 미끼를 던졌나 봅니다.

특히 패키지로 중국 여행 가시는 분은 중국의 약은 쳐다보지도 사지도 맙시다.

믿을 수 없는 경우가 무척 많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시 청명상하도 안으로 들어가 여행해 보렵니다.

위아래 두 장의 사진은 같은 모습입니다.

위는 청명상하도의 그림이고 아래는 그것을 그대로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사진에 보면 뒤에 말을 탄 사람은 마치 추운 날 머리에 쓰는

남바위라는 모자를 쓴 것처럼 보입니다.

이때가 청명절이라면 이곳 날씨가 한창 좋을 시절일 텐데...

그림을 보면 만물이 물이 오른 청명절이 아니고 북풍한설 몰아치는 겨울로 보입니다.

이 사람은 추위에 몹시 약한 사람이거나 지금 북쪽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일 겁니다.

어디로 가는 길이냐고 佳人이 물어보려고 했지만, 중국어를 몰라 물어보지 못했네요.

 

 

중국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그림인 청명상하도에 우리 선조가 출연료도 받지 않고

우정 출연하셨다는 게 중요하죠. 그렇죠?

이 그림이 의미하는 게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바로 이미 송나라 시기에 중국은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는 게 아니겠어요?

그뿐이 아니라 이 그림 속에는 낙타를 끌고 장사를 온 아라비아 상인도 보인다는 점이죠.

 

그 말은 이미 천여 년 전의 북송 시기에 중국은 이미 세계적으로 많은 나라의 사람이

드나들었다는 말이 아니겠어요?

비자도 없이 말입니다.

혹시 숙박하려면 주숙 등기해야 하고 외국인은 아무 곳이나 숙박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런데 지금도 중국이라는 나라는 비자를 받고 들어가더라도 다시 퍼밋이라는 허가를 받아야

들어가는 곳이 있습니다.

이 말은 그곳은 사실은 중국 땅이 아니고 남의 나라 땅을 강제 점령 중이라고

자인하는 말일 겁니다.

 

 

선착장인가 봅니다.

물가에는 주막도 보이고 짐을 싣고 와 이곳에 부리나 봅니다.

돈 좀 두둑이 벌어 저 주막에 앉아 탁배기라도 걸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밍월이가 따라주는 술잔에 취하고 분 냄새에 취해 오늘 덜수는 고향에 두고 온 덜순이를

잊어버리고 뻑~ 소리 나게 갔을 겁니다.

아침에 뽀얀 살 냄새를 맡으며 일어나 오늘 먼 길을 떠날 준비를 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위의 두 장의 사진도 같은 장소를 묘사한 것입니다.

정말 세밀하게도 그렸습니다.

미니어처로 만들다 보니 사람 숫자를 확 줄여 놓아 그림과는 달리

저잣거리가 파장의 모습이 되어버렸네요.

 

 

이 그림을 보면 중국인 외에도 낙타를 끌고 장사하려고 온 서역인도 보이고

주변국에서 잦은 왕래가 있었다는 말이 되겠네요.

지금 성문을 막 통과하는 사람이 끌고 오는 것은 중국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낙타로

그 사람 모습도 여느 중국인과는 다른 아랍 사람처럼 보입니다.

 

이미 우리나라 고려 시대에 우리도 중국도 글로벌화되어 나라 사이에 벽이 허물어져

함께 살아가는 사회로 변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중국은 죽의 장막으로 둘러치고 혼자만의 생각으로 한동안 살다 보니

욕심이 하늘을 찌른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폐쇄성이 더 강해져 버렸나 봅니다.

 

 

지나가는 덜수 아찌에게 그때 송나라에서도 지금처럼 외국인의 숙박을

아무 곳이나 허락하지 않았나 물어보세요.

몇 년 전 우리 부부는 중국 서남 변방의 징시라는 작은 도시에서 자려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밤에 쫓겨난 적도 있었거든요.

그리고 또 한 가지 그때도 관광지 입장료가 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보다

더 비쌌느냐고 물어보세요.

 

 

장가계 입장료가 245원으로 우리 돈 4만 4천 원이 넘는데 미국 국립공원의

대부분이 20달러 정도로 우리 돈 23.000원 정도라 합니다.

그것도 미국은 한번 표를 사면 1주일간 유효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옐로 국립공원을 걸어 들어가면 10달러라 하는데 중국은 이에 비해

완전히 앵벌이 수준입니다.

우리나라는 국립공원 입장료가 없어진 것으로 압니다.

중국은 제법 이름 난 곳은 300원이 넘는 입장료를 받는 곳도

경쟁적으로 많아지고 있습니다.

 

 

뭐 인민을 위한 중화인민공화국이라 인민의 수준을 세상에서 제일 높게 대우하려는

갸륵한 마음으로 인민 스스로 비싼 입장료를 내며 세상에서 일등 국가의 국민이라는

자부심을 골고루 심어 주려는 깊은 배려일는지 모르겠습니다.

佳人은 비싼 입장료에 그렇게 깊은 뜻이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중국사람은 괜찮습니다.

왜?

중국 인민의 국민소득은 비록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엄청나게 적지만,

미국이나 한국인들이 내는 자기 나라의 입장료보다 중국 인민은 자기네 나라의

관광지를 더 많은 돈을 내고 들어간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기 때문에요.

 

 

한국인이 많이 찾는 윈난성의 옥룡설산이나 산동성의 태산은 올라갔다 내려오려면

거의 10만 원 가까운 돈을 써야 합니다.

중국이야 세상에 문명국이고 대국이라는 자부심으로 인민이 많은 돈을 쓰며 올라가지만,

한국사람은 알뜰살뜰 살아야 하기에 절약해야 하잖아요.

 

우리가 중국에 가서 비싼 입장료를 냈다고 대한민국의 국격이 상승하는 것도 아니고

자부심을 느끼는 것도 아닌데, 왜???

장가계가 불쑥 솟아오르고 태산이 솟아오를 때 중국 정부에서 무슨 일을 거들었다고

그렇게 비싸게 받는 겁니까?

오성홍기를 앞세우고 삽질 한 번이라도 했다면 얼마든지 비싼 입장료를 내지요.

 

 

이제 중국 인민들도 비싼 입장료가 일등국민으로 인도하는 길이 아니라는 점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합니다.

그게 끔찍이도 인민만 생각한다는 중국 정부가 인민 등골 빼먹는 일이라는 것을

눈치로 알기 시작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왜 공무원도 무료, 군인도 무료...라고 하면서 정작 보호받아야 하는 풀뿌리 인민에게

피박, 광박에 흔들기까지 하며 왕창 뒤집어씌우는 천박하고 졸렬한 행태를 말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자.. 이제 왜 우리 부부가 아침부터 다시 찾아왔는지 이해하셨어요?

자유여행이란 이렇게 못내 아쉬우면 다시 찾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계획한 곳보다 여기가 더 중요하다 생각하면 열 일 제쳐놓고

찾아올 수 있는 게 자유여행의 묘미입니다.

바보 같은 행동이었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비록, 우리의 작은 수고로 우리의 선조였던 덜수 아찌를 찾는 큰 기쁨을 누렸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한국인이 이 그림을 보았겠지만,

이렇게 우리 선조의 모습을 찾아낸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