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6. 11. 09:00ㆍ동유럽, 발트3국, 러시아 2017/라트비아
사슴 머리로 장식한 복도가 보입니다.
이 궁전의 주인은 마초 기질이 있나 사냥을 무척 즐겼나 봅니다.
복도 하나를 모두 사슴 머리로 장식해두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때 그들의 3대 엔터테인먼트는 사냥과 음주가무
그리고 주색잡기가 아니겠어요?
이제 궁전 내부 구경을 마치고 지하로 내려갑니다.
사냥을 즐겼던 힘 있는 사람이 살았던 곳에서는 이렇게 사슴이 수난을 당했네요.
지하에는 식당과 관리실이 있고 이 궁전을 지을 때 사용했던 작은 집기나 도구가
전시되어있고 또한 건축을 할 때 방법도 함께 전시되어있어 궁전 건설이나
실내장식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더라고요.
오늘은 그런 것 위주로 사진을 올려볼까 합니다.
지붕 꼭대기 장식인 풍향계겠지요?
이곳은 궁전과 궁전 정원 외에는 주변에 인가조차 없는
넓은 허허벌판에 지은 궁전입니다.
건물이 없고 마을도 없으니 황량한 기분이 드네요.
차를 직접 운전해 오지 않는다면 주변 큰 도시인 바우스카로 나가는
버스 시간을 미리 알고 구경해야 하겠습니다.
시간이 있으면 우리처럼 하루 이곳에서 묵어가는 것도 좋지 싶네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꽃문양은 아마도 궁전 내부 장식을 위해 만든
석고로 만든 장식이 아닐까요?
이렇게 만든 석고 장미꽃을 넝쿨로 만들어 장식했잖아요.
룬달레 궁전은 1730년대에 이탈리아 태생의 천재 건축가 바톨로메오 라스트렐리
(Bartolomeo Rastrelli)가 에른스트 요한 폰 뷔렌(Ernst Johann von Buhren) 공작의
요청으로 여름 궁전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뷔렌 공작이 실세에서 물러난 후 한동안 빈 채로 있다가 1760년대에
바톨로메오 라스트렐리가 돌아와 실내장식을 마무리함으로 지금 우리가 보는
모습으로 탄생하게 되었다네요.
건물이란 사람의 온기가 없으면 금방 폐가로 변하잖아요.
들판의 벼이삭은 농부의 발자국을 들으며 자라고 정원의 정원수는
정원사의 숨소리를 들으며 자란다잖아요.
1795년 이 지역이 러시아 제국에 강제 병합되자 러시아 제국의 여제였던
예카테리나 2세가 자신의 연인인 주보프공(Prince Zubov)에게
이 궁전을 선물로 주었다고 하네요.
크게 배경도 없었던 독일 출신의 예카테리나는 러시아 왕실로 시집을 가
여제의 위치까지 올랐으니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단한 여인이었나 봅니다.
능력이 있는 애인 하나 만나면 이런 궁전도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합니다.
佳人은 누구에게 이런 궁전 하나를 선물할 수 있을까요?
팔자에 없는 짓을 하려면 오히려 손 안의 작은 것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지요.
또 누가 佳人에게 이런 궁전 하나 정도를 선물할 수 있을까요?
정말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런 것도 자신이 능력이 되어야 가능하지 능력도 없으면서 바란다는 것은 탐욕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이 이 지역을 장악하고 궁전을 병원과 사령관 사무실로
이용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라트비아 독립전쟁이 한창이던 1919년에는 이 궁전도 전쟁의 상흔을 입어
심하게 손상되었고 1920년 일부가 학교로도 이용되었다지요.
1933년에는 라트비아 국립역사박물관이 이 궁전 건물을 인수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 후 곡물 창고가 들어서고 공작의 식당이었던 곳을 학교 체육관으로 사용하는 등
아무렇게나 관리하다가 1972년에 들어서야 지금의 룬달레궁 박물관이 들어섰답니다.
룬달레 궁전은 라트비아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 건축물이라고 합니다.
‘라트비아의 베르사유’라고 불릴 정도로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궁전으로 지금은
예전의 모습으로 복원을 하였기에 우리가 라트비아 귀족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습니다.
외부인을 접견하기 위한 황금의 방, 무도회장인 백색의 방 등 모두 138개의 방이
있으며 특히 벽장식이 다른 궁전에 비교해 매우 화려한 것으로 알려졌답니다.
굳이 자기 세대에 들어가 살지도 못할 거라면 이렇게 많은 돈을
이곳에 부어가며 지을 필요가 있을까요?
그리고 왜 주변에 사람도 살지 않은 시골에 이런 화려한 궁전을 지었을까요?
궁전을 구경하는 내내 가졌던 의문입니다.
이런 대단한 건축물을 짓는 일이 취미생활이었다면 모를까...
땅값이 저렴해서일까요?
아니면 속세와 등지고 살고 싶었을까요.
그 때문에 최근에도 이 궁전을 찾아오려면 우리처럼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따릅니다.
이렇게 한적한 시골에 지었어도 전쟁통에 많이 부서졌다 합니다.
전쟁이란 도회지나 시골이나 가리지 않나 봅니다.
물론, 다시 복구해 지금은 완벽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보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룬달레는 바우스카에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
거리상으로 12km 정도 떨어졌다고 하는데 버스가 수시로 다니기에...
그러나 버스를 탈 때 룬달레 궁전까지 가는 버스인가 확인하고 타야 한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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