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티아이 스레이 1

2008. 12. 26. 01:03동남아시아 여행기/시엠립 배낭여행

배낭여행 24일간 중 6일째/11월 5일

 

어제저녁에 도착했지만 오늘이 실질적으로 이곳 씨엠립 여행 첫날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났다.

그래봐야 한국시간 6시다. 

아침 식사는 숙소에서 무료로 제공된다고 한다.

 

우리는 덜 더운 아침 일찍 출발을 위해 식사를 6시 30분에 하기로 어젯밤 숙소와 약속했다.

일찍 일어나 주위를 산보하고 들어왔다.

그런데 식사 때가 지났는데도 식당에는 아무도 없고.... 

게다가 툭툭 기사도 30분 지각을 하여 결국 7시 30분에야 나타난다.

 

佳人 : "왜 늦었니? 어제 분명히 7시에 출발하기로 약속을 했는데...."

툭툭 : @#$%& (웃기만 한다.)

佳人 : "우산은 툭툭 안에 있겠지?"

툭툭 : "노~"

佳人 : "그래 그러면 내 우산 챙겨가면 된다. 아이스 박스는 있겠지?"

툭툭 : "노~"

佳人 : "그래 그건 더운 물이라도 먹으면 된다. 그러면 물은?"

툭툭 : "노~"

佳人 : "물도 내가 사면 된다. 그러면 입장권 보관 비닐커버 목걸이는?"

툭툭 : "노~"

佳人 : "그럼 지도는 있겠지? 우리가 어디부터 가는지는 알고 가야 하지 않겠니? "

툭툭 : "노~"

佳人 : "그럼 지금부터 나는 너를 <미스터 노>라고 부르마~ 그리고 계약한 일정만 딱 소화한다"

 

오늘의 일정이다.

할 수 없이 인공위성을 불러 지도를 챙겼다.

  

역시 우리의 인연은 잘못된 만남인 듯하다.

그래도 나는 어제 너와 약속을 했으니 2일 동안은 무조건 진행한다.

이제부터 2일간 모든 유적일정은 순전히 내가 자가발전하며 다니련다.

 

2일간은 툭툭, 그리고 3일째는 자전거를 빌려 다닐 계획이다. 

3782번~ 조금만 더 고객의 입장을 생각하면 더 좋을 텐데.......

 

골목길을 빠져나와 6번 도로에 진입하기 전 툭툭을 세운다.

佳人 : "왜 스톱?"

툭툭 : 손가락으로 입구에서 파는 휘발유병을 가리킨다. 그러니 지금 기름 넣고 간다는 말이다.

佳人 : "너도 참 딱하다. 어제저녁에는 뭘 하고? 밤에 미리 기름을 넣으면 기름통이 새기라도 하니?"

툭툭 : 또 웃는다.

佳人 : "웃지 마라 정든다~~ 미스터 노야"

이곳은 길거리에서 휘발유를 병에다 담아놓고 판다.

이제 진짜 출발이다.

 

자야바르만 7세 어린이 병원 앞에는 무료 진료를 받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장사진을 치고 있다. 

이곳은 문화 자체가 완전히 틀린다.

옆집 베트남은 중국의 영향과 유교로 인하여 인문학적이라면 캄보디아는 인도와 힌두교의 영향으로

신비적이고 신화적인 요소가 강한 문화다.

 

오늘은 유적 중 제일 먼 반티아이 스레이로부터 시작하여 가까운 앙코르 톰 북동쪽을 돌아본다.

사실 우리 부부는 이들과 대화가 여의치 못하니 코스를 모두 내가 선정하고 다닐란다. 

7시 55분 매표소 도착.

아른 아침이라 역시 한산하다.

사진을 찍고 있는 사이 울 마눌님은 벌써 표를 사고 있다.

3일권 40불이고 1일권은 20불, 7일권은 60불이란다.

 

佳人 : "나도 한 장 주시우~~"

매표원 : 손 내밀며 돈 달란다.

佳人 : 40불만 건넨다.

매표원 : 쳐다본다.

佳人 : "아~~ 마눌님도 있지?"

인터넷 영상통화하는 것과 비슷한 카메라로 사진 찍고 3일 입장권 즉석 발권.

우리 부부는 3일권으로 둘이서 80불을 지불했다.

 

이제부터 3일 동안은 마음대로 드나든다.

미리 준비해온 비닐 커버 속에 넣고 목에다 건다.

이곳은 유적마다 들어갈 때 출입증을 꼭 확인한다.

지금 우리나라로 치면 고려시대와 비슷한 시기에 동남아시아의 맹주로 한껏 폼을 잡았을 앙코르의 내부로 들어간다.

앙코르의 유적은 아래 사진 위에 있는 압사라 사업소(APASARA AUTHORITY)라는 베트남계 회사다

이곳에 근무하는 모든 직원들은 정부 관리들이 아니라 개인 회사의 직원들이다. 

 

시원한 아침 공기를 가르며 반티아이 스레이를 향해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길을 달린다.

오히려 툭툭이 이런 길을 달리는 데는 택시보다는 더 좋다는 생각이다.

  

佳人 : "툭툭 스톱~~"

툭툭 : 길 가에 세운다.

우리 툭툭에서 내린다.

마눌 : "계세요? "

우리말을 알아들을 리 없지...

 

가져간 옷 보따리 중 일부를 전해준다.

우리가 가져간 옷은 새 옷이 아니다.

아이들이 입다가 이제 입지 않는 헌 옷이지만 깨끗하게 세탁하여 들고 간 옷들이다.

반바지만 입고 계시다가 치마처럼 생긴 천을 그 위에 두르신다.

아마 이분들의 전통 옷을 입고 예의를 갖추는 게 아닐까?

 

반티아이 스레이로 가는 길에는 시내와는 달리 그곳에 사는 시골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거 아세요?

캄보디아 사람들의 행복지수는 세계 5위 안에 든다는 사실.

비록 비가 새는 이런 허름한 판잣집에 살아가지만, 그들이 느끼는 행복이란 우리보다 높다는 겁니다.

행복이란 경제적으로 조금 더 윤택한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 느껴야 하나 봅니다.

방으로 올라오라고 해 올라가 잠시 머물다 떠납니다.

부인은 앓아누워있고 눈이 보이지 않아 앞을 볼 수 없다고 하네요.

우리가 한 일은 그냥 옷 보따리만 전해주고 온 작은 일이었다.

 

약 1시간 걸려 오전 9시경에 "여인의 성채"라는 반티아이 스레이에 도착했다.

이곳은 주요 인근 유적군 중 시내에서 가장 먼 곳으로 37km 떨어져 있다.

그래서 툭툭 기본요금에 추가로 5불 정도 더 지불해야 한단다.

이제 툭툭을 내려걸어 들어간다. 

 

입구에는 기념품 가게들이 들어차 있다.

맨발의 스님이 탁발이라도 나오셨나 보다.

캄보디아인들은 불교 국가답게 인사를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한다. 

 

이제부터 들어갑시다.

지금부터 佳人이 쓰는 유적에 관한 글은 순전히 佳人 혼자만의 생각이다.

정확한 역사나 고증은 시험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 뒤지면 다 나온다.

그러니 佳人만이 보고 느낀 이야기들이다.

누구나 자신이 편한 방법대로 보고 느끼면 되는 게 아닌가? 

  

이 사원은 왕명에 의해 만든 게 아니고 어떤 귀족 승려가 만들었단다.

그는 미래의 왕이 될 왕자의 교육을 담당했으며 이 지역의 땅을 봉토로 허락받은 인물이다.

그가 가르친 자야바르만 5세는 결국 그의 훌륭한 가르침 덕분에 왕이 되었으며 이 시기는

앙코르의 가장 평화로운 시기로 당시에 우리나라는 고려시대였다.

그 후 앙코르제국의 융성과 패망 시기는 고려 중반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이어진다.

 

이 시대의 고려는 실록이라는 역사를 남겼고 국자감이 설치되었으며 과거시험이 실시된 때이나 이들은

문서로 남아있는 역사적 자료는 없고 단지 신전만 남았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섬세하게 조각칼로 파 놓은듯한 참 아름다운 유적으로 발굴 당시 프랑스 유물

탐험단이 이곳에 와 보고는 너무 보석처럼 아름다워 밀반출하려다가 걸렸단다.

그때의 프랑스 탐험단의 단장이 "인간의 조건"이라는 책을 쓴 유명한 앙드레 말로였다나?

말로의 인생 末路는 결국 탐험단이 아니고 도굴단이었다.

 

원래 너무 아름다우면 손을 타게 마련이다.

우리 속담에도 "미인박명"이라고 하지 않았나.... 

산스크리트어로 남아있는 반티아이 스레이의 기록.

 

출입문 문틀 위에는 고깔모자를 쓴 귀여운 인드라 신(번개와 홍수의 신)이 자기 자가용인 머리 셋 달린

(그러니 코끼리 코가 모두 3개로 3기통인가?) "아이라바타"라는 코끼리를 탄 섬세한 조각이 있다.

참 예쁘고 탐이 나긴 난다.

그런데 X배가 나왔다.

 

다시 크게 더 확대하여 보자.

인드라 신은 앙코르 왓의 유해 교반에 관한 부조를 보면 제일 위에서 일은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누워서

총감독만 하고는 1.000년 만에 3기통 코끼리를 그냥 날로 건져 무면허로 타고 다닌다. 

그 밑에는 깔라가 무서운 얼굴로 탑문을 지키고 있다.

 

뭐 사실 걸신인 깔라는 배가 고파 얼굴만 남기고 자기 몸을 죄다 뜯어먹은 꼴통 신이다.

그래서 모든 출입문 문틀 위를 보면 오늘도 뭐 먹을 게 없을까 하고 눈을 부릅뜨고 있다.

순전히 눈과 입만 가지고 있는 걸신이다.

 

중국 곡부에 가면 공자의 집이 있는데 집 문을 나서는 데 외부와 가로막은 조벽에 탐이라는

동물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탐의 모습과 행동이 바로 깔라와 같은 역할이다.

너무 욕심만 내지 말라는 경고인 셈이다.

 

천여 년 전에 만든 조각이 마치 어제 만든 것처럼 어찌 이리도 고울까?

사암과 라테라이트로 이루어진 정교한 부조는 감탄을 자아낸다.

씨엠립의 유적군 중 크메르 루주에 의해 마지막까지 장악되었던 지역으로 가장 늦게 공개된 유적이다.

 

유리도 없는 창문의 창살이 이곳 지방에 흔한 연꽃의 씨앗인 연자(蓮子) 문양이다.  

아니면 주판알인가?

대부분 홀수로 연자 창살을 만들었다.

 

佳人은 아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라 기절할 뻔했다.

아~~ 이런 캄보디아 개들은 2개 국어는 충분히 하나 보다.

佳人은 한국말 밖에는 아는 게 없는데...

앞으로는 캄보디아 개들을 존경해야 할까 보다.

베트남에서는 지렁이 보고 놀라 자빠질 뻔했는데 여기서는 아무 곳에서나 돌아다니는 개를 보고....

 

이제 우리는 인드라 신이 내려다보는 고푸라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다.

佳人이 출발 때부터 어제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비가 온 이유는 인드라 신 때문인가? 

 

길게 보도가 늘어서 있다. 예전 건축 당시는 이곳에는 목조로 만든 지붕이 있는 회랑이 있지 않았을까?

양쪽에 기둥이 서 있는 것으로 봐서는....

보도 옆 양쪽에 좌우로 불끈 솟아 있는 것은 남성의 심벌인 쉬바 신의 거시기라는 링가가 아닐까?

 

중간 탑문 문틀 위에는 소를 타고 뒤에 여인을 태운 저 팔자가 좋은 신은 누구일까?

아마도 쉬바 신일 것이다. 그럼 뒤의 여인은 그의 부인인 히말라야의 딸이라는 파르바티 여신?

쉬바 신은 팔자도 좋으셔~~ 마눌님 모시고 소 타고 놀러 다니게.

쉬바 신이 타고 다닌다는 전용 자가용인 난디라는 소 때문에 그래서 인도 사람들은 쇠고기를 먹지 않나 보다.

쉬바 신이시여~~ 그래서 佳人은 오늘 마눌님 모시고 툭툭 타고 놀러왔쪄~~

쉬바와 파르바티의 만남은 까마라는 사랑의 신이 화살을 쏘아 이루어지게 되었단다.

그러니 까마가 매파 역할을 한 결혼상담소 소장인 모양이다.

 

더 크게 확대하여 난디라는 소를 타고 다니는 쉬바와 파르바티의 데이트 현장을 몰래 보자.

미스 히말라야였던 파르바티는 부끄럽다고 얼굴을 감추고 말았다. 

그래도 쫄쫄이 반바지를 입은 쉬바 신의 팔은 꼭 끼고 있구나.....

난디의 뒷다리 사이를 보면 황소가 분명해....

이 문틀 부조를 만든 장인은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자세히 묘사를 했다.

 

그런데 사랑의 신이라는 까마가 파르바티의 청을 받아 쉬바에게 화살을 쏘았다고 했다.

이럴 경우 쉬바가 파르바티 말고 까마를 사랑하면 어찌 되나?

세상을 살다 보면 소개해 주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경우도 가끔 있지 않는가?

 

파르바티는 원래 인간이었는데 쉬바 신의 카리스마에 홀딱 빠져 까마라는 사랑의 신에게 중매 수수료를

지불하고 자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세상의 여인들이여~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으면 까마에게 부탁하자.

결혼 성공률 100%를 쉬바신의 이름으로 보증한다.

이 기둥은 마치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을 보는 듯하다.

 

내일도 아름다운 반티아이 스레이를 더 돌아보자.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결혼을 앞둔 선남선녀들이여....

무엇을 망설이시는가?

여자든 남자든 내가 먼저 사랑의 꽃 화살을 쏘자.

      머뭇거리다가는 까마의 화살을 먼저 쏜 사람에게 가버리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