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pantsminda(스테판츠민다)에서 만난 카즈베기

2020. 2. 13. 07:00조지아 2019/스테판츠민다

스테판츠민다는 아주 작은 마을입니다.

누구는 이곳이 조지아를 대표하는 곳이라 무척 많은 구경거리가 있고

트레킹도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이야기하지만. 트레킹을 즐기지 않는 여행자에게는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 수도원 외에는 크게 구경거리가 없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숙소에 앉아 수시로 변하는 카즈벡산의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습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카즈벡산은 다른 날과는 다른 모습으로 하늘을 향해 올려다보는

눈과 코로 보이는 얼굴  모습이 확연합니다.

오늘 이야기는 그냥 마을 마실 다니며 보았던 사진들로 채워봅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건물은 알렉산더 카즈베기 박물관(Alexander Kazbegi Museum)입니다.

카즈베기 가문을 위한 박물관으로 가족 성당도 있고 가족무덤도 보입니다.

사진에 보이는 흉상이 바로 알렉산더 카즈베기라네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곳은 카즈베기 최고의 번화가인 버스 정류장입니다.

마슈롯카라는 시외 미니버스가 보이고요.

성 삼위일체 수도원 등 주변 여행지로 다녀올 수 있는 대절 차량을

섭외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이곳은 러시아 국경을 11km 정도 앞둔 마을로 거의 국경과 마주하고 있는

마을이라고 봐야 하겠네요.

그러나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프로메테우스의 전설로 유명한 카즈벡산이 있고 14세기경14세기경

지었다는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 수도원이 산 중턱에 있어 유명한 곳이죠.

 

국경이 가깝고 또 러시아로부터 트빌리시로 내려오는 빠른 길목에 있기에 러시아 침략을

두 눈 뜨고 그대로 당한 곳이라네요.

잠시 이곳 주민이 러시아 침략에 항거하기도 했지만,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치고 말았던 적도 있습니다.

 

그때 러시아에서 이곳을 카즈베기로 이름 짓고 난 후 지금까지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2006년 이르러 침략 이전에 부르던 이름인 스테판츠민다(Stepantsminda)로

다시 부르지만, 두 이름이 같이 사용되고 있다네요.
이 이름은 이곳 정교회 수도사였던 스테판(Stephan)에서 유래한 지명이라고 합니다.

 

마을이 해발고도 1.740m 지점이기에 제법 높은 곳에 있는 산악마을입니다.

따라서 겨울에는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는 날이 많고 여름에도 낮 기온이

20도 정도라고 하니 그렇게 더운 곳은 아닌가 봅니다.

 

이곳 주민은 1.400여 명으로 무척 작은 마을이지요.
 러시아와 조지아 사이로 흐르는 테레크강은 캅카스산맥을 잘라놓아 이곳에 두 나라 사이를

오갈 수 있는 도로가 만들어져 왕래가 아주 빈번한 곳이더라고요.

이 도로를 조지아 군사 도로(Georgian Military Road)라고 부른답니다.

 

특히 러시아의 조지아 침공 때 침공 루트 역할을 하기도 한 곳이라네요.

이 도로 원래 실크로드로 좁은 길이었으나 도로 자체를 러시아에서 군사 도로로

넓게 재개설했다고 하니...

따라서 지금도 두 나라 사이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닌 듯싶습니다.

 

카즈베기 가문으로 알려진 초피카슈빌리(Chopikashvili) 가문은 이 지방 호족으로

18세기 후반까지 이 마을을 지나가는 장사꾼이나 여행자에게 통행료를 징수하며

지역 호족으로의 삶을 살았다네요.

그러던 중  19세기 러시아 제국이 조지아 왕국으로 침공하자 이 지역에 살았던 주민은

힘을 모아 러시아에 대항해 싸웠답니다.

 

그러나 가브리엘 초피카슈빌리(Gabriel Chopikashvili)는 러시아에 충성하겠다며

오히려 러시아와 힘을 합쳐 반란을 제압하며 러시아에 협조하였으며

그 대가로 러시아 육군 장교로 임명되었답니다.

이때 러시아에서는 그의 공을 치하하며 가문의 성을 카즈베기(Kazbegi)라고 내려주었다네요.

 

이에 이곳은 카즈베기 가문이 통치하는 카즈베기가 되었고 러시아도 이 지역을

카즈베기라고 부르기 시작했으며 그러던 중 2006년에서야 예전에 불렀던 지명인 스테판츠민다로

다시 돌려놓으며 지금의 공식 명칭으로 사용 중이랍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과 많은 사람은 이곳을 카즈베기라고 부르더라고요.

 

마을 한가운데 가장 중심지인 이곳에 그의 손자인 알렉산더 카즈베기(Alexander Kazbegi)의

동상이 자랑스럽게 서 있습니다.

우리 생각에 친일 후손의 동상을 세운 것과 무엇이 다른가요?

그러나 이곳 주민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나 봅니다.

할배의 일과 손자의 일은 엄격히 구분하여 생각하나 봅니다.

 

그는 이곳에서 태어난 작가로 트빌리시나 모스크바에서 공부한 후 고향에 돌아와

한때 목동 일을 하기도 했으며 이런 목동의 삶을 경험한 후 그의 경험은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네요.

처음에는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다가 글을 쓰기 시작하며 주로 산사나이의 삶을 그린

이야기를 소설 소재로 썼다고 합니다.

 

그러나 내용 중에는 러시아 황제 차르에 대한 저항을 그리기도 했고 1883년

소설 The Patricide라는 작품을 통해 로빈 후드나 우리나라의 임꺽정과 같은

코바(Koba)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사랑과 의로운 삶을 그린

소설을 발표해 크게 알려지게 되었다네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코바는 권위에 대한 조롱이나 폭력적인 해결, 복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진

백인 악당의 이야기라고 합니다.

이 코바라는 주인공은 조지아 고리 출신의 스탈린이 홀딱 빠져 볼셰비키 혁명 당시

지하활동을 할 때 자신의 별명으로 사용할 정도였다네요.

스탈린이 좋아했다는 카즈베기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