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 26. 07:00ㆍ중국 여행기/베이징(北京)
이 마을은 명, 청 시대 양식의 집들이 주를 이루고 있기에 민속촌이나 마찬가지 마을이라 할 수 있겠네요.
민속촌으로 만든 마을 대부분은 인위적이지만, 이 마을은 그야말로 자연적인 곳입니다.
당시의 모습에서 전혀 꾸미지 않았기에 이들은 모두 독특한 역사적 문화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기에 이곳은 당시의 살던 모습 그대로 볼 수 있고 거의 완벽하게 옛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곳이랍니다.
그러니 일부러 보여주기 위한 테마파크가 아니라 살아 있는 화석과도 같은 민속마을이 된 곳이라는 말이겠지요.
이 마을은 명나라 영락(永乐) 기간(1403~1424)에 짓기 시작한 곳으로 마을 주민은 산시(山西, 산서)에 살던
사람들이 가뭄이 들자 추위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베이징으로 이주해오다
중간에 이곳에 터를 잡아 살게 되었다 합니다.
그러니 마을이 생긴 지 600여 년이나 되었으며 현재는 70여 가구가 살고 있다네요.
남향으로 용두산의 가운데 자리를 잡고 부채꼴 형태로 마을이 형성된 곳이지요.
우선 마을로 들어가면 바로 앞에 양쪽으로 산이 보이고 오른쪽에 보이는 그 산으로 오솔길이 있습니다.
관제묘라고 입구에 안내판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오르내리기에 우리 부부도 따라 올라갑니다.
가이드도 없이 다니는 여행은 이런 곳에 오면 어디부터 봐야 하느냐 고민이 되지만, 사람 많이 다니는 길이나
새로운 팀이 도착하면 그 팀이 가는 방향으로 길을 잡으면 틀림없습니다.
잠시 오르다 뒤를 돌아봅니다.
부채꼴 모양의 마을이 어느정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마을 풍경 또한 예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위에 오르니 관우를 모신 사당 하나가 있고 그 앞에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어 가을이 왔음을 알려줍니다.
그래요.
촨저시아춴에도 가을이 묻어왔습니다.
우리 부부는 가을과 함께 베이징에서도 제법 멀리 떨어진 시골 마을까지 가을과 함께 흘러왔습니다.
관우 묘 앞에서 마을을 내려다봅니다.
마을의 길은 용의 허리처럼 휘어져 있다고도 하고 누구는 주역에서 말하는 태극문양이라고도 합니다.
S자로 휘어져 있으면 중국은 용을 잡아오고 주역을 끌어 옵니다.
왼쪽이 우리가 들어온 방향이고 오른쪽 해가 비치는 방향이 산서성으로 가는 방향입니다.
이 방향을 잘 기억하셔야 나중에 一線天이라는 멋진 곳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아...
가을이 깊어가는 계절에 누가 이렇게 아름다운 물감을 뿌려놓았습니까?
그 속을 거닐다 보면 얼굴마저 노랗게 물들 것 같습니다.
그것은 안 되겠네요.
얼굴이 노랗게 물든다는 것은 황달 증상이니까요.
관우 아찌~
아찌도 가을을 기다렸나요?
가을을 좋아하면 추남이래요~
이 마을에서 제일 중요하고 전망이 뛰어난 곳에 모신 이가 바로 관우입니다.
관우는 중국사람에게는 재물신으로 알려졌지요.
왜 이 마을 사람들은 관우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제1신으로 모셨을까요?
네... 그렇습니다.
바로 배고픔 때문입니다.
배고픈 설움을 겪어보셨나요?
사흘을 아무것도 먹지 못한 슬픈 위장을 느껴보셨나요?
먹을 게 없어 사흘 굶어보지 않으신 분은 말을 하지 마세요.
우리 어린 시절에는 가끔 굶기를 밥 먹듯 했었습니다.
그래서 佳人은 이들이 이곳으로 옮겨온 가슴 아픈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것도 같습니다.
여기 그들이 찬(爨)이라는 글에 대한 해석을 아주 멋지게 한 그림 한 장을 소개합니다.
배가 고파 여기까지 흘러왔기에 이들이 밥을 하는 그림으로 글자를 만들어 마을을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불 화(火)라고 쓴 곳 오른쪽에는 아주 사각형 풍구를 놓고 바람도 신나게 일으키는군요.
배불리 먹고 산다는 일은 예전에는 모든 사람의 희망이었을 겝니다.
우리도 등 따습고 배부르면 부러울 게 없다고 하잖아요.
지금은 무엇을 먹느냐로 고민을 하지만 그때는 먹느냐 굶느냐가 걱정스러웠지요.
바로 이 마을로 이주한 사람들은 배고픔에 견디다 못해 베이징으로 들어오다
산세에 반해 이곳에 주저앉았다 합니다.
촨디시아에 거주하는 주민의 대부분은 韓씨 성을 가지고 있다는데,
마을에 보관된 쭈셴탕(祖先堂 : 조선당)의 기록된 바로는 한씨는 제1대손인 한복금(韓福金), 한복은(韓福银),
한복창(韓福仓)의 후예들이라 합니다.
그러니 가뭄이 들어 산시성에 살던 한씨네 가족이 베이징으로 이사를 오던 중 이곳에 그만 눌러앉아버렸다 합니다.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 되고 여기가 먼저 살던 곳보다 식솔들을 굶기지만 않을 수 있다면
선조들이야 무슨 짓을 마다하겠어요.
집의 형태는 중국의 전통적인 주거인 사합원으로 지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예전 사합원의 원형을 볼 수 있어 학술적인 가치가 있는 곳이라 하네요.
보세요.
이 마을을 찾아오는 관광객이 관광버스를 타고 마을 입구가 미어터지도록 몰려들잖아요.
마을이 생긴 이유가 배가 고파 사람이 모여들어 생긴 마을도 있습니다.
그런 마을이 지금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불을 때고 밥을 지어 팔아 돈을 버니 행복한 결말이 아니겠어요?
조상은 저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르겠어요.
그런데 위의 사진을 보면 단체관광객으로 보이는 무리가 모두 우리가 내려가는 산을 바라보고 있네요.
외계인이라도 나타났나요?
틀림없이 뭔가 있을 것 같아 우리도 저 자리에 내려가 뒤를 돌아볼 겁니다.
촨디샤가 발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명나라 정덕(正德) 14년(1519년) 구이다오(古驿道 : 고역도)라는
도로공사를 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네요.
이 도로는 베이징에서 허베이(河北, 하북), 산시(山西, 산서), 네이멍구(内蒙古, 내몽고)를 왕래할 때 반드시
이 마을을 거쳐야 할 길이기에 군사적으로나 교통상으로 볼 때 가치가 높았다 합니다.
세상 어디나 새로운 도로가 생기면 개벽을 하긴 하더군요.
차마고도를 따라 생긴 마방의 마을이 그랬고 실크로드를 따라 캐러밴이 다닌 길에 생긴 한이라는 곳이 그랬죠.
우리의 문경새재도 그랬고 말죽거리도 그래서 유명해지게 되었잖아요.
그런 길목은 그냥 눌러앉아 음식점이나 주막을 차려 놓기만 하면 꾸역꾸역 사람이 모여들잖아요.
그런데 모여드는 사람이 어디 빈손이겠어요?
장사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주머니에는 돈을 지니고 다녔을 겁니다.
따라서 새롭게 난 길은 마을의 경제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으며, 촌락의 환경을 구성하는 70여 채의 정밀하고
다채롭게 지어진 산지에 있는 쓰허위안(四合院 : 사합원)은 당시 고대 산촌 경제 번영의 상징이 되었다 합니다.
고대 촌락은 종족, 혈연을 중요하게 여겼기에 촌민들에게 애가 애국(爱家爱国) 사상과
윤리도덕규범을 강조했을 겁니다.
사실, 우리의 규범이라는 유교는 충과 효를 무척 중요시했습니다.
어찌 보면 이런 생각이 인간 규범의 근본이기도 합니다.
돌담길에도, 돌로 포장한 오솔길에도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울 마눌님 마음속에도 가을이 성큼 들어 않았을 겁니다.
터벅터벅 걸어가는 발걸음마다 가을을 밟고 걸어갑니다.
이렇게 우리 부부는 가을이 뿌려놓은 아름다운 세상 속으로 두 사람만의 여행을 하는 중입니다.
佳人에는 이런 돌담길을 함께 걸어갈 동행이 있어 행복했노라.
나이 들어 동행이 되어 여행할 웬수가 있어 더 행복했노라.
이렇게 우리의 삶도 가을 속으로 물들어 가나 봅니다.
이런 길을 걸으실 때는 가만히 함께 걷는 사람 손이라도 잡아보세요.
그리하시면 사랑이 두 사람 손안에 들어옵니다.
믿지 못하시겠다고요?
끄! 하하하~
일단 잡아보시라니까요~
이곳에 가시면 산허리에 만든 돌담을 따라 청석으로 깔아놓은 석판로도 걸어보세요.
수백 년 전 이 골목길을 떠들며 뛰어다녔던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소리도 들으실 수 있습니다.
가만히 돌담에 기대어 서서 귀를 기울이면 아낙들이 골목길에 모여 앉아 서방 자랑도 하고 자식 자랑도 하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골목길이란 원래 삶의 애환이 함께하는 그런 길이잖아요.
안 들리신다고요?
사실 저도 안 들려요.
이곳에 사는 아낙을 모두 골목길로 끌어내어 이야기하라 할까요?
덜수 마누라를 끌고오면 안 되겠네요.
덜수 마누라는 신랑 자랑을 하지 않고 흉만 볼 겁니다.
만리장성에서 일하고 온 후로는 늘 밤만 되면 식은땀을 흘리고 비실거린다고요.
위의 사진에서 보았듯이 관제묘에서 바로 아래로 내려가지 마시고 오른쪽으로 난 능선길을 따라
오솔길로 걸어오시면 돌담길과 석판로를 걸으실 수 있고요.
더 중요한 것은 이 지점에서 뒤를 돌아 산을 바라보세요.
아까 내려오다 보니 많은 사람이 올려다본 바로 그 자리입니다.
혼자 자유여행을 다니다 보면 이런 곳은 놓치기 쉽습니다.
지금부터 이 산의 가운데와 오른쪽을 자세히 보시면 신기한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佳人이 책임지고 무료로 보여 드립니다.
위의 사진은 먼저 사진 중 오른쪽 부분만 가까이 당겨보았습니다.
무엇으로 보이세요?
그냥 산입니까?
네... 맞습니다.
그냥 능선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시면 바로 날개를 활짝 편 박쥐의 모습입니다.
상서로운 박쥐랍니다.
이곳에서는 편복헌복(蝙蝠憲福)이라고 부르는데 박쥐는 다산과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믿는가 봅니다.
박쥐라는 복(蝠)은 복을 의미하는 복(福)과 발음이 같은 fu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거 잘못되면 미국 영화 배트맨의 원전이 중국 촨디시아춴이라 우기는 거 아닙니까?
오늘 이 박쥐를 보신 여러분은 횡재하신 겁니다.
이번에는 위의 사진을 보세요.
먼저 사진 중 가운데 부분만 가까이 당겨 찍었습니다.
이번에는 또 무엇으로 보이세요?
신구소천(神龜嘯天)이라고 이름 지어진 산등성이입니다.
신성한 거북이 하늘을 향해 휘파람을 부는 모습이라 합니다.
어때요?
그럴듯합니까?
佳人 눈에는 뒤집어진 알라 거북이가 자빠져 하늘을 올려다보고 떼를 쓰는 모습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같은 모습을 바라 보아도 반대로 보이는 게 사람인가 봅니다.
거북이 등이 똥배로 보이는 사연은 비밀입니다.
그리고 다시 산을 찍은 위에 3번째 사진을 보시면 박쥐와 자빠진 거북이를 발견하실 수 있으시죠?
그런데 거북이 왼쪽이 자꾸 호랑이라 우깁니다.
웅크린 호랑이처럼 생겼나요?
왼쪽 높은 곳이 섹시한 호랑이 엉덩이고 오른쪽 낮은 곳이 머리와 입이랍니다.
아래로는 다리도 뻗고 있는 자세네요.
직접 당겨서 찍지 않아서 위의 사진을 그 부분만 캡처를 했더니 사진의 품질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자꾸 우기면 그렇게 눈감아 줍시다.
인 그러면 마을 사람들 모두 삐쳐요.
그리고 이 산의 세 가지 영험한 동물인 박쥐와 거북이와 호랑이를 묶어 위의 사진에 보이는 그림으로 표현을
했는데 이런 것을 3종 세트라 해야 하나요?
동네 사람이 떼거리로 호랑이라 우기고 그림으로 그려 호도하니까 그렇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마을은 이렇게 영험한 동물이 보호하고 그 아래 부챗살처럼 생긴 마을의 언덕이 접시라 하니 그 접시 안에
황금이 가득 쌓여 부우~~자 되는 마을입니다.
이 그림을 보신 여러분도 새해에는 부우우우~자 되세요.
아무리 말로만 연말연시가 되면 Happy New Year라고 판에 박힌 말보다는 이 그림 하나로 끝내버리렵니다.
바로 그 산 중턱에 관우가 오늘도 두 눈을 부릅뜨고 인상 쓰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을 혼이라도 내려는 듯 말입니다.
하루 종일 사당에 앉아 열린 문으로 단풍이 한껏 물든 나무 한 그루를 째려보고 일직선 상에 놓인
정자 하나만 보고 무료하게 지냅니다.
오후가 되면 관우도 피곤하여 게슴츠레하여 졸린 눈이 될 겁니다.
이곳을 가시는 분은 꼭 관제묘에 들려 게슴츠레한 관우를 만나시고 "하이~"라고 인사라도 하고 오세요.
그러면 관우도 기뻐할 거예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봄비는 기름과 같으나 그 길을 가는 나그네는 흙탕물을 싫어하고,
가을 달이 밝게 비추나 도둑은 그 밝게 비추는 것을 싫어한다 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그곳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모두에게 그저 그런 곳이라도 내게는 대단한 감동을 주는 곳이 있습니다.
세상은 좋고 나쁜 게 없습니다.
좋고 나쁘다고 하는 것은 순전히 개인의 마음입니다.
佳人이 쓰는 이런 쓰잘데 없는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분이 계시고 싫어하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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