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가 세운 도시 아우크스부르크

2021. 8. 6. 03:36독일·오스트리아 2018/아우구스부르크

아우크스부르크는 바이에른의 남서부에 있으며 독일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자리에 있는 도시로

알려졌다는데 독일 뿐 아니라 유럽 역사에도 아주 큰 족적을 남긴 도시라 합니다.

사실, 이런 대단한 도시지만, 개인적으로 얼마 전까지는 아우크스부르크라는 도시는

알지도 못한 곳이었습니다.

우리 축구선수들이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활약하기 전에는 말입니다.

 

다른 도시에 비해 부유했고 화려했던 시절을 보내다 보니 천 년 이상의 오랜 역사를 지닌

아우크스부르크의 대성당은 청동문이 유명하고 두 사람의 성인 이름을 따서 지은 성 율리히와

아프라 교회는 신교와 구교가 함께 있는 성당으로 그 동거 형태가 기이한 모습이라 하더군요.

 

아우크스부르크처럼 부르크라는 말은 성곽으로 둘러싼 도시를 의미하는 말이라 했나요?

그런 성곽의 모습이 이 도시 외곽으로 아직도 남아있는 유서 깊은 도시라네요.

이 말은 도시의 역사가 무척 오래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지역은 그 성곽 안에 예전부터 금은세공업자가 많이 살며

도시의 부를 창조했던 마을이라지요?

금이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의 상징이잖아요.

이런 이유로 거부가 탄생한 도시라고 하네요.

그때는 아주 잘 나갔나 봅니다.

 

아우크스부르크라는 도시는 우리 한국인에게는 축구 때문에 더 많아 알려진 도시일 겁니다.

한국 선수들에게 구애했던 독일 분데스리가의 아우크스부르크라는 팀은 2년 동안 연속으로

강등 위기에 처했고 그때마다 한국 선수가 마치 마술을 부리는 듯 팀을 강등 위기에서 구했잖아요.

첫해는 이 팀으로 임대되어 온 구자철 선수의 활약으로 가까스로 강등 위기를 넘겼지요.

 

그다음 해는 영국 선덜랜드 소속의 지동원 선수의 활약으로 또다시 강등 위기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팀으로 한국 축구선수에 애틋한 연민을 느끼는 도시라 하겠네요.

그러니 얼마나 한국 선수에 대한 짝사랑이 심하겠어요?

 

그다음에는 홍정호 선수가 입단했지만, 아직 그렇다 할 활약은 보이지 않지만,

시즌 막판에 가면 또 위기에서 팀을 구하리라 믿습니다.

위기에는 강한 한국인이 아닌가요?

 

아우크스부르크라는 이름은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얼른 떠오르네요.

무슨 연관이 있을까요?

이미 여러분은 알고 계시죠?

 

그렇답니다.

바로 로마의 초대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로마가 건설한 도시라 합니다.

당시 로마는 이곳에도 진출해 도시를 건설했나 봅니다.

아우구스투스는 유럽뿐 아니라 동아시아까지 진출해 정말 많은 로마의 도시를 건설한 사람이죠.

 

BC 15년에 이 도시는 로마의 아우구스투스의 지배하에 있었으며 그 후 400여 연간이나

로마제국의 지방정부로 존재했기에 당시 황제의 이름을 따 아우크스부르크라고 불렀답니다.

이제 도시 이름의 유래를 알았네요.

 

그때 아우구스투스는 알프스를 넘어 그의 의붓아들인 티베리우스와 드루수스를 보내

로마군 주둔지를 물색하게 했고 그중 바로 이곳이 군사적으로 유리하기에

선택된 도시라 하지요.

 

그러니 역사가 2천 년도 넘은 아주 유서 깊은 도시로 로마로 이르는 로만티크 가도에 있는

도시며 로마는 이때 벌써 북방 경영을 위한 교두보를 삼기 위해 이 도시를 선택했다는

말이고 재미있는 것은 로마가 건설했던 도시를 보면 마치 매뉴얼에 따라 만든 듯

그 모양이 모두 같다는 것입니다.

마구잡이 건설이 아니라...

심지어는 원형경기장이나 반원형 공연장의 청중석 계단은 여섯 개마다 통로를 둔다든지...

 

위의 사진에 보이는 건물이 아우크스부르크의 시청사입니다.

역사적으로나 예술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건물이라 합니다.

제 눈에는 그리 예술적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시청사 앞으로는 커다란 광장이 있습니다.

바로 이 도시의 중심지인 시청사 광장인 마르크트 광장입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오후를 즐기고 있습니다.

아마도 아고라 광장으로도 이용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드네요.

 

그냥 마르크트 광장의 땅바닥에 앉아서도 즐기고...

무척 자유분방한 느낌이 듭니다.

처음 보았을 때는 데모꾼들인지 알았습니다.

데모가 많은 나라에 살았기에 많은 사람이 광장에만 모이면....

 

호화로운 시청사와 시청사 왼쪽으로는 페를라흐 탑이 보입니다.

1615년에 공사가 시작된 시청사 건물은 1624년에 완공된 최초의 6층 건물로 알려졌습니다.

1615년에 이런 건물을 지었다니!!!

우리나라는 당시 광해군 7년으로 무척 혼란한 시기였죠?

피는 피를 부르고, 복수는 또다른 복수를 불러오고...

 

건물 상층부의 가운데는 신성 로마제국의 상징인 쌍두 독수리 문양이 그려져 있습니다.

머리가 하나로는 부족했던 잘난 사람들...

 

맨 꼭대기에는 아우크스부르크의 상징인 솔방울이 보입니다.

왜 솔방울은 도시의 상징으로 삼았는지..

이 시청사는 독일에서 가장 큰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이라고 하더군요.

 

그 옆으로는 10세기에 지은 70m 높이의 웅장한 페를라흐 탑이 보입니다.

탑의 원래 목적은 주변을 감시하는 망루의 목적이라 합니다.

날씨가 좋으면 망루 꼭대기에 오르면 알프스의 모습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오늘같이 청명한 날은 알프스가 아니라 독도까지도 보이지 않을까요?

 

시청사 안에 들어가 보니 작은 박물관처럼 꾸민 방이 보이네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모습은 아우크스부르크 대성당 앞에 만든 조형물과 같습니다.

아마도 성당을 만들며 이곳 도시가 생길 때의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시청사 건물과 70m 높이의 페를라흐 탑의 미니어처 모습입니다.

 

동판으로 만든 세 사람의 얼굴 상입니다.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인물이 틀림없나 봅니다.

 

왼쪽부터 모차르트 아버지인 레오폴드 모차르트와 가운데는 어머니인 안나 마리아의

얼굴 상과 오른쪽에는 음악의 천재라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입니다.

오늘 이곳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만나 가족 모임이라도 하나요?

이 도시와 세 사람은 무슨 사연이 있을까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모차르트가 대단하긴 대단한 사람인가 봅니다.

아우크스부르크는 모차르트 아버지가 태어난 곳이라고 하여 이 도시의 자랑으로 여기나 봅니다.

아버지 고향은 여기고 어머니는 볼프강 호수 끝에 있는 장크트 길겐 마을이고 두 사람은 결혼해

잘츠부르크에 살며 그곳에서 모차르트를 낳았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