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도의 여왕 아피아 가도

2016. 10. 12. 09:00이탈리아 여행기 2015/로마

 

세상에 원래 길이란 없었습니다.

사람이 걸어가면 그게 길이 되었습니다.

이제 아피아 가도로 접어들었습니다.

여기가 정확히 어디인지는 몰라도 방향을 북쪽으로 잡고 걷다 보면

로마 시내로 들어갈 겁니다.

옛날부터 이렇게 방향을 잡고 걷는 사람은 로마로 가려는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우리 가족이 하는 도전이 바보 같은 짓인지 몰라도 이렇게 걸었던 일이

이번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이었습니다.

 

 

도로 옆으로 무심한 들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저 들풀과 들꽃은 2천 년 전에도 피어 이 길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었을 겁니다.

이 길을 걸었던 수많은 사람이 저 들꽃을 바라보고 콧노래를 부르며 걸었을 겁니다.

 

 

아피아 가도는 지도상 길의 대부분이 위의 사진처럼 직선으로 곧장 뻗었습니다.

물론, 중간중간 약간 휘거나 살짝 오르내리막도 있기는 했지만,

거의 위의 사진처럼 일직선으로 만든 길이었습니다.

여기서 저기까지 무척 먼 길이지만, 걷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처럼 걷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될 듯합니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했나요?

오늘 정말 그 길을 찾았습니다.

여기는 오가는 사람조차 보이지 않는 그런 아주 한가한 길입니다.

 

 

우연히 공원에서 일하시는 분에게 물어보다가 약도를 얻어 걸어서

아피아 가도까지 걸어서 찾아왔습니다.

이제부터 또 길을 따라 걸어서 로마 시내로 올라가도록 하겠습니다.

들꽃이 피어 아주 즐겁게 걸을 수 있네요.

 

 

아피아 가도를 가도의 여왕이라고 한답니다.

아마도 여기 아피아 가도는 모든 포장도로의 시작이었고 기본이 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속담이 바로 아피아 가도를 두고 한 말은 아니겠는지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조각상은 누구며 왜 이곳에 만들어 두었는지 알 필요도 없습니다.

2천 년이 넘도록 이곳을 지키며 지나가는 길손을 우두커니 바라봅니다.

그냥 바라보고 "본 조르노!"라는 인사만 하고 지나가면 됩니다.

 

 

위의 사진을 보시면 참 예쁜 길이 아닙니까?

걷고 싶지 않으세요?

아무도 없는 고즈넉한 길을 함께 걸어갈까요?
길이란 원래 없던 것입니다.

사람이 다니면 그게 길이 됩니다.

아피아 가도도 2.300여 년 전에는 원래 없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유적으로 보호받고 있는 아주 유명한 길입니다.

 

 

길이란 사람이 걸어 다니면 새로 생기는 겁니다.

그렇기에 걷는 겁니다.

마음의 길도 서로 왕래하지 않으면 무성하게 자라는 잡초 때문에 

길이 사라지듯 걸어야 길이 생깁니다.

이제 우리가 걸었으니 이 글을 보시고 또 다른 한국인이 우리처럼 걸을 수 있습니다.

 

 

걷다가 피곤하면 잠시 길가에 앉아 쉬었다 가면 됩니다.

앞으로 얼마를 더 걸어야 로마 시내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지만,

여유를 가지고 걷다 보면 도착할 겁니다.

길가의 돌은 그냥 돌이 아니고 유적이겠지만, 버려진 상태로 방치되어있습니다.

 

 

아이스크림 포장지가 이럴 때는 무척 요긴하게 쓰입니다.

가볍고 부피도 작아 휴대에 아주 쉽습니다.

바닥의 습기도 막아주고 냉기도 막아줍니다.

시원한 물이라도 넣어가면 빨리 더워지지도 않습니다.

 

 

날씨가 더운 날 얼린 물병을 아이스크림 포장지에 넣어 다니면 오래도록

얼음이 녹지 않고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스크림 포장지를 여행 떠날 때 꼭 배낭에 넣어 다닙니다.

 

 

이렇게 다니다 피곤하면 잠시 앉았다 갑니다.

앉아서 바라보니 눈앞에 옛 모습의 흉상을 조각한 유적이 보입니다.

유적을 만든 목적은 무엇이고 또 어디에 사용하려고 만들었을까요?

 

당신은 누구고 지금은 왜 이곳에 뒹굴고 있는지 물어보아도 좋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만난 유일한 인간은 바로 저런 조각상뿐입니다.

인간의 형상을 한 돌 뿐이네요.

 

 

다시 길을 따라 걷습니다.

훗날 우리 같은 여행자가 있어 따라 걷게 되면 또 다른 길이 생기게 되겠지요.

로마 시대에 마차 바퀴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도 보입니다.

 

이렇게 무모하게 결행하는 이유는 가장 볼 게 없는 곳이겠지만,

가장 걸어보고 싶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여행이란 눈으로 즐기는 것도 좋지만, 마음으로 즐기는 것도 좋기 때문입니다.

누구는 왜 그런 여행을 즐기냐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스타일의 여행을 선호하기 때문이죠.

볼 게 별로 없어도 걸어보고 싶은 길이잖아요.

 

 

우연히 얻은 수도교 인쇄물 한 장이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했습니다.

거기에 아피아 안티카에 대한 도로 표시와 이어지는 길 표시가 없었다면

생각할 수 없는 일이지요.

여행이란 이렇게 우연히 얻은 종이 한 장 때문에 걸어갈 수도 있는 겁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이렇게 결행한 일이 결국 오늘 온종일 걷게 되었고 여기부터 시작해 숙소까지

걸어서만 갔다는 것 아니겠어요?

아침 9시경부터 걷기 시작해 오후 9시 31분 출발하는 밤 기차를 탔으니

모두 12시간 정도 걸었다는 말이 됩니다.

그래도 별로 피곤한 것은 모르겠습니다.

중간중간 쉬면서 걸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