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의 아픈 기억, 프라하의 봄

2017. 12. 14. 09:00동유럽, 발트3국, 러시아 2017/체코

지금의 바츨라프 광장은 젊음의 상징이요, 만남의 장소가 아니겠어요?

많은 젊은이가 모여드는 그런 곳이네요.

그러나 이곳은 체코의 암울했던 시기를 견디어냈다지요.

우리나라 사람에게 프라하라는 도시는 '프라하의 봄'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먼저 떠올리지 싶습니다.

 

1918년 10월 28일 그때까지 이곳을 지배했던 오스트리아의 패망으로 1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리자

체코슬로바키아의 독립선언서가 이곳에서 낭독된 역사적인 곳이랍니다.

이후 세계적으로 일어난 수많은 동요 속에 체코는 늘 그 중심에 있어 혼란스러운 나날을 보냈다네요.

 

특히 냉전 시대를 거치는 과정에서 동유럽은 구소련을 중심으로 하나의 커다란 축을 형성했잖아요.

이 과정에서 많은 젊은이가 이데올로기에 노예가 되어 슬픈 나날을 보내게 되었겠지요.

체코 또한 주변 모든 나라가 구소련의 폭거에도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처지가 아니겠어요?

 

체코가 한때 암울한 시기를 보냈던 공산주의의 선포도 이곳이 아닐까요?

반대로 민초가 그에 대항해 자유를 외친 장소도 이곳이고요.

점령군에 대항해 자유를 외치는 시위대가 맨몸으로 이 광장에서 대치하기도 했고요.

그러니 이곳 바츨라프 광장은 역사의 모든 현장을 그대로 보았다는 곳이네요.

 

이로 말미암아 안타까운 21살의 젊은이 얀 팔라흐가 이곳 국립박물관 앞에서 분신을 시도한 장소입니다.

한 달 후 얀 자이츠가 또 분신을 시도했지요.

그들이 분신했던 자리를 위의 사진에 보듯이 보존하고 있네요.

 

또 이렇게 분신으로 자유를 갈망했던 두 젊은이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성 바츨라프 기마상이 있는

앞쪽에 두 젊은이의 얼굴이 새겨진 석판을 만들어 추모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희생이 체코의 자유화를 앞당기게 된 계기가 되었을 겁니다.

 

비록, 1968년 이 광장에서 시작한 프라하의 봄은 구소련 탱크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좌절되었지만,

일단 불붙기 시작한 프라하의 봄은 수많은 좌절을 겪으며 힘든 세월을 보냈다고 합니다.

추위가 더 깊어갈수록 봄은 더 가까이 다가오는 겁니다.

 

그래도 프라하의 봄은 결국, 찾아왔고 드디어 1989년 11월 하벨을 중심으로 벨벳 혁명이라고 부르는

자유의 꽃이 피었고 이곳은 자유화의 성지가 되었을 겁니다.

자유란 이렇게 고귀한 희생을 요구하나 봅니다.

 

또 많은 축제가 이 광장에서 열리겠죠?

프라하의 연인처럼 많은 사랑 이야기도 이 광장에서 전해지겠죠?

 

그때는 젊은이의 희생을 요구했지만, 자유 체코가 된 후 지금은 젊음의 열기를 발산하는 그런 장소가 되었네요.

오늘은 저녁노을 곱게 물들어가는 시각에 바츨라프 동상 아래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바츨라프 광장이 끝나는 지점에서부터 회약탑까지의 번화한 거리가 있습니다.

이 거리 이름이 나 프르지코페(Na Příkopě) 거리입니다.

우리말로 바꾸면 "수로" 위라는 말이랍니다.

 

옛날 이곳은 말 그대로 수로로 도성을 방어하기 위한 인공 해자를 팠던 수로였으나

이를 매워 거리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명품거리로 유명한 곳이라 하네요.

프라하의 쉰들러 이야기입니다.

프라하 중앙역 플랫폼에는 위의 사진에 보이는 동상이 있습니다.

영국 출신 니콜라스 윈튼이라 합니다.

 

그는 1938년 프라하에 있는 친구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답니다.

나치가 유대인을 죽이기 시작해 유대인을 탈출시키려 한다는...

그는 기차를 임대해 아이들을 우선 네덜란드로 보낸 후 다시 배를 이용해 영국으로 이주시키는 방법으로

669명의 아이를 구했답니다.

 

그러나 이듬해 마지막 기차에 태워 네덜란드로 보내던 250명은 나치가 폴란드를 침공함으로 모두 이송 도중

나치에 체포되고 모두 수용소로 보내졌다고 합니다.

그는 그런 일을 일체 함구하고 살았다는데 1988년 그의 아내가 다락방에서 어린이 명단과 사진을 발견하고

세상에 알림으로 그의 행적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답니다.

 

당시의 게슈타포는 공포의 대상이었겠지요?

맨주먹으로 대항해 싸운 이들의 용기를 생각하면 우리가 일본에 대항했던 암울했던 그 시절이 생각납니다.

이는 용기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겁니다.

 

영국 정부는 그에게 작위를 내렸으며 체코는 그를 명예시민으로 선정해 2009년 그의 동상을

프라하 중앙역에 세웠답니다.

그는 얼마 전 2015년 10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프라하는 아름다운 곳이지만, 곳곳에 아름다운 이곳을 지켜내기 위한 수많은 사람의

아픈 사연이 남아있는 곳이기 합니다.

역사란 이렇게 수많은 사람의 땀과 피를 요구하나 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구 소련이 붕괴하며 동유럽은 자유화의 열망으로 가득했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장소가 바로 프라하의 바츨라프 광장이 아닐까요?

소련은 그 불씨를 잠재우려고 탱크를 앞세워 이 광장으로 몰려왔지만...

이곳 바츨라프 광장에 모인 이들의 열기를 잠재우지는 못했습니다.

오늘 佳人은 그런 열기로 가득했던 장소에 잠시 서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