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라방크에서 눈길을 끌었던 부조 두 점

2020. 8. 17. 06:00아르메니아 2019/예레반

노라방크 수도원이 있는 지형은 특이하게도 주변의 절벽이 붉은빛을 띠고 있으며 입구를 제외하고는

높은 산으로 둘러싸이고 좁은 길을 따라 움푹 파인 막다른 곳입니다.

이와 같은 지형의 특별한 모습은 나중에 가게 될 게하르트 수도원과 비슷하더라고요.

 

그 산 아래 중턱에 자리한 노라방크는 9~10세기에 성 카라펫(St. Karapet) 성당이 세워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1205년에 들어서며 호브한네스(Hovhannes) 주교에 의해 이곳이 수도원 복합단지로 발전하게 되며

건축가 시라네스와 화가이자 미니어처 조각가인 모빅에 의해 주도적으로 왕관 모양의

성 아스트밧차친(St. Astvatzatzin) 성당 등이 1339년에 새로 건축이 시작되었다네요.

 

사람들은 새로운 모양의 성당인 성 아스트밧차친(St. Astvatzatzin: 신의 어머니라는 의미)을 보고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모양의 새 수도원이라고 부르며 이곳 수도원 이름인 새롭다는 의미의

노라방크 수도원이 되었다네요.

모빅은 이곳 성당 옆에 그의 무덤을 마련했다지요?

 

건축 후원자였던 부르텔 오르벨리안(Burtel Orbelian)과 그의 가족이 묻힌 곳이기도 하다네요.

그랬기에 이 성당을 부르텔라쉔(Burtelashen)이라고도 부른다지요?

위치가 협곡을 따라 들어와 막다른 곳에 있기에 이런 수도원은 주로 건축 후원자가 죽어 묻히기를 바라며

지은 수도원이라고도 본다고 합니다.

 

노라방크 수도원의 대장처럼 보이는 위의 사진 왼쪽의 성 아스트밧차친(St. Astvatzatzin)과 그 오른쪽에

조금 낮으나 규모는 오히려 더 큰 성당 군은 성 카라펫(St. Karapet)성당과 옆에 붙어있는

가비트 성 카라펫(Gavit of St. Karapet)과 성 그리고르(St. Grigor) 성당이 있습니다.

 

막다른 길에 사방이 병풍처럼 산으로 둘러싸여 마치 은둔의 수도원처럼 느껴지는 곳입니다.

지금까지 코카서스 3국 여행을 하며 조지아와 아르메니아를 돌아보며 느낀 점이 바로 이런 수도원입니다.

수도원의 위치가 보통 사람들이 접근하기 쉽지 않을 곳에 비밀의 장소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유럽의 성당과는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정말 수도만을 위해 만든 곳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몽골군이 이곳까지도 들어왔다고 합니다.

여기가 어디라고....

 

천장에 보이는 구멍은 예르디크(Yerdik)라고 부른다는데 실내의 연기가 밖으로 쉽게 빠져나가고

신선한 공기가 유입되도록 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환기창이라고 합니다.

물론, 실내를 밝게 하는 효과는 덤이고요.

 

St. Karapet성당 수도원 건축은 아르메니아 조각가이며 건축가였던 모믹 바르드펫(Momik vardpet)이

4세기에 건축한 수도원입니다.

성당으로 들어서면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바닥에 성직자나 후원자가 묻힌 석관이 어지럽습니다.

석관을 밟는 것은 불경스러운 것이 아니라 교감하는 일이라고 하니...

 

이곳에서 가장 눈여겨보았던 조각입니다.

파사드에 모믹이 새겨놓은 것으로 위와 아래 두 개의 조각이 상인방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파사드에는 마치 낙서를 하 듯 하치카르(khachkar)라고 부르는 아르메니아의 십자가가 어지럽게 새겨져 있습니다.

 

위의 조각은 하나님과 아담을 표현한 것으로 모믹의 예술성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예수의 모습은 많이 보고 다녔지만, 하나님과 예수와 최초의 인간인 아담의 형상이 함께하는 모습은

별로 보지 못했던 듯합니다.

하나님의 모습은 장발에 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왼손으로 사람의 얼굴을 들고 있는 형상입니다.

 

언뜻 보면 머리만 들고 있어 혐오스럽고 기괴한 모습으로 느껴지지만, 내용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 인간을 만들 때 처음 아담의 머리부터 만들고 그 머리에 영혼을 불어넣는 형상이라고 합니다.

아담의 머리 위에 마치 하나님의 목걸이처럼 보이는 성령을 의미하는 비둘기가 보이시지요?

왼쪽에 보이는 조각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와 성모 마리아 그리고 사도 요한의 모습과

오른쪽에 비둘기도 새겨두었습니다.

 

아래 조각은 가운데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고 품에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입니다.

양쪽으로는 성인이 올려다보고 있는 모습입니다.

주변에 장식으로 사용한 것은 아르메니아 글자도 보이지만, 

나무줄기와 잎은 포도나무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네요.

 

내부는 자연환기가 되도록 창문을 만들어 놓았고 자연 채광도 함께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아무래도 건축 당시는 조명 시설을 할 수 없었기에 이런 방법으로 실내를 밝혔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부도 조각과 하치카르 등이 어지럽게 새겨져 있습니다.

 

바닥에는 많은 석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벽면에는 하치카르가 새겨져 있고 왼쪽에 벽에 보이는 선풍기 날개처럼 생긴 모습은

불교의 윤회 사상 같은 의미라고 하네요.

이곳은 이 성당을 짓는데 크게 후원했던 오르벨리안 왕조의 가족 영묘로 사용된 곳으로 보입니다.

 

위의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동물 문양의 석관은 엘리쿰 3세 오르벨리안(Elikum Orbelian)의 무덤이라고 합니다.

중세 타르사이치 오르벨리안 왕(Tarsaich Orbelian)의 아들이자 당대 유명한 정치인이었다고 하네요.

동물 문양은 사자를 의미한다고 하는데 그는 아주 잘생긴 사내로 평소에 용맹했기에 사자 인간이라고도 불렀기에

언뜻 보면 마치 애완견을 묻어둔 곳으로 오인하겠습니다.

 

적과 마주치면 사자처럼 용맹하게 포효하며 달려들어 요절을 냈기에 죽어서도 그의 석관 뚜껑은

사자 문양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석관이 성당 안에도 있지만, 위의 사진에 보듯이 마당에 있는 아카데미 건물터 옆에도

하나 더 있더라고요.

그런 이곳이 사자왕의 애완견이 묻혔을까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그런데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조각상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온다고 합니다.

몽골군이 이곳까지 쳐들어왔을 때 주변의 모든 것은 부수고 폐허화시켰는데 이곳만큼은 손을 대지 않고

물러갔다고 합니다.

이곳에 새긴 하나님의 모습이 수염을 길게 기른 몽골인을 닮았다나 뭐라나...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에치미아진에도 있다지요?

수시로 무슬림의 침공으로 고통을 받고 파괴만 당했던 아르메니아에서는 이교도인 페르시아 왕인

샤자한의 얼굴을 성당 입구에 새겨놓아 페르시아의 침공에서도 성당이 파괴되는 아픔을

막아보고자 했던 흔적도 있다고 하네요.

덕분에 아직도 샤자한 왕의 얼굴 부조 흔적이 부서지지 않고 남아있다는 말은 그 때문에 수시로 침공당하면서도

아직 파괴되지 않고 온전하게 남아있다는 말은 효과가 있다는 말이 아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