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비엔나 순환도로 링 거리

2022. 3. 2. 05:00독일·오스트리아 2018/비엔나

아름다운 샘이라는 쉰부른 궁전 구경을 마치고 비엔나 시민의 긍지인 슈테판 성당으로 갑니다.

슈테판 성당에 관한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자긍심은 대단하더군요.

그곳으로 가기 전에 버스로 링 거리를 잠시 돌아보며 갑니다.

물론, 버스를 타고 도는 서비스로 차창 관광이라고 하지요.

버스에 앉아 링 거리를 구경하며 개인적이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위의 사진은 1869년에 지었다는 국립 오페라 하우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스트리아는 개인적으로 첫 번째 해외 방문지였습니다.

여행이 아니라 업무상 1989년 난생처음 해외로 비행기를 타고 나갔던 곳이었기에

감회가 새롭습니다.

물론, 당시는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기 이전이라 해외에 나간다는 일이 지금처럼 비행기 표만

끊으면 나갈 수 있는 게 아니라 여행 허가를 받아야 하기에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위의 사진은 모차르트 동상으로 보입니다.) 

그때는 비행기가 지금 중국과 러시아 상공을 지나는 항로가 아니라 태평양을 건너

미국 앵커리지에 일차로 도착해 급유한 다음 다시 출발해 대서양을 건너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한 다음 작은 비행기로 잘츠부르크에 들어갔다가 나중에 빈으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동상인가요? 흔들려버렸습니다.)

그때 잘츠부르크 상공에서 내리기 위해 선회할 때 비행기 창을 통해 내려다본 푸른 초원과

그 사이의 그림 같은 집은 마치 이곳은 천국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지요.

 

(위의 사진은 그리스 신전을 흉내 낸 국회의사당이 아닐까요?)

우리와는 다른 문화에 너무 충격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에 언젠가 다시 오자고 마음먹었기에

사실 이번 여행을 결정했나 봅니다.

사실 촌놈의 첫 해외여행이기에 더 감동했을 겁니다.

그때 마눌님에게 나중에 오스트리아 구경시켜주겠다고 약속하고 잊어버리고 살다가

이번에야 32년 만에 약속을 지키게 되었네요.

큰 짐을 던 홀가분한 기분으로 이번 여행을 즐기고 있습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청동 기마상은 아마도 라데츠키 장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스트리아가 낳은 불세출의 장군이라는 라데츠키 장군의 청동 기마상 아래

역시 신성로마제국의 문장인 쌍두 독수리가 보입니다.

오스트리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으로 남아있나 봅니다.

 

요한 슈트라우스가 개선하고 돌아오는 라데츠키를 위한 환영행사에서 연주했다는

라데츠키 행진곡은 지금 세상 어느 곳에서나 가장 많이 연주되는 행진곡일 겁니다.

위의 사진을 보니 장군이 고맙다고 손을 들고 지나가는 모든 사람에게 인사합니다.

 

한때는 세상을 모두 호령하기도 한 오스트리아지만, 지금의 오스트리아는

그리 크지 않는 나라입니다.

국토의 크기는 남한보다 조금 작고 인구 또한 8백만이 겨우 넘는 작은 소국으로 변했습니다.

 

위의 지도가 1914년경의 영토로 합스부르크가는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연합국가로 주변의

많은 나라를 다스리던 엄청나게 큰 나라였으며 당시의 면적은 남한 크기의 약 6배에 이르렀고

인구 또한 5천만이 넘는 유럽에서는 세 번째로 큰 대국이었습니다.

그때가 가장 잘 나갔던 시기였나 봅니다.

 

오스트리아라는 나라는 우리에게는 모차르트나 사운드 어브 뮤직이라는 영화로

더 많이 알려진 나라가 아닐까요?

그러나 오스트리아라는 나라는 유럽 역사에 있어 대단히 큰 위치에 있는 나라입니다.

한때는 유럽을 쥐락펴락했던 신성로마제국이었지요?

 

그때는 유럽 대부분이 오스트리아의 영향 아래 있었다네요.

바로 위의 사진에 보이는 샴쌍둥이 독수리 머리 말입니다.

하나의 머리에는 하나의 왕관만 쓸 수 있다고 머리를 두 개 만들어 왕관을

두 개나 올렸으니 말입니다.

오스트리아라는 나라는 세계 제일 차와 이차 대전과 무척 연관이 깊은 나라 이기도합니다.

 

결국, 제일 차 세계대전 때 줄을 잘못 서 패전 이후 주변국 모두 독립해버리고...

비스마르크가 독일 통일을 하며 오스트리아는 제외한다고 해

지금의 작은 나라로 남아버렸다고 하네요.

옛 영화는 그렇게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워낙 유럽의 가운데에 있어 예술가를 포함해 유명한 사람을 많이 배출한 나라로 정평이 나

있고 그런 유명한 사람을 빼고 오스트리아는 또 하나의 세계적인

걸출한 인물을 탄생시킨 나라이죠.

바로 히틀러 말입니다.

우리는 히틀러가 독일 사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는 언어가 독일어입니다.

사실, 지금이야 다른 나라였지만, 중세는 유럽 대부분이 도시국가로

지방의 영주가 대부분 다스리는 그런 형태였지요.

그들 스스로 힘 있는 선제후국이 되면 제후가 모여 황제를 선출하고 형식적으로는

국가의 형태를 갖추었으나 실은 지방분권이라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과거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의 모습과 같았을 겁니다.

 

우리가 춘추전국 시대에 중국을 보면 많은 제후국이 있고 그들 스스로 하나의 군주국을 두어

군주국을 다스리는 자는 하늘의 아들인 천자라 했고 제후국은 왕이라 칭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나 봅니다.

이런 질서를 깨뜨린 사람이 바로 진나라의 진시황이었지요.

 

오스트리아 국기는 이제 유럽 연합이 되며 점차 예전처럼 사용되지 않지만,

국기에 얽힌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오스트리아도 여느 유럽처럼 가로 줄무늬의 삼색기처럼 생겼습니다.

그러나 위아래는 붉은색이고 가운데는 흰색입니다.

국기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답니다.

 

1191년 레오폴드 헬덴섬 공이 십자군 원정 때 프톨레마이스 전투에서 워낙 많은 적을

무찔렀는데 갑옷 위에 걸친 흰옷이 피로 흠뻑 물들었답니다.

 

그런데 전투가 끝난 후 갑옷을 벗기 위해 갑옷 위에 입었던 흰옷을 벗기 위해

허리띠를 풀어보니 허리를 묶었던 띠 부분만 하얀색 그대로고 위아래는 모두 적의 붉은 피로

물들었기에 이때부터 이런 색을 국기로 사용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오스트리아 인구의 75%가 가톨릭을 믿는다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평생 세 번만 성당에 간다네요.

태어나 세례 받기 위해 영문도 모르고 부모 품에 안겨 처음으로 가고...

 

두 번 째는 결혼식 때 간다는데 우리나라처럼 웨딩홀이 없어 결혼식을 올릴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가고...

그리고 마지막 세 번 째는 죽어서 간다는데 이 또한 죽은 자신은 전혀 알 수 없고

다른 사람의 손에 들려 들어간다고 합니다.

물론 웃으라 하는 말이겠지만, 종교는 가톨릭이라 하지만,

그리 열성적으로는 믿지 않는다는 말이겠지요.

 

이제 우리는 비엔나의 상징인 슈테판 성당으로 갑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오늘의 佳人 생각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태생인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하는

비엔나 필의 라데츠키 행진곡으로 대신합니다.

저작권 때문에 올릴 수 없으니 그냥 마음으로 느끼시기 바랍니다.

모차르트도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났다죠?

성 앞에 붙인 폰(VON)은 귀족을 의미하는 말이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