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서성의 자금성이라는 왕가대원.

2012. 3. 26. 08:00중국 여행기/산서성(山西省)

이 왕가 대원을 "산서성의 자금성"이니 "화하민거제일택(華夏民居第一宅)"이니

"중국의 민간 고궁"이라고도 부른답니다.

얼마나 대단한 곳이면 이렇게 왕 서방네 집을 칭찬하는 겁니까?

그러나 어떤 수식어보다는 직접 그 모습을 눈으로 확인해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집에 살았던 사람이 3.000여 명이 넘었고 크기가 자금성 내정보다도 넓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온종일 다니며 모든 집을 드나들 필요도 없습니다.

사합원으로 지어진 집이 많다는 것이지 무식해서 각각의 모습이 크게 다른 것은 찾기 어려웠네요.

물론, 모두 같지는 않지만, 공통분모로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요?

 

제일 앞쪽에 있는 집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는 위의 사진처럼 말을 타고 내리기 쉽게 상, 하마석을 두었고 사자를

스테레오 스피커처럼 아래와 문 앞에도 양쪽으로 두었습니다.

처음은 장사로 시작해 돈을 벌었다 합니다.

왕 서방은 매일 번 돈을 세며 치부책에 적어 넣으며 동그라미를 잘못 적지나 았았나 의심했다네요.

워낙 많은 돈이 들어왔기에...

그렇게 번 돈으로 후손의 교육에 투자한 결과 개천에서 용이 나기 시작해 중앙무대로 벼슬길에 올랐다네요.

  

우리 부부는 이번 여행에 우연한 기회에 황성 상부라는 또 다른 저택을 가보았습니다.

이곳은 평민 출신으로 장사로 돈을 벌어 후손이 과거시험에 합격하며 명문가로 발돋움한 곳이지만,

그곳은 명대와 청대를 거쳐 많은 자손이 관리로 등용되며 황제의 스승으로까지 올랐던 명문가의 집입니다.

그러니 학자로서 출세한 집이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이곳과 먹물만 먹은 놈과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서도 비교할 수 있었습니다.

자금성이 72만 평방미터로 왕가 대원의 약 3배나 되지만, 사실 자금성 안에 황족이 사는 주거공간은

왕가 대원보다도 작습니다.

황제가 이 소리를 들었다면 화딱지가 나지 않겠어요?

세무조사 들어간다고 했을 겁니다.

왕 서방네 대원이 이렇게 큰 이유는 아마도 장사하던 사람이라 많은 장사꾼을 거느렸고

또 장사꾼들이 수시로 드나들었기에 이리 크게 지었나 봅니다.

정통 진상의 후예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25만 제곱미터의 넓이에 건축 면적이 4만 5천 제곱미터이며 정원이 123개에 방이 모두 1.118개나 된다고 하네요.

또한, 대원을 둘러싼 담장의 높이가 10m로 자금성과 비교해도 높이가 거의 같습니다.

이러면 막가자는 거지요?

이게 어느 안전이라고 황제의 자금성과 같은 높이로 성벽을 쌓았답니까?

무척 숨기고 감추고 싶은 게 많았던 사람이었나 봅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나무 조각에 세 명의 할배가 보입니다.

이는 민간 신앙의 하나로  사악함을 막기 위해 만들었다 합니다.

할배 셋은 각각 복(福)과 녹(祿), 수(壽)를 대표하는 신선이라 합니다.

세명의 영감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그런 역할을 한다고 해야 할 겁니다.

방으로 드나드는 문틀 상인방에 이렇게 만들어 놓았으니 얼마나 행복할까요?

오랫동안 살며 영원한 복락을 누렸을 겁니다.

 

사람이 돈을 벌면 그다음은 자식 교육에 투자하게 됩니다.

이런 일은 동서고금을 통해 진리입니다.

변변한 지하자원도 없이 찢어지게 가난했던 우리나라가 지금 이렇게 세계 속의 한국으로 발돋움하게 된

원동력이 무엇이겠어요?

바로 너무 심하다 할 정도의 교육이 아니겠습니까?

 

교육이라는 것 자체가 경쟁이고 남과의 차별입니다.

교육을 평준이라는 논리로 푼다고 하더라도 그 속에 다시 우열이 나누어집니다.

제대로 된 평등이란 공장에서 학생을 로봇으로 찍어내야 가능할 겁니다.

물론 선생도 공장 제품으로...

 

그러나 돈으로 할 수 있는 게 있고 교육을 통해 관리로 등용되어 할 수 있는 일은 또 다른 일입니다.

이곳도 왕가 대원 입구에 문묘를 보셨을 겁니다.

그 문묘는 왕 씨가 돈을 벌기 훨씬 이전인 원대에 세워진 것이지요.

그런데 그 문묘의 효능, 효과가 아주 좋아 영험했던 모양입니다.

 

앞에 있던 조벽에도 잉어가 용이 되는 과정을 그린 등용문이 있었습니다.

또 한눈에 보이는 탑이 있는 데  그 이름이 문필탑(文筆塔)으로 학문과 연관된 탑입니다.

그러니 이 지방에서도 부자도 관리의 길로 이름을 떨칠 명문가가 탄생해야 하지 않겠어요?

이 마을에도 많은 사람이 살았지만, 그 기회를 바로 이 집주인인 왕 씨가 잡은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빈다고 모두 같은 큰 부자가 되지 않았고, 같은 명문가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대원 안에는 학교도 만들어 후손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물론 선생은 많은 돈을 투자해 강남에 제일 잘 나가는 족집게 과외 선생으로만 붙여주었을 겁니다.

보통 누구나 여기까지만 하면 자식이 모두 공부 잘하리라 믿습니다.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지요.

어디 선생만으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겠어요?

가장 중요한 일은 아이가 스스로 "Yes! I can do it~" 할 수 있도록 자기 최면에 빠질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보세요.

이렇게 아이가 공부하는 곳에 오르내리는 계단 옆에 잉어가 용이 되려는 일화를 담은

등용문이라는 조각을 만들어 놓았잖아요.

요게 효능, 효과가 있었나 봅니다.

바로 스스로 될 수 있다는 최면 효과를 노리는 겁니다.

 

요놈이 바로 이 집안의 자식들에게 과거시험에 우수한 성적으로 붙게 한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이곳에 가시면 슬그머니 붕어 주둥이를 손으로 쓰다듬으시며 아이들이 공부 잘하기를 기원해 보세요.

오는 사람마다 한 번씩 문지르기에 아주 반들거립니다.

입으로 잉어 입에다 키스하시면 효과는 더 좋겠지만, 위생상 그렇습니다.

 

공부란 아이만의 일이 아닙니다.

그저 돈만 주고 학원만 보내면 모두 좋은 대학 들어가나요?

부모의 역할 또한 중차대한 일이잖아요.

지금도 우리 아이가 학원에 가 공부하는지 알았는데 오락실에서 뿅 뿅 거리는 오락 삼매경에 빠졌을지 모릅니다.

우리 부부도 그런 아이의 현장을 잡는다고 동네 오락실을 샅샅이 뒤지며 다닌 적도 많습니다.

부모란 이렇게 아이의 현장을 잡기 위해 동네 오락실도 전전하기도 합니다.

물론, 잡았지요.

그때 잡은 녀석이 우리 큰 아들을 포함한 삼총사로 지금도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옵니다.

 

담장을 보면 답답하지만, 건물 처마나 아래를 보고 다니면 무척 재미있는 곳입니다.

문 안팎으로 만들어 놓은 예쁜 조형물은 우리 눈을 사로잡기도 하고 우리 입가에 슬며시 미소도 띠게 합니다.

나무 조각으로 아름답게 장식한 처마도 무척 예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래서 답답하지만, 중국 10대 고 가옥에 들었나 봅니다.

 

이번에는 삭막한 대원 안에 입가에 미소를 띠게 해 줄 곳을 찾았습니다.

첨월정(瞻月亭)이란 정자입니다.

이 정자는 동쪽 건물군인 고가애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정자로 바로 옆에 있는 또 다른 건물군인

홍문보(紅門堡)로 넘어가는 다리 옆에 있어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곳입니다.

 

오르는 계단 난간에는 12 지신을 만들어 계단 난간을 예쁘게 꾸며놓아 멋을 부렸습니다.

낭창 한 누각을 만들어 살랑거리는 바람을 맞으며 달을 바라보고 즐길 수 있게 만들어 놓았네요.

이런 곳이 바로 놀고 자빠진 곳이겠지요.

 

돼지는 아주 넉넉한 품으로 여러 마리 새끼를 품에 안고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네요.

베이징에 있는 이화원에 가면 경복각이라고 있걸랑요.

서태후가 그곳에 자주 올라 달구경을 했다 합니다.

 

세상에 달만 보고 삽니까?

하늘에 어디 달만 있나요?

별도 있걸랑요.

그 누각 위에 오르면 달만 올려다보는 첨월(瞻月)만이 아니고 별도 바라보라는 의미로 관성(觀星)이라는

현판도 붙여 놓았습니다.

이제 님도 보고 뽕도 딸 일만 남았네요.

비록, 답답한 건물구조이지만, 이렇게 누각을 만들어 삶의 변화도 주며 살았나 봅니다.

 

이곳에 앉아 건너편 건물군인 홍문보(紅門堡)로 들어가는 길은 위의 사진처럼 계곡 위로 만든 다리뿐입니다.

그러니 이 다리만 건너면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말일 겁니다.

지금 우리가 보았던 이쪽은 주로 외부인이 드나드는 곳이고 다리 건너는 안채에 해당하는 곳이라네요.

 

밤에 왔더라면 이곳에 앉아 달이나 별이라도 감상하겠지만, 오늘은 대낮에 왔기에 해만 비칩니다.

그래도 잠시 앉아 간식이라도 먹고 가야 하지 않겠어요?

목도 추기고 말입니다.

佳人은 내 님을 바라보는 즐거움에...

(닭살 돋으시라고...)

뭐~~~ 어떻습니까?

아무도 없고 우리 부부만 이곳에 앉아 잠시 쉬며 이야기도 나누는데 뭬가 잘못되었습니까?

 

그래도 안에는 달을 바라보며 즐길 수 있는 누각도 만들어 놓아 삭막한 것을 잠시라도 씻어줄 수 있네요.

이제 우리 부부는 건너편 건물군인 홍문보(紅門堡)로 건너가 보렵니다.

문밖으로 나가는 곳에는 아름답게 조벽을 만들어 장식해 놓았습니다.

 

오직 다리를 건너야만 건너갈 수 있습니다. 

바람이라도 불면 버드나무가 살랑거리며 반겨줄 것 같습니다.

 

이 대원에는 예전에 수많은 장사꾼이 드나들었을 겁니다.

대방이 있고 그 아래 각 지방을 관리했던 대행수도 있었을 겁니다.

대행수 아래는 또 여러 명의 행수가 상단을 이끌고 중국의 전역을 누볐을 겁니다.

여기도 사환으로 들어가 대방의 자리까지도 오른 입지전적인 타고난 마이더스의 손을 지닌

덜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처음에야 왕 서방이 대방이었겠지만, 돈을 벌고 난 후에는 관리만 했을 겁니다. 

 

그러나 다리 위에서 바라본 홍문보(紅門堡) 쪽 건물은 높디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마치 세상을 등지고 혼자만 잘 먹고 잘 살려는 듯합니다.

성벽 위로는 조깅은 물론 말을 타고 달릴 수 있는 넓이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정말 외부와 담쌓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곳 주인인 왕 서방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불려준 사람은 바로 왕 서방이 담을 쌓고 살았던

담장 밖의 그런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아닌가요?

 내일도 두리번거리며 다니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행운은 자주 문을 두드리지만, 미련한 자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합니다.

산서성에도 수많은 사람이 장사하며 살았겠지만,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닐 겁니다.

왕 서방은 문을 두드린 그 행운을 제대로 잡아 집안으로 불러들인 집안이었나 봅니다.

아니지요.

왕 서방은 행운을 찾아 직접 세상 속으로 들어갔는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