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덕사(龍德寺)와 용덕 저수지

2022. 11. 1. 04:00금수강산 대한민국/경기, 인천

오늘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묵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사의 말사인

용덕사와 그 부근에 있는 용덕 저수지를 돌아보려고 합니다.

두 곳이 그리 멀지 않아서 반나절 산책하기에는 아주 좋은 곳이네요.

 

용덕사의 대웅전 뒤편에 용이 살았다는 굴이 있어 굴암절이라 불리기도 했다네요.

신라시대에 창건했다고 하니 천 년 사찰이네요.

그러나 절의 규모는 무척 작고 아담한 곳이었습니다.

일주문을 지나 오르막으로 올라가는 길에 보이는 소나무가 아주 멋을 풍기네요.

 

용덕사는 1792년(정조 16)에 편찬된 『용인군성륜산굴암용덕암창건기(龍仁郡聖輪山窟巖龍德菴創建記)에 따르면,

신라 문성왕(文聖王) 때 염거화상(廉居和尙)이 초창하였고,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중수하면서 3층석탑과 철인(鐵人) 3위를 조성하였다고 합니다.

현재 철인 3위 중 1위는 도난당하고 2위는 경기도 화성시 송산동 용주사 박물관에 있답니다.

 

1914년 5월에 기록된 (불량전답헌납기(佛糧田畓獻納記))에 따르면, 1792년의 기록에 덧붙여

조선 중기에 석담선사(石潭禪師)가 중건하였고, 1825년(순조 25)과 1884년(고종 21)에

각각 승려 정사(淨舍)와 성월(聖月)이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네요.

 

따라서 용덕사의 경우 염거화상, 도선국사 이후의 변천 과정은 알 수 없고,

조선 중기에 석담선사가 사찰을 중창한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에 대해서만 알 수 있다고 봐야 하겠네요.

그러나 (불량전답헌납)에 따르면 이동읍 일대의 전답 가운데 대부분은 용덕사의 소유지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말기까지 상당한 사세를 떨쳤던 사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찰의 창건주인 염거 화상은 신라 말기의 인물이지만 사찰에 신라 말기의 유적이나 유물로

추정되는 것은 없고 다만 미륵전에 모셔진 석조여래입상만이 시대적으로 좀 더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작품으로 추정될 뿐이랍니다.

 

또한 도선국사가 지기(地氣)를 누르기 위해 3층 석탑을 지었고, 철인을 만들었으며,

용덕사를 중수했다는 기록은 실제로 이곳에 3층 석탑과 철인 2위가 남아 있어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으나,

이 탑과 조형물이 도선국사가 생존했을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기는 근거가 없다고 합니다.

따라서 후대에 도선국사의 도참설(圖讖設)과 비기설(秘記設)을 적용하여 중건한 것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네요.

그리고 근처에 있는 용덕 저수지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용덕 저수지는 둘레길을 잘 만들어 놓았습니다.

다만, 위의 사진에 보이는 제방뚝 끝에 수문을 만드는 과정에 길을 막아두었더라고요.

공사가 끝나면 한바퀴 완전하게 돌아볼 수 있겠네요.

용덕사 위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