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테라노 조약(Patti lateranensi)과 성당

2016. 9. 30. 09:00이탈리아 여행기 2015/로마

 

아주 멋진 프레스코화죠?

이 그림은 라테라노 성당의 발다키노에 그린 프레스코화입니다.

14세기경 그린 그림이라고 하니 제법 오래된 그림입니다.

 

 

오늘도 라테라노 성당 안을 구경합니다.

14세기에 만든 위의 사진처럼 프레스코화로 장식한 발다키노에서는

오직 교황만이 미사를 집전할 수 있다 합니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오직 교황만이 매주 미사를 집전한다고 하네요.

 

미사를 주관하는 발다키노 위를 정면에서 올려다보면 위의 사진에 보이는

장식 창이 있고 그 안에 조각상이 보입니다.
이 두 개의 흉상 안에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의 두개골이 보관되어 있답니다.

사리도 아니고 두개골을 모신 곳이라면 라테라노 성당의 중요성을

알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요?

 

 

이제 눈을 발다키노 아래로 내려가면 위의 사진에 보이는 반지하로 보이는 공간이

나오는데 일반인은 내려갈 수 없도록 막아놓았고 많은 사람이 동전을 던져 놓았습니다.

그리고 멋진 조각 인물상이 하나 서 있습니다.

 

 

바로 저 조각상 아래에 석관이 있는데 교황 마르티노 5세의 무덤이라 하며

그곳에는 많은 동전이 떨어져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이곳에 동전을 던졌을까요?

당연히 던진 사람 마음이겠지요.

죽은 교황이 산 사람을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주제단을 바라보고 이번에는 왼쪽을 바라보면 금으로 된 최후의 만찬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저게 바로 황금으로 만든 최후의 만찬상입니다.

최후의 만찬에 사용된 바로 그 식탁이 이 성당에는 별도로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황금으로 만들어놓았을까요?

그러니 중세에 라테라노 성당은 그야말로 가톨릭의 총본산이 맞나 봅니다.

 

 

황금으로 만든 최후의 만찬상을 가까이 불러 다시 봅니다.

개인적으로 황금에 눈이 어두워 자꾸 보게 됩니다.

황금으로 만든 최후의 만찬은 그 가격을 금으로만 환산할 수 없겠지요?

분명 저 때 예수와의 만찬상에 오른 음식은 분명 조악한 음식이었을 텐데

그런 내용을 금으로 표현하다니...

 

 

교황 레오 13세의 석상이 있습니다.

석상 아래는 그의 석관이 있지요.

죽어서도 살아있는 우리를 향해 축복의 성호를 그리나 봅니다.

 

19세기까지 교황의 즉위식이 열렸고 교황의 공관으로 사용한 곳이니

지금의 바티칸이 했던 모든 일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네요.

5세기경부터 7개의 작은 예배당이 성당 안에 있었는데 이탈리아 사람에게는

이 예배당을 모두 방문하는 게 일곱 계단을 오르는 일고 같다고 여겼다 합니다.

 

 

라테라노 조약(Patti lateranensi)은 우리도 세계사 시간에 들었던 조약입니다.

1929년 2월 11일 교황 비오 11세와 베니토 무솔리니 사이에 체결된 조약으로

여기가 그 명칭의 유래가 된 곳이죠.

조약의 내용은 당시 비인도적인 파시스트의 만행을 교황이 눈감아주는 대신

바티칸과 라테라노를 치외법권으로 인정했던 조약입니다.

정말 더러운 거래를 한 것이지요.

제 편해지고자 많은 백성의 고통을 눈 감고 묵인한다고요?

 

 

종교의 본질이라 이런 것인가요? 

라고 따지면 교황은 이렇게 답을 했을 겁니다.

"언제 누가 그 조약을 체결했어? 

난 전혀 모르는 일인데?"

그랬습니다.
교황을 대신해 협상 테이블에 앉은 사람은 추기경 피에트로 카스피리였으니까요.

이런 짓을 하고도 용서를 빌어 천국에 오른다면 협상 테이블에 앉았던 무솔리니를

포함해 히틀러까지도 이 세상에 천국에 오르지 못할 악인은 아무도 없지 싶습니다.

이제 佳人도 희망이 생겼습니다.

적어도 그런 짓은 하지 않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위의 사진에 보이는 지금의 바티칸 시국을 무솔리니가 인정해 준 것이지요.
그 유명한 조약이 바로 이곳에서 체결되었기에 라테라노 조약이라고 한다네요.

정확한 장소는 여기 성당과 붙은 건물인 라테라노 궁전에서 겠지요.
이로써 라테라노 성당은 치외법권이 인정되어 바티칸 산 피에트로 성당보다

오히려 격이 높은 곳이라고 한다네요.

아직도 매주 목요일은 교황이 직접 이곳으로 와 만찬 미사가 봉헌되며, 특히 매년 11월 9일은

처음으로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봉헌을 기념한 라테라노 봉헌 축일에도

기념행사가 열린다 합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역사의 영욕을 함께한 성당이 바로 라테라노 성당이네요.

당시의 암울했던 세상이 생각나게 했던 일들이 많았나 봅니다.

그게 최선의 방법이었는지 아니면 차선책이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좌우지간 교황의 선택은 지탄받을만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