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야기 한 토막

2023. 12. 27. 04:05佳人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佳人의 이런 저런 그런 이야기

 

그들은 결혼 후 한 번도 떨어져 지내지 않고 44년을 같이 살았다.

44년간은 그야말로 순탄한 결혼생활이었단다.
 

"우리 결혼하면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요?"
44년 전 청혼하는 그녀에게 즉시 그러자고 대답한 그.
그녀에게 생명의 환한 광채가 느껴졌단다.
그럴 수 있겠지.


그녀가 그레게 청혼했을 때가 겨우 18세였으니....
새 순이 올라오는 듯한 기운이 그녀 주변에 넘쳤겠지...

  함께 스키를 탄다.
 활강보다는  크로스컨트리...
그들의 삶도 긴 거리를 달리는 크로스컨트리 스타일이다.

  함께 이야기한다.
뭐든...
감추거나 숨기지 않고...

  함께 산책을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함께 식사를 한다.
 매일매일...

  함께 책을 본다.
  잠들기 전 남편은 그녀에게 오딘의 "아이슬란드에서 온 편지"를  읽어 준다.

 

 

남편은 교수였다.
 젊고 아름다운 여학생들이 주변에 널려 있었고
 그중에는 죽자 살자 하며 따랐던 그를 사랑한 여학생도 있었다.

 많은 유혹이 있었지만
그녀를 떠나지도 않았고
그녀를 버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생명의 광채가 넘쳤던 그녀에게 알츠하이머란 병이 찾아왔다.
 불이 환하게 켜진 큰 저택의 수많은 방에 불이 하나하나
 꺼져  가다 마침내 저택이 어둠 속에 잠겨 버리는 것과 같은 병이라고 한다.

 최근 기억부터 사라 진단다.
 프라이팬을 냉동실에 넣는다거나
 와인을 와인이라 부르지 못하거나
 편지를 우체통에 넣어야 하는 걸 모르고
 극장 안에 불이 났을 때 어디에 전화해야 하는지 생각나지 않고
스키를 타고 나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린다.

그녀는 결심한다.
병이 더 깊어지기 전에 요양원으로 들어 기기로,,...

 

 

 알츠하이머 전문 요양원의 규칙은
 처음 한 달간 면회 금지다.
 한 달은 요양원 생활에 적응하는 최소의 기간이란다.

 부부는 결혼 후 처음으로 떨어져 지낸다.
 한 달 후 그가 그녀를 다시 찾았을 때는 그녀는 남편을 감쪽 같이 잊어버렸다.
 그곳에서 입원 중인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져 버린 것이다.

 이제는 모든 것을 그 남자와 함께 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카드 게임을 하고 함께 산책을 하고 함께 이야기한다.

 남편은 힘에 부치도록 그녀를 위해 온갖 수발을 다 들어주고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헝클어진 머리를 한  그녀의 모습에
 가슴 아파하면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를 찾아간다.

 그녀를 포기하지 않고
 그녀 곁을 떠나지 않는다.

그녀를 떠나는 건 오히려 잠시 입원 동안 함께 지내며 사랑에 빠졌던 그 남자였다.

 

 

 남자가 요양원을 떠나자 그녀는 상실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절망에 빠져 점 점 병이 깊어 가는 그녀...

 기분전환을 해 주려고 20년간 살았던 집으로 데려와도
 다시 데려다 달라는 그녀를 요양원으로 보낸 후
 그는 결심한다.

그녀를 멀리멀리 보내 주기로....

 그녀의 사랑을 되찾아 주기 위해 그 남자의 집으로 찾아가
 그 남자의 부인에게 사정한다.
 자기 아내가 사랑하는 그녀의 남편을 요양원으로 보내 달라고...

 사랑하는 아내의 사랑을 되찾아 주기 위해
 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것과 하기 힘든 것 모두를  한다.

 아내가 사랑에 빠진 남자를 아내에게 선물로 데려 온 남편
 꺼져 버린 그녀의 방에 잠깐 불이 들어온 것일까?
 그녀는 남편을 알아본다. 

 

 

 남편이 읽어 준 오딘의 "아이슬란드에서 온 편지"를 기억해 내고
 남편에게 당신은 나를 버릴 수도 있었는데
 버릴 수도 있었는데
 버릴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고.........

하며 꼭 안아 준다.

 

멀리 떠나기 전 그녀는 남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 것일까?
 남편에게 마지막 선물을 한 것일까?

이런 남편이라면 44년 아니라
 100년이라도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이 아니라 천사의 수준...
 너무 쉽게 헤어지고
 너무 쉽게 잊히고
 너무 쉽게 사라지는
 요즘 사랑...


이런 남자라면 전설 같은 사랑을 남길 수 있겠지...
현실에는 없고
영화에서나 있는 남자일까...


"진실은 그게 아닐까?

비록 우리 이렇게 멀리 고역의 땅으로 흘러와 후회할지라도
 계속 마음을 다잡아 공통의 신념을 위해
 개인의 다른 생각은 버리고 손을 잡고, 발을 맞추어
 이겨내야 하지 않을까?"


오딘의 "아이슬란드에서 온 편지" 중에서....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하며 또 한 살을 먹으며 이런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 같은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슨 연유일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