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상이 올라가 있고 현어가 걸려있는 나시족 마을 옥호촌

2017. 2. 3. 09:00중국 여행기/윈난성 여행 2016

 

돌이 많아 돌로 집을 짓고 살아갑니다.

그래도 많은 돌이 있어 담도 돌로 쌓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또 남은 돌은 골목길 바닥을 똘로 깔고 물을 가둔 저수조도 돌로만

쌓아두었는데 옥호촌에서는 돌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살았을까요?

그런데 옥호촌에는 그런 돌 말고도 기이한 것이 두 가지나 있으니

하나는 위의 사진에 보이는 동물 형상입니다.

 

 

이 마을을 걷다 보니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이 보입니다.

모든 집의 지붕 가운데는 위의 사진에 보이는 것과 같은 재미있는 동물 형상의

잡상이 올라가 있습니다.

어느 집은 지붕에 올려놓기도 하고 또 어느 집은 대문 위에 또 어떤 집은 담장에 올려놓기도

했는데 마치 지붕에 올라가 들어오는 사람을 감시하는 모습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 형상의 모습이 모두 달라 佳人은 무슨 동물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겠습니다.

워낙 중국이라는 나라는 신품종 동물을 아주 잘 만드는 나라가 아니겠어요?

다만 혼자 상상하기에 고양이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참 재미있는 형상이 아닌가요?

 

 

목적이야 다르겠지만, 무척 해학이 깃든 그런 모습 아닙니까?

이는 집안으로 다른 불길한 기운이 범접하지 못하게 하는 의도이지 싶네요.

그리고 가족의 안녕과 가정의 행복을 비는 그런 부적과도 같은 의미가 아닐까요?

그런데 모양이 귀엽고 예뻐 잡귀가 더 많이 달려들 것 같지 않습니까?

혹시 이 잡상과 같은 것의 이름과 용도를 아시는 분에 계시면 댓글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고요?

이럴 때는 전혀 아니라는 느낌이 듭니다.

인간의 손으로 빚은 흙덩어리에 불과한 그런 잡상을 만들어 그 흙덩어리에

우리의 안전을 맡긴다고 하니 인간처럼 바보 같은 존재는 없지 싶기도 합니다.

 

 

나시족 마을에서는 또 다른 하나가 보입니다.

지붕의 합각 부분에 물고기 형상의 조형물입니다.

아마 눈치 빠르신 분은 제가 올린 위후춘의 풍경 사진을 보시고

이미 공통점을 발견하셨을 것 같습니다.

나시족이 사는 집의 필수 장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는 현어(懸魚)라고 하는 장식이죠.

이를 보통 걸어놓은 물고기라는 의미의 현어라고 부르지만, 수어(垂魚), 야초(惹草),

현어(玄魚)라고도 한답니다.

부르는 이름은 다르지만, 그 의미는 같은 게 아닐까요?

 

 

윈난 성을 여행하다 보면 나시족이 사는 마을의 집에는 모두 현어가 걸렸다지요.

그러니 이 형상의 조각이 걸려있는 집은 주인이 나시족이라는 말입니다.

 

 

현어란 사실은 나시족만의 장식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한옥에도 이와 비슷한 현어를 장식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다만, 나시족이 누구나 할 것없이 집중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일 뿐이겠죠.

 

 

우리나라에서도 예전부터 맞배지붕이나 팔작지붕의 합각 부분에 있는

박공판(牔栱板 : ∧모양으로 붙인 두꺼운 널판) 위쪽 밑부분에 달아놓는 장식물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물고기나 초화문형(草花文形)을 조각한 형태가

대부분이었다고 하네요.

 

 

목조건축 이외에도 석탑·부도 기타 공예물 등에도 보인다고 하네요.

우리나라 목조건물에서는 전라북도 익산에 있는 숭림사 보광전(崇林寺普光殿,

보물 제825호)에 유일하게 남아 있답니다.

이런 조형물을 사용한다고 동질성 운운하는 것도 웃기는 이야기겠죠?

 

 

이 장식물은 정확하게 어느 의미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주로 물고기의 형태를

택하고 있어서 주술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답니다.

어느 사람은 목조 건물에서 가장 취약한 화재예방을 위해

물에 사는 물고기를 걸어두었다고 하기도 한답니다.

 

 

사실, 현어라는 용어 자체는 중국에서 온 것으로 삼국사기에 나타난 기록으로

이 조형물을 걸 수 있는 계급은 신라에서 진골 이하의 가정은 금했다고 하니 보통 집에서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으니 이 조형물이야말로 바로 금수저의 집안이라는 의미일까요?

 

 

그러나 현어에 대한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답니다.

중국 후한()의 청렴한 양속()이라는 사람이 남양 태수로 있을 때

아래의 벼슬아치가 서로 앞다투어 생선을 뇌물로 바쳤다고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잘 보이기 위한 방법은 나라를 떠나 다른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는 사람은 뇌물이지만, 받는 사람은 정치자금이라고 할 겁니다.

 

 

사람 사는 방법은 세월이 흘렀다고?

또 나라가 다르다고 다른 게 아닌가 봅니다.

남이 이런 일을 하면 비난하고 자신이 하면 당연한 일이고...

주변에 목소리를 높여 남을 비난하는 사람 치고는 스스로 깨끗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양속은 워낙 깨끗한 사람이라 이런 것은 뇌물이라 생각해 먹지 않았다 합니다.

일단 가져온 사람을 배려해 받은 물고기는 지붕 처마에 걸어두어

지나다니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했답니다.

배려가 아니라 망신을 주기 위함인가요?

아니면 난 이렇게 민초로부터 뇌물을 즐겨 받기에 더 많이 보내라는 의미일까요?

 

 

양속이 그 생선을 먹지 않고 지붕 아래 걸어둔 이유로는 아직 생선이 있으니 더는 보내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준 사람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하였답니다.

그러니 현어는 바로 물고기를 걸어놓음으로 청렴결백의 의미로 생각되겠네요.

 

 

나시족이 사는 집만 그렇게 장식하는 게 아니더군요.

나시족의 가장 큰 마을인 리장 고성 안을 걷다 보면 환장하게도 쓰레기통 장식도

현어를 걸어두었습니다.

다시 또 보내면 쓰레기통에 넣겠다는 의미인가요?

 

 

물론, 우리나라에도 예전에 이런 장식을 한 적이 있었다지만, 지금은 거의 보기 어려운

장식물로 나시족이 사는 집은 이런 장식이 없으면 큰일 나나 봅니다.

그런데 지붕이나 담장 위에 올린 동물 형상과는 달리 이 물고기는

꼭 합각 부분에만 있는 게 특이합니다.

 

 

어느 집은 한 마리의 물고기를 걸어두었고 어느 집은 두 마리나 걸어두었습니다.

이제 오랜 세월이 흐르다 보니 그 물고기가 비틀어지고 깨져 사라지고 있는 집도 보입니다.

아주 공들여 잘 만든 것도 있고 어느 집은 처삼촌 무덤 벌초하듯

겨우 물고기 흉내만 내기도 했습니다.

 

 

나시족은 씨족을 알리기 위해 철저하게 이렇게 물고기 조형물을

맞배지붕 합각 부분에 꼭 걸어둔답니다.

그게 대문이라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장식용으로 많이 사용하는 듯하더군요.

 

 

우리가 갔던 시기는 비수기라 식당조차 변변히 없어 점심을 거르고 나와

리장에 도착해 먹었는데 위후춘으로 비수기에 가실 때는 미리 간식 정도는 준비해

가시는 게 여러모로 도움이 되겠네요.

성수기에는 그런 불편함은 없지 싶습니다.

 

 

버스 편이 자주 없어 접근이 불편합니다만, 리장에서 자주 다니는 옥수채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 마을 입구에서 내려 잠시 걸어가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입니다.

버스 내린 곳에서 마을까지는 거리상 그리 먼 거리가 아니기에 입구에 내려서

걸어 들어갔다 와도 되겠더군요.

이 버스는 수허꾸전 입구를 지나고 수허꾸전 북문 입구도 지나고 바이샤 마을도 지나가더군요.

 

 

거리상으로는 리장 북쪽으로 약 15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멀지는 않지만,

운행 버스 편이 많지 않아 조금 불편하겠네요.

바로 옥룡설산 아래에 있는 마을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버스 시각표는 위후춘으로 들어갈 때는 샹산스창 입구에서 7시 30분, 10시 30분,

오후 2시 30분 그리고 막차가 오후 6시에 출발합니다.

위후춘에서 나올 때 아침 7시 10분, 오후 2시 그리고 늦은 오후 5시 30분이고

도착했던 마을 광장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니 당일치기로 보고 나오시려면 들어갈 때 10시 30분 샹산스창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이용해 들어가 구경하고 버스 내린 광장에서 오후 2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나오는 게

좋을 듯하며 그 정도면 충분하지는 않지만, 돌로만 만든 마을을

대충 구경하기에는 충분하지 싶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즐기시려면 하루 숙박을 하시는 게 좋을 것으로 생각되고 말 트레킹이나

걸어서 하는 트레킹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지 싶네요.

마을 뒤로 조금 더 올라가면 옥호라는 호수도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보지 못하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