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그리고 아우슈비츠 가스실

2018. 2. 9. 09:00동유럽, 발트3국, 러시아 2017/폴란드

 

깡통을 쌓아둔 모습입니다.

이 깡통을 왜 이곳에 모아두었을까요?

이 깡통이 바로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죽였던 사이클론 B라는

가스를 담아두었던 깡통입니다.

 

 

그때 가스실에서 사용했던 사이클론 B라는 가스라 합니다.

이 작은 깡통이 많은 사람을 고통 속에 죽게 했습니다.

쉰들러 리스트와 안네의 일기의 무대가 된 곳.

바로 우리에게는 아우슈비츠라고 더 많이 알려진 오시비엥침입니다.

 

 

그 철조망 밖으로 여러 동의 건물군이 보입니다.

이 건물이 바로 아우슈비츠를 관리했던 게슈타포의 숙소와 관리동으로

사용된 건물이라 하는데 정말 그때는 서슬 퍼런 사람들이 머물렀던 공간이 아닐까요?

 

 

철조망을 통해 외부로 나가는 곳, 그곳에는 위의 사진처럼 나무로 만든

단이 있고 틀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을 바라보십니까?

철봉이라도 해보고 싶으신 겁니까?

정말 체력단련이라도 하기 위한 것이었을까요?

 

이곳이 바로 나치 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소장이었던 '루돌프 프란츠 헤스'의

마지막 이승에서의 장소였다고 하는데 그는 독일 패망 후 체포되어 폴란드

최고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1947년 4월 16일 바로 이 교수대에서 처형당했다고 하네요.

그는 교수형에 처하기 전 가족에게 편지를 썼다는데 많은 사람을 희생시킨 일에 대해

참회하는 말은 없고 바쁜 일 때문에 가족과 많은 시간을 갖지 못함에 대해 미안한 이야기만

했다고 하니 어쩌면 그 또한 명령에 따라 했기에 역사의 피해자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도 한 가족의 가장으로 국가가 시킨 일에 희생자인지 모릅니다.

나치 독일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는 또 다른 삶을 살았을 겁니다.

이럴 때는 누가 가해자고 피해자인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헤스는 4월에 죽었기에 마지막 이승에서 본 모습은 오늘처럼 그런 날이었을 겁니다.

꽃이 피고 새싹이 돋는 모습을 보며 나무도 저렇게 겨울을 이겨내면 새롭게 새 생명을

피우는데 인간은 한번 가면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간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원래 이 지역은 게슈타포의 사령부가 있던 지역이라 합니다.

당시 이 부근에는 아무나 접근하지 못하는 금단의 구역으로 가까이

접근만 해도 총알이 날아왔을 겁니다.

오늘은 아무 제지 없이 철조망 옆으로 열린 문으로 나갑니다.

 

 

이 철조망 울타리를 돌아서면...

위의 사진에 보시는 것처럼 방공호처럼 언덕을 만들고 그 위로 굴뚝 하나가 보입니다.

마치 공중 정찰에서도 쉽게 알지 못하도록 위장한 듯합니다.

저 굴뚝에서는 그때 24시간 쉬지 않고 연기가 올라왔다고 합니다.

정말, 이 수용소에서 가장 바쁘게 움직였던 곳이라 합니다.

 

 

바로 이곳이 그 악명높은 독가스실입니다.

지금 이곳에 남은 것은 당시 모습 그대로라고 합니다.

 

 

정문을 통과해서 한 블록 지나 왼쪽 끝으로 가면 작은 문이 있습니다.

이제 문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독가스실

마치 샤워실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이용가치가 적은 사람부터 이곳에 들어왔을 겁니다.

어린이와 여자, 그리고 장애인이 우선하여 들어왔다 합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가스가 천장의 작은 구멍을 통해 흘러나올 것만 같은 기분입니다.

 

 

그러니 佳人 같은 이용가치가 거의 없는 사람은 플랫폼에 내리는 즉시 이곳으로 왔을

것이고 그리고 이 방으로 들어왔을 것이고...

천장의 작은 구멍을 통해 서서히 독가스가 살포되고...

 

 

벽면에는 당시 죽어가며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해 손톱으로 긁은 자국이 무수히

남아있는데 아마도 손톱으로 긁은 시간도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을 겁니다.

아직 이곳에 그들의 원혼이 남아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잠시 눈을 감고 그들의 억울한 혼령을 위로해 봅니다.

 

 

그리고 그 옆방.

독가스실 옆방에는 시체를 소각하는 소각실이 붙어있습니다.

저 기계가 수시로 화구 속으로 들락거리며 시신을 태웠을 겁니다.

너무 많은 시신 때문에 이곳에서 처리능력이 부족해 넘칠 경우 시신을

모아서 야외에서 소각했다고 합니다.

 

 

이 방에 얼마나 많은 원혼이 눈을 제대로 감지 못하고 죽어갔을까요?

얼마나 많은 비명이 들렸을까요...

지금 그들을 위로하는 것은 달랑 꽃 한 다발이란 말입니까?

 

 

그다음 지붕 가운데 설치한 환풍구를 통해 실내에 남은 가스가 배출되고 시신은

하나씩 바로 옆방으로 옮겨져 화장되며 재로 변해 어딘가 버려졌을 겁니다.

하루에 1.500에서 2.000구의 시신이 소각되어 정말 정신없었을 겁니다.

소각된 후 금이빨은 자원 재활용으로 다시 수거되고...

 

 

이렇게 진행된 오시비엥침 나치 수용소는 독일의 패전이 임박하자 폐쇄 명령이 떨어졌을

것이며 모든 시설을 파괴해 없애버리려 했지만, 1945년 1월 27일 소련군은 독일의 예상을

뒤엎고 일찍 이곳을 점령함으로 모든 시설이 그대로 남게 되었답니다.

1979년에 유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버렸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학살당한 사람은 모두 2천만 명에 이른다 하지요.

물론 대한민국도 많은 희생을 치렀습니다.

그중 600만 명이 유대인이라 하니 지금도 많은 유대인은

이곳을 성지처럼 생각하고 방문하나 봅니다.

 

산 자는 누구고 죽은 자는 또 누구입니까?

지금은 모두 사라져 이름뿐이지만, 산 자는 정녕 이곳에서 억울하게 숨을 거두었지만,

 우리가 기억하기에 영원히 살아있고

죽은 자는 당시는 조금 더 살았지만, 우리 기억에 사라졌기에 죽은 자가 분명합니다.

 

 

외부는 고압 전류가 흐르도록 만들어 놓았답니다.

그러나 고통을 이기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 이 고압선에 몸을 던져

죽음을 택했을지도 모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가스실 건물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께서는 수많은 사람이 나치 독일에 의해 죽임을 당한 건물 안에 서 계십니다.

여기서는 정숙해 주시고 : 그들이 받았던 고통을 기억하시고 그들의 명복을 빌어 주십시오."

 

이 말은 이곳을 찾은 사람만의 일은 아니지 싶습니다.

우리 조상도 같은 일을 일제강점기에 당했습니다.

단언컨대, 용서는 할지언정 잊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