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타 신전, 카이사르 신전, 카스토르와 폴룩스의 신전

2016. 9. 1. 09:00이탈리아 여행기 2015/로마

 

오늘 제일 먼저 구경할 곳은 위의 사진에 보이는 베스타 신전(Tempio di Vesta)입니다.

로마 제국 천여 년 동안 이어온 불과 부엌의 신을 숭배하는 신앙의 전당으로

매우 신성시하는 곳이라 합니다.

어찌 보면 사람이 살아가는 도중에 가장 기본적인 일을 관장하는 곳이라 생각되네요.

4세기경 세워진 신전으로 지금은 기둥 몇 개만 남았지만,

원래 20개의 기둥으로 둘러싸였다 하네요.

 

신전 안에는 6명의 여성 성직자라고 하는 베스탈이 성화를 항상 피워두고 유지했다는데

이런 분위기 때문에 포로 로마노 안에서는 밤에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에

가장 아름다운 공간이 되기도 했다네요.

 

 

원형 평면으로 된 신전으로 이 신전에는 미네르바 여신의 형상과 로마의 영원함을

상징하는 성화가 모셔져 있는데 성화가 꺼지면 흉조라고 생각했다 합니다.

원래 불을 지키다 꺼지면 기분 좋은 사람 아무도 없지요.

귀족 가문에서 선발된 6세~10세의 처녀로 30여 년간 순결을 지키며 성스러운

이 업무에 종사해야만 이 일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합니다.

 

 

힘든 만큼 이들에게는 높은 사회적인 지위가 보장되었고 높은 액수의 급여도

받았지만, 그러나 도중에 처녀 제관들이 순결을 잃으면 생매장을 시켰다고 하네요.

권한을 주면 그에 따른 의무 또한 엄격하게 관리했지 싶습니다.

 

이 말은 전혀 인간의 본성과는 달리 살았다는 말이 아닌가요?

신전 뒤에는 191년 마지막으로 살았던 처녀 제관이 머물던 집터가 있답니다.

신전 맞은편에는 이들이 집단생활을 했던 베스탈의 집이 있었다 합니다.

그녀들이 머물던 3층의 건물에는 방만 50여 개가 있었다니 많은 여인이 살았네요.

 

 

중앙 정원에는 위의 사진에 보이는 연못과 베스탈의 석상이 자리했네요.

지금은 대부분 파괴되어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지만, 석상은 그나마 볼만합니다.

제법 넓은 면적을 차지했습니다.

 

 

위의 사진은 율리우스 카이사르 신전(Tempio di Cesare)입니다.

기원전 44년 카이사르가 화장된 터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된 옥타비아누스에 의해

세워진 건물로 신격화된 인간을 숭배하기 위해 만든 최초의 신전으로 알려진 곳이라죠.

 

 

원로원과 일전을 겨루기 위해 루비콘 강을 건너면서 "주사위는 던져졌다."라고 했던

사람으로 또한, 그는 동방원정 중 원로원에 승전보를 알리면서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던 사람이고요.

신전 뒤로 돌아가면 위의 사진처럼 화장했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카이사르의 시신을 이곳에서 화장했지 싶습니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그도 결국은 죽어서 재도 남지 않았나 보네요.

 

 

위의 사진은 카스토르와 폴룩스 신전(Tempio di Castore E Polluce)입니다.

카스토르와 폴룩수 신전은 지금 기둥 세 개만 남은 폐허입니다.

위의 사진은 팔라티노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고 찍은 사진이고 아래 사진은 반대로

포로 로마노 안에서 팔라티노 언덕 전망대 테라스를 올려다보며 찍은 사진입니다.

 

 

세 개의 기둥 뒤로 테라스에 서서 이곳을 내려다보는 많은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같은 곳일지라도 어느 곳에서 보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릅니다.

이 신전은 제우스와 헤라 사이에 태어난 쌍둥이를 기념하기 위한 세운 신전으로

기원전 484년에 만든 신전이지만, 기원전 12년에 화재로 소실된 후

티베리우스 황제가 복원한 것이라네요.

 

 

일명 쌍둥이 형제의 신전이라고도 부른다네요.

신화에 따르면 기원전 499년경 주변 부족이 동맹을 맺고 로마로 침공해오기

시작했고 이윽고 레질루스 호수에서 전투가 벌어지게 되었고 로마군은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답니다.

 

 

로마인들은 타루쿠인 왕조에 승리했는데 이 전투에서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네요.

힘든 전투를 승리한 후 이때 승전보를 이 두 형제가 백마를 타고 달려와

로마에 소식을 알려주었다 합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샘물이 그때 말에게 물을 먹였던 샘터라 합니다.

그런 역사적인 사실과는 달리 초라한 모습입니다.

 

 

그 뒤로 보이는 신전이 바실리카 줄리아 성당입니다.

위의 사진에 멀리 보이는 세 개의 기둥이 카스토르와 폴룩스의 신전이고 그곳부터

앞에 보이는 아치문 사이가 바실리카 줄리아(Basilica Giulia)입니다.

특별한 유적 잔해는 보이지 않고 주춧돌만 남아있는 곳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신전, 신전 그리고 또 신전

포로 로마노는 이렇게 신을 위한 공간인가 봅니다.

당시의 로마는 이렇게 신의 세상, 신에 의한 세상 그리고 신을 위한 세상이었지 싶습니다.

그랬기에 황제는 신과 동격으로 인정받기를 원했지만, 실상은 신의 발뒤꿈치도 이르지

못하고 자살하거나, 근위대에 피살당하거나 정적에 또는 원로원에 의해 쫓겨나기도 했지요.

로마 황제란 우리의 생각과는 다른 개같은 삶을 살았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