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엘리치카 소금광산

2018. 1. 31. 09:00동유럽, 발트3국, 러시아 2017/폴란드

크라쿠프 인근에 비엘리치카(Wieliczka) 소금광산이 있습니다.

크라쿠프 남동쪽 13km 정도 떨어진 곳이니까 무척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세상에 많은 소금 광산 중 이곳은 197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가장 먼저 지정받은 유명한 소금광산이 있습니다.

 

육지에서 캐내는 소금 산지로 유명한 것은 오스트리아 할슈타트의 소금광산이 유명하지요.

그러나 이곳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은 세상에서 가장 규모가 클 뿐 아니라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할 때 이곳을 가장 먼저 지정한 곳이랍니다.

마을의 휘장은 위의 사진처럼 당연히 소금 채취에 사용된 도구입니다.

 

그것뿐인가요?

비엘리치카 광장에 세워둔 조형물마저도 광부의 모습입니다.

광산은 1290년 프셰미시우 2세에 의해 처음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합니다.

마을 인구는 약 2만여 명 정도로 아주 작은 마을입니다.

 

크라쿠프를 찾는 많은 여행자가 가까운 곳에 있는 소금광산을 직접 찾아가더라고요.

크라쿠프에서 근처 소금광산이 있는 비엘리치카로 직접 찾아가시려면 버스 터미널이 있는 갈레리아 쇼핑몰

건너편에서 304번 시외버스를 타면 바로 비엘리치카까지 갈 수 있습니다.

버스는 한 시간에 3~4회 운행하며 시간은 약 40분 정도 걸립니다.

 

마을은 작아 외견상으로는 특이한 점이 없으나 그 지하에는 엄청난 보물이 있었다네요.

아마도 세계적으로 이처럼 규모가 큰 암염 채취장은 없었을 겁니다.

이곳은 개인적으로 이미 수년 전에 다녀온 곳이기에 그때 다녀온 사진을 이곳에 다시 올려보려고 합니다.

 

1290년부터 700년도 더 넘게 소금을 캐다가 2007년에서야 문을 닫은 곳이지요.

문을 닫았다는 말은 소금 채취를 대규모로 하지 않는다는 말이겠지요.

이곳에서 일했던 많은 사람은 대부분은 지금은 주로 관광객 가이드의 역할을 하고 있고

또 엄청난 소금광산 내부가 제대로 유지되도록 보수와 관리하는 일에 종사한다고 합니다.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의 깊이는 지하 9층으로 깊이가 327m나 된다고 합니다.

700여 년 이상이나 파먹었으니 그 정도는 깊은 게 아니겠죠?

중세의 소금이란 금과 같은 소중한 존재가 아니겠어요?

 

그렇다 보니 이 광산이 폴란드 경제에 미친 영향이란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짐작할 수 있지 싶네요.

이곳은 자유롭게 다닐 수 없고 반드시 가이드를 따라다녀야 합니다.

모두 3.000여 개의 방이 있다는데 관광객에게 개방하는 방은 20여 개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곳 소금광산은 인간이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가 유추할 수 있고 인간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도 엿볼 수 있는

곳이며 무엇보다도 그 지하 광산 안에서 생활하며 고독하고 두려운 마음에 광부들이 하나씩 만들어 두었던

작품은 전문가의 손길을 무색하리만치 정교하고 아름다운 곳이죠.

 

비엘리치카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 10분 정도만 걷는다면 광산 입구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소금광산에 도착했다고 바로 개인적으로 들어갈 수 없고 가이드 투어를 기다려야 하는데

영어 가이드는 30분에서 1시간 간격으로 시작하니 잠시 기다렸다가 함께 들어가면 되겠네요.

 

만약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싶으신 분은 10 즐로티를 더 내고 사진 촬영 스티커를 사야 합니다.

소금 광산 내부는 여름에도 14도 정도라니 미리 추위에 대비해야 하겠네요.

투어는 약 2시간 정도 걸린다고 보시면 됩니다.

 

소금이란 인간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필수요소입니다.

그랬기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체로 국가가 통제하고 국가에서 소금 사업을 했습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조조도 소금과 철을 나라에서 관리하기 위해 염철관영(鹽鐵官營)이라는 정책을 폈지요.

 

중세의 유럽은 소금 외에는 특별한 조미료가 없었습니다.

인도나 중국의 후추를 비롯한 향료가 대상들에 의해 실크로드를 따라서 조금씩 흘러 들어갔지만,

소량에 불과했고 그 이동 경로에 중간에 목을 휘어잡고 있는 세력이 바로 유럽과는 서로 상종도 하고 싶지 않다는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 튀르크가 아니겠어요?

중간에서 조절하니 가격은 엄청나게 올라가고 물량마저 조절하니...

 

이런 일은 포르투갈이 대서양 진출을 시도하며 바스쿠 다가마에 의해 인도항로가 발견되고

배를 통한 대규모로 향신료가 유럽으로 쏟아져 들어오자 유럽인들은 맛의 신세계가 열린 겁니다.

유럽 촌놈들이 입맛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이런 일이 있기 전에는 오직 소금만이 유럽인의 입맛을 좌지우지했을 겁니다.

그래서 부유층 사람은 비싼 소금을 많이 사용했기에 지금도 유럽의 음식이 짠 이유겠지요.

부자의 척도는 음식에 넣는 소금의 양과 비례하기에 소금을 많이 넣어야 부자라는 말이겠네요.

 

처음 가이드를 따라 입구로 들어서면 계단이 보입니다.

각각 7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진 곳을 빙글빙글 돌아 내려가는데 과연 오늘 중으로

그 끝에 도착할 수 있을까 걱정입니다.

그러나 층마다 번호를 붙여놓았는데 모두 54번을 돌다 보니 드디어 도착하네요.

 

그러니 계단 숫자가 모두 375개 계단을 돌았습니다.

이게 제일 깊은 곳인가 생각했지만, 여기는 겨우 지하 65m 정도로 관광객을 위해 개방해놓은 곳일 뿐

여기부터 시작해 지하 130m만 구경한다 하네요.

오늘 우리가 걷는 거리는 약 2.5km 정도로 소금광산 전체 갱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하네요.

 

각 방은 기압 차이로 늘 문을 닫아둔다고 하네요.

대단히 튼튼한 육중하게 생긴 문입니다.

만약 안에 들어가 길을 잃었다면 수 백년 전의 광부를 만날 수 있으니 가이드와 반드시 동행해야 한다네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비엘리치카에 살았던 3천여 명의 광부는 지금은 더는 소금을 캐며 살아가지는 않습니다.

그때는 소금을 캐며 힘들게 돈을 벌었지만, 지금은 이곳을 찾는 관광객을 상대로 돈을 법니다.

세월이 흘러 대부분 은퇴했고 아직도 관광 가이드로 일하는 사람만 400여 명이라 합니다.

그나저나 지하에 엄청난 양의 소금이 예나 지금이나 비엘리치카를 먹여 살린다고 봐야 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