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의 해와 달 샹그릴라로...

2010. 2. 18. 21:54중국 여행기/윈난성 여행 2009

"내 마음속의 해와 달"이라는 예쁜 이름을 지닌 샹그릴라....

그곳을 가기 위해 2시 16분 치아오터우에서 버스를 30위안/1인에 탔습니다.

지금은 잠시 중국이 지배하고 있지만 이곳은 토번이라고 불리었던 티베트의 영토였다지요?

토번이라는 말도 중원에서 부른 이름이라는군요.

원래 그들은 국호를 독발(禿髮 :투파)이라고 했는데 중원에서 토번이라고 불렀답니다. 

 

641년 당나라의 태종 때 문성공주라는 공주표 여자가 토번의 송찬간포(松贊干布)에게

시집을 가며 티베트가 세상에 더욱 자세히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토번과 중원의 관계가 맺어지면서

지금 이곳이 중국의 영토가 되는 구실을 제공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운남의 남조국 그리고 이곳의 토번은 중원의 당나라와 대적할 정도로 강력한

세력으로 자리 잡고 서로 3각의 부동의 세력을 유지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미 장가를 간 토번의 영웅 송찬간포가 당태종에게 딸을 하나 보내 달랍니다.

작은마누라로 삼고 싶답니다.

그러나 당나라는 이미 토곡혼과 돌궐에 홍화 공주와 형 양공주를 주고 나니 공주가 품절이라....

공주가 없다고 하자 송찬간포는 토곡혼과 시비를 걸고 침공해 쓸어버립니다.

그뿐 아니라 지금의 쓰촨 성 쑹판 현까지 군사를 끌고 들어와 당태종에게 무력시위를 합니다.

"누구는 사내고 나는 뭐냐?"라고 따집니다. 어쩝니까? 

 

할 수 없이 예전부터 궁에 머물던 딸도 아니고 더군다나 동생도 아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문성공주라고 하는 여자를 송찬간포가 시끄럽게 구니까 "보내줘라~ 안 그러면 쟤 삐진다."라고

하여 라싸로 시집보냈답니다.

꽃보다 더 예쁘다는 23살의 문성공주는 이렇게 송찬간포에게 시집오게 되었답니다.

 

동토의 땅, 오랑캐라고 비하했던 곳으로 문성공주는 떠납니다.

강물마저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데...  

에고~ 에고~~ 서러워라~ 문성공주는 반대로 동에서 서로 시집을 갑니다.

 

그러나 그녀는 무척 총명합니다.

예쁜 여자가 착하고 총명하기까지 하다면 같은 여자들도 질투하지요.

한 달여 만에 황하의 발원지라는 하원(河源)에 도착을 했고 송찬간포는 단숨에 달려와

신부를 맞이하니... 이게 꿈입니까? 생시입니까?

꽃이 아름답기로 이와 같을까? 보름달이 탐스럽기로 이와 같을까.....

그저 정신이 몽롱하여 침만 꿀꺽 삼키고 있습니다.

제가 옆에서 송찬간포를 툭 건드리지 않았다면 몇 시간이고 넋을 잃고 쳐다보고만 있었을 겁니다.

나 원 참!!!

 

그녀의 미모는 차마 정면으로 바라보기 힘들 정도로 눈이 부시고 아름답고 또 우아하기까지 합니다.

하얀 피부는 백옥보다 더 희었고 티 하나 없는 피부는 늘 척박한 고원을 목욕도

제대로 하지 않고 선머슴처럼 뛰어 달리며 살아가는 거무스레한

티베트의 여인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습니다.

선녀가 이렇게 예쁠 것인가? 목소리는 은쟁반에 옥구슬 굴리는 듯....

송찬간포는 그만 첫눈에 뻑~ 소리가 나며 가버립니다.

 

그녀는 중원을 떠날 때 함께 데리고 온 여러 기술자들과 책, 씨앗 등을 통하여 티베트의

의식주는 물론 문학, 음악 등 예술까지 중원의 앞선 문물을 접목하여

그야말로 티베트에 한류에 버금가는 대변혁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미인박명이라지요?

그녀가 시집온 지 9년 만인 650년 송찬간포는 34살의 젊은 나이로 "문성공주! 나 먼저 가네~"

라는 인사말만 남기고 세상을 떠납니다.

아니! 이럴 수가 있습니까? 장안에서 라싸까지 한 사람만 믿고 시집왔는데

색시만 두고 먼저 가다니요?

한 세상을 휘어잡은 티베트의 영웅 송찬간포...

그만 예쁜 문성공주 때문에 요절했는지도 모릅니다.

젠장!!! 이게 무슨 영웅입니까?

자기 마누라 한 번 제대로 사랑해주지도 못하고 과부 만드는 영웅...

 

판례에 따르면 서방이 죽으면 보따리 챙겨서 다시 장안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그녀는 680년 54세 때 "영감~ 나도 당신 곁으로 가우~~"하며 세상을 떠날 때까지

라싸에서 머물며 티베탄과 함께하였기에 지금까지 모든 티베탄의 존경을 받는

영원한 공주입니다.

 

그녀는 처음에 송찬간포라는 티베트의 한 영웅만을 가슴에 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자 한 남자를 품기보다 모든 티베탄을

가슴에 품은 아름다운 여자였습니다.

 

비록 척박한 땅으로 시집을 왔지만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지 않고 오히려 많은 일을

함으로 아직까지도 티베탄에게 신에 버금가는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화려한 장안보다 푸른 초원을 사랑했고 산해진미보다 티베트의 소박한 밥상을 즐겼으며

오색등불이나 화려한 노리개보다 파란 하늘과 흰구름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세련된 장안의 뺀질이보다 투박한 티베탄마저도 그녀는 사랑했습니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은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때에 티베트가 당과의 관계가 없었다면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하여

자기의 영토라고 주장할 근거가 없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佳人에게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를 태운 버스는 방향을 북으로 잡고 총지앙촨이라는 강이 만든 계곡을 따라

고도를 계속 높인다.

짧은 시간에 고도를 급격히 높이니 귀가 멍해진다.

 

그 강에는 작은 수력발전소들이 많이 있다.

중국이란 나라가 이 작은 계곡을 막아 전력을 생산하는 모습은 의외의 일이다.

 

버스 안에는 닭을 발만 묶어 태워 가끔 닭이 퍼덕이며 소란을 떨기도 한다.

닭을 싣고 탄 아가씨는 중간에서 아래 사진처럼 가슴에 닭은 품고 버스에서 내린다.

중국에서는 닭의 승차요금을 따로 받을까?

 

가파른 고갯길을 거의 다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이 또한 아름다운 모습이다.

우리가 방금 달려온 길이 저 아래에 내려다보인다.

리지앙에서 치아오터우를 거쳐 샹그릴라로 갈 때는 오른쪽에 앉아 가는 게 구경하기 좋다.

 

높은 산을 박차고 올라온 버스가 고원지대를 달리다 보면 오른쪽으로 하얀 설산이 보인다.

참 아름다운 모습이다.

바로 우리가 걸었던 하바쉐산이라는 설산의 봉우리가 나타난 것이다.

위롱쉐산의 모습보다 더 멋진 설산의 모습을 보여준다.

 

설산의 높이로 볼 때 우리를 태운 차가 이미 해발 3.000m 정도의 높이로 올라왔다는 말이 된다.

그러니 해발 3.200m에 있는 샹그릴라는 고원에 자리 잡고 있는 평지처럼 생긴 고원도시인 셈이다.

 

버스를 함께 타고 온 짱족의 사람은 샹그릴라라는 지명을 쓰지 않는다.

예전에 사용하던 쭝띠앤이라고 부른다.

아직 그들은 중국 정부에서 공식 지명을 변경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대화 도중

우리가 말한 샹그릴라에 대하여 쭝띠앤 이라고 고쳐주며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말인가?

 

샹그릴라라는 지명은 소설책 한 권 때문에 바뀐 이름이란다.

지금 샹그릴라(香格里拉)로 불리는 이곳의 지명은 원래 중디앤(中甸)이었단다.

고도 3.200m인 이곳의 지명은 중디앤에서 샹그릴라로 바뀌게 된 이유는 1933년 영국 작가

제임스 힐턴이 쓴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이라는 책 때문이라고 한다.

 

그 책의 내용은 1931년 영국의 식민지인 인도의 라즈라는 곳에 폭동이 일어나자 영국 영사

휴 콘웨이가 그곳을 경비행기를 타고 탈출을 하게 되었단다.

시원치 않은 경비행기는 항로를 이탈했고 결국 지금 이 지역 어디엔가 비상착륙을 하게 되며

콘웨이 일행은 이곳에서 티베트 라마교 신자들을 만나고

콘웨이 일행을 "Blue Moon"이라는 별천지 골짜기로 데려간다.

 

일행은 이곳에서 신선과도 같은 늙지 않는 꿈같은 생활을 한다.

그러나 이곳을 벗어나는 즉시 원래의 나이로 돌아가 늙어버린다는 것....

제임스 힐턴이 그린 꿈과 같은 소설 속의 허황된 이야기를 두고 중국 정부는 왜 가만히 있겠어?

 

그래서 이곳을 샹그릴라로 이름 지으면서 이곳의 지명이 되었단다.

소설책 한 권 때문에 지역의 이름이 바뀔 수도 있다.  

 

치아오터우에서 출발한 버스는 2시간도 걸리지 않고 4시에 샹그릴라 터미널에 도착했다.

치아오터우에서 만난 캐나다 커플과 함께 시내버스를 타고 꾸청으로 이동하기로 하고

터미널 정문 입구에 노점을 하는 사람에게 꾸청으로 가는 버스 타는 곳을 물어보았다.

 

버스 정류장을 터미널 대각선 방향으로 가리켜 주는데 마침 버스가 반대 방향에서 온다.

그러자 그 아낙은 저 버스를 타라고 손짓하고 우리 넷은 영문도 모르고 반대방향으로

오는 버스를 보고 냅다 뛰니 버스는 터미널 앞에서 멈추고 우리를 기다린다.

 

아낙이 우리에게 알려준 것은 1번 버스라는 것이었고 그 버스 타는 정류장은 반대편

대각선 방향에 있는 정류장이다. 

우리 일행은 "꾸청"하고 물어보니 무조건 타란다.

그런데 그 버스는 꾸청에서 오는 버스였고 우리 일행은 반대편에 있는 종점까지 조금 가다가

그곳에서 잠시 머물다 다시 꾸청을 향해 돌아 나온다.

 

덕분에 1위안으로 시티투어를 한 셈이 되어버렸다.

아래 사진이 꾸청 가는 버스 정류장에서 시계탑이 보이는 버스 터미널을 보고 찍은 사진이다.

 

버스 라야 미니 버스에 승객도 몇 사람 되지 않아 우리 넷은 서로 쳐다보며 웃고만 있다.

샹그릴라라는 도시는 무척 작다. 걸어서도 다닐 정도의 작은 도시다.

몇 정거장 가니 그곳이 꾸청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버스 안에서 영어가 유창한 현지인이 숙소를 찾느냐고 물어본다.

캐나다 커플은 그 사람에게 유스호스텔 위치를 물어보고 버스에서 내려

그곳으로 가겠다고 하여 우리와는 헤어졌다.

 

그 청년은 우리에게도 도움을 주겠다고 했으나 우리 부부는

우리가 직접 숙소를 구하겠다고 사양했다.  

이곳에 도착하고 나니 몸이 무척 무겁다.

감기가 점점 심해졌고 새벽부터 20km 강행군을 했으며 이곳의 고도가 해발 3.200m 인지라

걷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숨쉬기조차 힘이 든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입구 오른쪽에 제일 먼저 보이는 藏巴拉이라고 쓰인 객잔에 들어가

50위안 한다는 방을 40위안에 묵기로 하고 짐을 풀어버렸다.

 

다람살라를 아시나요?

미국의 영화배우인 리처드 기어는 다람살라 가는 길의 복구작업을 위해 앞장서기도 했지요?

네~ 맞습니다. 인도 북부 국경에 있는 작은 도시로 티베트의 망명정부가 있는 곳입니다.

 

한 달에 200명 이상 그리고 일 년에 3.000명이 넘는 티베탄이 목숨을 걸고

중국을 탈출하여 넘어오는 곳.

네팔의 산악지대를 거쳐 이곳으로 오는 동안 발가락은 동상으로

모두 문드러져도 탈출을 시도합니다.

 

얼마 전 탈출하던 티베탄을 백주대낮에 중국 국경수비대가 총격을 가하여 살해하는 모습이

마침 그 부근을 등반 중이던 유럽 등반대에 의하여 녹화되어 중국 국경수비대의 잔인한

살해 장면이 세상에 알려지며 빼앗긴 들에 봄이 오기를 염원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더 이상 피 흘림도 없이 평화로운 조국을 찾고 싶어서 비폭력으로 조용한 독립운동이

폭도로 매도되어 무참히 제압당하고 있는 현실.....   

 

띠시따게라는 티베탄의 마름모꼴의 고유 문양의 의미는 건강과 만수무강을 염원합니다.

지금 티베탄의 지도자이신 달라이 라마는 오바마를 만나기 위해 미국을 방문 중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제임스 힐턴이 쓴 소설에서는 인도의 폭동을 피해 이곳 샹그릴라에 있다는  

"Blue moon"으로 왔지만, 현실에서는 이곳의 주인인 티베탄은 반대로 목숨을 걸고

샹그릴라를 탈출해 인도의 다람살라로 가기를 염원합니다.

세상에 진짜 샹그릴라는 도대체 어디입니까?

세상에서 가장 많이 발행되는 중국의 당기관지 중 믿을 수 있는 정보는 온도도

믿을 수 없고 진정 날짜밖에는 믿을 게 없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