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23. 08:00ㆍ중국 여행기/산서성(山西省)
왕가 대원...
왕서방네 큰집이라는 왕가 대원입니다.
대원(大院)이라는 말은 중국에서는 한 곳에 집이 여러 채 있고 그 사이로
정원도 여러 개 있는 집단주택을 말한다 합니다.
그러니 과거 행세깨나 하고 돈이 많았던 사람이 자기만의 성을 쌓아 그 안에
자기들만의 세상을 꾸미고 이웃과 담을 쌓고 살았던 곳이라는 말이 되겠네요.
한 때는 중국을 죽의 장막이라 했지요.
이 사람들의 마음에는 이렇게 장막을 치고 외부와 단절하고 사는 것을
좋아하는 피가 흘렀나 봅니다.
중국이라는 나라의 부자는 과시하고 싶은 생각으로 사는 나라처럼 보입니다.
요즈음에도 중국의 부자들은 결혼식에 수백 대의 고급 외제 승용차를 동원하여
퍼레이드도 하고 집도 거대한 궁전으로 짓고 하는 거리낌 없는 행동을 아무 제지 없이
자연스럽게 자랑하는 것을 보면 우리로서는 어느 면에서는 평등을 우선으로 하는
사회주의 나라라는 게 이해하기조차 어려운 면도 간혹 보입니다.
하물며 옛날에 부자가 이런 정도의 집을 짓는 일은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경쟁적으로 지었나 봅니다.
이제 안으로 들어왔네요.
모양이 비슷한 사합원으로 된 집이 연속으로 늘어서 있네요.
마치 집 장사하는 사람이 같은 모양의 집을 하나의 단지 안에
지어놓은 모습이라고 보면 떡 맞는 표현입니다.
어디 한 줄로만 늘어섰으면 말을 하지 않겠어요.
이렇게 늘어선 사합원의 집이 중첩하여 여러 겹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앞에는 사자로 장식한 말을 매어놓을 말뚝이 있고요.
이게 지금으로 따지면 주차장인 셈이죠?
그 아래 있는 돌은 쉽게 말을 타고 내리라고 놓아둔 上. 下馬石이겠지요.
그런 돌마저 아름답게 조각하여 마치 예술작품을 보는 듯합니다.
그 옆으로는 장식물인 석고(石鼓)도 보이고 집을 안전하게 지키라는 돌사자도 보입니다.
집으로 들어가는 대문 맞은편으로는 커다란 조벽이 보입니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집 안팍으로 이런 조벽을 많이 만들어 놓았습니다.
사합원 형태의 집이란 답답하고 질식할 것 같아 이렇게 벽을 따로 만들거나 아니면
그냥 벽을 이용해 예쁜 조각을 하곤 하지요.
위 조벽의 문양은 사자 두 마리가 가운데 여의주를 두고 희롱하는 모습으로
우리로 치면 집을 지키는 개가 하는 일을 하는 게지요.
사자와 용을 개처럼 부리는 중국인들입니다.
이것도 일종의 조벽과 같은 장식이라 봐야 하겠지요?
창문도 아닌 곳에 이렇게 벽에다 지붕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 장식의 역할은 정말 순수한 장식입니다.
공부도 잘하라고 책도 만들고 부자가 되라는 의미의 조형물을 만들어 놓았네요.
대원 안에는 작은 규모이기는 하지만, 학교도 만들고, 의료시설도 만들고 그렇게 살았기에
외부와 소통하지 않고도 자체적으로 자가발전하며 살아갈 수 있는 형태를 갖추었다 하네요.
이런 집은 하나의 집이 아니라 큰 마을의 형태를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두부를 만드는 공장도 대원 안에는 만들어 놓아 스스로 먹고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각각의 집은 커다란 성벽으로 외부를 두르고 또 그 안의 집은 또 전통 사합원으로
모든 집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이중으로 외부와 단절시킨 그런 모습입니다.
이런 형태의 거주 모습이 오늘날에도 이어져 중국의 아파트는 그들만의 경비를 두고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하게 차단시켜 아무나 출입마저 쉽지 않게 만들고 살아갑니다.
얼마나 폐쇄성이 강한 민족인가 알 수 있는 게 바로 대원이라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점차 아파트 문화가 나와 남을 가르는 형태로 변화 되는 게 아닌가 걱정입니다.
지방자치를 시행하며 이제는 지역마다 서로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인정이 메말라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최근에 새로 짓는 아파트는 외부 담장을 칠 수 없게 허가사항에 넣고 있지요.
지방자치란 나라의 땅덩어리가 큰 곳에서나 시행해야지 우리처럼 작은 나라는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생각합니다.
물론, 지방자치란 좋은 제도이나 지금의 우리처럼 운영한다면 이게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지 않겠어요?
정말 봉사하고 싶다면 처음처럼 아무것도 받지 않고
자비로 주민을 위해 봉사하면 어떨까요?
그러면 더 빼먹으려고 할까요?
지금도 모든 공사는 그들만의 리그잖아요.
중국이라는 나라는 지방자치의 역사가 무척 오래된 나라입니다.
바로 춘추전국시대처럼 여러 제후국으로 나뉘어 통치하던 시대로 올라가야 하니까요.
제후국이 바로 지방자치의 시작이 아닌가요?
그러면 세상의 지방자치라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시작이 또 중국이네요.
유럽이라는 곳도 사실은 도시마다 군주가 통치했던 도시국가에서 지금은 하나의
나라로 뭉치고 다시 유럽연합이라는 거대한 조직체로 옮겨가고 있다고도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국토면적이 작기에 굳이 그렇게까지 나누고 쪼갤 필요도 없지 않을까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것은 잠을 자는 침실의 모습입니다.
대하천간(大廈千間)이라도 야와팔척(夜臥八尺)이라 했나요?
이렇게 큰 대원이라도 밤에 육신을 눕이고 잠을 자는 침실은 아주 작은 곳이군요.
그렇지요.
부자라고 잠을 잘 때 육신을 눕히는 장소가 운동장만 하겠어요?
난방시설이 없기에 침대를 이용했고 방안에 다시 침방을 꾸며놓고 살았나 봅니다.
지금 보면 아름다운 장식으로 꾸몄다고 생각되지만, 추운 겨울에 난방시설이 부족하니
방 안에 또 다른 장벽을 친 셈이니 이를 순서대로 보면 외부 성벽으로 외부와 단절하고
각 집마자 사합원으로 같은 집에서도 다른 집과도 단절시키고 이번에는 방안에서마저
외부와의 소통을 원천적으로 막았다는 말입니다.
위의 사진에 나오는 방은 신혼방이라 합니다.
어떻게 아느냐고요?
다른 방은 그냥 바닥이지만 이 방은 레드 카펫...
그 이유가 깨가 쏟아지면 주워 담으려고요.
왕가대원은 동서로 건물군을 크게 두 곳으로 나눌 수 있다네요.
먼저 위의 왕가 대원 모형 사진에 보듯이 우리가 문표를 사면 먼저
오른쪽 아래의 큰 대문으로 들어가는 곳입니다.
바로 앞에 보이는 동쪽에 있는 건물군은 고가애(高家崖)라고 부른답니다.
주로 객청이 많아 손님이 머무는 곳은 이곳이 대부분입니다.
문표를 사서 들어가는 입구는 오른쪽 아래에 보이는 마당 아래의 문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서쪽에 있는 위의 사진에 보이는 건물군을 홍문보(紅門堡)라고 부르고요.
주로 주인과 가족이나 친인척과 그들을 보좌하는 식솔이 거주하는 안채에 해당하는 곳이며
주인이 거주하는 공간이라 주변을 10여 m나 되는 아주 높은 성곽으로 둘러싸고 살았습니다.
게다가 각각의 건물은 남북으로 길게 길이 세 갈래로 뻗어있고 가운데로 서로 연결하였기에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왕가를 나타내는 王이라는 글자라 합니다.
뭐 그런 말을 하지 않더라도 여러 채의 집을 지을 때 골목을 두어야 하지
그럼 길도 만들지 않고 날아다닌답니까?
이게 성채지 어디 개인 저택이라 할 수 있겠어요?
왕 서방은 돈 자랑을 사합원 집을 짓는 방법으로 했나 봅니다.
두 건물군 사이는 계곡으로 물이 흐르는 곳입니다.
그 주변으로는 10m도 넘는 성벽으로 각각 막혀있습니다.
그러니 두 건물군은 서로 오가는 방법은 오직 다리로만 연결해 놓았습니다.
물론 멀리 돌아들어 갈 수도 있지만요.
집안의 모습은 황토고원의 전통 형식인 아치형이 많이 보입니다.
이 근방의 대부분 집이 황토 고원을 뚫고 방을 꾸미고 옛날부터 살았지요.
물론 내부도 토굴처럼 천장이 아치형으로 만들어졌고요.
이 부근이 오래전부터 황토 고원이라 토굴을 파고 살았기에 이런 튼튼한 벽돌집을
짓더라도 그 형태는 옛날 방식인 토굴의 모습으로 지었다는 말이 아닐까요?
이 집은 단번에 지은 게 아니라 명대부터 시작해 청대에 이르기까지
약 300여 년간 계속 지어진 곳이라 합니다.
원래 이 마을에서 농사를 짓던 왕 씨 형제가 장사해 돈을 벌어 부자가 된 후
이 대원을 짓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이 도시의 4대 가문 중 한 곳이라고 하는데 소금장수로 시작해 비단이며 차를 팔아 돈을
벌었다 하니 그러니 조선의 밍월이에게 뻑~ 소리 나게 가버린 그 비단이 장사
왕 서방의 집이 바로 이곳?
목본수원(木本水原)이라고 쓴 현판이 걸린 곳입니다.
이 말은 춘추좌씨전 소공 9년 춘편에 있는 글로 木水之有本原이라는 말에서 따온 말이라 합니다.
그래요...
세상에 근본이 없는 집안이 어디 있겠어요?
나무와 물도 그 뿌리가 있고 원천이 있지 않겠어요?
하물며 인간이 조상을 모른다면 금수보다도 못한 일이 아니겠어요?
여기가 바로 왕 서방네 뿌리인 본거지 종사가 되겠군요?
우리 인간도 그 뿌리가 있어 조상을 섬겨야 한다는 말로 조상신을 모신 사당에 붙여 놓았네요.
뭐 조상 덕에 이런 어마어마한 저택에 살며 이 정도 투자야 당연히 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후손에게 제삿밥이라도 제대로 얻어먹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처럼 느껴집니다.
비록 이 왕가를 세상에 알린 형제는 흙이나 파먹으며 살다가 장사를 시작해 돈을 벌었지만,
그 후손에게는 공부를 가르치며 점차 번성하며 출세의 길로 접어들어 명문가로 세상에 나타났지요.
그러니 후손은 두 손으로 손뼉을 치며 리드미컬하게 "감사합니다~"를 연발해야 하지 않겠어요?
아니군요?
"시에시에~"라고 해야 하겠군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아름다운 장식을 했던 곳은 아마도 마님이나 따님의 거처가 아니었을까요?
이 집의 총면적이 25만 제곱미터에 달해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교가 대원의 네 배나 되는 크기라고 합니다.
따라서 이곳에 터를 잡은 진상(晉商)의 저택 중 가장 넓은 터를 차지하고 있는 곳이랍니다.
집의 특징은 북방 민간 가옥의 특징과 남방의 특징인 원림을 혼합한 형식으로 지었다 합니다.
태원 왕 씨 후손인 정승 왕가들이 지은 저택입니다.
흔히 다섯 개의 골목, 다섯 개의 보루, 다섯 개의 사당이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그중 다섯 개의 보루는 각각, 용, 봉황, 거북이, 기린, 그리고 호랑이로 비유되기도 하다는군요.
좋다고 하면 정말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을 좋은 것은 몽땅 가져다 관계를 맺게 했네요.
이곳은 문지방을 넘어갈 때도 무심히 넘어서는 안 되나 봅니다.
문턱 양쪽 바닥에 만든 앙증맞은 조각마저 예술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드나드는 사람마다 한 번씩 쓰다듬고 지나다니기에 반들거리는군요?
그게 동물 모양일 수도 있고, 과일 모양으로 만든 것도 있습니다.
모두 자손이 번성하고 돈이 많이 쌓이고 잡귀를 막아달라는 염원을 담아
출입하는 문 옆에 만들었을 겁니다.
복을 빌고, 건강을 빌고 많은 돈이 쌓이고 자손이 번창하게 해 달라고 빌기 위해 만들었을 겁니다.
이런 조각이 모든 건물 입구에 있기에 이것들만 눈여겨보고 다녀도 무척 재미있는 곳입니다.
일반 가정집에는 문당 석고를 주로 두었지만....
물고기도 있군요?
아닙니다.
자세히 보니 박쥐입니다.
가운데만 쓰다듬어 물고기로 보였지만, 분명히 날개가 있군요.
날개도 함께 쓰다듬어야 효과가 있다고 안내문이라도 붙여 놓았으면 좋겠습니다.
박쥐란 중국에서는 상서로운 동물로 발음이 福이라는 푸와 발음이 같기에
졸지에 선택받은 행운을 가져다 주는 날짐승이지요.
동물은 늘 사자나 용처럼 무서운 것만 있다는 것도 편견이었나 봅니다.
그 앞에는 봉숭아로 생각됩니다.
복숭아란 아들을 상징하는 과일이고요.
그래서 두 쪽을 확실하게 알리기 위해 두 알로 표현했습니다.
우리에게도 복숭아는 태몽에서 아들을 의미하잖아요.
더군다나 두 개를 만들어 놓았기에 아마도 다산을 상징하기 위해 만든 게 아닐까요?
떡 두꺼비 같은 쌍둥이 아들을 쑴벙 낳으라고요.
며느리 산고는 아무 상관없다는 말인가요?
왜 중국의 인구가 폭발적인지 이해하겠네요.
1타 2매란 원래 좋은 일이잖아요.
바닥만 바라보고 다녀도 안 됩니다.
처마 밑도 보고 다녀야 합니다.
문방사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 방은 공부하는 아들이 기거했던 방일까요?
정말 바쁘군요?
관리를 전혀 하지 않아 서서히 티끌로 돌아가는 중인가요?
처음에는 정말 화려하고 아름다웠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 또 벽입니다.
그냥 아무것도 만들지 않아도 된다 생각한 곳도 이렇게 조벽의 형식을 빌어
사당처럼 만들어 놓고 드나들며 빌었나 봅니다.
굳이 일부러 찾지 않더라도 문을 드나들며 수시로 빌고 또 빌었을 겁니다.
무엇이 이 사람들에게 이렇게 염원을 많게 만들었을까요?
바라고 싶은 게 왜 이리 많았을까요?
너무 무서운 세상을 살았나요?
이번에는 참외로 보이는 과일 위에 나비가 앉아 있네요.
정말 이런 것만 보고 다녀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겠습니다.
사실 사합원 안으로 다니다 보면 답답합니다.
그게 나비인지 참외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시험 칠 것도 아니니
자유 여행자는 혼자만의 생각으로 구경합니다.
안에는 안내하거나 설명해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잠시 들리고 갈 여행자도 이렇게 답답한데 이 안에 살던 사람은 어땠을까요?
이게 바로 사람을 환장하게 하는 일이 아니겠어요?
그런 답답함을 줄여줄 방법으로 이런 것을 만들었나요?
중국사람의 성격이 자기 위주의 생각만 하고 사는 민족이라는 이유가
바로 이런 주거문화에서 오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젠장...
기둥을 받치는 주춧돌마저 아름답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넌 누구냐!
용 대가리인가요?
내일도 두리번거리며 다니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길을 아는 것과 그 길을 걷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그러나 佳人처럼 길도 모르고 걸어간다는 일은 정말 무모한 일입니다.
배낭여행을 하며 이런 곳을 오게 되면 무엇을 보아야 할지 정말 난감합니다.
결국, 입구로 들어가 출구로 나가는 길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 길을 걸었기에 만족하렵니다.
떠나지 않았다면 그 조차도 보지 못했을 테니까요.
설령 모른다 하더라도 그냥 우리 부부처럼 천천히 기웃거리며 다니면 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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