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황성상부의 공연

2012. 5. 7. 08:00중국 여행기/산서성(山西省)

지루했던 황성상부의 마지막 이야기를 오늘 하렵니다.

어제 이야기는 황성상부에서 약 300m 정도 떨어진 꾸어위(郭峪 : 곽욕)촌을 2시에 들어가

한 시간 정도 구경하고 3시에 걸어서 황성상부로 올라온 이야기까지였습니다.

오늘은 황성상부에 도착할 즈음 아침에 했던 공연을 또 재탕하나 봅니다.

어디서 풍악을 울리는 소리가 들리며 원색의 물결이 넘실거리네요.

 

얼른 뛰어와 사진을 찍었습니다.

지금부터의 사진은 아침 사진과 오후 사진이 함께 혼탕에서 놉니다.

그러나 공연 내용은 비디오를 다시 틀 듯 아침과 똑같습니다.

황성상부로 들어가는 중도장 입구에는 넓은 광장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매일 아침 9시 30분에 공연이 벌어집니다. (우리가 갔을 시기)

 

뭐 공연이라고 해야 오래 하는 것도 아니고 단 10-15분 정도 하는 간단한 공연입니다.

그러나 그 공연은 중국어를 몰라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아주 쉬운 그런 내용입니다.

 

진 서방과 강희제는 아마도 전생에 부부 사이였나 봅니다.

사바세상에서는 두 사람 사이는 황제와 재상의 사이였고 스승과 제자였지만,

한 사람은 꿈을 꾸었고 그 꿈을 다른 사람이 현실로 실현하게 해 준 그런 사이였다고

생각되는데 서로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 준다는 일은 전생에 보통 관계가 아니었을 겁니다.

 그 간단하지 않은 이야기를 공연을 통해 짧은 시간에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그런 내용입니다.

 

짧은 내용이라도 중국의 모든 공연처럼 무척 많은 사람이 동원되어 공연합니다.

야외에서 하기에 조명은 없고 서커스와 같은 고난도의 묘기도 없습니다.

음악 또한 전혀 없이 화려한 옷을 입고 화려한 장식을 손에 든 무척 많은 사람이 대부분

하는 일 없이 출연해 우두커니 서서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기다리다가 동시에 퇴장하는 일입니다.

 

원래 비시즌에는 오전 공연 1회만 한다고 했지만, 오늘은 어느 방송국에서 촬영한다고

오후 한 차례 더 하더군요.

아까 아침에는 미리 제일 좋은 자리라고 생각한 중앙 앞자리에 앉아 공연을 본다고 기다렸으나

젠장, 우리가 앉았던 앞자리 앞으로 의자를 들고 나와 특별석을 만들고 그곳에 특별 안내를 받은

무리가 들이닥쳐 얼쩡거리는 바람에...

 

그래서 꾸어위촌 마을을 돌아보고 돌아오다 보니 공연이 있기에 다시 보기로 합니다.

특별히 이제부터는 이 동네에서 더는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죠.

 

먼저 징소리가 요란히 울려 퍼지고 황성상부 안으로부터 많은 사람이 질서 정연하게

청나라 때 복장을 하고 순서대로 나옵니다.

황성상부의 문이 열리고 상부 안에서 진 서방을 필두로 엄청난 사람이 떼거리로 몰려나옵니다.

역시 인건비가 비교적 저렴한 티를 팍팍 냅니다.

중국에서의 공연은 처음 인해전술로 시작해 마지막에도 인해전술로 끝나는 게 원칙인가 봅니다.

 

이 많은 인원이 몰려나와 공연 동안 무얼 하나 지켜보았습니다.

뭐든 손에는 하나씩 들었지만, 오직 손에 든 것만 들고 늘어선 것 외에 아무 일도

하지 않다가 공연이 끝나면 다시 조용히 열을 지어 돌아가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출연은 佳人도 하겠습니다.

차라리 덜수보고 하라고 하면 어떨까요?

 

많은 사람이 나와도 그중에 주인공으로 보이는 사람이 바로 진정경의 모습입니다.

황제가 온다는 연락을 받고 미리 집 앞에 나와 영접을 하는 의식일 겁니다.

아마도 우리의 호프인 덜수 아찌의 여동생인 덜순이도 등을 들고 나올지 모릅니다.

 

잠시 후 오른쪽 도로에서 한 무리의 화려한 옷과 장식으로 치장한 사람들이 들어옵니다.

그러니 강희황제와 그 일행들이겠죠.

옷차림으로 구분이 되잖아요.

 

이미 진 서방네 가족은 물론 모든 식솔이 미리 대기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황제가 이렇게 개인적으로 사가를 방문하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지요.

더군다나 이곳에 베이징에서 대단히 멀고 당시 교통 상황으로 보아 쉽지 않은 순행이지

싶은데 이런 일이 늘 일어나는 일도 아니기에 진 서방이 뻑~소리 나게 갈 겁니다.

 

이게 천지개벽할 일이 아니겠어요?

가문의 영광이며 천 년 만 년 길이 기억하고 보존할 일일 겁니다.

당시 영상기록 기구가 없어 기록하지 못했겠지만, 비디오로 자자손손 남겨두고 싶었을 겁니다.

화공이라도 불러 그림으로라도 남기고 싶었을 겁니다.

 

황제의 입장과 동시에 영접을 준비했던 황성상부의 모든 식구가 무릎을 꿇고 황제를 맞이합니다.

아무리 자기가 가르친 제자지만, 그래도 천하를 주무르는 황제가 아니겠어요?

비록 궁궐 안에서만 왕 노릇 하겠지만요.

 

예를 다한다는 의미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큰절로 황제를 맞이합니다.

황제는 스승이자 재상인 진정경에게 일어서기를 권합니다.

"예를 거두어라!"라고 말입니다.

 

황제는 진 서방에게 "재상! 어여 일어나시오~"라고 했을 겁니다.

중국어를 몰라도 분위기로 다 압니다.

일어나 두 손을 모아 다시 예를 올리네요.

 

붉은 천에 싸여 나오는 저게 잔칫상이라면 좋겠습니다.

아주 황제에게 거하게 한 상 올리는 모양입니다.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렸나 봅니다.

 

과연 얼마나 잘 차렸을까요?

진 서방 앞에 공손히 내려놓습니다.

황제가 먼 길을 왔을 테니 목도 추길 탁배기도 있을 겁니다.

 

진 서방이 호기롭게 양손으로 붉은 천을 벗겨 내는군요.

우와~

잔칫상이 아닙니다.

책을 황제에게 바치는 의식을 거행하네요.

세상에 먼 길 오느라 목도 출출한데 탁배기 한 사발이 반갑지 책이 반갑겠어요?

먹물 많이 먹었다고 책입니다.

 

그 안에는 그동안 여러 사람이 오랜 시간 고생하며 정리한 자전이 있습니다.

바로 진정경, 장옥서 등 30여 명의 학자가 모여 5년간이나 고생하며 만든 책입니다.

탁배기보다는 문명인이라 이런 게 더 좋다고 하는군요?

표정을 보니 아주 흐뭇한 얼굴입니다.

 

황제가 다가와 그 자전을 집어 들고 훑어보네요.

이 책은 1716년에 세상에 처음 그 모습을 드러냈다고 하니 지금 이것을 보는 우리는

300년 전인 1716년으로 돌아간 셈입니다.

그 책의 이름이 바로 그 유명한 강희자전이 아니겠어요?

강희는 논문 베끼기도 아니고 복사기로 찍어내지도 않았지만,

오늘 그 책의 이름이 자신의 이름을 딴 강희자전이니 얼마나 기쁘겠어요.

 

황제의 표정이 흐뭇해 보이지 않습니까?

십이지 순에 따라 전 12권으로 이루어진 책이라 하네요.

사실, 이 책의 헌정식이 여기서 이루어지지는 않았겠지만,

드라마를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여기서 공연하겠지요.

 

그 이유가 뭐겠어요?

바로 자전이 잘 만들어졌다기보다 자전이 바로 자기 이름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게 바로 강희자전입니다.

진 서방인 진정경이 감수하여 만들었다는 그 유명한 강희자전입니다.

비록 한때는 오랑캐라고 비하했던 만주족이었지만, 한족도 하지 못한 대역사를

강희제는 했다는 것입니다.

만주족이 어디 만주 벌판을 말달리며 개장사만 했겠어요?

마음만 먹으면 이런 대단한 일도 하걸랑요? 

 

황제야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푼 셈인가요?

자전의 이름이 강희자전이 아닙니까?

그러면, 이제 황제도 보답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습니까?

진정경은 선의로 했다고 아무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고 하지만, 강희제의 처지에서는 그래도....

 

그런데 위의 사진에 헬리콥터가 한 대 떴네요?

혹시 당시 강희황제는 진 서방에게 헬리콥터를 선물했나요?

하사품이 작은 손목시계는 보았어도 헬리콥터는 처음 봅니다.

 

세상을 산다는 게 이렇게 쉽다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네요.

이 자전을 만드는 데 표절이나 베끼기 같은 일을 없었나요?

예전부터 전해온 책을 참고하여 만들었지만, 그게 강희라는 이름을 붙인 강희자전이니까요.

 

주로 보답품도 붉은 천으로 덮어놓았습니다.

이렇게 영광스러운 선물을 받은 황제가 그냥 입만 싹 닦으면 섭섭하죠.

뭔가 보답이 따라야 하지 않겠어요?

아무리 주군과 그를 따르는 신하 사이라도 주고받는 재미가 있어야 아름다운 세상이지요.

 

그래서 이번에는 베일에 가린 현판 하나를 황제가 진정경에게 건네줍니다.

바로 오정산촌(午亭山村)이라는 편액입니다.

오정이란 진 서방의 호를 말합니다.

그러니 오정의 시골집이라는 말이 될 겁니다.

이미 우리는 황성상부 본관 앞에 만든 어서루라는 누각에 걸린 현판을 보았습니다.

제가 밤에 몰래 떼어내 배낭에 넣자고 한 바로 그 현판입니다.

 

오정은 큰소리로 황제가 직접 자기 손으로 쓴 편액을 하사한 일에 감읍해

동네방네 큰소리로 알립니다.

"황제 폐하께서 편액을 하사하셨다~ 세상에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있을쏘냐~"

아주 감읍해 목소리까지 떨립니다. 

아마 이 순간이 진 서방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진 서방네 가문에서도 영원히 기억될 날일 겁니다.

두 손을 모아 진 서방이 크게 외치는 모습이 보이시죠?

 

이게 바로 황성상부의 정문 앞에 누각 하나를 세우고 자랑스럽게 제일 앞에 보이도록

어서루라고 하고 그곳에 모셔둔 황금색 글씨의 오정산촌(午亭山村)이라는

돌로 만든 현판의 원본입니다.

 

물론 지붕도 황제만 사용한다는 황금색 유리 기와로 무척 멋을 냈습니다.

누구나 멀리서 보아도 지붕만 보고도 황제와 관련된 곳이라고 알 수 있지요.

오늘 佳人山村이라도 하나 부탁할까 봐요~ 그쵸?

 

주고받기가 끝나니 파장이 되었습니다.

공연이 이제 거의 마무리가 되었네요.

황성상부는 뭔가 다른 곳과는 다른 곳입니다.

 

이런 쇼도 보여주고, 건물마다 그곳의 용도와 내용을 한글로도 간단하나마 적어두었습니다.

먹물 많이 먹은 놈은 뭐가 달라도 다른가 봅니다.

입장료만 챙기고 문도 열어주지 않고 입만 싹 닦는 놈도 많았지만....

 

이제 진정경은 황제를 모시고 안으로 들어가며 공연은 막을 내립니다.

간단한 줄거리에 너무 많은 사람이 동원되었습니다.

인건비가 무척 저렴하다는 의미인가요?

중국의 공연을 보면 어디나 많은 인원을 동원하는 게 특징이지요.

중국이라는 나라는 공연에서도 인해전술을 사용하나 봅니다.

 

그런데 위의 사진 가운데 기묘한 자세로 엉거주춤 앉아 사진을 찍는 저 아저씨 말입니다.

공연 처음부터 제일 앞에 나가 난도가 높고 야릇한 자세로 사진 찍는 저 아저씨 말입니다.

저 자세는 힘을 잘못 주면 안 되는 자세였습니다.

힘의 분배를 잘못하면 건더기는 아니더라도 음향효과가 제법 요란한 자세입니다.

 

며느리를 잘못 들였나 봅니다.

며느리가 아버님 댁에 보일러만 바꿔주었나 봅니다.

자기는 좋은 사진을 찍겠다고 저리 하지만, 뒤에서 제자리에 앉아

사진 찍는 사람은 어찌하라 이러십니까?

저리 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정말 해서는 아니 되옵니다.

 

세상의 며느님들...

아버님이 카메라를 좋아하시면 요즈음 망원렌즈는 기본입니다.

대세를 따라야 합니다.

지금 저 사내에겐 보일러보다 망원렌즈입니다.

 

여러 사람 신경 쓰이게 앞으로 나가 알짱거리고 공연을 가리며 야릇한 자세로

카메라를 들이밀고 사진을 찍습니다.

저 집 며느님~

아버님에게 뭐가 필요하신지 이제 아셨죠?

보일러보다는 망원렌즈입니다.

 

아! 젠장... 하나 더 있습니다.

보일러로 좋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화장실부터 수세식으로 집안에 만들어 드리세요.

그게 이웃사랑입니다.

 

젠장!

이번에는 여자분입니다.

저 집 며느님은 돈이 많이 들게 생겼어요.

아버님 어머님 세트로 망원렌즈를 준비해야 하니까요.

두 분이 세트로 공연 내내 앞에서 알짱거리며 사진을 찍는 바람에 중요한 순간을

여러 번 놓쳤습니다.

佳人은 저 부부가 야릇한 자세를 취할 때 뛰어나가 똥꼬를 걷어차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佳人은 이렇게 나쁜 사람입니다.

이게 다 간 때문이 아니고 그 집 며느님 때문입니다.

 

오후 공연에는 헬리콥터까지 동원하여 공연 내용을 찍습니다.

오늘 밤은 이곳 황성촌에서 느긋하게 코~ 자고 내일은 또 어디로 가야 하나

아침에 일어나 생각해 보렵니다.

원래 계획에서 경로를 이탈했기에 腦비게이션이 혼동을 일으켜 정신이 없습니다.

뤄양(낙양)이냐? 자우쭤(초작)이냐...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사람은 뜻을 펴기 위해 허리를 숙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佳人처럼 허리를 펴기 위해 뜻을 숙이는 우를 범합니다.

그게 나라를 경영하는 위정자이건 작은 조직의 수장이건 말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혼자만 사진 찍는 아저씨는 좋은 사진 찍으려고 허리도 숙이는군요?

뒤의 사람은 신경도 쓰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