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크스부르크의 중심 막시밀리언 거리

2021. 8. 9. 03:37독일·오스트리아 2018/아우구스부르크

아우크스부르크 대성당을 구경하고 큰길을 따라 걸어가며 시청사와 광장을 구경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다음 볼 곳은 시청사 광장부터 계속 뻗은 길이 하나 있습니다.

좁은 길 가운데로 트램도 다니고 무척 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거리입니다.

 

시청사 건물 앞을 가로지르는 대로를 막시밀리언 거리라 하나 봅니다.

이 거리가 아우크스부르크에서는 가장 번화한 거리라네요.

이 도시의 구경거리 대부분은 이 거리와 주변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유럽의 도시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큰 도시가 아니네요.

중국은 워낙 인구가 많아 작은 읍 단위의 마을도 유럽의 유명한 도시보다 규모가 크지요.

 

누가 우리를 보고?

어따대고 삿대질입니까?

그럼...

삿대질하는 그대는 뉘신고?

바로 이 도시의 이름이 이 사람으로부터 생겨났다지요?

 

시청 앞에 우선 이 도시와 관계가 많은 아우구스투스 분수가 보이고요.

분수처럼 생기지 않았지만, 겨울이 다가오니 지붕을 씌웠나 봅니다.

분수도 오래되었기에 유적으로 관리하는가 봅니다.

바로 시청 앞 광장 한가운데 분수를 만들고 그 위에 아우구스투스의 동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 분수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야외석을 갖춘 카페가 무척 많습니다.

늦은 가을이기에 조금은 을씨년스럽게 보일 수 있지만, 유럽 사람의 생활모습은 이렇게 야외에서 즐기나 봅니다.

더 추워지면, 담요를 덮고 야외 카페에 앉아있는 사람이 유럽인이지요.

 

도로를 따라 걷다 보니 분수가 많이 보이네요.

그렇습니다.

머큐리 분수, 1602년에 만든 헤라클레스 분수 등...

위에 보이는 사진이 머큐리 분수입니다.

그리스에서는 헤르메스라고 하던가요?

물론, 아래 사진은 헤라클레스 분수일 거고요.

 

헤라클레스 분수는 그리스 신화에서 사악한 뱀을 퇴치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표현해 놓은 분수입니다..

그런데 헤라클레스가 방망이로 뱀의 머리를 쳐 떨어뜨리면 환장하게도 또 그 자리에서 머리가 새로 솟아났답니다.

하나가 아니라 그럴 때마다 두 개씩 말입니다.

이게 꿈 속에 나타나면 우리는 악몽을 꾸었다고 하는 일이지요?

 

그러나 헤라클레스가 마부로 함께 데려간 사촌 이올라오스가 신의 지시대로 불을 이용해 헤라클레스가 몽둥이로

뱀의 머리를 자르면 얼른 떨어져 나간 부위에 불로 지져버려 다시 머리가 생기는 것을 막았다 합니다.

힘만 장사라고 해도 세상 살아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나 봅니다.

 

그런데 히드라는 이미 불로 지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나요?

히드라의 입에서 물이 나와 불을 끄려고 합니다.

 

제일 처음 헤라클레스가 이룬 업적은 바로 네메아의 수사자를 퇴치한 일이지요.

히드라를 없앤 일은 두 번째 업적입니다.

위의 사진이 바로 네메아의 수사자를 때려잡은 헤라클레스의 인증 샷입니다.

 

이때도 몽둥이로 때리다가 그래도 죽지 않자 잠시 사자가 지쳐 쓰러진 틈을 타 빠떼루 자세로 들어가 목 졸라

죽인 다음 가죽을 벗겨 옷으로 입고 다녔고 사자 머리는 투구로 만들어 쓰고 다녔지요.

이때 헤라클레스 나이가 18세.

나중에 제우스가 사자를 위로한다고 하늘에 별자리 사자자리에 올렸다네요.

 

헤라클레스는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12 업을 쌓았다고 하지요.

그중 하나가 바로 많은 해악을 끼친 히드라라고 하는 머리 아홉 개를 가진 뱀을 죽인 일화를

분수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헤라클레스 분수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유럽인이 생각하는 헤라클레스는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요?

 

잠시 길을 걷다 보니 위의 사진에 보이듯 건너편 건물에 눈에 익은 사람의 초상화가 걸려있습니다.

누굴까요?

佳人의 초상화는 분명 아닙니다.

벌써 눈치채셨군요?

 

바로 모차르트와 닮지 않았습니까? 

이런 일을 우리나라에서는 빼다 박았다고 하지요.

복사기로 찍어낸 듯 판박이가 아닙니까?

 

레오폴드 모차르트.

모차르트의 아버지인 레오폴드 모차르트가 태어난 도시랍니다.

이 도시는 또 모차르트와도 무척 관련이 깊은 도시라네요.

 

이제 막시밀리안 거리 끝까지 걸어왔습니다.

거리 끝으로는 성당으로 보이는 건물이 길을 가로막고 있네요.

 

아우크스부르크라는 도시는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과도 연관이 깊은 도시이다 보니

신, 구교가 같은 울타리 안에 함께 있는 그 유명한 성 율리히와 아프라 교회입니다.

신, 구교가 여기에 이렇게 함께 세운 성전의 의미는 화합과 용서가 아닐까요?

이런 모습은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랬기에 이 도시는 무척 역사가 오래된 독일의 도시라 합니다.

그러다 보니 독일의 역사상으로도 무척 중요한 위치에 있는 도시라네요.

여행을 하다 보니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됩니다.

 

13세기경 이 지방의 대부호 푸거는 예술에 많은 돈을 투자했나 봅니다.

바로 위의 사진이 푸거 궁전이라고 하는 건물입니다.

유럽에 부호는 예술에 무척 많은 투자를 하지요.

그때 이 도시가 최고로 발달했지만, 나치 독일의 광분으로 전쟁 말기에 이 도시는 연합국의 폭격으로

초토화되어 대부분 사라졌지만, 예전에 있었던 수십만 장의 사진을 모아 옛 모습대로 재건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푸거는 당시 돈이 엄청나게 많아 황제보다 더 큰 힘을 가졌다네요.

황제의 질투가 심했겠어요.

그때 영광의 흔적이 위의 사진처럼 아직도 남아 푸거 도시 궁전이라고 남아있습니다.

 

아우크스부르크의 관광은 대성당부터 시청사를 지나 성 율리히와 아프라 교회가 있는 곳까지 이어지는

막시밀리안 거리만 걸어보면 반 이상은 볼 수 있네요.

생각보다 그리 큰 도시가 아닌듯합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더 오래 머물며 구경하면 좋겠지만, 우리는 이제 떠나야 합니다.

이렇게 바람처럼 왔다가 구름처럼 떠나갑니다.

여행자는 발자국 외에 흔적을 남기지 말아야 합니다.

가져가는 것은 사진과 추억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