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花閭)라는 아름다운 마을 이름의 호아루

2009. 5. 6. 00:02동남아시아 여행기/베트남 종단 배낭여행

11월 20일 여행 21일째.

어제저녁에 신청한 투어버스를 아침 8시에 숙소 앞에서 기다리다 버스에 올랐다.

우리를 태운 미니 버스가 구 시가지 호텔을 30분간 빙글빙글 돌면서 예약 승객을 태운다.

8시 30분이 되어서야 호아루를 향하여 출발한다.

 

우리 미니 버스에는 우리 부부 포함 모두 8명이다.

여러 나라 사람들로 국적이 모두 다른 국제버스다.

우리 부부 2명, 독일인 남자 1명, 프랑스 여자 1명, 네덜란드 부부 2명, 그리고 수상한 스위스 커플 한 쌍.

모두 젊은 사람들이고 네덜란드 부부는 우리처럼 연식이 조금 지난 구형이다.

 

버스가 출발하자 자기소개하란다.

네덜란드 남자는 한 사람씩 소개될 때마다 그 나라 말로 인사를 한다.

"굿텐 모르겐" "봉쥬르" 그러다가 佳人 차례에 유창한 인사가 스톱~~~

자신의 어학 실력을 자랑하다 佳人의 소개 때 태클에 걸려 팍~자빠진다.

 

"니 하오? 곰 방와?"

동양인은 일본인이나 중국인만 있는 게 아니네. 이 사람아.

" 안녕하세요닷~~~ 마"

물끄러미 쳐다보며 " 안뇽....? 마?"

"임마가 기분 나쁘게 임마 점마 하지 말고 마는 빼라~"

"안 녕 하 세 요"  또박또박 말해준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즐겁게 여행길에 나선다.

 

그런데 독일 남자만 멀뚱 거리고 프랑스, 스위스 커플 그리고 네덜란드 부부는 코로 바람 빠지는 소리처럼

들리는 프랑스어로 떠들며 간다.

지들이 하는 말 佳人이 알아 들어도 관심 없네~~.

출발해서 1시간 정도 지나니 휴게소라고 세운다.

 

화장실도 다녀오고 그냥 눈요기나 한다.

 

꽃 파는 베트남 꽃순이들...

 

너는 왜 이곳에 있니?

저 배 위 선수에 올라 양팔 벌리고 달려봐?

그러면 佳人이 정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되는겨?

 

1번 고속도로다.

오토바이, 자전거, 트럭, 버스가 사이좋게 함께 달리는 평등한 국가...

그래.... 그냥 가는 거야~~

통행료는 차량만 낸다.

 

그런데 왜 통행료를 받는 곳에는 꼭 두 사람이 근무를 하는지.

표 파는 사람과 바로 몇 m 앞에서 다시 확인하는 사람.

믿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일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일까?

 

과거 동독이 패망하기 전 식당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하루에 10명도 오지 않는 식당에 근무하는 사람들만 25명이었단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우리들의 눈으로는 절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도 있다.

 

다시 달려 1시간쯤 호아루라는 곳에 도착한다.

호아루는 한자로 화려(花閭)를 말한다.

1.000여 년 전 비엣족의 첫 통일 국가가 이곳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이전까지는 천여 년간 중국의 지배하에서 지냈다.

베트남인들에게는 이곳이 성지와도 같은 곳이리라.

 

당시만 해도 베트남은 중남부 지방에 강력한 참족의 참파 왕국이 있을 때라 비엣족은 북부지방에 근거를

그 세력이 크지 않았을 것이다. 

이 시대는 우리나라는 고려가 건국되었을 시기다. 

중국의 구천이 세운 월나라의 월족이 곧 비엣남(vietman)의 비엣(越)과 같은 민족이란다.

중국인들은 이 월나라 사람이면서 광동, 광서 이남의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사람들을 남월사람들이라

불렀단다.

 

베트남은 광동, 광서지역과 베트남 북부지역에 뿌리를 두고 명맥을 유지하였으나 결국 중국에 영향아래

있다가 한무제가 한반도에 한사군을 설치할 때 마찬가지로 중국에 복속되었다.

한무제는 광동, 광서에 4군을 설치하고 기원전 111년에 홍강 델타지역에 3군을 설치하였다고 한다. 

중국의 월남 지배는 당나라가 멸망할 때인 938년까지 1천여년을 지속한다.

그래서 베트남이 중국과의 1.000년 전쟁을 하며 지킨 나라라고 자부심을 갖고 있다.

예전 왕궁터였음을 떠올리게 하는 이런 유적만 남아있다.

 

호아루의 중요성은 최초로 중국으로부터 독립한 베트남 왕조의 시작이라는 점이다.

그 후 李太祖라는 리 따이 또가 탕롱이라는 하노이에 1.010년 수도를 정하며 강력한 리 왕조를 연다.

 

입구에 차를 내리니 물소 탄 노인이 있다.

이곳에서는 물소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곳 호아루 출신인 딘보린(丁部領)은 어렸을 때 물소 돌보는 일을 하며 자랐으며 아이들과 전쟁놀이를

할 때 늘 물소를 탄 골목대장이었다.

딘보린은 베트남인들에게 딘 띠엔 호앙(丁先皇)이라는 이름으로 추앙을 받는 중국으로부터 최초의 독립

왕조를 세워 베트남을 독립시킨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곳의 지리적 이점은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방어에 용이하다는 점이다.

당시의 규모는 알 수 없고 지금 이곳에는 두 왕을 섬기는 사당만 있을 뿐이지 별로 볼만한 가치가 없으나

땀꼭 가는 길목에 있어 끼워 팔기 하는 관광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딱 하루 코스가 되니까.

 

그래도 왔으나 보고는 가자.

사당 입구를 들어서니 타이빈(太平)이라는 글자가 있는 커다란 깃발이 걸려 있다.

태평이라는 말은 970년 처음 이곳에 도읍을 정하고 건국을 선포하고

베트남 역사상 처음으로 정한 연호다.

 

사당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최초 이곳에 터를 잡은 딘(丁) 왕조의 딘 띠엔 황(丁先皇, 정 씨 왕조의 선왕이라는 의미)이라는

왕을 모신 사당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부하 장수로 있던 레 호안(黎桓) (후에 레 다이 한(黎大行)이라고 불리며 추앙을 받는다)

을 위한 사당이다.

딘왕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다.

딘왕은 셋째 아들인 딘 항랑을 황태자로 삼자 통일에 중추 역할을 한 큰 아들인 딘 리엔은 이에 불만을

품고 사람을 시켜 딘 항랑을 살해한다.

그러나 1년 후 도틱(杜釋)이라는 신하에게 딘 리엔은 아버지와 함께 살해를 당한다.

한마디로 줄초상이 난 거다.

 

일이 이렇게 전개되자 유일하게 살아남은 둘째 아들 딘 또안이 6살의 어린 나이로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되고 아버지에 의해 십도장군(十道將軍)에 지명된 레 호안(黎桓)이 자연스럽게 섭정을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역사의 스토리는 뻔하다.

 

레 호안은 부왕이라고 칭하며 서서히 권력을 장악하지....

왕궁에서 매일 밤늦게 까지 정무를 보다가 선왕의 부인과 흉흉한(?) 러브스토리가 새어 나온다.

신하들이 왕권과 부인까지 탐한다고 군사를 모아 레 왕을 습격하나 오히려 반격을 받고 모두 죽고 만다.

그러면 게임은 끝났다.

 

선왕에 의하여 십도장군이라고 병권을 부여받았지, 선왕의 첫째 아들이 막내를 죽여주었지,

신하 중에 한 사람이 선왕과 첫째 아들을 한꺼번에 죽여 주었지, 그리고 둘째는 코 흘리게 6살짜리....

푸 하하하하하~~ 

그래서 레 호안은 연호를 띠엔 푹(天福)이라고 정하고 두 번째 왕조를 연다.

왕권도 자연스럽게 쥐었고 덤으로 왕후까지.

그러니 하늘에서 복이 넝쿨째 굴러왔다는 이야기다.

 

사찰이라기보다 우리 눈에는 마치 무당집 같다는 생각이다.

선과 악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선이 이긴다고요?

이기는 자가 선이다. 

아마추어는 남을 상대로 싸우지만 푸로는 자기 자신을 상대로 싸운단다.

보통사람은 자신의 운명에 휩쓸릴 것이고 시대의 영웅은 운명을 개척하는 사람이다.

 

띠엔 푹(天福)이라고 연호를 연 레 호안은 셋째 아들을 후계자로 삼았지만 다섯째 아들인 레롱딘(黎龍鋌)

이 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다.

그는 요즈음 말로 하면 사이코 패스다.

 

매우 잔혹하여 걸핏하며 사람을 죽이고 죄인에게 잔혹한 형벌을 가하여 고통받으며 죽어가는 것을 즐겼다.

기름을 바른 짚을 죄인 몸에 감고는 불을 붙이거나, 나무에 올라가게 하고 나무를 베고, 죄인의 손발을

하나씩 잘라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즐기고, 강가에 우리를 만들어 죄인을 가두고 밀물 때 물이 들어와

빠져 죽는 모습을 보며 기뻐했다고 한다. 

 

그는 치질이 매우 심해 이런 모습들을 누워서 낄낄거리며 구경했고 정무도 누워서 보았기에

자빠져 왕 노릇을 했다고 와조(臥朝)라고 불렸단다.

 

참 성질 한 번 더럽다....

그런 더러운 성질을 지녀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즉위한 지 4년 만에 사망했으며 그때 그의 아들은 겨우 

열 살이었기 때문에 모든 신하들은 궁중의 근위대장이었던 리꽁우언(李公蘊)을 추대하여 재위에 오르게

함으로 레 왕조는 3대, 29년 만에 막을 내리고 베트남의 새로운 국가 형태의 기틀을 다진 리(李) 왕조가 탄생

하게  된다.

 

리 꽁 우언이 바로 리 왕조의 시조이며 가장 존경받는 리 따이 또(李太祖)다.

이듬해인 1010년 수도를 탕롱(昇龍)으로 옮기는데 이곳이 지금의 하노이로 이제 1.000년이 되어간다.

베트남에서는 모든 신하들의 추대에 따라 왕위에 올랐다고 하였으나 중국의 기록에는 리꽁우언이 겨우

열 살밖에 안 되는 어린 왕을 살해하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고 기록되었단다.

 

화려(花閭)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지닌 호아루에서 佳人이 들은  이야기는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그래도 역사는 승자의 역사다.

사진이나 더 보고 다음 관광지로 간다.

 

사당 입구에 앉아 전통 악기라는 아쟁처럼 생긴 악기로 연주한다.

그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늘 이곳에서 하염없이 연주를 하며 세월을 보낸다고 한다.

 

용 문양이 세파에 찌들었나?

닦기라도 하지.

자금성의 운룡대석조를 흉내 낸 듯하지만, 작품성이나 보존 상태는 아니지 싶다.

 

우리들과 함께 한 일행들이다.

가운데 빨간 스웨터를 입은 사람이 우리 여행의 영어 가이드다.

佳人은 가서 들어봐야 알 수 없어 혼자 사진이나 찍고 주위를 맴돌며 놀고 있다.

 

사당 앞으로 보이는 남산이다.

저리로 올라가면 이 지역을 다 내려다볼 수 있겠다.

이곳은 이렇게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그야말로 천연의 요새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면적으로 보아 수도로써 자리 잡고 있는 지역이 그렇게 넓어 보이지는 않아 보인다.

 

이곳은 후대에 세워진 사당으로 역사 속에만 남아있는 그런 곳으로 유적이라고는 별로 없는 곳이다.

보여줄 것도 볼 곳도 없는 그런 곳인 듯하다.

호아루.... 花閭라는 곳... 그냥 이름만 아름다운 그런 곳이다.

그럼 왜 갔느냐고?

 

차를 타고 가다가 내리라고 해서 그냥 얼떨결에 내렸다. 

그러나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껴야만 한다는 욕심을 버리고 마음으로 느끼고 영혼으로 즐기는 여행이

진정한 여행일진대.....

내가 귀가 멀면 멀쩡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벙어리가 되는 게 세상 이치다. 

아~~ 그래서 佳人은 아직도 초보 여행 중이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행복의 문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들이 열린다.
그러나 우리는 대게 닫힌 문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우리를 향해 열린 다른 문을 보지 못한다.

초보의 여행은 아직도 닫힌 문만 바라보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