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5. 30. 08:00ㆍ중국 여행기/하남성(河南省)
11월 2일 여행 23일째
오늘은 뤄양(落陽 : 낙양)으로 가려고 합니다.
이른 아침부터 개 짓는 소리, 닭 우는 소리에 잠을 깹니다.
아무리 절벽 위에 숨어있는 깡촌 마을이지만, 여기도 아침을 깨우는 소리는
우리 시골의 소리 그대로입니다.
우리 세대는 이런 소리를 들으면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라며 들었던 소리라 무척 친근합니다.
그런데 왜 개는 짖고 닭은 우나요?
중국은 개 울고 닭 짖는 소리라 하면 안 되나요?
비록 예정에는 없었던 곳이지만, 그러나 그 사내 덕분에 정말 희귀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나중에 다시 한번 찾아와 며칠 동안 부근의 풍광을
모두 즐기다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전혀 정보도 없이 오다 보니 이곳에 뭐가 좋은지 알지도 못하고 잠시 꿈꾸듯 보았습니다.
이 마을은 다시 한번 찾고 싶은 곳입니다.
시간만 넉넉하면 주변에 돌아볼 곳이 제법 많은 곳이네요.
어제 후이시엔 터미널에서 확인한 결과 그곳에서 뤄양으로 가는 버스는 오후는 2시에 출발하는
한 대뿐이었기에 이곳까지 1시간 30분이 걸려 왔으니 이곳에서 12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면
후이시엔에서 2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오늘 중으로 뤄양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궈량과 난핑으로 갈라지는 곳까지 4km라고 이정표에 적혀있었으니
후이시엔으로 나가는 버스를 타는 곳까지 5km 정도일 듯하네요.
그러면 절벽장랑을 걸어서 그곳까지 간다면 1시간 30분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30분의 여유를 더 둔다 해도 10시에 숙소를 출발하면 될 것 같네요.
그러나 내려가며 구경하고 사진도 찍으려면 또 30분의 여유를
더 가지려고 9시 30분에 숙소를 나섭니다.
이런! 아침에 비가 내리네요.
이번 여행에서 다퉁(大同)부터 하루도 해를 제대로 본 날이 없었는데
이제 비까지 추적거리고 내리니 참 난감합니다.
아마도 우리 부부에게 잘 가라는 가랑비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루 더 있으라 이슬비였다면 일정이 너무 틀어져 버릴 것 같아 불안합니다.
이곳에 온 덕분에 처음 계획에 있었단 뤄양에서 보려고 했던 몇 곳과 소림사를 구경하려던
계획을 깨끗하게 단념하렵니다.
소림사라 하면 이 부근을 지나는 한국사람 누구나 들리는 곳이지만,
우리 부부는 들리지 못하게 되었네요.
여행이라는 게 계획했다고 어디 그대로 모두 이루어지겠어요?
날씨가 안개마저 자욱이 깔렸고 가랑비마저 내리지만, 이곳은 워낙 많은 미술학도가
모여드는 곳이라 아침에 일어나 마을을 산책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그림을 그리는 학생이 무척 많습니다.
어제저녁에도 많은 여학생이 우리 부부 주변에 모여들어 함께 사진 찍기를 원해서
한바탕 난리법석을 떨었지요.
여학생이 佳人 오빠와 사진찍기를 원했다고 하니 믿지 못하시겠죠?
그래요. 오빠도 믿기 어려운 일이니까요.
뭐 중국에서는 佳人이 그래도 인기가 많은 편이고 그런 사진 한 두 번 서비스한 게 아니기에
모두 응해주었습니다.
지금 "헐!"이라 하시며 피식 비웃으셨죠?
어제저녁에 궈량촌이 정말로 난리 났다니까요.
누가 늙은 영감탱이에 환호했다고 거짓말한다고요?
뭐 비웃어도 좋습니다.
워낙 뜬 구름 같고 아침 이슬 같은 인기에 연연하며 사는 佳人이 아니기에
크게 속상하지도 않습니다.
믿지 못하시는 분을 위해 증거사진을 딱 한 장만 올려드립니다.
이제 믿으시겠어요?
정말 어제 궈량촌이 발칵 뒤집혔다니까요.
양쪽에서 서로 오빠 팔을 잡겠다고 난리가 나서 자기들끼리 돌아가며 잡고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니까요.
보세요.
소저들이 오빠 곁에 서서 사진을 찍겠다고 양쪽 팔을 꼭 잡고 놓아주지 않잖아요? 그쵸?
소저들을 모두 한 줄로 세우면 궈량촌 위에서 절벽장랑을 따라
산 아래까지 4km나 줄을 세울 수 있었어요.
궈량촌에는 곽씨와 더불어 신씨들도 집성촌을 이루고 있습니다.
원나라 말과 명나라 초기에 신씨 일가는 난징에서 관직을 맡는 권세가였다고 하네요.
그러나 주원장이 권력을 잡자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근다고 지랄병이 도져 도읍의 구세력을
몰아내기 위한 인적 청산을 단행하게 되고 신씨 가문은 서역의 칭하이(靑海)로 쫓겨 갈
상황이 되자 산시성으로 식솔을 이끌고 야반도주하게 되었답니다.
권력의 끈이 떨어지면, 그냥 밀려나는 게 아니라 당시에는 목숨 줄의 끈도 내놓아야 하잖아요.
그때 수백 명의 일가친척의 식사를 한꺼번에 장만할 수 있는 커다란 가마솥을 쪼개 집집이
나눠줬다고 하는데. 동서로 흩어졌다가 훗날 다시 만나면 징표로 삼아
원래대로 붙일 심산이었다는군요.
그래서 큰 가마솥 신(大鍋申)씨라 불린다 합니다.
이 사람들이 옛날이야기를 너무 많이 읽었나 보네요.
당시 궈량촌에 들어와 뿌리를 내린 신씨들은 지금도 이곳에 살고 있고,
그 후손들이 바로 절벽장랑을 만드는데 앞장선 사람들이라는군요.
궈량촌에는 일본과의 항일 전쟁 중에 팔로군 사령부가 있었고,
그때 만든 다리인 홍석교를 우리는 이미 보았습니다.
산 아래는 리샹양(李向陽)이 이끄는 평원유격대의 근거지였다고 합니다.
그만큼 이 마을은 절벽 길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은둔의 마을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佳人도 시외버스 타고 찾아올 정도로 이미 개방의 물결을 타고 있네요.
중국의 그랜드캐니언이라 불리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타이항산의 협곡을 끼고 온갖 풍파를 이겨낸
궈량은 중국 제일의 드라마 촬영지로 주목받고 있답니다.
이 마을은 워낙 낙후되어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에 40여 편의 TV 드라마가
이곳에서 촬영됐다고 합니다.
중국은 영화가 촬영된 곳은 전부 영화 촬영 2번지도 아닌 1번지가 되잖아요.
타이항산 일대에는 인간의 무한한 힘을 보여준 궈량 터널 외에도 5곳의 인공 터널이 더 있답니다.
쿤산(昆山) 터널, 시야(錫崖) 터널, 후이롱(回龍) 터널, 징디(井底) 터널,
전쟈위안(陳家園) 터널 등이랍니다.
좌우지간 뚫고 파고 쌓고 옮기고 이런 일에는 세상에 중국만 한 나라가 없나 봅니다.
이제부터 아무도 없는 아침에 우리 부부 둘이만 절벽장랑을 걸어서 내려갑니다.
이미 우리 부부가 이 길을 걸어 내려갈 것이라고 확신하신 분이 많이 계실 겁니다.
그분들의 기대를 저버린다는 것은 나쁜 일이잖아요.
함께 걸으시겠어요?
우리 부부는 여행 중 걷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여행에서 돌아와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차를 타고 지나친 풍경은 기억에 전혀 남아있지 않고
걸어가며 보았던 풍경은 오래도록 머리에 남아 있기에 가능하면 걸어서 다니는 중입니다.
어차피 나이 더 들어 힘들면 걷고 싶어도 걸을 수 없는 노릇이잖아요.
비가 내려도 절벽장랑 안은 비를 맞지 않습니다.
터널을 뚫어 길을 냈기 때문에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휘파람까지 불며 걸을 수 있습니다.
이화원의 장랑도 아름답지만, 이곳 절벽장랑은 자연의 거친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기에
또 다른 아름다움을 선물합니다.
더군다나 이런 내리막 길은 걷기도 좋습니다.
이제 5km 정도의 길을 걸어갑니다.
비가 내리기에 배낭의 방수 카바까지 철저히 하고 걷습니다.
두리번거리며 사진도 찍으며 내려갑니다.
비록 우리 부부가 걸어갔던 일은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시겠지만,
나중에 이곳을 찾으시려는 분에게는 걸어서도 내려갈 수 있다는 하나의 정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먼 훗날 이 세상에 없다 하더라도 佳人이 블로그에 써놓은 이 글은
영원히 남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자식이 이 글을 보고 부모가 걸었던 길을 다시 걸어가며 부모를 추억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한 일이 아니겠어요?
아들아! 너도 나이가 들어 백수가 된다면, 아빠가 써 놓은 이 글을 읽고 아빠와 엄마가 걸었던
이곳을 그대로 걸으며 엄마 이빠를 추억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구나.
그러면 아빠의 눈으로 보았던 것을 네가 그대로 볼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바로 우리 사이에 영혼의 만남이 되지 않겠니?
이제부터 우리 눈으로 보았던 절벽장랑 안의 모습을 그대로 사진에 담아 모두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리하면 이곳이 교통상 불편해 가보지 못하신 분이라도 반은 느낄 수 있을 겁니다.
하늘을 향해 뚫어놓은 天窓을 하나씩 보여드리겠습니다.
옆도 두리번거리며 걸어가렵니다.
뒤도 돌아보고 가렵니다.
뒤를 돌아보니 이런 멋진 폭포도 보여줍니다.
앞만 바라보고 걸었다면 절대로 볼 수 없었던 모습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가끔 옛날의 좋았던 그런 모습도 회상하며 살아갑시다.
너무 힘든 지금만 바라보지 말고 말입니다.
그러나 너무 과거만 집착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은 아닌 듯합니다.
만선산에서 흘러내려 온 물이 이곳 천지에 잠시 머물다 홍암절벽 사이로
떨어지기 시작하는 지점입니다.
전체 높이가 100여 m라 하니 물이 많은 계절에는 이 또한 장관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바로 이 지점이 절벽장랑의 시작이고 두 개의 절벽이 갈라지는 분기점이 되는 지점이네요.
이제 만선산의 절벽이 두 갈래로 갈라지기 시작합니다.
오른쪽의 절벽은 어제 관경대가 있던 절벽이고 우리가 지금 걷는 길은 어제 보았던
개미집처럼 전혀 세련되지 못하게 절벽을 뚫어 만든 길입니다.
안개인지 구름인지 알 수는 없지만, 오늘도 아침에는 시야가 흐려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마을 끝에는 제법 많은 사람이 사진도 찍고 돌아다녔지만, 여기부터는 사람의 그림자도 볼 수
없고 더군다나 우리 부부처럼 배낭까지 메고 걸어 내려가는 사람은
끝까지 걷는 동안 한 사람도 볼 수 없었습니다.
부부가 이런 길을 걸어갈 때 서로가 느끼는 생각은 평소와는 많이 다릅니다.
함께 살아온 시간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이런 곳에서 서로 믿고 의지하려는 마음은
지금까지 살아오며 느꼈던 많은 생각과는 무척 다릅니다.
사랑이라는 말을 함부로 입에 올려도 좋겠습니다.
우리 나이에 창피하게 무슨 사랑이냐고요?
사랑은 젊은이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바라보아 흐뭇하면 그게 사랑입니다.
곁에 있는 것을 느끼기만 해도 그게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멀고 어렵고 표현하기 어려운 게 아니라 그냥 마음이 편안해지면 그게 사랑입니다.
어디 장작불 같이 활활 뜨겁게 타오르고 화려한 사랑만 사랑이라 하시겠습니까?
은은한 불로 밤새 상대의 얼굴을 비추는 호롱불 같은 사랑도 아름답습니다.
지금까지 제법 많이 걸었지만, 서로가 제법 안다고 생각하고 살아왔지만 말입니다.
여행이란 이렇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이게 여행만이 주는 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부부란 함께 살아왔고 또 얼마나 함께 살아가야 할지 알 수 없지만, 상대에게 새로운 신선함을
느낄 수 있다면 아직 사랑해야 할 게 남았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그러기에 우리가 매일 의욕적으로 살아가는 원천은 사랑의 힘이 아닐까요?
두 사람만이 이른 아침에 절벽장랑 속을 걸어가니 사랑이 저절로 따라옵니다.
이런 길을 걷다 보니 五慾도 버릴 수 있을 것 같고 七情은 멀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늘을 향해 낸 창이라는 의미인 천창(天窓)...
투박하고 규칙도 없이 그냥 아무렇게나 만든 문입니다.
오히려 저런 세련되지 못한 것이 더 정이 가네요.
아무렇게나 마구잡이로 캐낸 깔끔하지 못한 모습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그것은 사람이 직접 손으로 정을 들고 절벽을 깨고 쪼아가며 뚫은 굴이기에 땀과 노고가 함께
스며들었기에 또 하나씩 석창을 뚫을 때마다 그들의 꿈이 하늘을 향해 열렸을 것이고 그들 얼굴에는
희망의 햇살이 밝게 비추었을 것이기에 그리 느껴질 겁니다.
투박했기에 더 아름답고 깔끔하지 못했기에 더 정감이 가는 곳, 그곳이 바로 절벽장랑이 아닐까요?
여보!
무엇이 보이시나요?
평생 당신이 바라보고 살았던 佳人이 여기에 있습니다.
살아오면 힘들었고 미웠던 그런 생각을 지금 천창 밖으로 조금은 던져버렸습니까?
당신 마음에 가득 찼던 그런 것들을 비우고 나면 이제부터는 무엇으로 채우며 살아가시렵니까?
이제 그 빈자리에 佳人의 사랑을 채워 넣으세요.
궈량촌은 바로 이런 곳이었습니다.
절벽 위에 전혀 다듬어지지 않고 투박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모여 사는 애상인가(崖上人家) 사람들.
그곳에는 그들만의 세상이 있었습니다.
내일도 또 절벽장랑 속을 걷겠습니다.
그게 우리 부부의 여행이고 사랑이니까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마음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세상입니다.
그곳에는 지옥도 있고 천국도 있습니다.
지옥을 천국으로 바꿀 수 있고 천국을 지옥으로도 바꿀 수 있습니다.
지옥에 살아도 천국을 그리며 살아가면 그게 천국이고 천국에 살고 있어도 지옥이라 생각하면
그게 지옥에 사는 겁니다.
바로 우리가 마음대로 만들어가며 살 수 있는 게 그곳입니다.
절벽장랑을 걸어서 내려가니 사랑이 저절로 따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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