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심벨 신전(Abu Simbel Temples) 들어가기

2023. 7. 21. 03:00이집트여행 2024

 

사진에 두 개의 신전이 보이는데 오른쪽 앞에 있는 신전은 람세스 2세가 끔찍이도 사랑했던

부인 네페르타리를 위한 소신전이고 왼쪽에 멀리 보이는 신전은 람세스 2세가 열심히

일한 자신에게 편히 쉬기 위해 만든 셀프훈장과도 같은 대신전으로

두 개의 신전은 100여 m 떨어져 있습니다.

 

 

아스완을 새벽에 출발한 우리는 아부심벨로 오는 도중 중간지점에 있는 간이 휴게소에 잠시

쉬었다가 출발한 지 4시간 30분 만에 아부심벨에 도착했는데 지도에서 보면 아스완에 댐을

두 개나 건설하며 수단에서 흘러 사막을 흐르던 나일강에 

나세르 호라고 거대한 호수가 생겼네요.

 

 

호수가 생긴 것 때문에 나일강 주변의 모든 것이 물에 잠겼으며 오늘 구경할 아부심벨

  신전도 당연히 물에 잠기게 되었기에 필레 신전처럼 유엔에서

지금의 자리에 해체하여 옮기게 되었지요.

마치 레고블록을 쌓듯 일정 크기로 잘라내고 지금의 위치에 다시 조립한 모습입니다.

 

 

아부심벨 신전의 입장은 오전 6시부터 오후 5시까지로 되어있기에 대부분의 여행자는

아스완에서 오가기에 왕복시간을 계산해 정오 이후에는 아스완에서 거의 출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여행사에서는 주로 야간 침대열차를 이용해 카이로에서 출발해 아스완에

아침에 도착하는데 만약, 열차가 연착하면 아부심벨 신전 구경을 포기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곳 신전은 람세스 2세가 자신과 부인을 위한 두 개의 신전을 세웠는데 이름을

람세스 2세 신전이라고 부르지 않고 아부심벨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1813년 이곳을

세상에 널리 알린 스위스 탐험가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하르트를에게 신전을 안내했던

소년의 이름이 아부심벨이었다고 합니다.

 

 

람세스 2세가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아이에게 자신의 신전 이름조차 빼앗겼으니

얼마나 황당해할까요?

그때는 람세스 2세가 천하를 호령했지만, 죽고 난 후 세월이 흐르니 동네 아이에게도 밀린

셈으로 위의 사진에 보이는 아부심벨 신전을 이전하며 새롭게 돌산을 쌓아가며

만든 게 확실히 보이네요.

 

신전의 뒤를 보면 위의 사진처럼 평지에 흙으로 쌓아 올리고 앞에는 원래 신전이 있던 

돌산을 일정 크기로 잘라 쌓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유적을 살리기 위해 이 어려운 일을 유엔의 유네스코에서 했지 뭡니까!

 

 

바로 1959년 아스완댐 건설로 나일강의 수위가 올라가

바다처럼 넓게 변한 나세르 호수입니다.

그러나 위의 사진에 보듯이 수위 상승으로 원래 강가에 있던 유적이 물에 잠긴 것입니다.

가말 압델 나세르는 바로 아스완 지역에 댐을 만든 당시 이집트 대통령이지요.

 

 

그는 이집트의 국부로 칭송받는 인물로 군인출신의 정치가로 유적이 물에 잠기든 말든

무조건 현재 사는 이집트인이 매년 발생하는 홍수로부터 탈출시키고 발전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공사를 단행했던 인물이라고 하네요.

 

 

그러나 유엔을 중심으로 세계의 많은 나라가 수몰 위기의 유적을 살리기 위한 작업이

시작되어 먼저 보았던 필레 신전처럼 이곳도 원래 신전을 일정 크기로 잘라

다시 지금의 위치에 옮겨 위의 사진처럼 재조립하여 살린 것이지요.

 

 

이 두 개의 신전을 옮기는 공사는 1964년부터 1972년까지 8년 동안이나

이루어졌으며 모두 1.042개의 조각으로 잘랐다고 합니다.

그러니 장소를 바꾸어 이전 신장개업한 셈이 되었네요.

 

 

그러나 많은 신전이 물속에 처할 위기에서 많은 후원을 했던 나라에 이집트 정부에서는

작은 신전을 무상으로 주었는데 스페인 마드리드에 가면 데보드 신전이라고 있는데

바로 그런 신전이 이집트가 아닌 다른 나라에 여러 개가 가게 되었답니다.

 

 

아부심벨 신전은 워낙 큰 신전이기에 다른 나라로 옮길 수가 없어 지금 이 자리로 이전했습니다.

나일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안전하게 옮겨 자리했습니다.

당연히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곳으로 따라서 카이로에 있는 쿠푸왕 피라미드와

더불의 이집트를 대표하는 문화재 투 탑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합니다.

 

 

람세스 2세는 무려 66년간을 파라오로 이집트를 통치하며 수많은 유적을 건축했지만,

그중 최고의 건축물을 그에게 묻는다면 서슴지 않고

오늘 구경하는 아부심벨 대신전이라고 했을 겁니다.

그런데 람세스 2세 대신전이 아니고 아부심벨 대신전이라고요?

이러니 람세스 2세가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통곡했을 겁니다.

 

 

그 이유는 이곳 대신전을 발견했던 당시 이 신전으로 안내했던 양치기 소년의 이름이

아부심벨이었기에 지금의 모든 사람이 이 신전을 공식적으로

아부심벨 대신전이라고 부르기에 그런 이름이 되었다네요,

대단했던 람세스 2세도 아이에게 이름을 양보한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아스완 댐의 건설로 이 신전이 수몰될 위기에 빠졌고 많은 나라가 이 신전을 보호하기 위해

유네스코는 1964년부터 8년간 세계 50여 개 국을 상대로 당시 물가로 360만 달러라는 거금을

모금하여 신전을 원래 위치보다 62m 정도 더 위로 올리는 비용을 충당하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신전은 석조건물이기에 그냥 들어 올릴 수는 없었기에 1.042조각으로

일정 크기로 잘라 옮겨 지금의 위치로 자리하게 되었다네요.

이 일이야말로 우공이산이 아니겠어요?

 

 

중국에서는 말로만 우공이산이었지만, 이집트에서는 실제로

그런 일을 했다는 말이 아닌가요?

물론, 이 일을 한 것은 이집트 정부가 아니라 유엔이었지만, 이번 유적보호를 위해

지금 우리가 아는 유네스코라는 기관이 하는 일이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유네스코에서는 조직적으로 세계문화 보존을 위해 유산으로 정하는 사업을 하며

기금을 조성해 문화재가 유지보존되도록 경제적으로도 지원을 계속하고 있으니

아부심벨의 역할은 세게 문화유산을 위해 그 디딤돌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이 위대한 유산의 지키는 일에 우리나라도 1963년 10월 1일에 위의 사진에 보이는

우표를 발행해 지원하기도 했다는데 비록 당시의 한국은 세계에서 가난한 나라에

속했지만, 작은 돈이나마 이렇게 모아 지원했다는 게 대단하지 않나요?

 

 

처음 유럽인에게 발견 당시의 모습입니다.

신전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모래에 묻혀 입구를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간신히 모래를 제거하고 입구로 들어갔을 때의 모습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모래 속에 파묻혀 오랜세월을 견뎠기에 신전 내부도 온전하게 보존되었을 듯합니다.

외부도 이집트는 사막기후라 비가 거의 내리지 않기에 신전 파사드도 잘 보존되었을 것이고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이집트 사람에게 이집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는 누구였냐고 질문한다면 

아마도 가장 많은 사람이 선택하는 인물은 파라오인 람세스 2세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랬던 그도 세월이 흐르며 세상이 변하니 이제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나 봅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건축한 신전의 이름조차 동네 어린아이의 이름으로 바뀌었고 

원래 신전이 있던 곳은 아스완댐 공사로 호수로 변한 물속으로 가라앉고...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생각나는 오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