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위엔(广元 : 광원)으로 갑니다.

2013. 5. 27. 08:00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고한대(古漢臺)를 구경하고 천천히 걸어서 숙소로 돌아옵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빵을 미리 사서 배낭에 넣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타고 갈 버스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먹어야 삽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습니다.

배가 고프면 구경도 재미 없습니다.

여행 중에는 이렇게 늘 비상식량을 챙겨다녀야 합니다.

중국에서는...

佳人은 이렇게 속물처럼 살아갑니다.

 

중국을 여행하며 저절로 알게 된 것 중의 하나가 큰 도시가 아니라 작은 도시나 시골에서

이동할 때 먹을 수 있을 때 미리 먹어 둘 것, 그리고 배낭에 하루 정도는 버틸 수 있는

빵이나 과일을 꼭 채워 둘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대중교통으로만 이동할 때 가다가 바로 갈 수 없는 경우는

중간에 이름도 모르는 곳에서도 자고 갈 마음을 먹고 이동해야 합니다.

왜?

길이 막혀 가지 못할 경우도 자주 일어나고 버스가 고장으로

몇 시간을 지체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터미널에는 대부분 가야 할 곳에 대한 거리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거리 표시는 그냥 숫자에 불과합니다.

우리 생각으로 시속 몇 km로 달리면 얼마 걸리겠다는 생각은 아주 순진한 생각입니다.

어느 때는 한 시간에 20km도 가지 못하는 때도 많았습니다.

거리 표시는 '그냥 그 정도 떨어져 있구나.' 하고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이제 숙소에 돌아와 배낭을 챙겨 광위엔(广元 : 광원)으로 갑니다.

광위엔으로 가는 버스는 한중에서 하루 세 번만 출발한다 합니다.

아침 8시 20분, 11시 그리고 오후 2시라고 합니다.

 

우리는 고한대를 구경하고 11시에 출발하는 버스로 갑니다. (66.5원/1인)

여기 한중을 떠나며 뭔지 잊어버린 것이 있는 것처럼 아쉽습니다.

아마도 양평관과 마초묘를 보지 못하고 떠나는 게 아쉬워 그러나 봅니다.

이렇게 떠나면 언제 다시 여기를 찾아오겠습니까?

 

광위엔을 출발해 어제 들렸던 면현을 들렀다 가네요.

험하다고 알고 있는 길이 신기하게도 고속도로로 연결되었습니다.

드디어 한참을 달려 쓰촨이라는 곳으로 들어갑니다.

 

쓰촨(四川)이라는 지명은 민강, 금타강, 부강, 가릉강이라는 네 개의 강이 흐르기 때문에 붙

이름이라고 하며 이렇게 한중이라는 곳의 이름도 한수의 중류에 있다고 한중이라 했듯이

쓰촨도 네 개의 큰 강이 흐른다고 해 지은 이름이라고 하니 옛날부터 물은 인간 생활에

정말 중요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가 가는 광위엔은 바로 그 유명한 가릉강변의 도시입니다.

이곳을 흐르는 가릉강은 진령산맥에서 발원해 명월협으로도 흐르고 장비의 무덤이 있는

랑중이라는 마을로도 흘러 충칭에서 중국에서 가장 길다고 한 장강에 합류한다고 하죠.

 

쓰촨이라면 삼국지에 등장하는 유비가 제갈량과 함께 세운 나라인 촉한의 근거지이기도 하지요,

촉도난에서 보듯 촉으로 가는 길은 참 험한 길입니다.

길을 달리다 보면 무척 아름다운 전원마을을 보고 중국의 시골이 이렇게 새마을 운동을 열심히 해

모두 아름다운 전원마을을 만들었구나 생각했는데 그 이유를 아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바로 지진으로 말미암아 예전에 살던 집을 살지 못하게 하니 새롭게 지어 분칠까지 하니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얼마 전 쓰촨을 흔든 대지진 때문에 쓰촨은 정말 많은 변화가 있더군요.

자연재해는 이렇게 중국의 민초의 삶까지 바꾸어버렸나 봅니다.

 

험한 산길을 내려오다 보니 언뜻 도로 이정표가 지나갑니다.

위의 사진에 왼쪽 끄트머이에 살짝 보이는 조천(朝天)이라는 글자입니다.

조천이라는 동네는 바로 그 유명한 명월협이라는 잔도가 있는 마을이지요.

명월협에는 아주 유명한 잔도가 있습니다.

기원전에 만든...

어제 석문잔도에서 실망을 했기에 이번에 명월협 잔도를 제대로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버스는 186km의 거리를 4시간이 걸린 오후 3시경에 광위엔에 도착하는데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오다 잠시 일반도로로 왔는데도 어찌 4시간이나 걸리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한중이 북벌을 위한 전초기지인 베이스캠프였다면 쓰촨성 광위엔은 보급기지라 해야 하나요?

여기는 유비가 공명과 방통의 제안에 따라 익주를 삼키는 음모를 벌였던 곳이라 해도 될 겁니다.

한중의 공격을 막아준다는 핑계로 군사를 몰고 들어와 같은 유 서방인 유장이 다스리던 지역에

군사를 주둔시키고 북벌에 앞서 남벌을 계획하며 별의별 구실을 다걸며 익주를 삼키는

 그런 이야기가 많은 곳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는 장비와 마초의 일기토가 벌어진 곳이 바로 여기서 가까운 소화고성입니다.

소화고성은 옛날 이름이 그 유명한 가맹관이지요.

이제 광원에 며칠 묵으며 검문관도 구경하고 가맹관도 가보고 명월협도 걸어보렵니다.

 

"고조께서 나라를 일으키시고 그 아들들이 왕이 되어 아홉 나라를 크게 이끄시어

여씨 일족을 참하시고 큰 기틀을 세우셨습니다.

지금 조조는 곧은 것을 싫어하고 바른 것은 추하다 하니 이는 더 크면 나라를 찬탈하려는 생각입니다.

이미 종실은 미약하고 황족은 벼슬이 없기에 옛날 방식을 미루어 신이 한중왕에 올랐습니다.

신 엎드려 세 번 살펴보건대 나라의 은혜를 입어 지방을 다스려보려 하오나 만약,

능력이 없다 하시면 더 큰 벼슬도 내리지 마시고 신에게 무거운 죄로 다스려 주옵소서.

 

여러 신하가 핍박을 하더라도 신을 의로서 다그치소서.

신은 물러나 오로지 도적들을 효수하지 못하여 나라가 아직 어지럽고 종묘사직마저

위태로워 신은 머리를 부수는 은혜를 책망하실까 두렵습니다.

만약, 폐하의 권위에 응하여 변화가 온다면, 열성조에 편안함을 안겨드릴 것이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갈 것입니다.

감히 항상 마땅함만 걱정하여 막으니 후회뿐입니다.

늘상 여러 사람과 논의하여 배례하며 인수를 받드니 나라의 권위를 숭상함입니다.

 

작위와 왕호를 우러러 높은 자리와 은총의 두터움을 알고 아래로 왕은의 보답을 일의 효능을 아니

깊은 중책을 맡음을 걱정하여 놀랍고 두려워서 한숨을 쉬니 골짜기에 임한 것 같습니다.

힘을 다해 정성을 보이고 전군을 독려하여 여러 의로운 사람들을 가지런히 하여 하늘이 주어진

것에 따라 흉포한 도적을 몰아내고 사직을 편안하게 하여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하려 함입니다.

삼가 이 글과 좌장군의 직위와 의성정후의 인수를 역마를 통해 반납합니다."

 

이 글은 유비가 바로 여기서 한중왕에 오르며 황제인 헌제에게 올리는 표문의 일부입니다.

그러니 스스로 셀프왕에 오름으로 헌제에 통보하는 글이지요.

좌장군의 직위와 의성정후의 직은 누가 내려준 겁니까?

황제가 내려준 직위가 아닌가요?

그런데 이제 혼자 한중에 들어와 한중왕에 올랐으니 그보다 낮은 황제가 내린 직위는 반납하겠다는?

뭐 조조가 위왕에 올랐으니 유비도 같은 급에서 맞서고 싶다는 말이 아니겠어요?

그래야 갑을관계가 같은 급으로 변하니까요.

 

그런데 조조도 한때는 한중을 차지했잖아요.

결국, 유비가 한중을 치기 전까지는요.

사실, 조조도 이곳에서 유방의 기를 받으려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위왕으로 만족할 수 없어서 말입니다.

곤설이라는 글자를 썼을 때는 곤룡포가 입고 싶어 위의 사진처럼 그리 썼을 수도 있고요.

 

그러나 한중이 공격을 받자 계륵이라는 말을 남기고 진령산맥을 넘어 장안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때 조조는 황제의 꿈을 접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늘이 조조 편이 아니고 유방의 氣도 받지 못한다고 알았나 봅니다.

유방이 왜 성도 다른 조조에 기를 넘겨주겠어요.

결국, 조조는 황제의 꿈은 버리고 제후인 위왕으로 만족했을지 모르겠다

佳人만의 생각을 하며 광위엔으로 갑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광위안으로 가는 길이 험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기에 유비가 한중왕에 오르며

당시 황제인 헌제에게 올린 표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정말로 유비는 말도 청산유수와 같이 잘합니다.

누가 그렇게 힘든 자리에 오르라 했나요?

혼자서 한중왕에 올랐고 혼자 커나가는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네요.

황제의 명도 없이 혼자 한중왕에 올랐으니 예전에 황제로부터 받았던

하찮은 직책은 모두 반납한다 이 말이지요?

유비가 이제 이렇게 훌쩍 커버렸습니다.

이 글을 보자 조조 왈 "짚신이나 만들어 팔던 쪼다가 별 생쇼를 다하고 자빠졌구먼~"이라고 했답니다.

물론, 중국말로 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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