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5. 08:00ㆍ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2012년 11월 1일 여행 14일째
우리 여행이 벌써 11월이 되었네요.
집을 떠난 지 보름이 가까이 되었고 벌써 여행의 1/3이 지나갑니다.
오늘은 지루했던 시안을 떠나 공명의 북벌 루트를 역순으로 따라가는 첫날입니다.
그렇게 이곳 장안을 목표로 기병해 오랜 시간 전투를 했지만, 장안은 결국,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다가 한 많은 삶을 정리하고 숨을 거둔 곳인 오장원으로 갑니다.
우리가 가는 루트는 공명이야 북벌 루트라 했지만, 그 루트는 위나라에서 볼 때는
남벌 루트로 이렇게 세상은 어디에 서서 보느냐에 따라 반대로 보이는 게 이치입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갈등과 미움도 반대로 생각하면 다른 느낌이 들 겁니다.
미리 예매해둔 기차는 아침 8시 56분 출발, 1시간 18분 걸린 10시 14분 도착하는 기차로
15원/1인이며 앞뒤로 많은 기차가 운행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요금이 더 비싼 기차가
시간이 더 걸린다는 일입니다.
그런데 시안역 안으로 들어가며 받은 검색에 여직원이 몸수색을 너무 격정적으로 합니다.
허벅지부터 마구 주물러 올라와 마치 성추행당하는 그런 기분입니다.
왜 이러십니까?
비록, 나이가 들었지만, 아직 사내라고요~
세상을 살며 여자에게 이렇게 심한 몸수색을 받은 경험이 처음입니다.
우리가 탄 기차는 약간 연착해 9시 15분에 출발하여 차이지아포(蔡家坡 : 채가파)역에
10시 46분에 도착합니다.
채가파 역은 중국의 기차역으로는 아주 작은 시골역입니다.
우선 혹시 공명을 만나기 위해 오장원으로 가실 분을 위해 가는 방법을 자세히 알려드립니다.
오장원에 가는 방법은 시안에서 출발하는 게 가장 가깝고 편리합니다.
특히 기차는 시안역에서 자주 다니기에 저렴하며 편리하고 가깝습니다.
佳人처럼 간다면 누구에게 물어볼 필요도 두리번거릴 이유도 없습니다.
좌석이 없어도 한 시간 조금 더 걸리니 입석을 타고 가셔도 됩니다.
삼국지의 실제 주인공은 공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삼국지의 애독자치고는 공명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도 없을 겁니다.
이런 공명이 바로 오장원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며 하늘나라로 돌아갔습니다.
이런 곳을 찾아간다는 일은 한편으로 가슴설레는 일이 아닐까요?
차이지아포역에서 오장원으로 가는 방법은 역에서 기차를 내려 역 광장
(광장은 다른 중국의 기차역과는 달리 작습니다.)
앞에서 길을 건너지 말고 2번 시내버스를 타고 종점인 터미널로 갑니다.
기차역 앞에는 오토바이를 개조한 승합차도 많기에 터미널까지는 1원이면 쉽게 갈 수 있습니다.
어느 것을 타더라도 멀지 않기에 상관없습니다.
터미널에 내려 제갈량 묘로 가는 표를 사면 바로 경구 입구에 내릴 수 있습니다. (3.7원/1인)
그냥 한자로 제갈량 묘라고 써서 매표원에게 보여주시면 됩니다.
우리 부부는 중국어를 하지 못하기에 기차나 버스표를 살 때는 글을 써서 보여주며 표를 삽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미리 갈 곳의 구글 지도를 스마트 폰으로 찍어 확대해 보여주어 효과를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한자는 어려워 모르는 것도 많으니까요.
그다음 검표원에게 표를 보여주면 어느 버스를 타라고 친절하게 안내해 줍니다.
우리는 11시 10분에 계파촌이라는 곳에 가는 버스를 타고 30분 만에 제갈량 묘 앞에 도착합니다.
버스는 위의 사진처럼 미니버스입니다.
우리가 가는 곳을 알려주면 내리는 곳도 알려줍니다.
가는 길에 우리가 돌아올 시간이 궁금해 물어봅니다.
이럴 때는 적어달라고 하는 게 제일 편합니다.
우리가 외국인임을 알기에 아주 친절하게 적어줍니다.
며느리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정보라도 외국인이기에 알려주지요.
중국에서 시골을 다니다 보니 하루에 버스가 한 번만 운행하는 일도 가끔 있어
시간을 알아야 큰 낭패를 당하지 않잖아요.
우리 부부는 여행 중 늘 모르는 곳을 가기에 돌아오는 시간은 꼭 알아야 합니다.
이 시간만 알면 제갈량 묘를 구경하고 시간에 맞게 버스 정류장에 와 기다릴 수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런 것도 물어보지 마세요.
佳人이 물어보고 알아서 여기에 올렸으니까요.
위의 사진에 제갈량 묘에서 다시 차이지아포 버스 터미널로 돌아오는 시간입니다.
30분에 한 대 정도 운행하네요.
버스를 타고 시내를 벗어나니 위하를 건너는 다리가 나옵니다.
이 강은 삼국지에 많이 나오는 강이지요.
공명이 우리가 가는 오장원 언덕 위에 주둔하고 있을 때, 사마중달은 오장원
아래에 주둔하고 대치했던 강이 바로 여기와 그 옆으로 흐르는 사수였을 겁니다.
강태공도 낚시질했던 강도 위하였나요?
위하는 중원을 남북으로 나누는 강이라는군요.
동서로는 바로 오장원이 걸쳐있는 진령산맥이고요.
그러나 바로 여기가 중원의 남북과 동서를 가르는 꼭짓점인 셈입니다.
서량군 마초가 조조와 큰 전투를 벌일 때...
물론, 위하를 사이에 두고 싸우기도 했다는군요.
이때 조조는 식겁했지요.
도망에 급급해 옷도 제대로 챙겨입지 못하고 야반도주했고 자기 목이 붙어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던 곳이 여기던가요?
아마도 위의 그림을 찍은 사진이 그때 조조의 굴욕을 담은 모습일 겁니다.
다시 자세히 보니 아니군요?
조조가 아니라 중달입니다.
공명이 영채에 숨어 나오지 않는 중달에게 겁쟁이라고 여자 옷을 선물하며
놀리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이래도 중달은 나오지 않았지요.
심지어 그 옷을 입어보며 어떠냐고까지 한 바퀴벌레보다도 더 징그러운 진드기였지요.
결국, 공명이 죽고 난 후에야 퇴각하는 촉한의 군사 뒤를 추격하기 위해 영채를 나왔다지요.
신출귀몰한 공명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바짝 엎드려 버티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나 봅니다.
한 장 더 보고 갈까요?
이번에도 사마의 중달의 모습입니다.
중달 옆으로 두 아들이 함께 튀는 중입니다.
공명의 유인책에 빠져 호로곡에 들어갔다 화공을 당했으나 하늘의 도움으로
마침 비가 내려 불이 꺼지며 살아나오는 중입니다.
두 아들에게 머리가 붙어있는지 물어보는 장면입니다.
중달은 부끄러워하는 아들에게 "아들아! 부끄러운 것은 창피한 것이 아니란다.
전쟁에 패해 죽는 게 더 창피한 일이지.
어디 부끄러움이 배 째고 들어온다던? 버티면 이길 수 있고 이긴 후
마지막 웃는 자가 승자이란다!!!"
이 동네에 오니 조조나 중달은 영웅이 아니고 공명이 영웅입니다.
이때 위연도 함께 보냈더라면 마대는 곤장을 맞지도 않았을 텐데...
오장원이라는 석비가 보입니다.
얼마나 많은 세월 속에 회자한 지명입니까?
지금은 산 위의 작은 마을에 불과하지만, 수천 년 동안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남아있던 곳이 오장원이라는 곳이 아닐까요?
오장원이라고 쓴 글을 보니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오장원 제갈량 묘를 구경하고 나올 때는 동네 사람은 모두 한통속이 되어
차이지아포로 가는 버스가 오지 않는다고 자기네 자가용을 타고 나가라고 합니다.
제갈량 묘는 바로 오장원이라고 부르는 산 위의 넓은 들판입니다.
우리를 태운 버스조차 너무 힘겨운가요?
헉헉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그러나 올라가는 언덕길 양쪽으로는 단풍이 아주 곱게 물들어 처연하기까지 하다는 느낌이네요.
마치 공명의 한이 단풍으로 물든 듯...
오장원(五丈原)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위의 사진처럼 그 언덕이 바로 악기 비파 모양으로
생겼고 비파의 목 부분에 해당하는 거리가 다섯 장 정도라고 해서 오장원이라 불렀다 합니다.
비파라는 악기를 아시죠?
따로 비파 사진을 올려드리지 않아도 괜찮으시죠?
내리실 때는 오장원촌에서 내리지 마시고 제갈량 묘 입구에서 내리세요.
버스에 내리면 동네 아낙들이 향을 들고 인정사정없이 몰려옵니다.
아무리 필요 없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강제로 떠맡기다시피 합니다.
물론, 한국말을 모르니 필요 없다는 말도 알아듣지 못하겠네요.
그런데. 공해만 일으키는 야구 방망이처럼 큰 향은 왜 피웁니까?
화를 낸 후에야 물러납니다.
조금 언성을 높이세요.
중국 사람도 그렇게 하여 달라붙는 사람을 물리치더군요.
제갈량 묘의 입장료는 35원으로 무거운 배낭은 문표 파는 곳에 무료로 맡겨두고
들어가 구경하면 됩니다.
자~ 어때요?
공명을 만나기 위해 오장원 언덕을 찾아가는 일이 저렴하고 무척 쉽지요?
김미숙 씨!
정말 왜 이러십니까?
오늘따라 왜 김미숙 씨는 자꾸 문자를 보냅니까?
미숙 씨!
울 마눌님이 오해합니다.
무슨 여자냐고요.
미숙 씨! 왜 그러세요.
제발 문자 보내지 마세요.
잘못되면 佳人은 여권 빼앗기고 우리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고 오장원에서
중국어도 못하고 한국말만 하는 노숙인을 만드시렵니까?
부탁입니다.
미숙 씨가 佳人이 숨겨놓은 여자냐고요.
미숙 씨가 佳人 책임질 수 있어요?
여기는 한국사람도 잘 오지 않는 곳입니다.
어제 시안에서 거지 한 사람 만났는데 우리가 외국인임을 알고
"아임 헝그리~"라고 한 것도 보았습니다.
중국 시안의 거지는 영어도 합니다.
여기서 그럼 佳人이 영어로 구걸해야 합니까?
서민지원금융인지 뭔지 저 10분 내 대출 안 받습니다.
위의 밭은 제갈량 묘 입구에 있습니다.
오장원 언덕 위에 있는 밭을 제갈전(諸葛田)이라 하는데 여기에 공명이 군사를 주둔시키고
직접 밭은 일구며 농사지어 군량미를 보충했다고 하여 제갈전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그때 모습 그대로 밭의 모양이 남아있고 마을이 있어 사람이 살며 농사짓고 있습니다.
이곳으로 오는 교통편을 지도로 올려드립니다.
참고하시면 찾아가실 때 위치 파악에 도움이 되실 겁니다.
오장원이라는 언덕에서 북쪽을 내려다보면 위수라는 큰 강이 흐릅니다.
그리고 오른쪽인 동쪽으로는 사수라는 작은 강이 흐르는데 공명은 바로 여기 오장원에
진을 치고 아래 강 건너 진을 친 사마중달의 영채를 바라보며 서로 대치했을 겁니다.
오장원은 중국의 서쪽인 쓰촨을 가르는 진령산맥의 끝자락에 있지요.
지도를 보시면 차이지아포의 제갈량 묘는 시안에서 서쪽으로 가다가
바오지(寶鷄 : 보계)라는 도시 조금 못미처 있습니다.
바오지는 예전에 그 유명한 진창이라는 곳입니다.
공명이 2차 북벌을 감행한 곳으로 공략하다 실패하고 포기한 난공불락의 진창성 말입니다.
오장원은 5차 북벌지였고 제일 왼쪽에 보이는 천수는 1차 북벌을 감행했던 지역입니다.
그러니 서에서 동으로 아래는 대단히 험준한 진령산맥이 가로막고 있어
그 산맥을 넘어 북벌을 감행한 것이지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여행은 천천히 걸어가며 해야 합니다.
너무 빨리 가다 보면 경치만 놓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왜 가고 있는지도 놓치게 됩니다.
사람마다 여행 방법도 다릅니다.
우리 부부는 이렇게 주로 그곳의 대중교통만 이용하며 다닙니다.
이런 방법도 여행의 한 방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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