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교 위에도 이야기가 있네요.

2013. 12. 3. 08:00동유럽 여행기/체코

 

오늘은 카를교에서도 효험이 있다는 조각상을 찾아봅니다.

30개나 되는 많은 조각상이 이곳 카를교 난간에 만들어 놓았지만,

대부분의 성인 조각상은 관광객의 시선조차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유난히 많은 사람이 모여있는 곳이 있습니다.

 

다리 중간 쯤 위에 보이는 청동상이 보입니다.

침대에 주무시는 신부님으로도 생각되겠지만, 그렇지 않다가 정답이랍니다.

머리에 별이 다섯 개나 반짝이니 범상치 않은 일이 일어난것 만 분명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언제까지...

아무리 많은 성인상이 있더라도 군계일학은 늘 있게 마련이죠.

그중 관광객의 제일 많은 사랑을 받는 성인상은 성 요한 네포무크의 조각상입니다.

바로 위의 사진처럼 이 조각상 앞에는 언제나 사람이 바글거립니다.

 

 

그 이유는 그 조각상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입니다.

청동으로 만들었는데 많은 사람이 만져 위의 사진처럼 아주 반질거릴 정도랍니다.

물론, 많은 사람이 만지기를 바라기에 이 성인조각상을 만지려면

보통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답니다.

 

왜 그렇게 유명하느냐 묻는다면?

동상 아래에 보이는 동판에 손을 대고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라네요.

위치는 많은 사람이 만져 아주 빤짝빤짝거리는 못찾을리 없을 겁니다.

 

 

그러나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말을 잘못된 것이고 사실은 고백성사를 하는

곳이라는 게 정확한 의미일 겁니다.

왜?

성 요한 네포무크 신부는 죽음으로 고백성사의 비밀을 지켜준 분이기 때문이죠.

 

그러면 영원히 지켜진다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이 만졌다고 아무 곳이나 만지기 보다는 다리에서 떨어지는

신부님을 만져야만 효력이 있답니다.

보이시죠?

아주 작게 묘사된 떨어지는 신부님 말입니다.

 

 

성 요한 네포무크의 동상은 30개의 조각상 중 몇개 않되는 청동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위의 조각은 바로 이 자리에서 성 요한 네포무크 신부가

블타바 강으로 던져진 자리라는 표시입니다.

그는 당시 보헤미아 왕이며 로마왕이었던 벤체슬라우스 시대에

바로 이 도시에 살았던 신부였다는데 그러나 어느날 왕이 사냥터에 갔다가

돌어와 보니 왕비가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했더랍니다.

 

 

왕은 그 내용이 무척 궁금했고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기에 혹시 신부와 불륜까지도

의심하게 되었고 왕은 그가 애지중지하는 개가 한 마리 있어 늘 개를 곁에 두고 있는 데

개가 믿을 수 없는 사람을 보면 무섭게 짖어 댄답니다.

그런데 신부를 불러 왕비의 고해성사 내용을 묻는 자리에서 그 개가 신부를 보자마자

자지러지게 짖기 시작하더랍니다.

환장할 일이지요.

 

 

바로 위의 동상에 보이는 개일 겁니다.

정말 개같은 일이 벌어진 겁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개는 만져 저렇게 반들거릴까요?

개가 되고 싶은 사람이 많은가 봅니다.

 

만약 이곳에 가시면 개는 만지지 마세요.

개를 만지면 잘못하면 개가 될 수 있습니다.

왕은 개는 믿어도 사람은 믿지 못하나 봅니다. 

 

 

처음에는 고해성사 내용을 말하라고 좋은 소리로 명령을 했지만, 고개를 가로졌는

신부에게 언성을 점차 높였지만, 강도가 강해질수록 신부는 더욱 입을 열지 않았다네요.

결국, 강제로 입을 열고 혀를 자르고 고문을 가해 죽음에 이르렀답니다.


 

그러나 발표는 '탁'하고 책상을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발표해야 하지만, 한밤중에 몰래

블타바 강에 있는 이곳 카를교 위에서 동판의 그림처럼 신부의 시신을 던져버렸답니다.

그러면 신부의 시신은 강물을 따라 내려갈 것이고 며칠 지나면

그 모습조차 알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그랬을 겁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신부의 시신을 강을 따라 조금 흐르다 멈추고 신부의 시신이 있는 자리에

다섯개의 별이 반짝이더랍니다.

프라하 시민은 그 별이 하도 신기해 그 물 아래를 살펴보니 바로 그들이 존경하던 신부님이라...

그래서 성 요한 네포무크의 동상에는 언제나 별이 다섯 개가 머리위에 있답니다.

 

 

그 후 체코의 다리 대부분은 다리 가운데 성 요한 네포무크의 조각상을 세우는

풍습이 생겼다는데 신부가 물에 빠진 사람을 구원한다는 말인가요?

아니면 물에 빠져 죽으면 별이 다섯 개가 반짝인다는 의미인가요.

그도 아니면 죽기전에 고해성사를 하란 의미인가요.

그러나 신부는 고해성사를 한 사람을 위해 영원히 입을 닫았다는 이유로

목숨까지 잃은 최초의 순교자가 된 셈이네요.

 

 

카를 다리 위에는 눈여겨 볼 또 하나의 조각상이 있습니다.

'갈보리산 위의 십자가상'입니다.

이 조각상이 다리위에 세운 30개의 조각상 중 별 다섯개가 반짝이는 성 요한 네포무크의

조각상 못지않게 많은 사람이 찾는 것이기도 하지만, 십자가 상 주변에 히브리어 글자랍니다.

 

 

이사야서에 나오는 글로 '거룩, 거룩, 거룩하신 우리 인류의 주'라는 말이라 합니다.

라틴어가 아닌 히브리어로 쓴 이유는 바로 유태인이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 합니다.

소원을 빌면 들어준단 말입니까?

밤에 찍은 사진을 얼마나 만졌는지 보니 더 반짝입니다.

 

 

라틴어가 아닌 히브리어로 적은 이유가 바로 유태인이 이 글을 읽을 수 있게 함이라

하는데 사연인즉, 어느 유태인이 예수의 십자가상을 비웃는 말을 했다네요.

유태인들은 원래 예수를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도들은 이 사람을 신성모독으로 법정에 세우고 유태인의 언어인 히브리어로

자신이 직접 글자를 여기에 적어놓도록 판결을 내렸다 합니다.

 

 

결국, 소수였던 유태인은 법정의 이런 결정을 따를 수 밖에 없어 굴욕스럽지만,

결국, 여기에 글을 남겼다 합니다.

그러나 2.000년에 이 동상 아래에 이 문구에 대한 설명을 체코어 영어 그리고

히브리어로 동판에 새겨 아래에 붙여놓았답니다.

이렇게 알리는 이유는 그 유태인이 자발적으로 행한 일이 아니라 법원의 결정에 따라

행한 것임을 알리기 위한 배려라 하네요.

그 이유는 이곳 카를교를 찾는 유태인이 이 조각상에 히브리어로 새겨진 글을 보고

 오해를 풀기 위한 배려라고 보입니다.

비록, 작은 일이만, 배려라는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일입니다.

 

 

방사능에 취해 역사를 왜곡하고 뻔뻔스러운 말과 행동을 하는

어느 민족이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요?

이번 독일에 들려 그들이 저지른 일에 참회하는 모습을 보고

이게 유럽의 힘이구나 생각하게 되었네요.

인간이 가장 인간다운 점은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는 일이 아닐까요?

그렇지 않다면 금수와 뭐가 다를까요? 

 

 

카를교 양쪽으로 각각 15개씩 모두 30개의 성인상이 있는데 1683년부터 1938년까지

250년간 프라하의 유명한 조각가에 의해 점차 만들어지기 시작했답니다.

이렇게 이곳에 성인조각상을 만들게 된 이유는 로마의 천사다리에서 따온 것이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모조품으로 대체되어가는 중이고 진품은 프라하 시 미술관

라피다리움으로 옮겨놓는 중이라 합니다.

 

 

1342년 큰 홍수로 이전에 만든 현재 자리에 있던 목조 다리와 석조 일부분은 유실되며

한동안 통행할 수 없었으나 1357년 카를 4세가 독일 궁정 건축가였던 페트로

파를레르시에게 다시 석조다리로 만들것을 명령해 1402년에서야 완공하게

되었다는데 그 독일 건축가는 지금의 프라하 성과 비투스 성당도 만든 사람이라 합니다.

 

 

처음에는 통행세를 받기위해 만든 다리 양쪽의 교탑 중 왕성이 있는 서쪽 교탑은

1170년에 만든 교탑으로 로마네스크양식이 있는 작은 탑과 고딕양식으로

1464년에 만든 탑이라 합니다.

그러나 별다른 조각이 없는 평범한 탑이라네요.

 

 

그리고 구시가쪽에서 들어가는 교탑은 고딕양식으로 세워졌으며 그 모습이

아름다워 유럽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교탑 중 하나라 하더군요.

이 탑은 1648년 스웨덴군을 격퇴한 기념조각이 탑의 외벽에 조각으로 남아있고

다리를 만든 페트로 파를레르시는 다리를 만들 때 통헹 목적으로만 만들지 않고

군사적으로 방어에 용이하게 설계했다 합니다.

그 전투가 30년 전쟁의 마지막 전투가 되었다네요.

 

 

블타바 강 방향 쪽에는 1층 중앙에 가운데 성 비투스, 오른쪽에는 이 다리를 만들라고

명령한 카를 4세 그리고 왼쪽으로는 카를 4세의 아들인 바츨라프 4세의 조각상이

있고 2층에는 이 지역 보헤미아의 두 성자로 추앙받는 아달베르트와

프로코피우스의 조각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통행세를 받기위한 톨 게이트 역할을 했지만, 후에는 죄를 지은자를 가두는

감옥의 역할도 한 적이 있다네요.

그러나 지금은 돈을 받고 관광객에게 주변 풍경을 감상할 수 있게

탑 위로 올라가는 입장을 허락하더군요.

지금의 다리 이름인 카를교는 처음부터 지어진 게 아니라 1870년에 붙여진 이름이라 합니다.

처음에는 차량통행도 되는 다리였지만, 카를교 주변으로 튼튼한 다리가 건설되며 점차

차량통행의 필요성이 감소되어 1950년부터 보행자 전용 다리로 변경했다 합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까를교에서의 이야기는 크게 감명을 주지 않네요.

차라리 우리나라의 심청이 더 대단한 사람이잖아요.

그 풍랑조차 험난하기로 유명한 임당수에 몸을 던져도 다시 살아나 아버지 눈을 뜨는

기적을 이루었으니 우리나라도 심청이의 동상을 살곶이 다리에 만들고 그곳에 또

원효대사나 김대건 신부의 동상과 함께 두어 세계인이 그곳을 찾게 하여

관광명소로 만드는 게 어떨까요?

사실 카를 다리라는 게 그리 대단한 다리도 아니고 그저 그런 곳이지만, 이렇게

입소문이 나면 모두 동판의 그림 한번 만지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