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허마을의 차마고도 박물관

2017. 2. 13. 09:00중국 여행기/윈난성 여행 2016

차마고도에는 크고 작은 여러 마을이 있습니다.

그 여러 마을 중 수허꾸전은 가장 완벽하게 예전 모습으로 보존되어 있는 마을 중 하나이기에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한 곳이라고 합니다.

큰길을 따라 걷다 보니 역시 왼편에 리장에서도 보지 못했던 차마고도 박물관이라는 곳이 보이네요.

왜 이 마을에 차마고도와 관련된 박물관이 있을까요?

 

수허마을의 존재 이유는 아마도 차마고도를 따라 마방이 다녔던 중간 역참으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지

싶은데 지금은 마방이 다니지 않아 그 역할이 사라져 그저 조용한 옛 모습을 간직한 곳으로만 남아있지요.

오늘은 차마고도와 연관된 흔적을 구경하렵니다.

 

위의 사진을 보니 그 옛날 차마고도와 그 길을 다녔던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조로서도(鳥路鼠道)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길이 너무 험하기에 새나 쥐 정도만 다니는 길이라는 의미겠지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이런 험한 길이기에 그렇게 불렀나 봅니다.

 

며칠 전 우리가 걸었던 호도협 길도 마방이 걸었던 길이겠지만, 이 정도의 길은 아주 좋은 길이었습니다.

그때는 힘들고 외로운 길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해외에서도 이 길을 걷기 위해 모여들기도 하지요.

포장된 길보다는 투박하고 거칠기에 더 찾아오는지도 모르겠네요.

요즈음 중국에서는 관광객 유치를 위해 많은 산에 잔도를 만들고 심지어 그 잔도에 유리 바닥을 깔기도 하지요.

 

그러나 마방은 위의 사진에 보이는 이런 길을 말을 끌고 대를 이어 수천 년간 걸었을 것이며 마방은 이 길에서

희망을 노래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며 미래를 향한 걸음을 내디뎠을 겁니다.

그러나 위의 사진을 보니 마방은 말을 끌기도 했지만, 말이 없는 흙수저 마방은 그냥 걷기도 쉽지 않은 길을

스스로 말이 되어 등짐을 지고 그 먼길을 걸었다는데 등짐 진 사람을 이곳에서는 배부(背夫)라고 불렀나 보네요.

마방에도 등급이 있어 이렇게 스스로 말이 되어 등짐을 지고 다녔던 흙수저도 보입니다.

 

비록, 먼지 풀풀 날리는 길이고

울퉁불퉁 솟아 나온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며 걸었을지라도

꿈이 있고 그리운 사람을 생각하며 이들은 이 길을 걸어 다녔을 겁니다.

산다는 게 뭔지...

위의 사진은 말이 없는 사람은 양을 이용해 양방이라고 부르며 다니기도 했나 봅니다.

이 정도라면 흙수저에서 업그레이드되어있지 않을까요?

 

이들에게는 조도서로라는 길이 험하기만 하는 길이 아니라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고

미래를 꿈꾸며 걸었던 희망의 길이지 싶습니다.

그렇지요.

마방은 대를 이어 이 길을 수천 년을 걸었을 것이고 이 길에서 희망을 보았고

아름다운 무지개마져 보았을 것이기에 세상에 사람만큼 아름다운 존재도 없지 싶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길은 같은 길이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다른 의미의 길이었습니다.

실크로드를 따라 사막을 건너 다녔던 캐러벤처럼 이곳에도 마방은 목숨을 걸고 다녔겠네요.

위의 사진을 보니 그 지역에서는 살림이 나아져 한 인물 했던 금수저도 보입니다.

 

"덜수야! 이제 저 산만 넘어가면 수허꾸전이란다,"

조형물 앞에 서서 가만히 귀 기울이니 멘토 마방이 인턴 마방에게 했던 이런 말이 들리는 듯하네요.

마방의 가슴에도 우리와 같은 36.5도의 따뜻한 피가 흘렀을 것이고 마방의 머리에도 우리처럼

사랑하고 싶은 것과 장래의 아름다운 꿈을 꾸며 미래를 설계했을 것입니다.

 

당태종이 문성공주를 토번의 송찬간포에게 시집보내며 중원의 많은 문물이 토번으로 물밀듯이 들어갈 때

이때 차 문화도 함께 쓸려 들어가며 그 후 1.400여 년간 고원에 목축을 하며 살았던 이들에게 차란

소중한 식품으로 자리 잡았을 것입니다.

나아가 차란 그냥 식품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고 사람을 건강하게 만드는 명약이었을 겁니다.

 

마방의 조직은 지역이나 운영 주체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보통 5마리의 말을 말몰이꾼 한 사람이 담당하여

1파(把)라고 하여 가장 기본적인 조직으로 운영되었고 그다음에 1파가 8개 모여 소방(小榜)을 이루었다니

소방에는 모두 40마리의 말로 조직되었겠네요.

소방에는 각 파의 말몰이꾼 외에 이를 통합 관리하는 관리자가 있었고 다시 3개의 소방이 모여

제일 큰 조직인 대방(大榜)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대방 한 사람이 관리하는 말의 숫자가 모두 120마리로 이런 대방 조직이 중간 역참에 도착하면

마을은 마치 잔치라도 벌인 듯 떠들썩하지 않겠어요?

우리가 흔히 보스를 대빵이라고 부르는데 이 말이 마방 조직의 대방이나

우리나라 상단 조직의 대방에서 나온 말이지 싶습니다.

 

"장사란 이문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라는 의주 만상의 대방 홍득주 아래에 인턴 마방으로

시작하여 중국과의 인삼 무역을 개척했던 조선 후기의 임상옥도 대방으로써 성공했던 인물이지요?

그러니 당시에는 구경거리조차 변변치 않았던 이런 수허꾸전에 제대로 된 120여 마리의 말을 이끄는 상단을

덜수 대방이 이끌고 나타나면 그 모습은 장관을 이루어 커다란 구경거리가 벌어졌을 겁니다.

밍월이 향단이는 연지곤지 바르고 얼굴에 분칠까지 하며 섹시한 자태로 길거리로 나와 환호를 했을 것이니

덜수 대방은 오빠를 연호하는 이들 앞으로 지나갈 때 지금의 BTS가 부럽지 않았을 겁니다.

 

이들 마방은 대방의 우두머리인 마궈터우(马锅头)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고 합니다.

마궈터우의 명령은 하늘의 명이고 군대 조직보다 더 일사불란하게 뭉쳤을 겁니다.

마궈터우는 사람과 말의 생명은 물론, 재산을 책임질 의무가 있었을 테니까요.

그야말로 마방 조직원의 생사여탈권을 마궈터우가 쥐고 있었을 겁니다.

 

 

상단을 꾸려 장삿길에 나서다 보면 위험한 곳을 지나야 하고 맹수나 산적들의 공격을 받기 일쑤였다지요.

그랬기에 마궈터우의 명령이 상단 전체의 목숨과 연관되기에 무조건 따라야 했을 겁니다.

만약, 명을 거역한다면?

얼마 전 실크로드 중간에 있는 우즈베키스탄을 다녀왔는데 사막 도시 히바라는 마을은 장사 도중에 붙잡혀

노예로 팔린 노예시장으로 유명한 곳이더라고요.

 

상단을 꾸려 장삿길에 나설 때에는 제일 앞에는 암말이 앞장을 섰다네요.

그 말은 말머리에 주앙 베이라는 표범 문양의 천을 장식해 우두머리 말임을 나타냈고 그 암말은

주로 티베트에서 구했다고 하는데 말보다는 주로 노새를 많이 이용했는데 그 이유는 좁은 산길에서는

덩치가 큰 말보다는 힘도 세고 적게 먹으며 짐도 많이 실을 수 있는 노새가 더 유용했기 때문이라네요.

 

암놈은 특히 갈 길의 앞에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이 수말보다 뛰어나고 위험에 대처하는 능력이 뛰어 낫다고 하네요.

2번 말은 힘이 좋아 1번 말을 잘 따라가야 하고 후미와의 속도 조절에도 능력을 보여야 한다고 하고요.

제일 마지막에 따르는 말은 모든 말의 속도를 조절해야 하기에 머리가 좋은 말로 정했다 합니다.

그러니 마방이 출발한다고 아무 말이나 앞장 세워 제멋대로 가는 게 아닌가 봅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마방의 속성상 중간에 말이 다치거나 병들어 죽을 수도 있는데

이때는 말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죽여서 독수리 먹이로 던져주었다지요.

그러니 티베트 사람이 죽으면 천장(天葬 또는 鳥葬))을 지내는 방법과 같이 말의 영혼을 하늘로 보냈나 봅니다.

 

이들 대방이 이끄는 마방이 머무는 마을은 이들이 쓰는 돈으로 숙소나 음식점이 돈을 벌었고,

늘 위험이 상존해 있기에 이들이 움직일 때면 상단을 보호하기 위해 무술을 했던 사람도 함께했을 겁니다.

그들은 무기를 소지하고 상단을 안전하게 보호하며 목적지까지 인도하는 조건으로 보수를 받았을 겁니다.

이렇게 차마고도란 그냥 장사를 위한 상인의 길만이 아니라 그에 따른 많은 사람이 함께 먹고살았을 것이기에

경제를 일으키는 그런 길이었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작은 마을에 큰 상단을 꾸린 마방이 들어오면 마을은 큰 구경거리가 생겼을 겁니다.

말만 120여 마리에 수많은 상인 무리가 함께 들이닥쳤을 테니까요.

또 그들이 풀어놓은 다른 지방의 특산품은 이 마을에서는 처음 보는 진기한 것들이 아니겠어요?

또 이들이 머물며 쓰는 돈도 제법 많았을 겁니다.

또 이 마을의 특산물을 대량으로 마방이 매입해 다른 곳으로 싣고 갔을 것이고요.

차마고도를 따라 많은 마을이 이런 상단을 유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겁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많은 나라가 공항과 항구를 확장해 허브 기지로 키우려는 것과 뭣이 다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